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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승엽이형과 신수 다음"... 이대호는 정말 3위일까
[김은식의 야구야] 역대 최강타자의 은퇴, 그리고 역대 은퇴시즌 최강 타자의 출현

(서울=오마이뉴스) 김은식 기자 = 인생은 짧지만 프로선수로서의 삶은 더욱 짧다. 그나마 최근에는 한국 프로야구에서도 20년 이상 선수 생활을 이어가는 경우도 아주 드물지는 않지만, 어쨌거나 다른 대부분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이 절정기를 맞이하는 나이에 이르기도 전에 은퇴라는 일정에 도달하게 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모든 선수는 은퇴한다. 하지만 모든 선수에게 은퇴식이 허락되지는 않는다. 저마다 원대한 꿈을 품고 프로팀에 발을 내디뎠던 수많은 선수들이 팬들의 기억 속에 희미한 흔적조차 남기지 못한 채 조용히 유니폼을 벗으며, 전성기에 꽤 화려한 순간들을 누리고 적지 않은 몸값을 받았던 선수들중에도 적지 않은 이들이 마지막 순간에는 떠밀리듯 사라지곤 한다. 그래서 동료 선수들과 팬들의 박수 속에서 선수인생에 마침표를 찍는 은퇴식은, 지금도 훈련장에서 땀 흘리는 모든 선수들이 꿈꾸는 작은 소망일지도 모른다.

은퇴식보다 한 단계 높은 곳에 있는 꿈이라면 영구결번일 수 있다. 한 선수를 상징하던 등번호를 그 이후 어떤 선수에게도 허락하지 않고 비워둠으로써 그 번호의 주인공을 기억하게 하는 영구결번은, 한국 프로야구의 40년 역사 속에서 단 17명에게만 허락됐을 정도로 귀하다. 그것은 선수와 팬들이 영원히 기억해야 할 만큼의 업적과 헌신성, 그리고 모범적 태도를 두루 갖추었다고 널리 인정되는 이에게만 허락되기 때문이다. 아직 명예의 전당이 마련되지 않은 한국 프로야구에서 은퇴한 선수에게 주어지는 최고의 영예는 그래서 각 구단이 정하는 영구결번이라고 할 수 있다.

1, 2호 영구결번의 주인공 김영신과 윤동균

한국 프로야구에서 가장 먼저 영구결번의 주인공이 된 선수는 김영신이고 두 번째 주인공은 윤동균이었으며, 모두 OB 베어스 소속이었다. 김영신은 국가대표 출신의 포수 유망주였지만 프로 입단 후 김경문, 조범현 등 쟁쟁한 선배 포수들에 가려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하는 처지를 비관해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으로 전해졌는데, 구단에서 애도와 추모의 뜻으로 그의 등번호 54번을 비우기로 함으로써 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영구결번이 되었다.


▲ 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은퇴식 1989년 8월 17일 잠실 롯데전 6회말 4번 지명타자로 출전한 윤동균이 김시진의 공을 때려 2루타를 기록하자 경기가 잠시 중단되었고 윤동균의 은퇴식이 거행되었다. 윤동균은 프로야구 최초의 은퇴식을 치렀고, 2번째 영구결번의 주인공이 되었으며, 최초의 프로선수출신 감독이 되는 영예를 누렸다. ⓒ 두산 베어스

그리고 윤동균은 선수 겸 감독으로 활약한 백인천을 제외하면 프로야구 창설 시점에서 6개 구단을 통틀어 가장 나이가 많은 선수였고, 그 자격으로 1982년 3월 27일 출범식에서 선수단을 대표해 선서를 한 인물이기도 했다. 공교롭게도 그 해 타격 1위는 .412의 역사적인 타율을 기록한 40세의 백인천이었고 33세의 윤동균은 .342를 기록해 2위에 오르며 나란히 '나잇값'을 했다. 그는 1987년까지 꾸준히 중심타자로 활약하며 노련함과 성실함을 무기로 훌륭한 성적을 거두었을 뿐 아니라 나이 차이가 많지 않던 코칭스태프와 어린 후배들 사이를 잇는 형님으로서 리더십을 발휘해 베어스가 1980년대 내내 꾸준히 강팀으로 자리매김하는 데 크게 기여하기도 했다.

그런 윤동균을 위해 OB 베어스는 1989년 한국 프로야구 역사의 첫 번째 은퇴식을 마련해주었고 동시에 그의 등번호 10번을 구단의 두 번째 영구결번으로 선정했으며, 2년 뒤인 1991년 말에는 또다시 한국 프로야구 최초의 선수 출신 감독으로 선임하는 기록을 만들기도 했다. 선수 인생 내내 정상급 활약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개인타이틀은 단 한 개도 얻어보지 못했던 것과는 대조적인 영광이, 은퇴 후에 겹쳐서 찾아왔던 것이다.

하지만 오늘날 영구결번의 역사에서 두 선수는 예외로 취급되는 경우가 많다. 김영신은 그 이후의 모든 사례와 달리 '애도와 추모'의 의미였다는 점 때문이며, 윤동균은 얼마 뒤 '영구결번 해제'라는 조치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감독으로서 2년차를 맞이하던 1993년을 앞두고 벌어진 스카우트 전쟁에서 신일고의 천재 좌타자 강혁을 영입하기 위해 윤동균은 역대 최고액의 계약금에 더해 이미 영구결번된 자신의 등번호 10번을 얹어주겠다고 선언하며 영구결번 해제를 자청했다. 결국 강혁이 우여곡절 끝에 한양대에 입학하면서 그의 등번호를 이어받을 주인공은 나타나지 않았지만, 말이 씨가 되어 이듬해인 1994년 시즌 중에 벌어진 항명파동으로 윤동균 감독이 불명예퇴진하면서 영구결번 해제는 결국 실행되어버리게 된다. 그의 '사상 최초' 기록에 '영구결번 해제'라는 민망한 항목마저 추가된 사연이다.

비우는 미국, 이어받는 일본

김영신과 윤동균의 사례는 흔히 초창기, 특히 OB 베어스가 가지고 있던 한국 프로야구의 역사에 대한 얕은 인식의 단면으로 언급되곤 한다. 한국 프로야구가 성공적으로 정착하고 꾸준히 성장해나갈 것이라는 미래에 대한 장기적인 안목이 부족해 섣부른 결정과 해제가 반복되었다는 인식이다.

하지만 은퇴한 선수의 등번호에 대한 한국 야구의 인식이 변화해온 과정에 대한 이해가 반영된다면, 조금 달리 평가될 수도 있다. 미국과 일본의 야구문화가 다르고, 문화적으로 일본 야구에 좀더 가깝던 한국 야구가 점차 미국 쪽으로 이동하면서 생긴 변화가 영구결번이라는 제도에 관한 인식에서도 나타났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는 1939년 뉴욕 양키스가 4번 타자임을 표시하기 위해 달기 시작했던 루 게릭의 등번호 4번을 이후 누구에게도 달아주지 않기로 결정한 것을 시작으로 구단마다 많게는 20명이 넘는 선수, 감독, 때로는 구단주나 팬(들)의 등번호를 비워갔고, 그 수를 모두 합치면 120여 명에 이른다. 반면 일본에서는 영구결번자의 수가 20명도 안 되는데 프로야구의 역사가 미국에 비해 70여 년 짧은 것을 감안하더라도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적다.

미국 야구에서 위대한 선수를 기억하는 방법으로 '그 선수의 등번호를 비우는 것'이 주로 활용된다면, 일본 야구에서는 반대로 '그 선수의 등번호를 이어받는 것'이 익숙하기 때문이다. 1944년에 전사한 사와무라 에이지의 14번과 1947년에 장티푸스로 사망한 쿠로사와 토시오의 4번이 한국에서와 비슷한 '추모'의 의미로 영구결번된 것을 시작으로 카와카미 테츠루, 가네다 마사이치, 나가시마 시게오, 오 사다하루 등 초창기 전설적 스타플레이어들의 등번호들이 영구결번되기도 했지만 오릭스 버팔로스가 팀의 1번 타자들에게 한큐 시절의 전설적 도루왕 후쿠모토 유타카의 7번을 부여하는 것처럼 위대한 선수의 번호를 계승하며 기억하는 경우도 흔하다.

야쿠르트 스왈로즈는 팀을 대표하는 간판타자들이 1번을 물려받게 하고 있으며 각 팀의 명포수들이 달아왔고 역대 최고의 공격형 포수로서 '미스터 스왈로즈'라고 불린 후루타 아츠야도 달았던 27번 역시 그에 버금가는 후배 포수들의 것으로 정해 남겨두고 있다. 도이 쇼조와 시노즈카 카츠노리부터 사카모토 하야토에 이르기까지 요미우리 자이언츠 내야 수비의 리더들이 6번을 이어가는 것이나 호크스가 전설적인 포수 노무라 가쓰야의 19번을 아끼고 아낀 끝에 '제 2의 노무라'로 기대받고 있는 카이 타구야에게 물려준 것도 비슷한 일이다.

왼손 강타자의 10번과 왼손 강속구 투수의 47번

1980년대와 90년대 한국 프로야구에서도 많은 선수들이 존경하는 선수의 등번호를 달고 싶어했다. 윤동균과 장효조, 김기태, 이정훈, 양준혁으로 이어지는 왼손 강타자들의 번호는 10번이었는데 일본 프로야구에서 통산 3000안타를 기록한 장훈을 존경하고 따르는 의미였다.

그리고 '가을까치' 김정수를 시작으로 이상훈, 이승호, 권혁, 나성범과 김범수 등에 이르는 왼손잡이 강속구 투수들의 47번은 미국의 톰 글래빈과 일본의 쿠도 기미야스의 번호이기도 했다. 물론 한국의 젊은 선수들 중에는 글래빈과 쿠도가 아닌 이상훈을 바라보며 47번을 선택한 경우가 적지 않다. 그 외에 일본에서 1번 타자의 상징으로 통하는 등번호 7번은 1번 타자이자 유격수로서 한 시대를 풍미한 김재박을 통해 유격수의 상징으로 변해 이종범, 박진만, 김상수, 김하성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 47번 야생마 이상훈 LG 팬들이 가장 사랑했던 투수 이상훈의 등번호 47번은 왼손 강속구 투수 톰 글래빈과 쿠도 기미야스의 번호이기도 했고, 이승호와 권혁과 나성범과 김범수의 번호가 되기도 했다. ⓒ LG 트윈스

한국 프로야구 초창기에 영구결번이란 특정한 선수를 기억하는 여러 방법 중의 하나였고, 그 중 리그 초대 챔피언에 오른 덕에 자연스럽게 '역사'에 대한 인식이 앞서나갈 수 있었던 OB 베어스가 먼저 사용한 셈이다. 하지만 그 후 번호를 '이어받는' 방식보다 '비우는' 방식이 좀더 강력한 존중으로 인식되기 시작하면서 영구결번이 가지는 오늘날의 의미가 확립되었고, 1,2호 영구결번의 흔적이 유난히 겉도는 것으로 여겨지게 됐다고 이해할 수 있다.

40주년 프로야구, 40세 이대호의 은퇴

지난 10월 8일 이대호 선수가 은퇴식을 가지고 롯데 자이언츠의 두 번째 영구결번 주인공으로 결정되면서 한국프로야구 통산 17번째 영구결번자로 이름을 올렸다. 이번에 롯데 자이언츠에서 영구결번된 이대호의 등번호 10번은 양준혁에 의해 삼성 라이온즈에서도 영구결번되어 있으며 윤동균에 의해 OB 베어스에서도, 비록 취소되긴 했지만 영구결번된 적이 있다. 두 개 이상의 구단에서 공통적으로 영구결번된 번호는 10번 외에 박철순과 송진우에 의해 각각 영구결번된 21번이 있다.


▲ 이대호와 함께 사라진 10번 이대호의 등번호 10번이 롯데 자이언츠에서 영구결번됐다. 삼성에서도 양준혁의 10번이 영구결번된 바 있다. 하지만 양준혁이 전설적인 왼손타자 장훈을 따라 10번을 달았다면 이대호는 '잘 하는 선수들'의 번호를 따라 달았다는 차이가 있다. 이대호의 10번은 장훈 뿐 아니라 윤동균, 장효조, 이정훈, 김기태, 양준혁을 상징하는 것이기도 했던 것이다. ⓒ 롯데 자이언츠

윤동균과 양준혁이 장훈을 닮고 싶었던 왼손타자들이었던 것과 달리 이대호는 '그냥 잘 하는 선수들이 다는 번호라고 생각했고, 나도 잘 하고 싶어서' 10번을 선택했다고 말한다. 장훈보다는 오히려 그를 보며 성장한 수많은 한국의 강타자들을 따라갔던 그는 한국야구사상 가장 강력한 오른손타자였다. 톰 글래빈보다는 이상훈을 따라가는 한국의 젊은 왼손투수들처럼, 그 역시 21세기에 등장한 한국 야구의 한 세대를 상징하는 대목이다.

일일이 기록을 나열할 필요 없이 그는 한국프로야구 역사상 최고의 타자 중 한 사람이다. 요즘 야구팬들 사이에서는 그를 이승엽, 추신수 등과 함께 후보에 올려놓고 '역대 최고의 타자'를 가리는 논쟁이 흔히 벌어지기도 한다. 차범근과 박지성, 손흥민이 하나의 리그를 형성하고 선동열과 박찬호, 류현진이 또 하나의 리그를 형성하는 것과 비슷한 스포츠팬들의 끝나지 않을 소일거리로 자리잡고 있는 셈이다.

"글쎄요. 제가 경험한 시대가 한정적이니까 역사를 통틀어 얘기하는 건 어렵고요. 제가 아는 한에서만 이야기한다면, 일단 (추)신수는 늘 잘 했어요. 어려서부터 늘 잘 했고, 그래서 늘 이기고 싶었는데 한 번도 제가 앞서지 못한 친구예요. 신수가 저보다 위죠. 하지만 신수나 저나 (이)승엽이 형은 못 따라가요. 언제 어디서나 홈런을 칠 수 있는 승엽이 형의 능력은 제가 아는 한에서는 아무도 못 따라갑니다." (이대호,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그 자신의 평가로는 동시대 3위 정도에 해당할 테지만, 팬들의 생각은 조금 다를 수 있는 이대호의 은퇴는 여러 가지 이야깃거리를 남겼다. 리그를 대표하는 정상급 타자의 기준이라고도 할 수 있을 '3할, 20홈런, 100타점'이라는 터무니 없는 목표를 세우고 임한 은퇴 시즌에 .331, 23홈런, 101타점을 기록해 초과달성하며 공격 대부분의 부문에 5위권 내에 이름을 올린 것부터 사직구장을 가득 채운 은퇴식의 팬들 앞에서 구단을 향해 '후배 선수들이 팀을 떠나지 않을 수 있도록 해달라'고 부탁하며 '배트 대신 치킨과 맥주를 들고, 타석에서 관중석으로 이동하겠다'고 선언한 고별사까지, 그의 은퇴는 2022년 시즌 최종일에 각팀의 순위와 포스트시즌 전망마저 가려버린 최대의 뉴스로 지면을 덮었다.

마지막 시즌에 24개의 홈런을 날린 이승엽보다 홈런 1개가 적긴 했지만, 타율과 타점과 출루율을 비롯한 모든 면에서 좀더 강렬한 인상을 남긴 마지막 시즌이었고, '박수칠 때 떠나라'는 말을 유행시킨 선동열이 일본 프로야구에서 마지막 시즌에 남긴 평균자책점 2.61, 28세이브 기록과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을 멋진 마침표였다. 그렇게 역대 최강의 타자 중 한 명이 사라졌고, 은퇴시즌 역대 최강타자의 기록이 세워졌다.

프로야구가 창설되던 해에 태어나 리그와 함께 나이를 먹으며 성장한 그는 20세에 프로선수가 되어 20년간 활약했고, 창설 40주년이 된 올 해 40세의 나이로 은퇴하며 한 시대의 막을 내렸다. 그 첫 40년의 역사를 돌아보는 작업은 대개 이대호로 시작하거나 이대호로 마무리될 것이며, 이후 40년간 나타날 수많은 강타자들의 업적 역시 이대호를 기준으로 평가되거나 전망될 것이다. 내년에 한국 프로야구는 41번째 시즌을 시작할 것이고, 야구팬들은 또다시 '4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타자'를 기다리며 늘 이대호를 겹쳐 떠올릴 것이다.


▲ 이대호의 은퇴 10월 8일 LG 트윈스와의 시즌 최종전을 마친 뒤 롯데 자이언츠의 두 번째 영구결번선수 이대호의 은퇴식이 열렸다. 이대호는 고별사를 통해 '배트 대신 치킨과 맥주를 들고, 타석에서 관중석으로 이동하겠다'고 선언했다. ⓒ 롯데 자이언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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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려짐: 2022년 10월 25일, 화 8:38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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