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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 종교
 
우리의 통념을 비껴가는 문제적 로마서 읽기
[탐독의 시간] 비벌리 로버츠 가벤타<로마서에 가면>

(서울=뉴스앤조이) 권우진 기자 = 한국 기독교인들은 성경을 꽤 열심히 읽는다. 개인적인 성경 읽기나 큐티를 하는 사람도 많고, 개인 독서를 하지 않더라도 교회에서 성경을 수없이 접한다. 성경 읽기는 기독교인의 미덕으로 여겨지고, 많은 이가 스스로 성경을 잘 알고 있다고 확신한다. 성경에는 이러이러한 말이 있다고, 저러저러한 메시지를 품고 있다고 말이다.

특히 로마서는 사람들이 많이, 자주 찾는 성경이다. 한국 기독교인이라면 로마서에서 으레 얻길 원하는 '답'이 있다. 누군가는 칭의에 대한 교리를, 누군가는 나에게 주는 구원과 위로의 말씀을, 또 누군가는 불법으로 규정된 이방인(소외자)을 환대하는 정의를 로마서에서 아주 쉽게 찾아낸다. 우리는 로마서를 너무 잘 안다(고 생각한다). 로마서는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을 뒷받침해 주는 증거로 가득 차 있다.

하지만 만약 로마서의 메시지가 우리가 확신하는 신념을 지지해 주지 않는다면 어떨까. 우리가 로마서에서 끄집어 낸 정의로운 신념, 영적 통찰, 단호한 신앙 규범에 정작 로마서가 전혀 동의해 주지 않는다면? 그래도 우리는 로마서가 '실제로' 던지는 메시지에 귀 기울이고 거기에 설복될 수 있을까? 성경을 자주 읽어 본 사람이라면 실제로 이런 경험을 해 봤을 것이다.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로 펴서 읽어 본 그 본문이 상상 속 모습과 너무도 달랐던 경험. 그럴 리가 없는데, 마치 한 번도 읽어 본 적 없던 것처럼 낯설게 다가온 경험 말이다.


<로마서에 가면> / 비벌리 로버츠 가벤타 지음 / 이학영 옮김 / 학영 펴냄 / 244쪽 / 1만 3000원

비벌리 로버츠 가벤타의 <로마서에 가면>(학영)은 독자로 하여금 바로 그 낯선 경험을 촉발하는 책이다. 저자는 로마서에 대한 세간의 통념을 비껴가며 "자신의 목적을 위해 쉽게 통제할 수 있고 조작할 수 있는 내용에 만족"(65쪽)하는 성경 읽기를 비판한다. 수없이 로마서를 강의해 온 신약학자의 눈에, 로마서란 언제나 그것을 읽는 우리들의 요구를 애매하게 비껴가고, 기대를 교묘하게 저버리며, 우리의 "제한된 사고방식에 이의를 제기"(183쪽)하는 책이다. 그와 함께 로마서를 읽어 나가다 보면 우리는 정말로 로마서를 한 번도 읽어 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이 책은 그런 의미에서 바로 우리를 위한 책이다(21쪽).

구원은 '개인적'인가, '사회적'인가

로마서를 잘 읽기 위해 저자가 제시하는 원리는 두 단계로 이뤄져 있다. 먼저 기존의 통념을 접어 놓는 것이다. 자신이 이미 로마서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 "질문이 무엇인지, 어떤 대답이 가능한지"(101쪽) - 비판적으로 성찰해야 한다. 그런 후에 우리는 바울이 전개하는 전체 논리를 그 맥락에 맞춰 충실히 따라가야 한다. 로마서에는 바울이 자신의 편지를 전해 듣는 이들을 설득하기 위해 치밀하게 쌓아 올린 논지의 흐름이 있다. 로마서를 읽을 때는 언제나 두 원리가 모두 작동하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통념을 접어 놓지 못하면, 바울의 맥락도 귀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당장 로마서에 대한 통념을 꼽자면 끝이 없을 것이다. 우리가 확신해 온 모든 내용이 곧 통념이 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저자는 △구원에 대한 통념 △이스라엘의 범위에 대한 통념 △윤리에 대한 통념 △교회라는 공동체에 대한 통념 등을 꼽는다. 여기서는 특히 로마서가 '인간의 문제와 이를 해결하려는 하나님의 구원 행위'를 말하고 있다는 아주 흔한 오해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 오해는 구원이 '개인적'이라는 통념과 '사회적'이라는 통념 모두에 해당한다.

우리는 이 통념("구원은 개인적인 것이다", "아니다, 사회적인 것이다")과 관련해 꽤 골이 깊은 갈등을 겪어 왔다. 2010년대 한국교회를 관통한 가장 큰 논쟁은 바로 이 주제에 관한 것이었으며, 오늘날에도 이 갈등은 닳고 닳은 상태로 반복되고 있다.

한국교회는 주로 로마서를 그리스도를 믿는 '나'를 비롯한 각각의 개인과 하나님 사이에 이뤄진 구원 계약 선언으로 읽어 왔다. 로마서의 구절들은 소위 '자격 없는 나를 구원하신 주'를 향한 개인의 신앙고백을 뒷받침하기 위해 인용돼 왔다. 하지만 이는 한국 사회에 찾아온 거대한 고통의 사건과 사회적 혼란 속에서 많은 비판을 받았고, '사회적 구원'이라 불리는 여러 형태의 견해가 대안으로 각광을 받게 됐다.

이러한 과정을 뚫고 온 이들에게는 구원의 사회적 측면이 하나의 통념으로 로마서 읽기에 방해가 된다는 저자의 말이 의아할 수도 있다. 로마서의 개인 구원 서사를 극복한 '사회적' 읽기야말로 기존 통념을 비판하고 본문을 낯설게 읽은 결과가 아닌가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가벤타는 두 견해가 서로 다른 언어를 사용할 뿐 결국 동일한 흐름의 이야기를 만들어 낸다고 지적한다(72쪽). 저자가 볼 때 두 견해 모두 '인간에게 문제가 있으며 하나님이 이를 해결한다'는 동일한 서사를 갖고 있다.

저자는 로마서를 실감이 나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차원에서 읽어 냄으로써 이러한 통념을 비껴 나간다. 로마서의 전체 맥락에 조금 더 귀기울일 때, 바울이 언급하는 위기는 단지 인간 개인 혹은 사회의 문제에 그치지 않는다. 좀 더 광대하고도 위협적인 권세가 세상을 우주 단위로 지배하고 있다. 하나님의 구원 행위의 목적은 이러한 우주적 지배권을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탈환해 오는 데 있다. 따라서 구원은 우주적 범위에서 이뤄지며 개인·사회의 구분을 넘어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존재를 아우른다.

어디까지가 '이스라엘'인가

가벤타는 이스라엘과 교회의 범위에 관한 통념도 걷어 낸다. 우리는 로마서가 언급하는 '이스라엘'을 섣불리 '유대인' 혹은 '교회'로 읽곤 한다. 이 간편한 독법은 이스라엘의 범위·정체성을 지정함으로써 반대급부로 이스라엘 '바깥'을 상정하고 그곳을 멸망의 영역으로 설정하게 된다. 그러나 로마서는 우리가 그런 이분법적 메시지를 전달받기를 원하지 않는다. 가벤타가 제시한 원리를 따라 로마서를 충실히 읽어 낸 독자들은 이 책이 지목한 구원의 범위가 전 우주의 차원이듯 하나님이 새롭게 창조하시는 이스라엘 또한 안팎의 구분 없이 '모두'를 포괄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로마서의 가르침은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대한 확언이나 이방인에 대한 급진적 환대보다 더 큰 맥락 속에 위치한다(53쪽).

가벤타는 이처럼 로마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행위를 광대한 우주적 차원에서 이야기하고 있다. 혹자는 여기까지 읽고 저자가 문제의 차원을 우리가 이해할 수 없을 정도로 확장시켜, 일상 속 환대·정의의 윤리를 희석하고 구체적·실제적 문제를 외면하게 한다고 비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실 그 무엇도 희석되지 않는다. 그는 단지 바울처럼, 로마서의 메시지를 전해 듣는 이들에게 구원의 우주적 광대함 앞에서 하나님을 '송영'(예배)하라고 요청하고 있을 뿐이다. 이것이 바울이 로마서에서 문제를 돌파하는 정공법이다.

저자는 로마서 안에서 모든 근본적인 문제가 하나님의 광대함을 목격하고 이를 송영할 수 있느냐 없느냐와 관련이 있다고 말한다(177쪽). 공동체 안팎을 구분하고 갈등을 일으키는 일도, 인간이 개인의 욕망으로 타인을 쫓아내는 일도, 수없이 많은 불법과 악행의 목록을 만들어 약자들을 무자비하게 처벌하는 일도 하나님의 광대함을 놓쳐 그를 송영할 수 없게 된 결과다. 즉 우리가 직면한 구체적이고도 심각한 교회론적 문제는 우주에 그 권한을 직접 행사하는 하나님의 모습이라는 렌즈를 통해 고민돼야 한다(145쪽).

하나님을 진정 하나님으로 인정하고, 그의 손길이 전 우주에 닿아 있음을 인정하게 되면, 인간은 서로 간에 어떤 구분도 존재하지 않음을 깨닫고, 모든 차이를 품을 수 있게 된다. 어떠한 구별이나 배제의 기준도 인간의 판단에서 떠난 것이 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거대함 앞에 인간은 판단을 멈추고 서로를 받아들여야만 한다.

'해답적 읽기'의 통념을 넘어 '문제적 읽기'로

가벤타는 이렇듯 로마서에 대한 개인 구원적 독법과 사회 구원적 독법을 모두 같은 문법을 가진 통념으로 묶어, 더 큰 차원에서 극복할 것을 요구한다. 저자는 우주적 차원에서 권한을 행사하시는 하나님의 구원 행위는 '유대인'도 아니고, '교회'도 아닌 피조 세계 전체를 포괄하는 '이스라엘'에게 미친다고 말한다. 이러한 하나님을 인정하고 그 앞에 송영을 올려 드릴 때, 인간 사이의 구분은 없어지고 독자는 거대한 차원에서 모두를 포용하라는 권고를 받게 된다.

저자의 독법은 이 책을 읽는 모든 이에게 문제적이다. 우리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든 가벤타가 로마서를 읽으며 질문을 던지고 해답을 얻는 방식은 그 생각을 조금씩 비껴 나가며, 보다 높은 차원으로 끌고 올라간다. 누군가는 이를 보며 히틀러도 구원할 '만인구원론'이라며 분개할지도, 다른 누군가는 그저 그런 고리타분한 해석이 또 하나 나왔다며 평가절하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적어도 이것만큼은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한다. 우리는 종종 너무 쉽게 '윤리'의 이름으로 누군가를 배제하며 그는 결코 구원의 영토 안에 들어설 수 없다고 말한다. 이는 스스로 하나님의 자리에 서서 누군가를 배제함과 동시에 우주적 구원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영광 앞에서 눈과 귀를 막는 일이다. 누군가를 증오하거나, 선을 그어 우쭐대며 자신을 고립시키는 일이다(214쪽.) 우리는 이 고집을 꺾고 나의 통념을 혹독하게 돌아보며(29쪽), 로마서가 우리에게 들려 주는 소리에 귀 기울일 수 있는가? (본보 제휴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2년 10월 01일, 토 4:35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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