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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경제
 
한동훈이 휴대전화 비번을 열지 않는 이유
[조성식의 통찰] '나쁜 놈들 전성시대'가 되지 않으려면

(서울=오마이뉴스) 조성식 기자 = 2012년에 나온 영화 <범죄와의 전쟁> 부제는 '나쁜 놈들 전성시대'다. 최민식 하정우가 주연한 이 영화는 전직 비리 공무원과 조폭 및 검사를 매개로 우리 사회의 부패한 권력지형을 보여준다. 극 중 조범석 검사(곽도원 분)의 대사가 인상적이다.

"내가 깡패라면 넌 그냥 깡패야."


▲ 영화 <범죄와의 전쟁> 포스터. ⓒ 쇼박스

최민식이 검사로 나온 영화 <넘버 3>(1997)에도 비슷한 대사가 나온다. 삼류 조폭 두목 조필(송강호 분)이 더듬으면서 부하들에게 내뱉는 말. "내, 내가 하, 하늘 색깔, 빨간색! 하면, 그때부터 무, 무조건 빨간색이야!"

고발사주가 아니라면 아닌 거야. 검언유착 없었다면, 휴대전화 열 이유가 없는 거야. 총장 대신 부인과 수시로 통화해도, 공무상비밀이 아니라면 아닌 거야. 주가조작 관여하지 않았다면 조사할 필요도 없는 거야. 국방부 밀어내도 안보에 지장 없다면 없는 거야. 의대 편입 비리가 없었다면 없는 거야. '비리 스펙'을 입시에 안 써먹었다면 비리 아닌 거야. 간첩 조작 사건에 검사 책임이 없다면 없는 거야. 우리가 '검수완박'이라면 '완박'인 거야... 어휴 끝이 없겠다.


▲ 한동훈 법무부장관 후보자가 9일 오후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실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더불어민주당 김용민 의원이 준비한 자료를 보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권력은 비판과 견제를 용납하지 않는다. 권력은 사실과 진실을 선택적으로 수용한다. 권력은 난폭하면서도 친절하다. 권력은 앞에서 웃고 뒤에서 보복한다. 권력은 거짓을 참으로 바꿀 수도 있다. 권력은 늘 옳기 때문이다.

조지 오웰의 소설 <동물농장>을 보자. 동물들은 인간 농장주를 몰아낸 뒤 7계명을 만든다. 그중에는 '다른 동물을 죽이면 안 된다' '술을 마시면 안 된다' '네 발은 좋고 두 발은 나쁘다' 따위의 계명이 있다. 경쟁자 스노볼을 쫓아낸 뒤 절대권력자가 된 돼지 나폴레옹은 반기를 드는 동물들을 처단하고, 술을 마시고, 인간을 흉내 낸다.

나폴레옹 일당은 계명을 다음과 같이 슬쩍 바꾸는데, 몇몇을 뺀 동물 대부분은 눈치 채지 못한다. ▲'이유 없이' 다른 동물을 죽이면 안 된다. ▲'지나치게' 술을 마시면 안 된다. ▲네 발은 좋고 두 발은 '더 좋다'. 동물들을 위하고 동물농장을 더 발전시킨다는 명분이었다.

교묘한 눈속임

권력이 하는 짓이 딱 이렇다. 교묘한 눈속임으로 헷갈리게 한다. 자기들 이익을 도모하면서 '국민'을 들먹인다. 국민을 위해서, 국민 피해를 막기 위해서란다. 아니, 여보세요. 언제부터 그렇게 국민을 위했다고 그러세요?

"누군가를 위해서 한다"라는 말처럼 인간의 위선과 기만을 나타내는 말도 없다. 자기 업무이고, 자기가 필요해서 하는 일인데 마치 남의 이익을 위해서나 남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처럼 말한다. 자기만족을 위한 건데 봉사하고 희생하는 것처럼 꾸민다. 권위의식과 시혜의식의 소산이다.

예컨대 검사나 변호사 업무는 남을 위한 일이 아니다. 그냥 자기 일이다. 나라 녹을 받거나 수임료 챙기면서 하는 경제활동이기도 하다. 정의를 추구하고, 억울한 사람 안 생기게 하는 것은 용기나 양심이 아니라 직업적 의무다. 경찰도, 기자도 마찬가지다.

우리 사회 특권층인 검사들은 비리가 발각되면 남다른 행동을 보인다. 휴대전화를 갖다버리거나 비밀번호를 알려주지 않고, 컴퓨터 하드디스크를 초기화하거나 바꿔버리고, 통화 내역과 카톡 대화, 메신저 대화를 삭제한다. 나아가 감찰을 방해하고 수사를 막는다. 공소시효가 끝날 때까지 뭉갠다. 이러면 없는 게 된다. 아닌 게 된다. 그런데 아니라면서 수고스럽게 왜 감추거나 없애는지 모르겠다.

이건 구조적 비리다. 검사 개인의 문제가 아니다. 권력의 문제다. 절대권력을 공유하기에, 권력기관 구성원이라는 자신감이 넘치기에 가능한 일이다. 검찰을 중심으로 세상이 돌아간다는 '검동설'이 아니면 설명할 수 없는 부분이다.

한동훈 부조리극

그런 점에서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 청문회는 한편의 부조리극이었다. 증인으로 출석한 한동수 대검 감찰부장과 임은정 법무부 감찰담당관은 검찰 상층부에서 벌어진 음습한 일들을 폭로했으나 이미 검찰권력이 국가권력으로 고스란히 옮겨진 상황에서 공허한 메아리였다.

압권은 검수완박 궤변. 보완수사권이 유지되고 중대범죄 우선 수사권이 축소됐을 뿐인데, 장관 후보자와 여당 의원들은 검찰이 수사권을 박탈당해 사회정의가 무너지고 정치인과 공직자 비리가 넘쳐나게 생겼다고 비분강개했다. 돈 없고 힘없는 서민만 피해를 본다는 단골 주장을 빼놓지 않으면서.


▲ 한동훈 법무부 장관 후보자가 9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인사청문회에서 의원질의에 답변하고 있다. ⓒ 공동취재사진

이런 게 혹세무민이다. 검사가 직접 수사하지 않으면 서민이 피해를 본다는 주장은 검사 우위의 시각일 뿐 아무런 과학적 근거가 없다. 전체 형사사건의 99%를 처리하는 경찰을 저능아나 무능아로 보지 않는다면 말이다. 현행 형사소송법과 검찰청법은 검찰이 경찰 수사를 점검하고 견제하고 감독하는 장치를 겹겹이 마련해 놓았다.

진정 검찰 직접수사 축소에 따른 국민 피해를 걱정한다면, 중대범죄수사청 설립에 찬성해야 한다. 특수수사 경험이 풍부한 검사와 검찰 수사관들이 중수청으로 옮겨가면 된다. 지금처럼 경찰이 수사해도 되지만, 경찰 수사력을 불신하고 비대화를 우려하니 중수청에 넘기자는 것이다. 견제와 균형 원리에 부합하는 면도 있고.

그런데 중수청도 반대한다. 결국 보수세력의 든든한 우군인 검찰을 품 안에서 놓고 싶지 않은 거다. 정권의 칼이자 법조 카르텔의 핵심인 검찰을 쪼개기 싫다는 거다. 수사권과 기소권을 결합한 검찰권력이 유지되는 게 유리하고 편리하기 때문이다. 정치권과 법조계, 언론계가 어우러진 우리 사회 기득권의 민낯이다.

유능하고 정의롭고 양심적인 검사도 많다고? 왜 없겠나? 구조 문제를 사람 문제로 바꾸는 얄팍한 논리에 실소가 나온다. A를 얘기하는데, B를 내세워 흔드는, 일종의 허수아비 논증 오류다. 이런 주장을 하는 사람들은 본의 아니게 기득권 담장을 떠받치는 데 일조하는 셈이다.

박정희 시대와 전두환 시대 최고 실세 집단은 군이었다. 군 출신이 정부 요직을 차지하고 입법부와 사법부를 농락했다. 그들은 말 그대로 '언터처블(untouchable)'이었다. 윤석열 정부 권력의 요람은 검찰이다. 청와대와 행정부 요직에 임명된 검찰 출신 인사가 벌써 10명이다. 분위기로 보면 앞으로 더 늘 듯싶다. 여당이 된 국민의힘도 검사 출신들이 주축이다.

'나쁜 놈들 전성시대'에서 도덕은 거추장스러울 뿐이다. 좋게 말하면, 능력이 최고다. 능력 있으면 좋은 놈, 없으면 나쁜 놈이다. 수단과 과정은 중요하지 않다. 결과만 좋으면 된다. 박정희가 그랬고 전두환이 그랬다.

<범죄와의 전쟁>에서 조범석 검사는 더 큰 실적을 올리기 위해 전직 세관원 최익현(최민식 분)과 거래한다. 익현의 비리를 덮어주는 대신 부산 최대 범죄조직 두목인 최형배(하정우 분)를 잡기로 한 것이다. 익현은 자신의 든든한 뒷배이자 동업자인 형배를 유인해 체포당하게 한다.

이후 조 검사와 익현은 동업자 관계로 발전한다. 조 검사 덕분에 암흑가 재력가로 자리 잡은 익현은 각계에 막강한 인맥을 구축하고, 조 검사는 익현의 도움에 힘입어 검찰 고위직에 오른다. 익현의 아들이 사법시험에 합격해 검사가 된 것은 화룡점정이다.

검찰을 살리는 길

중대범죄 수사권이 축소되긴 했어도 검찰은 여전히 권력기관이다. 정부 고위직과 요직을 차지하는 검사 출신이 늘어날수록 검찰 위상은 커질 것이다. 소통령으로 불리는 권력실세가 장관에 임명됐으니 검찰을 지휘하는 법무부 권한도 강화될 것이다.


▲ 2020년 2월 13일 당시 윤석열 검찰총장이 부산고등·지방 검찰청을 찾아 한동훈 부산고검 차장검사와 인사하고 있다. ⓒ 연합뉴스

검사들이 정권에 코드를 맞춰 '정치적 수사'를 일삼는다면, 또다시 국가적 비극이 발생할 것이다. 이쯤에서 정치보복 악순환의 고리를 끊자. 노무현 전 대통령이 비극적인 죽음을 맞았고, 보수정권 두 전직 대통령이 감옥으로 보내졌다. 명백히 드러난 범죄는 수사가 불가피하겠지만, 더 캐내고 더 파헤쳐서 실적을 올리고 정권에 잘 보이려는 수사는 지양해야 한다.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에 칼잡이들이 활약하는 건 외국인들 보기에도 좋지 않고, 윤석열 정부의 '민생 우선' 정책 기조에도 맞지 않는다.

이렇게 보면 윤석열 대통령에게는 검찰을 정상화해야 할 역사적 책임이 있다. 검찰이라는 권력집단의 대표에서 국가지도자로 올라간 만큼 이제는 국민 시각에서 검찰을 바라보고 평가해야 한다. 검찰총장 재임 중 징계를 받았기에 권력의 속성을 누구보다 잘 알 것이다. 그 권력에는 검찰권력도 포함된다. 물론 검찰의 순기능과 역기능이 무엇인지도 잘 헤아릴 것이다.

<범죄와의 전쟁>에 나오는 조 검사 식의 수사방식은 언뜻 정의로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정의에 대한 냉소와 불신만 키울 뿐이다. 범죄 거래나 별건 수사, 제 식구 감싸기, 전관예우는 사법정의를 훼손한다. '검찰 백' 있는 피의자를 봐주면 힘없는 서민이 피해를 본다.

검찰총장 출신이 대통령에 당선된 것은 시대정신인지 모르지만, 검찰패밀리라는 특권층의 득세를 반길 국민은 많지 않다. '그들만의 리그'에서는 구조적으로 정의와 공정이 왜곡될 수밖에 없다. 비슷한 비리임에도 선택적으로 분노하거나 선택적으로 비난하는 자들 보면 딱하다.

어느 정권에서든 '나쁜 놈들'의 철학은 단순하다. 우리가 하는 건 다 문제없고, 저쪽이 하면 그 반대다. 선택적 정의에 따른 선택적 수사와 선택적 기소는 국민을 갈라치기하고 국론을 분열시키고 민주주의를 후퇴시킨다. 그래서 수사기관 간, 수사기관과 공소기관 간 견제가 필요하다.

검사 출신 여당 원내대표가 애초 국회의장 중재안을 받아들인 것은 현실적 판단이었다. 휘둘러보고 겪어봤기에 검찰권력의 위험성과 폐해를 잘 아는 것이다. 그것을 뒤집은 것은 정치적 판단이다.

검찰이 기반인 윤석열 정부가 검찰개혁에 동조하기란 쉽지 않을 터다. 하지만 시대정신은 검찰의 환골탈태를 원한다. 형사사법체계 선진화와 국민 화합을 꾀할 생각이 있다면, 검찰 정상화에 나서야 한다.

그 첫 번째 관문이 중수청 설치다. 협치의 첫째 조건이기도 하다. 짧게 보면 검찰을 죽이는 일 같지만, 길게 보면 검찰을 살리는 길이다. 국민은 물론 검사들에게도 이로운 일이다. 정권에 해로운 일도 아니다. '나쁜 놈들 전성시대'라는 비난을 받지 않는 길이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2년 5월 17일, 화 9:17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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