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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에세이] 기고
 
10ㆍ26거사 가족들의 호소문
[김재규 평전 38회] "10ㆍ26 거사는 국민의 심판에 맡겨야 합니다"


▲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살해된 궁정동 총격사건과 관련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 그의 부하들이 군사법정에 섰다. ⓒ 보도사진연감

(서울=오마이뉴스) 김삼웅 기자 = '10ㆍ26거사'의 가족들만큼 아픔과 슬픔과 절실한 마음으로 재판을 지켜본 사람들도 없을 것이다. 가족들 중에는 사건 이후 기관에 잡혀가 고문을 당하거나 극심한 수사를 받았다.

남편 또는 아들의 생명이 경각에 달려 있을 때 가족들은 관계기관에 호소하였다. 2월 12일 '10ㆍ26 사건 피고인 가족 일동' 명의로 작성된 〈가족들의 호소문〉중 중후반 부문을 소개한다.

10ㆍ26 거사는 국민의 심판에 맡겨야 합니다.

10ㆍ26 거사가 발생한 그날로부터 국내의 동포 모두가 입을 모아 유신헌법의 철폐를 부르짖었고 최 대통령을 위시한 정부 각료는 물론이려니와 유신체제 하에서 득세하여 요직에 있었던 사람들까지도 "국민적 여망이다. 국민적 합의다" 하면서 한결같이 유신헌법의 철폐를 서두르고 있음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이는 곧 유신헌법이 악법임을 입증하는 것이며 유신 악법을 철폐케 한 10ㆍ26거사의 정당성을 입증하는 것일 뿐 아니라 유신 악법이 10ㆍ26거사와 동시에 실질적인 철폐였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유신 악법의 철폐가 국민의 열망이요 국민적 합의이고 실질적으로 이미 철폐된 것이라면 10ㆍ26 거사가 어찌 유신 악법으로 치죄(治罪)되어야 합니까?

김재규 부장의 거사는 결코 유신 악법으로 치죄될 수 없고 당연히 국민의 여망에 따라 국민적 합의에 의하여 처리되어야 하며 국민의 심판에 맡겨야 마땅합니다.

김재규 부장은 확신범이고 정치범이며 양심범입니다.

김재규 부장은 그의 <항소이유 보충서>에서 1979년 10월 27일 새벽 육군보안사의 서빙고로 연행되자마자 수사관들이 전신을 닥치는 대로 구타하고 심지어 EE8 전화선을 손가락에 감고 전기 고문까지 자행하였으며 이러한 고문이 여러 날 계속되는 동안 수차 졸도하여 심지어는 어떤 수사관에게 이대로 죽으면 이 꼴로 고향 땅에 묻힐 수 없으니 서울에 묻어 달라 유언까지 한 일이 있었다고 진술하였고 간 질환으로 지혈이 되지 않아 피하출혈로 시뻘겋게 된 흔적이 아직 남아 있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확신범이고 정치범이며 양심범인 사람을 이렇게 비인도적으로 고문하고 더구나 사형선고까지 내릴 수 있는 것입니까?

이는 현대문명하의 각국에서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야만적인 처사이며 박 대통령 추종자들의 복수심에서 우러난 소행으로 한국 국민 뿐 아니라 전 세계로부터 지탄받아 마땅한 일입니다.

김재규 부장과 그 부하들을 살립시다.

우리는 그 동안 이 사건 처리의 추이를 지켜보면서 재판부 법관들도 국가와 민족을 위한 최소한의 충정은 있을 것으로 믿었고 이 사건 관련자를 극형에 처하지는 않을 만큼 일말의 양심은 남아 있을 것으로 믿어 은인자중해 왔습니다.

그러나 지난 1, 2심 공판 진행 과정에서 의도적인 졸속처리를 강행해왔습니다. 또 1980년 2월 9일 국내 각 신문지상에 김재규 부장을 엄벌하라는 어용단체의 건의와 엄벌하겠다는 계엄사령관의 방침이 실리는 등 요즘 일련의 사태 진전을 보아 정부 당국은 김재규와 그 부하들을 서둘러 처형할 것이 명백해졌습니다.

이에 국가 민족의 장래를 걱정한 나머지 더 이상 은인자중하고 있을 수 없어 김재규 부장과 그 부하들의 구명을 간곡히 호소하는 바입니다.


거듭된 가족들의 호소문ㆍ탄원서

가족들은 〈호소문〉에 이어 4월 초에 다시 당국에 〈탄원서〉를 제출하였다.

김재규ㆍ박선호ㆍ이기주ㆍ 김태원ㆍ유성옥의 가족 24명의 명의로 제출되었다. 김재규의 어머니와 부인, 동생들도 함께 하였다. 탄원서의 전문이다.

탄원합니다.

우리는 10ㆍ26사태와 관련하여 1, 2심의 군법회의에서 사형의 선고를 받고 현재 대법원의 확정판결을 기다리고 있는 세칭 10ㆍ26사건의 가족들입니다.

10ㆍ26사태 전에는 세상 사람들 앞에서 우리 남편들의 직업에 대하여 감히 말할 수조차 없을 만큼 음지에서 살아왔던 사람들입니다. 우리들 가운데는 10ㆍ26사태를 통해서야 우리들의 남편이 중앙정보부원이었던 사실을 알게 된 사람도 있습니다. 또한 어디 가서 무슨 일을 하는 직책을 가지고 있었는지에 대하여도 사건 발표를 통하여 처음으로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들의 남편들이 정보부원이었고, 발표처럼 권력의 은밀한 핵심 주변에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만 우리들은 언제나 가난했고 우리들의 남편들은 그 아내와 자식에게조차 자기의 직업과 직책을 말하지 않을 정도로 자신의 직업에 대해 비밀을 지켰으며 또한 청렴했습니다.

따지고 보면 유신체제 하에서 가장 처절한 희생을 당한 사람들이 우리들의 남편과 우리들 가족이었을 것입니다. 10ㆍ26 사태의 사건 당일도 우리들의 남편은 대통령과 이 나라 최고 권력의 핵심들이 벌이는 이른바 큰 잔치 대행사에 동원되었거나 경비를 맡았던 것입니다.

춘향전에 '노랫소리 높은 곳에 백성의 원성이 높다'고 하였습니다만, 우리들의 남편들은 그 노랫소리를 위하여 가장 비참하게 동원되었던 것입니다.

우리들의 남편들은 어느 날 내란죄의 대역죄인으로 발표되었습니다.

그러나 재판 과정을 통하여 분명히 밝혀진 바에 의하면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은 나라의 민주주의를 구하고, 민주주의를 요구하는 국민의 희생을 막기 위해서 정치적 확신을 가지고 10ㆍ26사태를 일으켰다고 했습니다.

부산과 마산사태를 보고하면서 이것은 국민의 체제에 대한 근본적인 불만의 표시로서 사실상 민란 사태인 바, 체제의 완화 등 근본적인 대책을 건의했을 때 박 대통령은 더 이상 확대되면 발포명령을 직접 내리겠다고 공언했고 옆에 있던 차지철 경호실장은 데모 대원 100~200만 명 죽인다고 정권이 까딱 있겠느냐고 했다고 하니 10ㆍ26 사태가 없었던들 얼마나 많은 민주국민이 희생되었겠습니까?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은 평소부터 자유 민주주의를 신봉하고 또 회복시키려 하였을 뿐만 아니라 10ㆍ26거사 자체가 정치적 확신에 따라 결행한 것입니다. 나라의 민주주의를 회생 시키고 국민의 희생을 막은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에 대해 역사와 국민은 길이 평가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주변에 대한 확정 판결이 있기도 전에 처형당한 박홍주 대령을 비롯하여 나머지 관련자들은 명령과 규율을 생명으로 하는 군과 정보기관의 공무원이었습니다. 명령을 선택적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이라면 군과 정보기관의 기강과 명령의 존엄성이 어떻게 유지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우리들의 남편들이 사형선고를 1, 2심에서 받았지만 긴급조치가 해제되고 구속 인사들이 석방되며 복권, 복직, 복학되고 있는 현실에 대하여 우리 남편들의 행동과 처신이 결코 헛되지 않은 것임은 알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남편들이 목숨을 걸고 결행한 10ㆍ26사태의 결과가 진정한 민주화로 나타나 줄 것을 바라마지 않습니다.

그러나 10ㆍ26사태로 나라의 민주주의가 활발히 논의되는 지금 그것을 결행한 우리들의 남편들이 왜 감옥에 있어야 하며 왜 죽어야 하는지 납득할 수 없습니다. 나라의 민주주의 실현이 진정 나라의 가야 할 길이라면 그것을 가능하게 했던 10ㆍ26거사의 주인공들인 우리들의 남편과 그 민주화의 길에 같이 참여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결코 우리들 남편의 공을 내세우고자 함이 아닙니다. 다만 우리들의 남편들은 음지에서 일하면서도 불평할 줄 몰랐던 청렴하고도 모범적인 공무원이었고 우리에게는 더할 수 없이 소중한 가장입니다.

이제 우리는 우리 남편들의 생명만은 지켜질 수 있도록 하여 주시옵기를 엎드려 비옵나이다. 오직 우리는 그것을 간절히 소망합니다. 만약 그들을 처형하여야 한다면 그들을 하늘같이 믿고 살아온 우리들도 함께 죽음의 길로 인도하여 주시기를 목놓아 호소하는 바입니다.

비록 감옥 속에서나마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하여 그들이 목숨걸고 결행한 10ㆍ26사태의 귀결로 나타날 나라의 민주화를 지켜볼 수 있도록 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그들이 한(恨)을 가진 채 세상을 하직하지 않게 하여 주시옵소서. 또한 우리들 가족들의 한이 되지 않게 하여 주시옵기를 거듭 거듭 두 손 모아 충심으로 탄원 올리옵니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올려짐: 2022년 6월 07일, 화 11:11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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