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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에세이] 기고
 
집행 하루 전 유언을 남기다
[김재규 평전: 제40회] 윤보선ㆍ함석헌ㆍ김대중의 '청원서'

(서울=오마이뉴스) 김삼웅 기자 = 유신시대에 재야의 대표적인 반유신 단체인 '민주주의와 민족통일을 위한 국민연합'의 공동의장 윤보선ㆍ함석헌ㆍ김대중은 1980년 4월 23일 대법원에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등 10ㆍ26사건 관련자들을 위한 청원서〉를 발표했다. 장문의 내용 중 후반부를 뽑았다.

또한 사법부에 대해 우리들은 다음과 같이 호소합니다.

김재규 씨 등은 공정한 재판을 받아야 합니다.
이것이 소리 없는 전국민들의 절규입니다.
작금 경향 각지에서 그들의 재판에 대한 관심은 지대합니다.

그는 양심범이며 확신범입니다.
그럴진대 만약 그가 처형된다면 이는 우리 국민 모두가 우리의 민주 역사에 스스로 오점을 남기게 되는 일이며, 자손 만대에 길이 큰 죄를 범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민주화 투쟁을 범국민적으로 전개하였으면서도, 자신을 불살라 그 계기를 마련한 장본인들에게는 죽음의 길을 가게 한 비겁했던 조상들로, 따라서 민주ㆍ민권ㆍ민족 의식의 훌륭한 성취를 후손에 전승시키지 못한 이 시대의 책무를 다하지 못한 조상들로 기록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때마침 엠네스티 국제사면위원회에서는 금년 들어 전 세계적으로 사형철폐 운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생명형인 사형제도가 전근대적인 야만적 보복행위일 뿐만이 아니라 만에 하나라도 오심이 있을 경우 그 원상회복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더욱이 정치범, 양심범, 확신범의 경우 사형제도의 실시는 반문명적, 반인류적 폭거로 규탄받아야 마땅할 것입니다.

김재규 씨는 평소 일상생활에서도 민주 시민의 모범을 보여왔다고 합니다. 타인에게 겸손하였으며 이웃에 친절하였습니다.

중앙정보부장 재직시 대통령에게 고언을 아끼지 않았으며 부하들에겐 자상하였습니다. 수사 당시의 모진 고문에도 조금도 비굴하지 아니하였으며, 재판 과정에서도 추호의 동요 없이 자신의 민주주의에 대한 신념을 피력하고 조국의 앞날만을 걱정했습니다. 자신에게는 어떠한 형벌이 내리더라도 명령에만 충실했던 부하들에겐 관대한 처분이 내려지기를 간원했습니다. 유연한 인품의 소유자로서 그의 언행은 보도에 접하는 국민들의 심금을 울렸습니다.

개인의 일신상의 부귀영화를 초개같이 버리고 오직 조국의 민주주의 회복에만 스스로를 투척하였기에 그는 오늘도 병마와 싸우며 차가운 감방에서 죽음의 그림자를 눈 앞에 두고 있습니다.

'법관은 헌법과 법률에 의하여 그 양심에 따라 독립하여 재판한다'라고 헌법에 명시되어 있습니다. 사법부는 민주 양심의 최후의 보루입니다. 국가 권력의 남용을 저지하고 국민의 저항권을 보장하는 사법부마저 그 본연의 의무를 저버릴 때, 국민의 양심이 의지할 곳은 아무 데도 없습니다. 지난 유신체제 7년 동안 사회 어느 분야와도 마찬가지로 사법부 역시 독재의 그늘 아래서 국민의 소리를 외면하고 그 기능을 다하지 못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참으로 통한스러운 일이었습니다.

최근 신현확 국무총리가 김재규 씨 사건의 재판이 종결되기 전에는 계엄령을 해제할 수 없다고 한 발언은 사법부의 독립성을 또다시 위협하고 있습니다. 사법부를 모독하고 있습니다. 온 국민이 서로 자제하며 민주발전을 도모하고 있는 이 때에 어떻게 해서 특정사건에 대한 재판이 계엄령 해제와 연루될 수 있단 말입니까? 사법부 당국은 외부의 개입을 허용하여 국민의 신뢰를 파괴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역사는 독재와 민주 발전의 분수령에 놓여 있습니다. 유신잔재를 청산하고 대망의 민주헌정을 실현하려 하고 있습니다. 국민적 화해와 관용과 단결 속에서 모두가 과거를 반성하며 밝은 민주조국 건설을 향해 전진하고 있습니다. 오늘이 있게 한 김재규 씨에게 공명정대한 재판이 이루어져서 최소한 극형만은 면해져야 합니다. 이는 사법당국이 새 시대를 맞이하여 보여야 할 최소한의 의무입니다. (주석 1)


김재규는 결코 생명에 급급하지 않았다


▲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사진은 1980년 1월 23일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항소심 2차 공판 당시 사진. ⓒ 연합뉴스

사회적 전환기에 최대 비극은 악한 사람들의 거친 비명이 아니라 선한 사람들의 소름끼치는 침묵이다. - 마틴 루터 킹.

10ㆍ26거사 이후의 한국사회는 거대한 전환기였다.

유신체제의 질곡에서 벗어나 그야말로 서울의 봄 아니 '대한민국의 봄'을 맞이할 수 있었을 것이다. "선한 사람들의 소름끼치는 침묵"이 아니었다면 말이다. 그런데 역사의 수레바퀴는 다시 과거로 되돌아갔다. 거기에는 "악한 사람들의 거친 비명"이 크게 작용을 하였다.

유신의 핵을 제거함으로써 민주화의 막을 연 사건의 주모자가 진짜 내란을 일으킨 세력에 의해 '내란목적 살인죄'도 극형이 선고되고, 『조선일보』가 "개만도 못한 인간"으로 낙인하면서 사태는 돌이키기 어렵게 되었다. 검찰의 논고와 재판관들의 판결문이 판박이가 되는 세태이고, 아무리 비상계엄의 상태였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선한 사람들의 침묵"이 면책되는 것은 아닐 터이다. 박정희의 국장 행사에는 200만 시민이 거리를 매웠다.

신군부가 광주에서 학살만행을 자행하던 1980년 5월 24일 김재규와 그의 동지들에 대한 사형 집행이 예정되었다.

"사형 집행은 극비리에 준비되었다. 5월 17일 비상계엄전국 확대에 따른 광주사태로 시국의 앞날이 불투명했을 때 전두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 세력은 김재규의 존재가 하나의 불씨로 작용할 여지가 있다고 판단했음인지 사형 집행을 서둘렀다.",(주석 1)

"신군부가 김재규 처형을 서두룬 이유는 바로 민심의 불꽃이 김재규 구원 쪽으로 향할수도 있다는 판단 때문이었다." (주석 2)

김재규는 결코 생명에 급급하지 않았다. 초연했다고 하는 표현이 적합할 것이다.

"사형 집행이 되기 하루 전인 1980년 5월 23일에 자신의 사형 집행이 바로 다음날로 다가와 있음을 직감했다. 당시 교도소 관계자들이 주요 재소자 관리를 위해 비밀리에 녹음기를 품고 다닌다는 사실을 알고……." (주석 3)

대법원의 확정 판결을 변호사로부터 들은 김재규는 죽음(죽임)에 대비하였다. 5월 23일 어머니와 부인 등 가족과 이승에서 마지막이 되는 면회를 했다. 이 자리에서 『금강령』의 '응무소주이생기심(應無所住而生其心)' - "응당 어디에도 머무름 없이 그 마음을 낼 지니라"는 구절로 담담한 심경을 토로하였다. 그리고 가족에게 30분간 유언을 하였다. 유언은 수감 중인 남한산성 육군교도소에서 오전 9시부터 녹음으로 남겼다.

그의 유언은 꽤 긴 편이다. 새가 죽음에 이르면 노래가 처량하고 사람이 죽음에 이르면 그 말이 진실해진다고 했다. 63년의 파란곡절의 삶, 무엇보다 동향이고 한때 은혜를 입었던 절대권력자를 살해해야 했던, 10ㆍ26거사에 나서지 않을 수 없었던 심경을 진솔하게 밝히고 있다. 어느 대목도 빠뜨릴 수 없이 네 차례 나눠 싣는다. 제목은 유언 중에서 임의로 뽑은 것이다.

하늘의 재판에서는 이길 것

오늘이 5월 23일, 아침이군요.

내가 생각하기에는 내가 이 세상에서 마지막 남길 말을 남기고 갈 수 있는 최후의 날이 아닌가 이렇게 나는 감촉을 하고 그렇게 생각하면서 내 소회에 있는 이야기를 하고자 합니다.

나는 금번 1심, 2심, 3심 - 보통군법회의 고등군법회의, 대법원 재판까지 3심까지를 거칠 예정이었는데, 난 또 한 차례의 재판이 있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 그건 뭐냐 제4심인데, 제4심은 이것은 바로 하늘이 심판하는 것이다.

이것은 변호사도 필요 없고 판사도 필요 없고 이것은. 하늘이 정확한, 그야말로 사람이 하는 재판은 오판이 있을 수 있지만, 하늘이 하는 재판은 절대 오판이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러한 재판이 나에게 남아 있을 따름입니다. 그런데 나는 여기서 명확하게 얘기할 수 있는 것은 하늘의 심판인 제4심에서는 이미 난 이겼다. 다시 말해서 내가 목격했던 바 민주혁명은 완전히 성공을 했다, 그렇게 해서 자유민주주의가 이 나라에 회복이 되고 그것이 보장되었다는 사실은 나는 이것은 누구도 의심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서로들 이렇게 확신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는 이렇게 생각을 합니다. 이미 자유민주주의의 물결은 세차게 흐르기 시작해서 이 나라에 자유와 민주주의가 회복되고 있다고 하는 사실은 천하공지의 사실입니다. 그런데 이것을 가로막는 세력이 있어서 여기 순조롭게 민주회복이 되어 나가지 못하고 장해를 받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시간문제가 되지 천하의 대세는 사람으로서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나는 여기서 이런 비유를 하나 들어서 이야기를 해보고 싶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지 않았던들 오늘날 예수 그리스도가 있었겠느냐? 이렇게 생각하듯이 오늘날 우리나라의 민주회복에 있어 가지고서도 나의 희생 없이 이 나라의 민주회복이라고 하는 것은 "확실히 보장되었다"고 이렇게 이야기하기 좀 힘듭니다.

그것은 왜냐하면 자유민주주의의 고마움을 애절하게 느끼는 부류의 국민들도 있고, 또 그렇게 심각하게 느끼지 않고, 필요하지만 그렇게 심각하게 느끼지 않는 이런 부류도 없지 않다 이렇게 생각이 드는 것입니다.


<주석>
1> 이상 자료는 『국민 여러분! 민주주의를 만끽하십시오』에서 인용한 것임을 밝힌다.
2> 안동일, 앞의 책, 393쪽.
3> 김재홍, 『박정희의 유산』, 58쪽, 푸른 숲, 1998.
4> 김성태, 앞의 책, 2쪽.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2년 7월 11일, 월 11:30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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