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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 연예/스포츠
 
프로야구 단장과 감독의 거친 말싸움... 절묘한 속임수
[김은식의 야구야] 신인 선발제도의 변화와 프로야구의 발전

(서울=오마이뉴스) 김은식 기자 = 지역 연고제는 초창기 프로야구의 흥행과 조기 정착을 위한 전략적 승부수였다. 1982년 한국프로야구의 창설을 기획한 이용일과 이호헌은 전국을 6개 광역 단위로 나누고 6개의 프로야구팀이 각 지역을 대표해 경쟁하는 구도를 뼈대로 삼았다. 두 사람은 1970년대 초반 경제와 정치 영역에서 대두된 지역 간의 대결 의식이 야구장으로 번지면서 고교야구의 흥행으로 이어지는 놀라운 현상을 야구협회 임원 자리에서 지켜보며 확신을 했다.

그래서 각 지역을 대표하거나 최소한 연고를 가진 대기업들을 추려 프로야구팀 창단을 제안했고, 각 팀에 해당 지역에 있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선수들에 대한 독점적인 선발권을 보장했다.

프로야구 창설 작업의 가장 강력한 후원자였던 청와대 비서실에서는 오히려 지역 연고제가 지역감정을 악화하는 것 아니냐고 우려했다. 특히 유혈 진압을 통해 간신히 눌러둔 광주와 호남 지역 민중들에게 단결하고 행동하는 빌미를 줄까 봐 걱정했다. 그러나 이용일은 '지역 연고제가 프로야구 흥행의 유일한 방책'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자신의 구상을 관철했다.

그 통찰은 정확했고 프로야구는 첫해부터 예상을 뛰어넘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물론 이종도와 김유동의 만루홈런이 화려하게 폭발하고 박철순과 백인천의 공과 배트가 춤을 춘 그라운드도 매력적이었지만, 지역 연고제를 통해 팬들 역시 6개 팀으로 빠짐없이 배치된 것이 더 중요한 요인이었다.

고교야구만 해도 하다못해 그 학교를 졸업한 친척이나 지인이 있거나 그 학교 가까이에 살았던 인연이라도 있어야 응원에 몰입할 수 있었던 것과 달리 프로야구는 대부분의 국민에게 각자 한 팀을 응원해야 할 분명하고 자연스러운 이유를 제시해주었다.

흥행은 성공, 과제는 전력평준화

하지만 첫해를 치른 뒤 전력평준화라는 과제가 대두되었다. 그 해 각 팀이 80경기씩을 치른 가운데 56승을 거둔 OB 베어스와 15승에 그친 삼미 슈퍼스타즈 사이에는 무려 41경기 차가 벌어졌다. 특히 그 두 팀이 벌인 16차례의 맞대결에서 삼미는 단 1승도 얻어내지 못하는 뻔한 양상을 드러냈다.

그것은 선수나 지도자의 유능함과 무능함이 만든 차이라고는 말할 수 없는, 그저 다시 100번쯤 붙여놓아도 천운이 따르거나 상대방의 동정심을 얻지 않는 한 10경기의 반전도 기대하기 어려운 구조적이고 근본적인 문제임이 너무나 분명했다.

이듬해 가장 선수층이 얇았던 삼미와 해태에 재일교포 선수들의 영입이 먼저 허용되면서 당장 그 두 팀이 패권을 다투는 반전을 일으키기도 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응급조치일 뿐이었다. 유능한 재일교포 선수들을 영입하는 데는 많은 돈이 들었고, 그것은 그 자체로도 구단에 부담이었지만 그런 부담을 감수하면서까지 영입할 수 있는 선수의 양과 질에도 한계가 있었다.

더구나 성공 사례 못지않게 실패 사례도 늘어났고, 그 실패들은 엄청난 경제적 손실을 동반했다. 1980년대 후반 이후 엔화 가치의 폭등과 함께 그 손실의 위험성도 높아졌다. 결국 1990년대 이후 재일교포 선수들의 발길은 거의 끊어지다시피 했다.

근본적인 해결책은 선수 선발 제도를 손보는 것이었다. 1986년부터 연고지 내의 고등학교를 졸업한 선수들에 대한 선발권이 '무제한'에서 10명으로 제한되었고 1987년부터는 3명으로 다시 축소되었다.


▲ 15일 오후 서울 웨스틴 조선호텔에서 열린 2023 KBO 신인드래프트. 지명된 선수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2022.9.15 ⓒ 연합뉴스

연고 지명권의 축소, 2차 지명의 재발견

연고 지명권 '10장'과 '무제한'은 큰 차이가 없었다. '무제한'이 허용되던 시기에도 각 구단이 지명한 선수들은 10명을 넘는 경우가 흔치 않았기 때문이다. 1983년에도 15명을 지명한 뒤 11명과 계약한 롯데가 가장 많은 사례였고 '소수정예'를 자랑하던 해태는 6명을 지명해 5명을 영입한 것이 전부였다. 1984년에는 삼성과 OB에 9명씩 입단한 것이 가장 많았고 삼미는 3명을 영입하는 데 그치기도 했다.

하지만 연고 지명권이 3장으로 줄어들면서 많은 변화가 시작되었다. 10명과 달리 3명을 고르는 일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장 제도가 바뀐 첫해인 1987년 삼성 라이온즈는 국가대표 키스톤 콤비 강기웅-류중일과 함께 왼손투수 장태수를 건지느라 이정훈을 흘렸고, 그 이정훈을 잡기 위해 빙그레와 청보의 감독과 단장들이 기만전술을 주고받는 일화를 남겼다. 그때의 일은 이랬다.

연고 지명을 받은 3명씩을 제외한 전체 선수들을 대상으로 모든 구단이 참여하는 2차 지명을 하되 신생팀 빙그레와 전년도 최하위팀 청보는 먼저 2명씩을 지명할 권리를 받았다. 이에 따라 빙그레와 청보가 한 명씩을 번갈아 지명하며 2명씩을 선택한 다음 다른 팀들에 기회가 넘어가도록 되어 있었다.

이정훈이 가장 뛰어난 타자라는 점은 분명했지만 두 약체팀의 사정상 투수들을 먼저 보강할 필요가 있었다. 빙그레의 노진호 단장이 배성서 감독에게 사전 각본에 따라 '투수 이동석과 내야수 정상진을 뽑자'고 말하자 배성서 감독은 '투수만 둘을 뽑아야 한다'며 거칠게 말싸움을 벌이며 우선 이동석을 지명했다.

그 모습을 훔쳐본 청보의 박정삼 단장은 이정훈을 두 번째 기회에도 충분히 뽑을 수 있으리라 생각하고 경북고와 연세대를 졸업한 왼손투수 이상훈을 먼저 지명했다. 그러자 빙그레는 기다렸다는 듯이 이정훈을 지명해 원하는 투수와 야수를 모두 얻었다. 대구상고 시절부터 이정훈을 주목해온 청보의 강태정 감독은 분통을 터뜨렸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이정훈이 2년 연속 타격왕에 오르며 빙그레 이글스를 강팀으로 이끌 것이라고까지 예상하지는 못했을 테지만 말이다.


▲ 악바리 이정훈 2차 지명을 통해 배출된 최초의 슈퍼스타라고 할 수 있을 이정훈의 별명은 '악바리'다. 2년 연속 타격왕에 오르며 팀을 강팀으로 이끈 그가 품었던 '악'의 일부는 1차 지명에서 밀려나며 타향 팀으로 가야 했다는 점이었다. 하지만 그 이후 1차 지명보다 2차 지명에서 더 많은 스타들이 배출되는 시대가 열렸고, 더 이상 2차 지명자라는 이유로 '악'에 받칠 이유도 없어졌다. ⓒ 한화 이글스

전문스카우트의 등장

이정훈은 노골적으로 '드러난 보석'이었기에 극적인 쟁탈전이 필요했지만, 더 중요한 것은 진흙 속에 '숨겨진 진주'를 찾는 일이었다. 이제 각 구단은 연고 지역 출신 선수들 중 가장 뛰어난 3명을 골라내기 위해 치밀한 분석을 해야 했고, 이전까지 다른 구단이 버리거나 흘린 선수들 중에서 아쉬운 대로 골라서 쓰는 '이삭줍기터'였던 2차 지명 역시 제대로만 고르면 월척은 몰라도 준척은 낚을 수 있는 해 볼 만한 '낚시터'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각 구단이 스카우트 부문을 강화하고 선수들에 대한 관찰과 분석에 나선 것은 당연했다. 1987년 OB 베어스가 KBO에서 아마추어 선수들의 분류 작업을 담당하던 강남규를 영입해 선발 업무를 맡긴 것이 한국 야구 전문스카우트 역사의 시작이었다.

강남규는 휘문고에 다니던 1958년 서울공고를 상대로 국내 최초의 퍼펙트게임을 기록한 투수였고, 나중에 베어스의 수석 코치를 지냈다. 프로 첫해부터 MBC와 서울을 연고지로 공유하면서 선수도 경쟁적으로 선발해야 했던 OB가 가장 먼저 스카우트 분야의 중요성에 눈을 뜬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기도 했다.

1989년 서울 지역 신인 지명에서 OB 베어스가 당시 대학 최고의 투수로 꼽히던 건국대의 김기범 대신 성균관대 이진을 선택하는 뜻밖의 결정을 내린 것도 전문 스카우트의 의견을 존중했기 때문인데, 하필 그 의욕적인 첫걸음이 영 좋지 않은 결과로 이어진 것은 안타까운 일이었다.

김기범이 1990년대 LG 최강의 계투 요원으로 11년간 활약하며 통산 62승 그리고 승수로 다 표현되지 않는 엄청난 기여를 해준 반면 OB의 이진은 4년간 10승을 기록한 데 그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스카우트 전문화의 필요성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었고, 다른 구단들도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이듬해인 1988년에는 삼성 라이온즈가 스카우트 전담팀을 설치하면서 한 발 더 나아갔고 1989년부터는 다른 팀들도 스카우트 업무만 전담하는 인력과 부서를 설치했다. 대학과 고교 팀들의 경기 현장에 프로팀 직원들이 상주하며 뭔가를 관찰하고 기록하는 풍경은 그 무렵부터 시작되었다.

어쨌든 그 이후로 2차 지명을 통해 선발된 선수 중에도 굵직한 이름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1987년에 이정훈을 놓친 청보의 2차 지명자 중에는 2년 뒤 연고지 인천에 첫 가을야구의 경험을 선물한 최창호가 들어있었고, 1988년에는 롯데가 김응국을, OB가 미래의 명감독 김태형을 건졌으며, 1989년에는 정명원, 이종운, 이명수 등이 2차 지명을 통해 프로에 입문했다. 90년대 후반 이후로는 1차 지명보다 2차 지명에서 더 훌륭한 선수들이 배출되는 일이 흔해졌다.


▲ 스카우트 화제를 모은 sbs 야구드라마 <스토브리그>에서도 사무실보다는 고등학교 야구장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는 스카우트 팀장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한국에서 이런 모습이 시작된 것은 1980년대 후반 2차 드래프트의 중요성이 대두되면서부터였다. ⓒ sbs

신인선발제도의 변화와 야구의 변화

그 뒤로도 신인 선발 제도는 계속 바뀌었고, 그에 따라 구단들의 대응 방식도 바뀌었으며 그 성패에 따라 프로팀들의 성적도 바뀌었고 학생 선수들의 진로와 생활도 바뀌었다.

1차 지명은 1990년 2명을 거쳐 1991년부터 1명으로 축소된 후 2010년에 폐지되었다가 2014년에 되살아났다. 그리고 2차 지명도 무제한으로 허용되다가 1997년부터 12명으로 제한된 뒤 현재 10명으로 조정되었다. 그 외에 고등학교 졸업생에 대한 선발권은 별도로 정해지다가 2000년대 들어 통합되기도 했다.

신인 선발 제도는 한국 야구의 형태를 꾸준히 바꾸어온 가장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제도의 변화에 따라 실업팀들의 몰락이 가속화되기도 했고, 대졸 선수에서 고졸 선수로 스카우트의 초점이 변하기도 했으며, 그에 따라 대학 야구의 위기가 대두되기도 했다. 또 스카우트의 중요성이 발견되고 육성의 필요성이 강조되었으며, FA(free agent 자유계약선수)나 외국인 선발 제도가 도입되고 확대되는 배경으로 작용하기도 했다.

그 결과 애초의 목적이었던 '전력의 평준화'가 이루어졌는지는 분명하게 결론내리기 어렵다. 프로 원년의 삼미 슈퍼스타즈보다 더 처참한 성적을 내는 팀이 나오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그보다 더 못하는 팀이 나오지 않았다고 말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특히 1차 지명권이 1장으로 축소되거나 폐지된 기간에 신인 선발 제도는 약팀에 조금이라도 유리한 방식이었는데도 약팀의 반등은 보기 어려워졌다.

1980년대 초 강팀과 약팀을 나눈 결정적인 이유가 연고지의 차이였고 그로부터 충원할 수 있는 '자원'의 차이였다면, 2000년대 이후에는 그 이유가 다양해진 점을 이유로 생각해볼 수 있다. FA와 외국인 선수 제도가 도입된 이후에는 투자의 규모가 그 못지않은 이유로 떠올랐고, 선발한 선수를 육성하고 관리하는 방식도 적지 않은 차이를 만들었으며, 전력을 분석하고 전략을 짜거나 훈련을 하는 방식도 꾸준히 발전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중요한 점은 그런 이유를 채움으로써 강해지는 팀보다 그런 이유를 결여함으로써 약해지는 팀이 훨씬 많아졌다는 점이다. 흔히 감독이 이기게 할 수 있는 경기는 얼마 되지 않아도 지게 할 수 있는 경기는 한이 없다고 말하듯, 투자를 해서 강해진 팀보다는 아껴서 약해진 팀이 많고 육성과 관리를 잘 해서 올린 성적보다 못해서 떨어진 성적이 두드러지기 때문이다.

강해지는 방법도 다양해지고 약해지는 방법도 다양해지는 것, 그중에서도 강해지기는 어려워도 약해지기는 쉬워진 것. 그런 변화를 꼭 '평준화'라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발전'이라고는 할 수 있을 것이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2년 11월 01일, 화 5:53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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