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orea Weekly of Florida   로그인  등록하기

 현재시간: (EST) 2022년 9월 26일, 월 2:34 am
[칼럼/기고/에세이] 기고
 
국민 여러분, 민주주의를 만끽하십시오
[김재규 평전: 제42회] 그가 남기고자 한 유언의 모든 것


▲ 교수대 앞에 선 김재규의 마지막 모습. 재판 때 "마지막으로 남길 말이 없느냐"는 판사의 물음에 그는 짧게"없다"고 답했다. 1979년 12월 20일에 사형선고를 받은 그는 이듬해 5월 24일,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 경향신문

(서울=오마이뉴스) 김삼웅 기자 = 김재규는 유언의 마지막 대목에서 자신의 명령에 따른 부하들을 걱정하면서 정상참작이 없음을 안타까워 하였다.

그리고 끝으로 "국민 여러분, 민주주의를 만끽하십시오"란 말로 유언을 장식한다. 그가 남기고자 한 유언의 모든 것이 여기에 함축되었음직 하다.

"그 다음에 나는 내 동지, 나를 포함해서 7명이 됩니다만, 이 동지들에 대해서 나는 여러분들에게 확실히 말씀드리고 싶은 것은 나와 이념을 같이 하고 이 혁명에 가담을 했던 나의 동지들입니다. 이 동지들은 나와 마찬가지 이러한 신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또 지금도 자기의 죽음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을 뿐 아니라 나 이상으로 그 확고부동한 신념을 가졌다는 것을 나는 듣고 알고 있습니다.

심지어 김태원이라고 하는 동지 한 사람은 와전옥쇄(瓦全玉碎)다, 기왓장으로 온전한 것보다는 옥이 되어서 그야말로 분쇄되겠다 하니 얼마나 숭고한 이야기입니까, 이러한 이야기를 한 동지들, 참 귀중하고 참 자랑스럽고 사랑스러운 나의 부하들입니다.

그런데 나는 요번에 이 재판의 결과가 이러한 결과가 나왔습니다만 참고적으로 내가 하나 말씀드리는데, 그래서 난 이거 뭐 좋은 이야기 아닙니다만, 일본의 예를 들어서 하나 말씀드린다고 하더라도 일본의 과거의 5ㆍ26사태니 2ㆍ26사태니 하는 사건들이 있습니다만 그때 그 사람들은 장교들만 책임을 졌지 하사관과 병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우지 않았습니다. 왜? 그것은 그 사람들이 잘하고 잘못하고 그런 단계를 초월해서 군대라고 하는 조직이 유지가 되는데 있어서는 그 역경에서 전쟁을 수행할 적에 부하들이 명령을 선택적으로 받아서 그 수행을 한다. 만일 이러한 기풍, 이런 것이 있다고 하면 군대는 존립을 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바꿔 말해서 부하라고 하는 것은 상관의 명령을 무조건 받아들일 수 있는 이러한 관계가 아니면 군대의 명령계통이라고 하는 것은 존립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만일 상관이 명령을 했을 적에 이것이 정당한 명령인가 아닌가 판단을 해서 정당할 적에만 내가 이행을 한다. 이렇게 생각해 보십시다. 전쟁에서 만일 어떠한 종교를 독실하게 믿는 사람이 있다고 합시다. 적을 보고 총을 쏘라고 했는데 내가 가지고 있는 신앙의 정신에 입각을 하면 나는 총을 쏠 수가 없다 해서 거절한다고 합시다.

그 전쟁을 전투를 해서 전승을 할 수 있겠습니까? 이것은 조그마한 비유의 한 예에 불과한 것입니다만 절대로 명령이라고 하는 것은 이것은 절대권을 가진 절대이지, 이것이 선택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안 받아들여지고 해서는 아니 된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요번에 나는 이 혁명을 결행하기 위해서 내 부하 6명에 대해서 강력한 명령을 했습니다. 이 사람들은 나의 명령을 100% 그대로 받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자기 임무를 충실히 수행해 가지고 아주 완전히 자기 임무를 완수했습니다. 나는 이것은 참 본받을 만한 일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적어도 재판 과정에 있어 가지고서는 이 문제에 대해서는 명령을 한 나와 명령을 받아 가지고 이행한 이 사람들의 이 관계는 충분히 정상참작이 되어서 판결이 되었어야 한데 그러한 것이 없다는 것이 아쉽습니다.

그리고 오늘이 금요일입니다만, 내 영감으로 마음에 잡히는 것은 내일 토요일, 내일 오전밖에 일이 없으니까 내일 오전 중에 나의 형을 집행하는 마지막 순간이 되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이 되는데 적중될는지 안 될는지 모르겠습니다만 내 영감으로 잡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나는 아무 누구의 염려없이 아주 유쾌하고 또 명예스럽고 또 이런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했다는 그 자부와 내가 이렇게 감으로써 자유민주주의는 확실히 보장되었다는 이러한 또 확신과 이걸 가지고 나는 즐겁게 갑니다.

아무쪼록 대한민국의 무궁한 발전과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영원한 그러한 발전과 10ㆍ26 민주회복 혁명, 이 정신이 영원히 빛날 것을 저는 믿고 또 빌면서 갑니다.

국민 여러분, 민주주의를 마음껏 만끽하십시오." (주석 4)

서대문구치소에서 교수형으로 집행

운명의 날 1980년 5월 24일의 여명이 채 밝기 전인 새벽 3시경, 김재규를 태운 호송차량이 육군교도소를 출발한 지 1시간 만에 서대문구 영천의 서울구치소에 도착하였다. 그리고 보안청사의 지하실 독방에 가뒀다.

서대문구 현저동 101번지, 지금은 서대문독립공원으로 조성되었지만 일제가 대한제국을 침략하면서 가장 먼저 지은 것이 이 서대문형무소였다.

일제강점기 수많은 의병과 항일지사가 생명을 잃거나 고초를 겪었다. 의병장 이인영을 필두로 김구ㆍ안창호ㆍ여운형 등 독립지사, 손병희ㆍ한용운 등 민족대표들, 강우규 의사, 유관순 등 3ㆍ1혁명 관련자 수천 명, 해방 뒤에는 진보당 조봉암, 북한 노동당부부장 황태성, 인혁당사건 관련자 등이 여기서 처형 되었다. 민족의 수난과 한이 맺힌 곳이다. (주석 5)

우연이었을까, 현저동 101번지에 잠시 수감된 김재규의 수형번호가 101번이었다. 이곳으로 신새벽에 이감될 때 그는 곧 형이 집행될 것을 예감하였다. 그리고 담담한 심경으로 최후의 순간을 맞았다.

그로부터 3시간 후 아침 7시 정각, 김재규는 사형 집행실로 향했다. 집행관이 유언이 있느냐고 물었다. 그는 이미 전날 녹음으로 유언을 남겼음인지 짧게 두 마디를 했다.

"나는 국민을 위해 할 일을 하고 갑니다. 나의 부하들은 아무런 죄가 없습니다."

죽는 순간까지 부하들이 눈에 밟혔다.

집행관이 다시 스님과 목사를 모셨으니 집례를 받겠느냐고 물어도 눈을 꼭 감은 채 아무 대답이 없었다. 고광덕 스님과 김준영 목사가 새벽부터 나와 대기하고 있었다. 김재규는 다만 "나를 위해 애쓰시는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라고 하직 인사를 했다.

사형이 집행된 후 그의 손에는 집행의 충격에도 불구하고 긴 염주와 작은 염주 2개가 그대로 손에 꽉 쥐어져 있었다. 독실한 불자가 스님의 예불을 왜 마다하였을까? 그의 말대로 이미 성불의 경지에 이르렀기 때문일까. 아니면 구차한 절차를 생략한 채 모든 것을 훌훌 털어버리고 피안으로 가고 싶었던 것일까? (주석 6)

김재규장군은 63세에 10ㆍ26거사를 통해 독재자를 암살한 지 6개월 28일 만에 의병ㆍ독립지사들이 순국한 그곳에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교수형이었다. 그리고 1시간 단위로 박선호 등 부하들이 차례로 형이 집행되었다. 박흥주 대령은 단심이어서 3월 6일에 이미 총살형으로 처형되었다.

신군부는 시신을 육군통합병원으로 옮기고 동생 김항규 씨에게 "시체를 빨리 치우지 않으면 화장을 하겠다"고 협박조로 연락하였다. 그때서야 부인과 유족은 육군통합병원으로 달려가 시신을 확인하고, 오열했지만 그는 이미 이승의 사람이 아니었다.

김영희 여사는 처형된 다섯 사람들(김재규 장군과 4명의 부하들)의 수의를 똑같이 주문하여 육군통합병원으로 갖고 갔고, 유가족들은 3일장도 못 지내고, 바로 그 다음날 서둘러 장례를 지내야 했다.

장례 날 육군통합병원에서 삼엄한 헌병들의 경계와 안내(?) 속에 다섯 구의 시신은 각각 다른 방향으로 발인시간을 달리하여 나갔고, 김재규 장군의 시신이 든 영구차는 앞, 뒤로 무장한 헌병 1개 소대의 호위(?)를 받으며 영정도 앞에 못 모시고 뒤에 따라 가도록 하였다. 김재규 장군은 죽어서도 유언대로 묻힐 수가 없었다. (주석 7)

김재규 장군은 변호인과 가족들에게 국군동정복을 입혀 매장하고, 묘비에는 "김재규장군지묘"라고, 그리고 부하들과 한 곳에 묻어달라고 별도의 유언을 남겼다. 신군부는 시신에 동정복도 못 입히게 하고, 부하들과 함께 묻히는 것도 막았다.

김재규 장군은 당일 경기도 광주군 보포면 능곡리의 삼성공원 묘지에 제한된 유족과 많은 기관원들이 지켜본 가운데 매장되고, 박흥주 수행비서는 경기도 포천 천주교회 묘지, 박선호 의전과장은 경기도 고양군의 공원묘지, 이기주 경비원은 경기도 양주군 구내면 공원묘지에 따로 묻혔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1979년 11월 3일 국장으로 거행되고 국립묘지에 안장된 것과 크게 비교되었다.

꽃도 십자가도 없는 무덤

프랑스가 히틀러의 나치에 점령당했을 때 레지스탕스운동에 나섰던 끌로드 모르강이 먼저 간 동지들에게 바친 「꽃도 십자가도 없는 무덤」(주석 8) 이 전한다.

몸짓도 없고 꽃도 없고
종소리도 없이
눈물도 없고 한숨도 없이
사나이답게
너의 옛 동지들
너의 친척이
너를 흙에 묻었다
순난자(殉難者)여!
흙은 너의 영구대
꽃도 십자가도 없는 무덤
오직 하나의 기도는
동지여
복수다. 복수다
너를 위해…….


<주석>

4> 이상, 『국민 여러분! 민주주의를 만끽하십시오』에서 재인용.
5> 김삼웅, 『서대문형무소 근현대사』, 3쪽, 나남, 1999.
6> 안동일, 앞의 책, 394쪽.
7> 오성현, 앞의 책, 224~225쪽.
8> 끌로드 모르강 지음, 문희영 옮김,『꽃도 십자가도 없는 무덤』, 231쪽, 형성사, 1983.
 
 

올려짐: 2022년 8월 09일, 화 6:01 pm
평가: 0.00/5.00 [0]

답글이 없습니다.

   

   
   
https://www.koreaweeklyfl.com/news/cms_view_article.php?aid=26524</a
https://www.geumsan.go.kr/kr/
https://www.wellgousa.com/films/alienoid
https://crosscountrymortgage.com/joseph-kim/
www.smiledentalfl.com
www.koreahouseorlando.com
https://nykoreanbbqchicken.com/
https://www.koreaweeklyfl.com/news/cms_view_article.php?aid=24924</a
https://www.koreaweeklyfl.com/news/cms_view_article.php?aid=25798</a
www.acuhealu.com
https://www.lotteplaza.com/
https://www.koreaweeklyfl.com/news/cms_view_article.php?aid=25766
www.minsolaw.com
www.GoldenHourAcu.com/
www.easybeautysalon.com/
https://www.koreaweeklyfl.com/news/cms_view_article.php?aid=24925
www.koreaweeklyfl.com/news/cms_view_article.php?aid=24448
https://www.koreaweeklyfl.com/news/cms_view_article.php?aid=26003</a
www.RegalRealtyOrlando.com
https://www.koreaweeklyfl.com/news/cms_view_article.php?aid=24926</a
www.koreaweeklyfl.com/news/cms_view_article.php?aid=25073
www.koreaweeklyfl.com/news/cms_view_article.php?aid=25070
www.koreaweeklyfl.com/news/cms_view_article.php?aid=25071
www.koreaweeklyfl.com/news/cms_view_article.php?aid=25296
www.koreaweeklyfl.com/news/cms_view_article.php?aid=25295
www.koreaweeklyfl.com/news/cms_view_article.php?aid=25297
www.koreaweeklyfl.com/news/cms_view_article.php?aid=25072
www.sharingkorea.net
www.ksm.or.kr
www.ohmynews.com
www.newsm.com
www.newsnjoy.or.kr
www.protest2002.org
www.biblekorea.org
www.saegilchurch.net
get FireFox
https://kornorms.korean.go.kr/m/m_exampleList.do
http://loanword.cs.pusa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