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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 문화
 
상처는 깊어지고
[홍범도 장군 실명소설: 저격 35]




(서울=오마이뉴스) 방현석(소설가)

10

총령의 겨울이 깊어갔다. 상처도 나날이 깊어갔다.

총상을 입은 어깨는 덧났다. 뼈를 다치지 않았다고 대수롭지 않게 여기거나 약초를 구하지 못해 상처를 내버려 둔 것은 아니었다. 총상을 아물리려 애쓰고 싶지가 않았다. 어깨의 통증이 계속됐지만 방치했다. 그렇게라도 백무아를 지키지 못하고, 속수무책으로 떠나보낸 자신을 벌하고 싶었다. 총령에 돌아와서 다친 어깨를 감추고 계속 일을 했다. 활자 심는 일에 몰두하다 보면 해가 저물고, 하루가 갔다.

조판은 손끝으로 하는 작업이어서 견뎌낼 수 있을 줄 알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나을 줄 알았던 상처는 나날이 깊어만 갔다. 겨울과 함께 깊어간 건 어깨의 총상만이 아니었다. 내 가슴의 내상은 어깨의 외상보다 훨씬 지독하게 깊어갔다. 주먹보다 굵은 포탄이 관통한 것처럼 내 가슴은 완전히 뻥 뚫린 것 같았다.

어깨의 통증은 견디기 어렵게 심해졌고, 백무아를 향한 그리움도 견딜 수 없게 깊어졌다. 하루에도 몇 번씩 넋 나간 사람처럼, 몰아치는 겨울바람이 흔들어 대는 출입문을 바라보았다. 금방이라도 두 팔을 활짝 펼치고 백무아가 들어설 것만 같았다.

오늘은 집중력을 완전히 잃었다. 조판작업은 엉망이었다. 남들이 두 판을 짜는 동안 겨우 한 판을 짰다. 나를 물끄러미 지켜보고 있던 괴수도깝이 고개를 설레설레 저으며 다가왔다.

내가 들고 일어서려는 조판의 한쪽을 바로 손으로 짚었다.

"드러눕고 싶으면 네놈이 들어가서 엎어질 것이지 활자는 왜 재워?"
괴수도깝의 손가락이 짚은 활자는 옆으로 누워 있었다. 나 아(我) 자였다. 나는 누운 我(아)자를 바로 세워서 문장을 바로잡았다. 天知地知汝知我知(천지지지여지아지).

"하늘이 알고 땅이 알고, 네놈이 알고 내가 아는 이걸, 이놈아, 아예 뒤집어진 놈은 놔누고 누운 놈만 일으키면 어쩌냐."

괴수도깝 영감이 고친 조판을 들고 일어서려는 내 오른쪽 어깨를 눌렀다.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며 주저앉고 말았다. 놓친 조판이 쏟아지면서 활자들이 조판대와 바닥으로 어지럽게 흩어졌다. 갑작스런 비명에 고공들의 눈길이 내게 쏟아졌다.

"이놈이, 뭘 잘했다고 소리를 질러!"
괴수도깝이 활자를 주워 담으려는 나를 향해 벼락같이 소리를 질렀다.

"일이 싫으면 따라와."
괴수도깝은 다른 고공들이 눈치채지 못하게 내게 눈짓을 했다. 조용히 따라와.

"일들 하지 않고 뭐해! 일하기 싫은 놈은 다 따라와!"
괴수도깝 영감이 다시 호통을 치자 식자공들이 멈추었던 손을 다시 움직이기 시작햇다.

직공장의 방에 들어서자마자 괴수도깝이 내 저고리를 확 벗겼다. 어깨를 감아 묶은 삼베를 풀어낸 괴수도깝이 혀를 끌끌 찼다.

"왜 맞았냐?"
괴수도깝은 어디서 맞았느냐고 묻지 않았다. 어떻게 당했느냐고 묻지도 않았다. 왜 맞았느냐고 물었다. 그는 늘 이런 식이었다. 한두 단계를 건너뛴 질문으로 상대가 준비한 대답을 쓸모없게 만들어버리는 게 괴수도깝의 특기였다. 무엇으로 당했는지는 이미 안다는 투로 말하는 그에게 나는 겨우 되물었다.

"맞다뇨?"
"불질을 당하지 않았다고 말하고 싶은 게야?"
총상이란 걸 한눈에 알아본 괴수도깝에게 시침을 뗄 수 없었다. 그렇다고 인정할 수도 없었다.

"..."
"진남포냐?"
나는 깜짝 놀라서 부인했다.

"평양에 갔다 온 사람에게 무슨 엉뚱한 말을 하시는 거예요?"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게야?"
그의 눈은 이미 확신에 차 있었다. 부인해봐야 소용없는 일이었다.

"진남포의 일을 어떻게 아세요?"
"왜놈의 불알을 박살냈는데 그 소문이 어딘들 안 퍼졌을까. 왜나라 주막에서도 안주로 오르내리고 있을 거다. 이놈아."
입을 다문 채 눈만 껌뻑거리는 나를 바라보며 괴수도깝이 말을 이었다.

"좋겠구나 이놈아. 청국놈, 화란놈, 미국놈, 불란서놈들까지 다 있는 데서 왜놈 불알 두 쪽을 차례로, 감쪽같이 산산조각 냈으니 아주 국제적인 명사수로 소문이 안 나겠냐."
삼베를 푼 자리에서 흘러나오는 고름을 보고 괴수도깝이 얼굴을 찡그렸다.

"미련한 놈, 죽고 싶은 것이냐?"
"죽고 싶은지는 모르겠는데, 굳이 살고 싶지도 않습니다."

한 번의 만남을 기다리며 일 년을 살아왔던 나였다. 이제 기다릴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는 세상에 남은 미련은 없었다. 살고 싶지 않다는 건, 한편으로는 괴수도깝 영감에게 덜미를 잡히지 않겠다는 선언이기도 했다. 당신이 아는 사실로 나를 옭아매려 마라, 난 두려울 것이 없는 놈이다.

"지랄염병을 해라. 이놈아."
어깨의 상처를 살피며 고름을 닦아내던 괴수도깝 영감이 갑자기 말을 돌렸다.

"진남포에서 제일 진기한 물건이 무엇이더냐?"

괴수도깝이 말 머리를 돌린 것은 진남포에서 내가 벌인 일을 가지고 더 왈가왈부하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군함과 대포의 위세가 대단하더군요, 그래도 전 소총이 과연 탐나더군요."
"도적놈 눈엔 도적만 보인다고... 그것들로 무장하고 달려들면 어찌될 것 같더냐?"
"소총수 한 명을 감당하려면 활 든 사수와 조총 든 총수의 목숨 백 개는 필요해보였습니다."
"그 정도로 대단하단 말이지... 물질이 천지개벽을 했네, 했어. 물질이 이미 천지개벽을 했으니 세상이 개벽을 할 것이네..."
"양반이 하늘인 낡은 세상이 가고 백성이 하늘인 새 세상이 된다는, 그런 개벽이 정말 일어난다고 믿으세요?"
"오고 말고다 이놈아. 물질이 이미 개벽을 했는데, 그 물질을 개벽한 인간이 어떻게 개벽을 하지 않겠느냐. 인간이 개벽을 하면 인간이 사는 세상은 저절로 개벽이 되는 것이야."
괴수도깝의 목소리는 자신에 차 있었다.

"좋겠네요. 믿는 게 있고, 기다릴 게 있어서."
"무식한 놈. 그래도 무식하면 용감하다는 건 이럴 때 보여주는 게 아니야."
괴수도깝이 어깨의 고름을 사정없이 짜냈다. 나는 비명을 질렀다.

"무식한 놈이 엄살은. 밖에서 들어면 내가 네놈을 잡는 줄 알겠다."
입을 다물라는 소리였다. 괴수도깝은 계속해서 어깨를 매몰차게 눌러가며 고름을 짜냈고, 나는 입술을 사려 물고 아픔을 참아냈다.

"아직 엄살을 떠는 걸 보니 신경이 살아 있는 모양이다, 이 미련한 놈아. 이대로 두면 신경이 죽고 근육이 상해, 그럼 이 팔은 평생 병신이 되는 거야, 이 무식한 놈아."

괴수도깝은 내가 뭘 두려워할지 알았다. 죽음은 조금도 겁나지 않았지만 불구가 되는 건 두려웠다. 그는 부드러운 면포를 꺼내 상처가 벌어진 부위를 닦고 백지를 가늘게 말아 상처 깊숙이 밀어 넣었다. 이빨을 앙다물고 인상을 쓰는 나는 안중에도 없는 것처럼 또 하나의 종이 심지를 빙글빙글 돌려가며 어깨에 밀어넣고 나서 괴수도깝은 손을 털었다.

"에잇 더러운 놈. 사흘 뒤에 이 심지를 뽑아내면 남은 고름이 빨려 나올 거야. 더 곪아서 병신이 되지 않으려면 망개를 써."
"청미래덩굴 말입니까."
"그래. 그거."
괴수도깝 영감은 온갖 지방의 말을 섞어 썼지만 남도 출신임이 분명했다. 청미래덩굴을 망개라고 부르는 건 남도뿐이었다.

"이 겨울에 그걸 어떻게 구합니까?"
"장진댁한테 가봐."
무지질을 끝낸 닥으로 닥죽을 만들 때 닥풀로 쓰는 것은 황촉규화 뿌리였다. 황촉규화 뿌리는 점액질이 많아서 닥의 침강을 막아주고 닥이 지통에 달라붙는 것도 막아주었다. 초지공장에서 뜬 백지를 겹겹이 건조판에 쌓아도 서로 들러붙지 않는 것도 황촉규화 성분 때문이었다. 황촉규화를 너무 많이 쓰면 닥죽이 뻑뻑해서 생산량이 떨어졌고, 너무 적게 쓰면 지질이 나빠졌다. 황촉규화가 부족할 때 닥풀에 섞어 쓰는 게 청미래덩굴이었다. 황촉규화와 청미래덩굴을 관리하는 곳이 무지공장이었고, 그 관리자가 장진댁이었다.

"탄환의 쇠와 화약이 얼마나 지독한지 알기나 해, 다른 놈 같았으면 벌써 뒈졌어. 이 짐승같은 놈아. 네놈이 짐승같은 체질을 타고나서 여태 살아 있는 줄이나 알아."

언제나 그렇듯이 괴수도깝의 말은 욕인지 칭찬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청열과 해독, 용혈에는 망개 뿌리가 으뜸이야. 없으면 윤여리나무라도 줄거야."
윤여리나무는 닥죽의 부패를 막아주는 방부제로 쓰였다. 고공들이 다치면 소염제로 쓰기도 하는 게 윤여리나무였다.

한쪽 팔을 못 쓰는 불구가 될 생각은 없었기에 장진댁을 찾아갔다. 하지만 나는 청미래덩굴 얘기를 꺼냈다가 장진댁에게 그토록 심한 면박과 멸시를 당할 줄은 몰랐다.

(*덧붙이는 글 방현석은 소설가다. 소설집 <사파에서>, <세월>, <내일을 여는 집>, <랍스터를 먹는 시간>, <새벽 출정>과, 장편소설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 <십 년간>, <당신의 왼편>이 있다. 산문집 <아름다운 저항>, <하노이에 별이 뜨다> 와, 창작방법론 <이야기를 완성하는 서사패턴 959> 등을 썼다. 신동엽문학상(1991), 오영수문학상(2003), 황순원문학상(2003) 등을 받았다. 현재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2년 5월 16일, 월 9:23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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