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제약사, FDA에 처방전 없는 피임약 판매 승인 신청

(올랜도=코리아위클리) 박윤숙 기자 = 미 식품의약국(FDA)에 처음으로 처방전이 필요 없는 사전피임약 판매를 승인해 달라는 신청서가 접수된 것으로 알려졌다.

프랑스 제약회사인 ‘HRA 파마(HRA Pharma)’는 11일 FDA에 처방전이 없어도 사전피임약을 살 수 있게 허용해줄 것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HRA 파마는 지난해 영국에서 처방전 없이 살 수 있는 피임약에 대한 승인을 얻은 바 있다.

사전피임약을 복용하는 방법은 미국 내에서 가장 흔한 피임 방법으로, 1960년대 이후부터 여성의 가장 보편적인 피임 방법이다. 다만 사전피임약을 복용하기 위해서는 혈전증의 위험이 있기 때문에 의료진의 처방전이 필요하다. 현재 처방전 없이 구할 수 없는 피임약은 피임하지 않은 채 한 성관계한 이후 3일 안으로 복용해야 하는 응급 경구약이 유일하다.

FDA에 신청서를 접수한 HRA 파마는 보도자료에서 FDA에 자사의 사전피임약 ‘오필(Opill)’을 처방전 없이 판매할 수 있게 해달라고 신청했다며, 만약 승인 받는다면 미국에서 처음으로 처방전 없이 구매 가능한 사전피임약이 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지난 60년 동안 미국 여성들은 처방된 사전피임약으로 임신 시기를 결정했다며, 이같이 안전하고 효과적인 약을 앞으로 처방전 없이 판매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더 많은 여성이 불필요한 제약 없이 피임할 수 있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가정의학아카데미’에 따르면, 처방전 없이 사전피임약을 살 수 있는 나라는 중국과 한국 등 아시아 국가, 그리스 터키, 멕시코, 러시아 등을 포함해 100개가 넘는다.

‘HRA 파마’는 오는 2023년 상반기에 승인을 받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미국에서 기존 약 가운데 처방전을 필요로 했다가 처방전 없이 판매할 수 있게 된 경우가 많다. 진통제와 속쓰림약, 그리고 알레르기약 등 다양한 약이 처방전을 필요로 했다가 이후에 처방전 없이 판매될 수 있도록 전환됐다. 처방전 없이 약품을 판매하기 위해서는 각 소비자가 약의 사용법을 이해하고, 복용의 위험도를 평가할 수 있으며 전문가의 감독 없이도 안전하고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이번 승인 신청이 특히 주목되는 것은 최근 대법원이 ‘로 대 웨이드’ 판례 폐기 결정을 하면서 보편적 낙태권을 폐지한 뒤 이뤄졌기 때문이다. 다만, ‘HRA 파마’는 이에 대해 시기가 겹치는 것은 우연일 뿐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면서 이번 신청을 위해 지난 7년 동안 FDA가 요구하는 내용을 연구했는데, 여기에는 여성 1천 명이 해당 약을 6개월 동안 복용한 임상 시험 등도 포함됐다고 설명했다.

사전피임약을 처방전 없이 구할 수 있게 해달라는 요구는 이전에도 있었다. 미국의사협회는 지난 6월 FDA에 연령 제한 없이 누구나 처방전 없이 사전피임약을 구입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한 바 있다.

FDA가 어떤 결정을 내릴지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특히 여성의 ‘재생산권(Reproductive rights)’과 관련한 FDA의 움직임이 주목받고 있다. 지난해 12월 FDA는 여성이 낙태에 사용하는 약을 우편으로 받을 수 있도록 규제를 완화한 바 있다. 이에 여성 인권 옹호자들의 환영을 받았지만, 낙태 반대론자들한테는 비판을 받았다.

현재 응급피임약은 처방전 없이 구매할 수 있다. 지난 2006년에 응급피임약 ‘플랜B’에 대한 승인이 나왔을 당시 정치적으로 논란이 일었다.

여성의 낙태권을 옹호하는 측에서는 낙태약 역시 처방전 없이 구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따라서 이와 관련한 FDA의 판단에 앞으로도 계속해서 큰 관심이 쏠릴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