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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시간: (EST) 2022년 12월 09일, 금 2:50 pm
[종교/문화] 종교
 
B형간염과 간암을 극복하고 페미니스트가 된 사모님
[탐독의 시간] <내 몸은 내가 접수한다>(생각비행) 저자 김화숙 작가

(서울=뉴스앤조이) 김은석 기자 = B형간염 바이러스 보유자인 중년 여성이 간암 진단을 받는다. 수술로 암은 절제했지만, 어떻게 살 것인가 앞날이 불안하다. 담당 의사는 자기가 알아서 하겠다며 몸에 대한 질문을 묵살한다. 여성은 뭐에 홀린 듯 의무 기록 사본을 뗀 뒤 병원 문을 박차고 나온다. 스스로 자기 몸을 공부하며 자연의학에 눈뜬다. 자연식·단식 등 자연 치유법으로 건강을 되찾는다. 아니 이전보다 훨씬 건강해진다. 없던 B형간염 항체가 생기고 8년째 감기 한 번 안 걸렸으니까.

결혼식에서 순종을 서약한 후 남편을 떠받들며 살아온 조신한 사모가 있다. 50대 중반의 어느 날부터 지난날을 후회하며 분노의 화신이 된다. 자신을 설명할 언어를 찾고자 공부하고 토론하며 사람들과 어울린다. 갱년기 에너지를 분출하며 페미니즘에 눈뜨고 세상을 달리 보게 된다.

<내 몸은 내가 접수한다>(생각비행)는 이 두 가지 이야기가 절묘하게 이어지는 한 여성의 성장 에세이다. 1~2장은 저자가 간암 수술 후 병원 치료 대신 자연 치유를 선택하고 체험한 치유 수기가 주를 이룬다. 3장은 자연 치유의 길 위에서 자신을 새롭게 발견하고 찾아가는 이야기다. 저자는 이 시기를 "암과 자연 치유는 갱년기를 타고 흘러 페미니즘이라는 강과 합류한다"고 표현한다. 4장은 달라진 정체성으로 남편과 자녀 관계, 교회 안에서 새 길을 걷는 이야기다. 자기 주도형 자연 치유법에 관심 있는 독자에게 도움이 될 깨알 같은 정보와, 중년 여성이 갱년기 분노 에너지를 긍정하며 스스로를 가부장제에서 해방하고 진정한 사랑의 길을 찾기까지 내적 성장 과정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

60대에 접어든 저자에게 적절한 표현일지 모르겠으나, 글 하나하나가 생기발랄하고 너무 솔직하게 쓰여 단숨에 읽힌다. 글의 맥락 사이에 하나님의 창조를 긍정하고, 주체적으로 사유·실천하며 예수의 복음 정신을 새롭게 마주하는 신앙인의 변화 여정이 서려 있다. 찬란한 성장통을 거쳐 호보당당虎步堂堂 새 길을 걷고 있는 김화숙 작가를 10월 11일 서울 중구 카페바인 필동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내 몸은 내가 접수한다>(생각비행) 저자 김화숙 작가를 10월 11일 서울 중구 카페바인 필동에서 만나 인터뷰했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 책 에필로그에서 명함이 생긴 이야기를 하시면서 '작가'로 불리고 싶다고 말씀하신 게 기억나네요. 작가님,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이번에 책 나오고 딸이 얘기해 줘서 다시 기억났는데, 아이들 어렸을 때 학교에서 가정환경 조사서에 아빠는 목사, 엄마는 작가라고 쓰라고 했더라고요. 세 아이 엄마로, 사역자의 아내로 살며, 늘 글을 쓰려고 끄적였어요. 내가 느낀 대로 맘껏 말할 수 없다 싶을 때마다 '이건 나중에 글로 써야 되겠다' 하고, 가슴 속에 담아 놓곤 했거든요. 아이들이 크고 여건이 주어지면 작가로 살고 싶었어요. 환갑에 꿈을 이룬 작가네요.

덧붙여서 활동가 작가라고 소개할게요. 제가 사는 안산에 YWCA·여성노동자회·울림 이렇게 세 여성 단체가 있는데 제가 다 회원으로 활동해요. 4·16안산시민연대, 4·16합창단에서도 활동하고요. 저희 막내가 세월호 아이들과 같은 학년이었거든요. 제가 암 수술한 게 2014년 7월이었고요. 첫 두 해 정도는 몸 돌보느라 세월호와는 거리를 뒀지만, 촛불 이후부터 함께하고 있어요. '별을 품은 사람들'과 함께 세월호를 읽고 쓰며, 기억 활동을 해요. '별에게 보내는 편지'라고 매달 4·16안산시민연대 뉴스레터에 편지글을 연재하고요.

- 말씀하신 대로 남편이 목사님이신데, 간암 발병 전에는 어떻게 살아오셨어요?

20대에는 선교 단체 활동을 함께했어요. '성서 한국, 세계 선교'가 제 인생의 사명이자 의미였죠. 제자 양육한답시고 대학원 논문을 내팽개치는 식이었어요. 30대에는 해외 선교사였고요. 폴란드에서 언어와 문화를 배우며 현지인들 속에서 살았어요. 저희를 파송한 선교 단체에 리더십 문제가 불거져 6년 만에 남편이 안산 지부장으로 돌아와야 했어요. 가장 큰 미덕은 '순종'이었어요. 저는 폴란드어도 잘하고 아이 둘도 낳고, 폴란드 친구들도 사귀었으니 그곳을 아주 좋아했어요. 다시 한국으로 돌아간다니, 베개를 적시며 며칠을 울었어요.

'한국 가면 이제 사모로 어떻게 살지?' 그게 가장 암담했어요. 유럽 생활을 좀 하니 제가 이전까지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에 균열이 일어났던 거죠. 안타깝게도 한국에 돌아와서는 선교 단체 간사 가정으로서 예전 방식으로 살았죠. 2000년대 들어 저희가 속한 단체에 분열 또는 개혁이라고 할 수 있는 상황이 벌어지면서, 저희는 사표를 내고 제3의 길을 갔어요. 남편은 신학 공부해서 목사 안수를 받았고, 저는 직장 생활을 했어요. 아이들이 셋인데 아직 어리니까, 가정 교회로 주중에는 일하고 주말에는 예배드리며 생활했어요.

- 간암을 발견한 후 심경의 변화를 많이 느끼셨던 것 같아요. 수술하고 병원 다니면서 겪으신 일들을 쓰신 부분에 그런 감정의 변화를 솔직하게 기록해 놓으셨더라고요. 수술 후 3개월 차에 "내 몸은 내가 접수한다"라고 선언하셨는데, 어떤 마음으로 그러신 거예요?

저는 가족력 있는 B형간염 바이러스 보유자이고 오빠도 간 경화 간암으로 잃었는데, 정작 내 몸에 대해 공부한 적이 없었어요. 간암이라니, '아! 내가 너무 한심하게 살았구나'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인 거예요. 지나온 삶에 대한 질문들이 막 올라오고 마음에 소용돌이가 쳤죠. 수술 후 병가 한 달 만에 직장으로 돌아갔어요. 수술 3개월 차에 검사하러 안산에서 새벽에 출발해 버스랑 전철을 타고, 다시 택시까지 갈아타고 서울에 갔어요. 왜, 검사하고 결과 들으러 한 번 더 오라고 하잖아요? '병원 다니다 죽겠구나' 싶게 힘들더라고요. 그런데 의사가 눈도 안 마주치고 너무 불친절하고 무성의한 거예요.

"'뭐가 어떻게 좋은지, 항목, 수치라든가,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만….'
'조신한' 환자는 의사 선생님 심기를 살피며 조심스레 말했다. 귀찮다는 듯 그가 받았다.
'문제없다니까요. 두 달 후에 오시면 됩니다.'
가슴이 갑자기 쿵쾅거리기 시작했다. 일어설까 했지만 입에서 질문이 나와 버렸다.
'그럼, 수술 부위 제 간은 잘 자라고 있나요? MRI 영상으로 좀 설명해 주시면….'
듣고 싶지 않다는 듯 그가 버럭 말을 잘랐다.
'아니, 그게 왜 궁금합니까? 내가 다 알아서 합니다!'" (47쪽)

그때 저는 목소리 죽이고 순종적으로 살아온 삶에 불쑥 분노가 일고 마음이 괴로운 상태였거든요. 의사 선생님이 딱 걸린 셈이죠. 가슴이 벌렁거리고 속이 확 끓어올랐어요. '아, 내가 이 병원에 다시 오면 병이 도지겠구나' 순간적으로 그런 판단이 든 거죠. 생각해 본 적도 없는 의무 기록 사본을 다 떼서 내가 직접 공부하기로 마음먹었어요. 질문도 못 할 의사에게 뭐 하러 돈 쓰고 시간 쓰며 이러나 싶었던 거죠. '내 몸은 내가 접수한다' 그렇게 결심해 버리니 놀랍게도 맘이 편해졌어요.

- 자연식과 단식 과정을 너무 생생하게 적어 주셔서, 실제로 현재 암을 가지고 살아가는 분들에게는 큰 도움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책에 나오기도 하지만 어떤 기관들을 방문하셨고 어떤 도움을 받으셨는지 나눠 주실 수 있을까요?

호기롭게 '내 몸은 내가 접수한다'고 했지만, 직장을 다녔고 일상에 치여 살았죠. 몸 상태는 계속 못 미덥고, 연말이 되니 마음이 무거워지더라고요. 암이 재발할까 두려웠어요. 떼다 놓고 한 번도 열어 보지 않은 의무 기록 사본을 그제야 봤어요.

"의무 기록을 공부하고 보니 마음이 심란하면서도 묘하게 기분이 좋아졌다. 두려움도 염려도 사라졌다. 있는 모습 그대로 인정하니 몸이 좋아하는 게 느껴졌다. 몸을 처음 만나는 듯 설레고 마음이 따뜻해졌다. 나는 곧 몸이었다. 몸을 믿고 몸의 소리를 따라가는 게 길이었다. 영상 판독서와 검사 결과지를 종합해 몸 상태를 몸에게 다시 한번 설명해 주었다(최소한 이 정도는 설명해 줘야 의사지).

'수술로 간 20퍼센트가 좌엽에서 절제됐어. S4가 통째로 잘려 나갔어. 아직 S7과 S5에, 폐와 뼈에 자잘한 병변이 있어. 전이로 보이진 않아. 간세포암을 결정하는 특수 화학 검사 결과가 다 좋아. (중략) 간암 간 경화 환자는 담도와 혈관 검사를 해. 정맥류 출혈이나 복수腹水를 보는 거야. 문맥 혈전증, 담도 확장은 없대. 간경변이 좀 있고 문맥 항진증은 수술 후 일시적 현상일 수 있어. 수고했어!'" (58~59쪽)

공부하면 맘이 평안해졌어요. '좋아, 내 몸 상태가 이렇단 말이지? 이제 이 몸을 어떻게 할 것인지 알아보자' 하고 마음이 다잡아지는 거죠. 서점에 갔어요. 저는 실비 보험도 없고, 모아 놓은 돈도 없었어요. 살길을 찾자니 자연 치유가 눈에 들어오더라고요. 암 생존기를 찾는데 죄다 남자가 쓴 책인 거예요. '세상에, 암 세계도 남성 중심이라고? 내가 암 생존기를 내야겠군' 하고 충동적으로 결심했어요. 보통 5년간 암이 재발하지 않으면 관해寬解라고 하죠? 5년 후에 책을 쓰겠노라고 마음먹고, 신나게 공부하며 열심히 기록하기 시작했죠.

공부를 하면 몸이 좋아하는 것 같았어요. 내 형편에 맞는 자연 치유를 실천해 보기로 했어요. 송학운 씨가 하는 경북 영덕 자연생활교육원에 먼저 갔어요. 9박 10일에 70만 원쯤 했어요. 자연식 먹으며 매일 산행하고 책도 읽고 사람들을 많이 만났어요. 충북 제천에 신갈렙 씨가 운영하는 곳에서도 한 달 지내봤어요. 퇴소할 때 단식을 권유받았어요. 암 환자가 단식을? 이해가 안 되는데 궁금하잖아요. 단식 관련 책을 여러 권 읽었어요. 인류 역사에 가장 오래된 자연 치유법인데, 간염을 치료한대요! 도전해서 확인해 보고 싶더라고요. 회사에 사표를 내고 충남 서천에 있는 단식원에 들어가 3주 산야초 효소 단식을 했어요.

단식하며 제가 굉장히 자유를 갈구한다는 걸 알게 됐어요. 제가 주도적으로 할 수 있어 좋더라고요. 결론이 났어요. '아하! 내 몸에 관한 한 내가 전문가가 되는 거다. 내가 공부할 때까지 해 보고 도저히 안 되면 남의 도움 받는다' 그런 자세로 덤볐어요. 제가 치유자요 학습자이자, 의사요 간호사였어요. 내 의지에 반하는 건 몸이 먼저 싫어하는 게 느껴졌어요. 내 몸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과 함께 가는 새 길이었어요. 하나님은 얼마나 나를 새롭게 하고 싶으실까 싶었고, 날마다 거듭나는 것 같았어요.

- 듣다 보니 신앙 체험을 간증하시는 듯한 느낌도 드네요.

실제로 그랬어요. 자연 치유가 뭐겠습니까. 하나님이 지으신 자연과 함께 자연으로 돌아가는 길이니까요. 약도, 병원도 아닌 몸 스스로 내는 길이었어요. 자연 속에서 운동하며 찬양하고, 하나님과 대화하고 글 쓰니, 몸과 영혼이 가벼워지는 거예요. 피곤이라는 단어를 잊어버릴 정도로 에너지가 넘치고, 머리가 맑았어요. '하나님을 믿는다면서 하나님이 지으신 내 몸을 너무 몰랐구나' 싶었죠. 제가 영적인 것만 귀하다 생각하고 몸은 무시했더라고요. 하나님은 우리를 몸으로 지으셨어요. 죽을 때도 몸이 죽어요. 예수도 몸으로 죽고 몸으로 부활했고요.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는 몸을 하대하던 습관을 돌이켜 제 몸을 존중하고 대화하며 따르는 게 치유였어요. 제 자아상에도 자존감에도 삶에도, 신앙 전반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온 것 같아요.

- 자연식·단식 같은 자연 치유법이 모든 사람에게 다 맞는 건 아닐 것 같아요. 누군가에게는 너무 힘들 수도 있고 부작용이 생길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작가님은 어떤 방식으로 적응하셨나요?

간을 잘라 낸 몸이라 간에 부담을 주는 동물성 단백질은 피해야 했어요. 먹이사슬로 봐도 동물성 식품들은 식물보다 오염 정도가 크잖아요. 담낭도 잘라 버려서 지방을 분해할 담즙도 저장을 못 해요. 식물 위주로 자연스럽고 소박하게 먹는 게 최선이었어요. 효소 단식 얘기부터 할게요. 혁명적인 자연 치유예요. 몸은 소화하고 흡수하느라 효소와 에너지를 매일 써요. 굶으면 몸은 비상시국을 선언하고 장기를 대청소해요. 기초대사를 위해 찌꺼기나 잉여 영양분을 에너지로 써요. 단식 중에 미량의 영양소인 식물의 효소가 몸의 치유를 도와요. 종양이나 간염바이러스가 태워 없어질 수 있어요.

B형간염은 현대 의학이 못 고치는, 일종의 자가면역질환이란 걸 그전까지는 몰랐어요. 항체가 왜 안 생길까요? 내 몸을 지켜야 할 면역 체계가 태업 중이니까죠. 에러가 생겨 외부 침입자인 간염바이러스는 두고 몸을 해치는 거예요. 간암 원인의 70% 이상이 간염바이러스래요. 항바이러스제는 바이러스를 잡는 약이 아니예요. 면역 체계가 몸을 너무 해치지 못하게 하는 대증약이예요. 단식은 몸을 극한으로 몰아 면역 체계를 화들짝 깨우는 것과 비슷한 원리예요. 몸이 항상성을 유지하려고 바이러스조차 태워 쓰는 거죠. 3주 단식과 3주 보호식 후 제 몸에 B형간염 항원이 사라졌고 항체가 생겼어요. 평생 달고 살 줄 알았던 알레르기성비염도 사라지고, 체력도 지구력도 훨씬 좋은, 새로운 몸이 됐어요.

- 3장부터는 새로운 자아 정체성을 형성하는 이야기가 시작되는데요. 프롤로그에서 그 시기를 "암과 자연 치유는 갱년기를 타고 흘러 페미니즘이라는 강과 합류한다"라고 표현하신 문장이 인상적이었어요. 폐경기를 "찬란한 성장통"이라고 표현하신 것도 기억에 남고요.

어라? 이거 혹시 갱년기인가? 뒤늦게 책으로 확인하게 됐어요. 이전에 갱년기에 대한 편견이 있었거든요. 아픈 데 많고 열나고, 화가 많고 우울한 중년 여자, 아름답지 않은 그림이잖아요. 책을 보면서 알게 되었어요. 갱년기 역시 남성의 시각으로 정의되고 설명된 게 많다는 것을요. 광고를 봐도 갱년기는 치료하고 극복해야 할 장애처럼 다루잖아요. 제가 겪어 보니 다른 면이 너무 많았어요. 여성의 몸이 애 낳고 키우는 일 다 하면 쓸모없나요? 중년 이후 인생은 잉여인가요? 말이 안 되죠. 제가 가장 도움받은 책이 <폐경기 여성의 몸 여성의 지혜>(한문화)예요.

아기가 자라며 사춘기를 보내고, 가임기가 있듯, 갱년기 역시 성장통인 거예요. 호르몬의 변화와 엄청난 몸의 구조 조정이 일어나요. 가을이면 나무도 잎을 떨어뜨리고 겨울을 준비하잖아요. 갱년기 여성의 심신은 변화무쌍한 새 시대를 맞는 거예요. 이전에 왜곡된 것들을 몸이 스스로 바로잡아요. 지적으로 더 냉철해지고, 아이와 가정을 위해 참던 것들을 터뜨리고 화를 내기도 해요. 영적인 통찰과 지혜가 넘치니 가장 창조적인 시기예요. 사회문제와 불의에 목소리를 내요. 갑자기 정의로워진 게 아니라 호르몬의 변화로 눈이 달라지는 거죠. 이젠 누를 수 없는 겁니다. '아, 내 안에 갱년기 에너지가 흐르고 있구나' 알고 받아들이고 변화를 따라가야 해요. 그게 안 되면 우울증과 무기력과 화병이 되는 거죠. 남편과 함께 책을 읽고 '아, 하나님께서 이 시기에 사람의 몸에 이렇게 놀라운 변화를 주시는데 우리가 몰랐구나' 하고 반성했어요. 후퇴가 불가능한 "찬란한 성장통"이죠.


김 작가는 자연 치유를 위해 몸에 대한 공부를 시작한 뒤 커다란 삶의 변화를 겪는다. 그는 이 변화를 "암과 자연 치유가 갱년기를 타고 흘러 페미니즘이라는 강과 합류"한 것이라고 표현한다. 뉴스앤조이 김은석

- 페미니즘을 만나게 된 이야기도 부탁드려요.

제가 30대 후반에 폴란드에서 돌아와 한국 사회에 적응하려고 책도 신문도 열심히 읽었는데, 어느 날 전철역 플랫폼에서 <여성신문> 읽는 분을 만났어요. 그런 신문 어디서 구하냐고 물어봤죠. 그날 바로 신청해서 지금까지 구독하고 있어요. 몸은 보수 교회에 속했지만, 저의 지적 호기심과 통찰은 페미니즘에 동의했어요. 일종의 '샤이 페미니스트' 크리스천이랄까요. <여성신문>을 통해 중년 여성들을 위한 '자유 기고가 과정'이라는 글쓰기 모임도 다니고, 페미니스트들과 어울렸어요.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블로거로 글을 썼어요. <여성신문>으로 세상을 읽되, '조신한' 아내이자 사모로 살았던 거죠.

내 몸을 내가 접수한 후부터는 달랐어요. 제 눈이 변하고 몸이 이끄니 책상머리 공부가 아닌 거예요. 책과 영화가 가지를 마구 뻗어 가니 모두 제 얘기였어요. 자기 주도적 자연 치유를 하니 혼자 만족할 수 없겠더라고요. 독서 토론 모임에 나가 사람들과 어울려 토론하고 남의 이야기도 듣고 글을 썼어요. 제 안에 쌓여 있던 말을 할수록 제가 자유로워지고 강해지는 걸 느꼈어요. 페미니즘 책이 몸으로 받아들여지는 거예요. 도도히 흐르는 큰 강물에 합류되는 느낌이었어요.

서울에서 토론하고 오면 남편한테 책을 같이 읽자고 하곤 했어요. 정희진의 <아주 친밀한 폭력>(교양인)을 잊을 수가 없네요. 가정 폭력 피해 여성들의 심리 상태가 내 모습인 거예요. 폭력 남편들 속에서 제 남편이 보였고요. 남편은 스스로 세상에서 1%에 드는 좋은 남편이라고 자부했던 사람이니 기분 나빠 할 수밖에요. 제가 한 쪽을 읽어 주고 이야기해 보자고 했어요. 거룩한 질서인 양 남성 중심 문화에 길들어 잉꼬부부인 줄 알았던 우리가, 실은 폭력 가정과 같다는 인식이었어요. 저는 공부에 가지를 뻗어 가는데 남편은 점점 불편해지는 거죠. 선심으로 책을 읽어 주는 것도 한계가 있죠. 저는 선심이 아니라 우리 관계의 대전제를 다시 묻고 있었거든요. 집안이 자꾸 시끄러워졌어요. 선량한 남편·아내 코스프레 그만하고 싶었어요. 몸이 먼저 반응하니 조곤조곤할 수 없었어요. 아이들도 교회도 세상도 다 달리 보였어요. 공사의 이분법이 다 뭐예요. 개인적인 게 정치적인 것으로 확 다가왔어요.

- 책에 남편분과의 갈등을 품은 대화가 적나라하게(?) 기록돼 있어요. 재밌게 읽긴 했지만 '목사님이신데 괜찮으실까' 하는 우려도 생기더라고요. 작가님의 변화에 발맞추시느라 버거우셨던 것 같기도 하던데, 책에 담지 못한 에피소드도 있나요?

결혼할 때 "신부로서 남편을 존경하고 순종하겠습니다"라고 서약했어요. 이 서약이 제 결혼 생활의 율법으로 발목을 잡았어요. 세 아이들은 대학 갈 때까지 엄마 아빠가 싸우는 걸 못 봤어요.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요? 저는 남편보다 목소리가 클까 봐 조곤조곤 말하고 늘 그의 자존심과 권위를 의식하며 살았어요. 남편과 말이 안 통하는데도, 버전을 바꿔 좋게 말하려 애썼어요. 그러다 결국은 '내가 이 사람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구나' 하며 내 탓으로 돌리고 "당신은 내 얘기를 잘 들어주는 좋은 남편이다. 고맙다" 이렇게 끝냈어요. 그러면 이 사람은 자기가 정말 훌륭한 남편인 줄 아는 거죠. 제가 그렇게 길들인 거니 누굴 원망해요.

갱년기 덕에 제 눈이 달라지고 분노 에너지가 저를 사로잡았어요. 가슴에 불이 치밀어 오르니 그 짓을 더는 못 하겠는 거예요. 폭발하는 거죠. 남편은 그런 저를 보면서 숨넘어갈까 봐 무서웠대요. 남편과 대화하자면 가슴이 답답하고 '내가 얼마나 많은 산을 더 넘어야 대화가 될까. 설명하다가 죽겠구나' 싶은 거죠. 훌륭한 남편이 이상한 아내를 감당하고 있다는 태도가 절 더 미치게 했어요. "우리 관계의 대전제를 다시 묻자. 잘못 배우고 잘못 살았다. 페미니즘 공부하면서 새로운 관계로 살거나, 아니면 확실하게 갈라서자. 암이 재발해서 죽든 숨이 막혀서 죽든 어쨌든 나는 죽는다." 눈에 보이는 게 없었던 거죠. 그러니까 이 사람이 '아, 내 아내가 나하고 말이 안 통해서 죽을 수도 있겠구나' 싶었대요. 이혼은 안 당하고 싶고, 사람 죽게 둘 수 없으니 일단 응급처치로 제 말을 따르기로 했대요.

그러다가 어느 날 서점에 같이 가자더니 남편 스스로 록산 게이의 <나쁜 페미니스트>(문학동네)를 고르더라고요. 자기 안의 편견과 두려움을 인정하게 되고, 제대로 공부해 보겠다고 마음먹은 거예요. 얼마 안 지나 안산 여성노동자회에서 <82년생 김지영>(민음사)을 읽고 토론하게 됐어요. 거기 같이 가서 안 들리던 귀가 뻥! 뚫린 느낌이었대요. 집에서 제가 하는 말만 들었을 때는 "당신이 너무 심한 거야. 이상한 거야" 하면 됐는데, 여러 사람에게 같은 말을 들으니 '아, 내가 너무 몰랐구나' 하고 인정하게 된 거죠. 그 후로 지금까지 같이 토론 모임에 참여하고 있어요. 6년이 된 지금은 그의 인식이 많이 확장되고 달라졌죠. 우리는 평등한 친구로 더 친밀하면서 자유로운 관계로 살고요. 그의 설교가 달라지고 신학이 달라지고 예술을 읽어 내는 관점이 달라졌어요. 대화가 달라지고 끝없이 토론할 수 있는 사이가 됐어요.

남편은 목사예요. 페미니즘이 예수 복음 정신과 충돌하면 못 받아들였을 거예요. '아, 사실은 이게 예수 복음의 핵심과 맞닿는데, 이 사회가 우리를 편견으로 눈멀게 했구나' 깨달은 거죠. 그동안 우리가 보수적인 교회 안에서 탈정치적으로 개인의 도덕이나 성화만 강조하는 프레임에 딱 갇혀 있었던 게 보이는 거예요. 페미니즘에 마음을 여니까 이제 복음이 다르게 읽히는 거죠. 예수가 내 삶을 구원하고 변화시키는 분이라면, 이 땅의 부조리를 못 본 척 하는 게 믿음일까요? 예수도 당대의 불의와 싸우다 죽었는 걸요. 구조적 성차별이 없는 게 아니라 그걸 볼 눈이 가려진 거죠. 보수 기독교인으로서 저희도 사회적인 문제와 믿음이 별개인 양 살았으니까요.

한번 웃고 넘어갈까요? 4년 전에 남편이 지금 일하는 교회 담임목사로 청빙받았어요. 처음에는 한동안 주일예배에 가서 설교만 했는데, 얼마 있다가 청빙위원들이 가족들을 보고 싶다고 했다는 거예요. 저는 전통적인 사모를 기대하면 절대 안 가겠다는 마음이었고, 남편도 동의했죠. "내 아내는 글 쓰고 활동가처럼 산다. 목회 돕는 사모가 아니다"라고 했대요. 온 가족이 가벼운 맘으로 갔어요.

질문이 오갔는데, 저한테 '사모로서의 마음가짐'을 물어보는 거예요. 순간 "사모가 뭔데요?" 하고 되물었어요. 그리고 "전에는 돕는 배필, 섬기는 여종, 그런 사모로 살았는데, 공부하다 보니 점점 예수님이 새롭게 보이더라. 그게 얼마나 '개소리'인지 알게 됐다. 나는 페미니스트다" 다 밝혔어요. 저를 잘 보시고 청빙 결정하시라고 했어요. 흔히 목사보다 사모가 중요하다는 식으로 기도와 헌신을 강조하며 사모를 압박하잖아요. 솔직히 목회는 목사가 하는 거죠. 사모가 더 중요하면 사모한테 연봉을 더 많이 주든가! 저는 평생 사모로 그림자 노동만 했고, 직장까지 다녀야 먹고살 수 있었어요.

- 일반 독자를 염두에 두셔서인지 책에는 신앙에 관한 이야기를 별로 담지 않으신 것 같아요. 여전히 교회 안에는 페미니즘에 거리감을 느끼시는 분이 많은데, 그런 분들을 위해 신앙인으로서 페미니즘을 어떻게 받아들이셨는지 좀 더 풀어 주시겠어요?

이데올로기적으로 페미니즘에 접근하면 논쟁이 심해져요. 저는 페미니즘이 삶을 살아가는 하나의 태도라고 봐요. 우리가 하나님나라를 이 땅에 이루어 달라고 기도하잖아요. 예수의 하나님나라는 어떤 차별도 배제도 없고, 남녀 간 위계도 없고 형제자매인 나라죠. 지극히 작은 이들이 동등한 인간으로 존중받는 그런 나라를 향해, 지금 여기에서 삶으로 살아 내는 태도가 페미니즘인 거죠.

제가 올해를 마태복음 18장 3절 말씀과 함께 출발했는데요. "너희가 돌이켜 어린아이들과 같이 되지 아니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과거에는 이 말씀을 사회정의나 정치 문제에 전혀 연결하지 못했어요. '어린아이' 하면 순수함, 순종, 전폭적인 의지와 신뢰, 이런 식으로 탈정치적인 메시지만 들었어요. 예수 당시로 돌아가 보면, 어린아이란 정치적·사회적으로 권리가 없는 약한 존재였어요. 인구수에도 안 들고, 법정 증인도 못 됐어요.

예수가 어린아이와 같이 되라는 건, 마냥 순수하라는 말이 아니죠. 이 사회에서 지극히 주변으로 밀려나고 배제당하며 목소리를 낼 수 없는 존재들을 어린아이라 하신 게 아닌가…. 목소리를 잃은 사람들 속에서 나를 발견하고 그들과 함께하는 것이 어린아이같이 되는 것 아닌가 해요. 제가 글을 쓰는 것도 낭만적인 취미 생활이 아니라 내 목소리 자체가 배제되고 눌린 자의 것이었기 때문에 하려는 거예요. 단지 여성이고 사모라는 이유로, 그림자 노동을 강요받고 눌린 자로 살았어요. 교회는 여성을 부려 먹기만 하고 목소리를 배제하기 쉬워요. 남성 중심적인 질서와 의사 결정 구조, 세상보다 교회가 더 낙후된 '실낙원'이죠.

저희 교회에서 '백합과 장미'라는 토론 모임을 만들었어요. 교회 안팎 사람들이 함께, 나이에 상관없이 서로 평어체를 쓰며 예수와 페미니즘을 공부하고 토론해요. 20대부터 60대까지 연령도 다양해요. 제가 토론을 진행하고 목사 남편은 참여자 중 한 사람이죠. 아주 자유롭고 재미있어요. 교회와 사회 사이의 벽을 허물고 함께 친구가 되며 배워요.


<내 몸은 내가 접수한다 - 자연 치유로 B형간염 간암을 극복하고 삶을 바꿔 버린 여자 이야기> / 김화숙 지음 / 생각비행 펴냄 / 265쪽 / 1만 6000원

- 책을 엄청 많이 읽으셨더라고요. 참고 도서가 55권이나 되던데요. 독서와 관련한 이야기도 들려주세요. 어떻게 그렇게 왕성하게 읽으실 수 있으셨는지. <뉴스앤조이> 독자들에게 꼭 추천하고 싶은 책이 있으신가요?

책을 늘 가까이 하려 했어요. 빠르게 변하는 세상을 너무 모르고 살았으니까요. 남을 가르치고 섬긴다는 게 부끄럽고 무겁게 와닿았어요. 아프고 나서는 야만적인 병원에 안 가려니 공부해야 했고요. 모르는 세계가 자꾸 많아지니 환장하는 거죠. 가지에 가지를 뻗어 가는 재미도 좋잖아요. 사람들과 토론하는 것도, 토론을 진행하는 것도 즐거워요. 제 복이죠.

암 발병 이전에 읽은 책인데 <예수, 종교를 비판하다>(새론p&b)는 저희 부부의 '인생 책'에 속해요. 목록에 없어요. 저자 브룩시 카베이는 기독교가 인간의 종교성에 기대어 예수 복음보다 종교에 사람을 길들인다고 비판해요. 예수 당시 유대 종교를 보면 알잖아요. 지금 기독교는 어떻죠? 주류 교회 시스템을 떠받들수록 예수 복음 정신은 희미해지죠.

그리고 벨 훅스의 <올 어바웃 러브>(책읽는수요일)를 추천해요. 흔히 기독교를 사랑의 종교라고 하죠? 우리가 사랑이라는 개념을 제대로 알고 있을까요? 지금껏 본 게 권위주의적·가부장적 성경 해석에서 온 사랑밖에 없더라고요. 벨 훅스는 "평등하지 않으면 서로 사랑이 불가능하다"라고 해요. 제가 남편하고 잉꼬부부인 줄 알았는데, 가부장적 위계가 불편해지니까 비로소 "이게 사랑이야?" 묻게 됐어요. 자신과 상대방에게 솔직할 수 없는데 과연 사랑일까요?

M. 스캇 펙의 <아직도 가야할 길>(율리시즈)에서도 사랑을 "나와 타인의 영적 성장을 위해 자아를 확장해 가는 과정"이라고 하잖아요. 서로 사랑하는 사이라고 하면서 자아가 함께 확장되지 않는다면 의심해 봐야 해요. 어느 한쪽이 계속 떠받들어 줘야 유지되는 관계, 참고 견뎌야 유지되는 관계를 사랑이라 말하기는 곤란하죠.

참, 책에 참고 도서 목록을 추리고 추리다 보니, 빠뜨린 게 있더라구요. 김현정의 <의사는 수술받지 않는다>(느리게읽기)도 추천하고 싶어요. 저자는 현직 정형외과 의사인데 자연의학도 접목해요. 의사는 왜 수술받는 일이 드물까요? 자기 주도적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니까요. 의료 주체로서 환자의 병식病識을 강조하는 책이에요. 병에 대한 인식, 내 병을 내가 어떻게 통찰하느냐, 그게 치료의 시작이라고 말해요. 의료 쇼핑하는 소비자가 되지 말라는 거죠.

- 작가님은 인생 후반기를 찬란하게 시작하고 계시다는 느낌을 받아요.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가고 싶으신가요?

지금보다 더 찬란한 때는 없었어요. 계속 글 쓰고 싶고, 활동가로 살고 싶죠. 일단 다음 책을 쓸 거고요. 갑자기 불어오는 바람에 쓸려서 여기까지 왔기 때문에 앞날은 솔직히 잘 모르겠어요. 어떤 새바람이 불면 또 쓸려 가겠죠. 다만 예수와 더 친밀하게 살고, 예수를 더 알아 가고 싶어요. 여성과 어린아이 같은 이들의 목소리를 담아내는 글을 쓰고 싶어요. 예수 정신과 페미니즘을 교회 안팎에서 삶으로 구현하는 작가이자 활동가로 살고자 애쓸 거예요.(본보 제휴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2년 11월 08일, 화 5:42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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