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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 종교
 
본회퍼와 급진적 현실주의 윤리학
[탐독의 시간] 디트리히 본회퍼 <윤리학>(복있는사람)

(서울=뉴스앤조이) 최경환(에라스무스 운영위원)

본회퍼의 저작 연대기

디트리히 본회퍼는 <윤리학>을 평생의 과제로 생각했으며 어떻게 해서든 생전에 완성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윤리학>은 끝내 미완의 작품으로 남았다. 나중에 그의 오랜 친구이자 제자였던 에버하르트 베트게가 흩어진 원고들을 모아 카이저 출판사에 넘겨줬고, 그렇게 해서 본회퍼가 못다 이룬 꿈을 대신 이뤘다. 그 후에도 전문가들이 감옥에서 발견한 수백 개의 메모지를 본회퍼의 원고와 일일이 대조하면서 각고의 노력 끝에 완성도 있는 본문을 만들어 냈다.

이렇게 편집한 본회퍼의 전작(DBW·Dietrich Bonhoeffer Werke)이 1999년 독일어로 완간됐고, 영어로는 2006년에 완간됐다. 물론 본회퍼의 개별 저작은 이미 여러 출판사에서 다양한 버전으로 출간했다. <나를 따르라>나 <성도의 공동생활>은 일찍이 영어로 번역돼 큰 인기를 얻었고, <옥중서간>의 경우도 비교적 일찍 번역돼 세속화신학에 불을 붙이는 역할을 했다. 국내에서도 대한기독교서회가 개별적으로 본회퍼의 책을 번역하다가 DWB의 1~8권을 번역해 본회퍼 전집으로 출간했다. <나를 따르라>의 경우 국내에도 다양한 버전의 번역본이 있어서 그동안 독자들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본회퍼의 저작이 영어나 한국어로 번역된 순서에는 나름 이유가 있다. 먼저 대중적으로 쉽게 읽을 수 있는 책들이 먼저 번역됐다. <나를 따르다>와 <성도의 공동생활>은 본회퍼가 핑켄발데신학교 시절 쓴 글로, 대중에게 가장 많은 사랑을 받았다. 아마 국내에서 본회퍼가 다른 신학자들에 비해 대중적으로 큰 인기를 얻게 된 이유는 이런 책들이 먼저 소개됐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나를 따르다>의 경우 엄혹한 유신 정권 시절 많은 그리스도인에게 사회참여적 영성을 제공했고, 진영 논리를 떠나 초교파적으로 사랑을 받았다. <성도의 공동생활> 역시 기독교 공동체 운동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 본회퍼의 이런 책들은 가슴속 깊은 곳에서 열정을 끌어내는 묘한 매력이 있다. 하지만 그 외의 책들은 분위기가 상당히 다르다. <나를 따르라>로 은혜를 받고 그의 다른 책들을 읽으려고 도전했다간 크게 당황할 수 있다. 다른 책들은 상당한 수준의 지적 능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본회퍼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보통 그의 저술 시기를 세 개로 나눠 설명한다. 대학에서 강의하던 초기에는 종교철학·윤리학 등과 관련된 상당히 전문적인 논문과 책을 썼다. 19세기 사회학·철학에 대한 사전 지식이 없으면 읽기 어려운 내용이 많다. 반면, 핑켄발데신학교에서 강의하던 시기의 본회퍼는 성경 강해를 많이 했다. 이때 쓴 작품들은 비교적 쉽게 읽을 수 있고 독자의 마음을 움직이는 감동적인 글이 많다.

마지막으로 1940년 이후 감옥에서 생활하며 쓴 글에는 짧은 단상과 편지들이 많다. 이때 본회퍼는 새로운 시대를 예견하며 신학적 아이디어들을 마구 쏟아 낸다. 복있는사람 출판사는 지난 몇 년간 본회퍼와 관련한 중요한 책들을 소개했다. 베트게가 쓴 <디트리히 본회퍼>를 비롯해, 본회퍼의 <나를 따르라>·<성도의 공동생활>·<옥중서간>·<그리스도론>·<창조와 타락>을 출간했고, 최근에 <윤리학>까지 출간했다.

대한기독교서회에서 나온 본회퍼 전집은 각주도 많고 문체도 딱딱해서 일반인들이 읽기 어려웠는데, 복있는사람에서 새로 나온 시리즈는 훨씬 더 가독성이 좋고 번역과 편집도 깔끔하다. 본회퍼를 학술적으로 연구하는 이들에게는 대한기독교서회의 번역본을 추천하겠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 복있는사람에서 나온 번역본을 추천하고 싶다. 그편이 본회퍼의 마음을 훨씬 더 깊이 들여다볼 수 있다고 할까?


<윤리학> / 디트리히 본회퍼 지음 / 정현숙 옮김 / 복있는사람 펴냄 / 716쪽 / 3만 4000원

그리스도의 현실에 참여하라

본회퍼의 <윤리학>에 실린 글은 모두 중요하지만, 그 가운데 본회퍼의 신학을 핵심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글을 하나만 선택하라면, 나는 '그리스도, 현실, 선 - 그리스도, 교회, 세상'을 꼽겠다. 이 글은 본회퍼의 윤리학 전체를 해석하는 열쇠와도 같다(개인적으로는 이 책뿐만 아니라 본회퍼의 전체 사상을 관통하는 열쇠라고 생각한다). 본회퍼는 자신의 주장을 반복적으로 말하기 때문에 그 내용을 파악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가 말하는 윤리의 신학적 기초는 매우 단순하고 분명하다.

-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미 이 세상과 화해하셨고,
- 그분은 이 세상을 하나님의 현실로 만드셨다.
- 윤리적인 삶은 바로 이 하나님의 현실에 그저 참여하는 것이다.

본회퍼는 윤리는 그동안 철학자·신학자들이 주장했던 어떤 원리나 원칙, 즉 '이런 상황에서는 이렇게 행동해야 한다'라는 기준을 따라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또한 선을 행하려는 의지, 인간의 정서·욕망을 바르게 정립하려는 노력, 착실하게 덕을 쌓아 선한 인격을 함양하는 삶 같은 윤리학의 기본적인 주장을 모두 비판한다.

이런 윤리적 기초는 때론 바리새인처럼 자신이 갖고 있는 기준으로 다른 이를 판단하게 만들기도 하고, 때론 하나님나라를 이 땅에 실현하려는 과도한 열광주의로 빠지게 만들기도 한다. 본회퍼에게 윤리는 하나님의 현실에 '그저' 참여하는 것이다. 그것으로 족하다. 인간이 뭘 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본회퍼의 이런 현실주의 윤리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학적 이해가 선행돼야 한다. 본회퍼는 바르트의 기독론 구조를 따라, 이 세상에서 진정한 현실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현실이고 하나님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온전히 드러내신다고 봤다. 그런데 본회퍼에게 이 현실은 그 범위와 내용이 근본적으로 혹은 급진적으로 확장·확대된다. 현실의 기원과 형식은 기독론적인 현실 이해와 긴밀하게 연결돼 있는데, 그리스도는 인간의 모습으로 자신을 온전히 '현실화'하셨다.

그리스도의 성육신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에서 행동할 수 있는 존재론적 토대를 마련해 줬고, 이것이 바로 인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하나님의 계시의 비밀이다. 따라서 현실에 적합한 행동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서만 가능하게 됐고, 그리스도에 의한 행동만이 이 땅의 현실을 위한 행동이라 할 수 있게 됐다. 이 둘은 결코 분리되지 않는다. 이러한 현실 이해로부터 도출되는 기독교 윤리의 과제는 바로 하나님의 현실에 참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출현 이후 윤리는 오직 한 가지 문제를 다루고 있을 뿐이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뜻이 성취된 현실에 참여하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참여는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된 하나님의 뜻 가운데 나 자신도 이미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에 근거할 때만 가능하다. 이 말은 내가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기초가 되어야만 함을 의미한다." (400쪽)

하나님의 현실에 '그저' 참여하는 것이 기독교 윤리의 기초라고 하면, 그건 삶의 태도를 너무 수동적으로 만드는 것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로 매개된 하나님의 현실은 우리를 정반대의 삶으로 이끈다. 하나님의 현실은 그리스도인을 이 세상 한복판으로 이끈다. 이제 우리는 '세상이 없는 그리스도'도 상상할 수 없고 '그리스도가 없는 세상'도 상상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세상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미 수용하시고, 용납하시고, 화해하신 현실이다. 그러므로 두 개의 세상, 두 개의 질서, 두 개의 통치는 있을 수 없다. 이제부터는 오직 하나의 현실만이 존재한다. 그리스도에게 참여하는 자는 세상에도 참여하는 자이며,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는 동시에 세상에 속한 자다. 본회퍼는 이 둘을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계시를 부정하는 일이라고까지 말한다.


디트리히 본회퍼(Dietrich Bonhorffer, 1906~1945).

윤리가 발생하는 장소

보편적이고 추상적인 윤리학을 비판했던 본회퍼는 '지금 여기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현실에 참여하는 것이 진정한 기독교 윤리라고 말한다. 그런데 '하나님의 현실에 참여하라'는 말도 때로는 추상적으로 들린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디에서 하나님의 현실을 발견할 수 있고, 또 그것이 하나님의 현실인지 아닌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 즉 선택과 분별, 개입의 순간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넓게 말해서, 하나님의 뜻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에 대한 판단과 결정은 즉흥적으로 이뤄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떤 원칙이 확고하게 정해진 것도 아니다. 본회퍼는 이런 두 가지 위험을 늘 경계하면서 주어진 상황을 잘 관찰하고 분별하라고 말한다. 본회퍼에게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고 분별하는 방법, 하나님의 현실을 직시하고 행동해야 할 때를 판가름하는 기준은 분명하다. 하나님의 현실은 '타자를 위한 책임'을 수용하는 순간 발생한다. 이 순간에 윤리적 '상황'이 발생한다.

구체적인 타자와의 만남이 윤리적 책임의 원천이다. '구체적인 현실', '이웃과의 대면', '현실에 상응하는 행동'과 같은 개념은 본회퍼의 초기 작품에서부터 지속적으로 등장하는 개념이다. 지금 내 앞에 나타난 이웃의 얼굴 속에서 하나님의 현실을 발견하는 순간 우리는 윤리적 주체로 거듭난다. 자신 앞에 나타난 이웃에게 책임 있는 행동을 할 때, 나는 윤리적 주체로 탄생한다. 본회퍼는 우리가 타자에 대한 책임을 지는 순간이 바로 현실 안에서 살아가고 있는 때라고 말한다.

현실에 대한 응답으로서 타자의 구체적인 필요를 채워 주는 것은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긴밀하게 연결돼 있다. 본회퍼는 이 세상과 저 세상, 내향성과 외부성을 나누는 존재론적 이원론을 비판하고, 형식적이고 보편타당한 이성적 원리 또한 거부한다. 윤리는 형식적인 이성의 원리가 아니라 구체적인 명령이고, 오직 장소와 시간과 결부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계명을 듣는 것이다. 윤리는 분명하고, 명백하고, 구체적이기 때문에 항상 역사 가운데 자신의 본성을 드러낸다. 하나님의 계명은 항상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발생하고, 인간은 그 상황 속에서 주어진 자유를 통해 책임 있게 행동해야 한다.

복잡한 현대사회에서 윤리적으로 난처한 상황에 직면할 때, 그리스도인들은 보통 그동안 알고 있었던 기독교 교리나 신앙의 습관 혹은 목사님의 설교를 떠올린다. 하지만 대부분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 '상황은 충분히 이해하지만, 그래도 이건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행동이다' 혹은 '상황이 바뀐다고 기독교의 진리가 변하는 것은 아니다. 이건 하나님의 말씀에 어긋난다'라는 식이다. 본회퍼는 이런 바리새인 같은 그리스도인을 경계하라고 주의를 준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는 것은 날마다 우리에게 새로운 삶을 허락하시는 예수님의 부름, 즉 우리가 만나는 이들과의 새로운 관계와 주어진 현실에 늘 책임 있게 반응하라는 부름에 응답하는 것이다. 본회퍼는 구체적인 이웃의 목소리에 응답하는 순간, 즉 책임이 발생하는 순간을 윤리가 발생하는 장소로 삼는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그분 안에서 항상 새롭게 자신을 분별할 때 온전히 우리 안에 살아 계신다." (92쪽)

끝까지 긴장을 놓지 않기

본회퍼가 이야기한 기독교 윤리의 신학적 근거를 이해하고 그 의미를 파악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그런데 그의 글을 읽고 있으면 이상하게 앞뒤가 맞지 않거나 논리적으로 뭔가 꼬이는 것처럼 보이는 대목이 많다. 본회퍼의 신학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리가 그동안 알고 있는 신앙의 문법을 의심하고 다시 새롭게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계속해서 그를 오해하게 된다.

본회퍼는 하나님의 현실과 세상의 현실을 어떤 하나의 방식으로 해결하거나 뻔한 방식으로 설명하는 것을 피한다. 양자는 그리스도 안에서 해소되면서 결국 끝까지 논쟁적인 태도를 유지한다. 본회퍼는 기독교 윤리가 새로운 윤리적 이념을 관철하기 위해 열정을 쏟는 열광주의를 경계하면서, 단순한 방식으로 역사적 현실 자체를 쉽게 수긍하는 타협주의도 계속 경계한다.

결국 본회퍼에게 윤리의 과제는 하나님의 현실과 세상의 현실이 그리스도의 현실로 말미암아 하나가 되면서도 결코 혼합되지 않는 방식으로 적절한 구분을 유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세상의 현실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수렴되고 화해된다. 이때 문제는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해소'된다. 그리스도는 이 세상의 문제를 해결하고 답을 제시하기 위해 이 땅에 온 것이 아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현실과 세상의 현실이 역설적으로 만나는 접점에서, 이미 객관적으로 세상과 화해하신 하나님이 여전히 죄로 가득한 세상을 향해 자신의 영역을 만들어야만 하는 모순 속에서 자신의 현실을 만들어 간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현실은 세상을 수긍하면서 동시에 변혁해야 한다. 분명 이러한 현실 이해는 역설적이다. 본회퍼의 모든 텍스트는 이러한 긴장을 놓지 않고 끝까지 유지한다. 그래서 어떤 학자는 본회퍼의 현실 개념에는 '신비'(mystery)의 요소가 내재해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본회퍼는 그리스도를 통해 구체적인 현실 속 지금 여기에서 포착되는 윤리의 과제를 찾으려 했다. 따라서 그의 윤리는 자연스럽게 역동적으로 움직이는 활동성으로 설명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존재 방식에 참여함(participation)으로 현실(reality)과 현실화(becoming real)의 간극을 극복할 수 있다. 하나님의 뜻을 이 땅에서 행하는 것은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움직이는 활동성에 참여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통해 '현실'과 '현실화'를 매개하듯, 우리도 세상의 현실이 지니고 있는 이중적인 성격을 적절히 파악하면서 겸손하게 그리스도의 삶에 참여해야 한다.

정답이 정해진 길을 따라가는 것은 편하고 안전하다. 깊게 고민할 필요도 없고 고뇌할 필요도 없다. 그동안 오랜 역사 속에서 수많은 사람이 따라간 이미 검증된 길이다. 굳이 긁어 부스럼 만들 필요가 없듯, 굳이 권력자에게 저항할 필요도 없다. 마음에 들지는 않지만 지금 나라를 통치하고 있는 이도 하나님께서 세우신 권력이라고 생각하면 그냥 넘어갈 수 있다.

하지만 본회퍼는 그럴 수 없었다. 눈앞에 있는 유대인의 얼굴을 보고선 차마 그럴 수 없었다. 희생자의 관점에서 다시 자신의 삶을 돌아보고 역사를 바라볼 때 그럴 수 없었다. 그는 유대인의 편에 서서 하나님의 현실에 참여하기로 결심했다. 결국 그는 평생 평화주의자로 살아왔던 자신의 신념을 내려놓고, 히틀러 암살에 가담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지금 여기서 어떤 정치적 선택을 해야 할지, 사회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다면, 이것 하나면 기억하자.

- 희생자의 관점에서 판단을 한다면,
- 희생자를 위한 결단을 내린다면,
- 우리는 지금 어떤 행동을 해야 할까?

이 질문이 바로 본회퍼가 우리에게 물려준 기독교 윤리의 유산이다.

최경환 / 대학과 대학원에서 신학을 공부했고, 출판사와 아카데미에서 일하면서 강연을 기획하고 다양한 세미나를 진행해 왔다. 현재 인문학&신학연구소 에라스무스 운영위원으로 활동하면서 공공신학과 정치철학을 꾸준히 공부하고 있다. 저서로는 <공공신학으로 가는 길>, <우리 시대의 그리스도교 사상가들 Ⅰ·Ⅱ>(공저), <태극기를 흔드는 그리스도인>(공저) 등이 있다. (본보 제휴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2년 9월 20일, 화 4:43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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