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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 종교
 
교사 관두고 '깡시골' 할매·할배들과 20년 동고동락하다
[탐독의 시간] <산 너머 안골에는 누가 살길래> 저자 김진희 목사

(서울=뉴스앤조이) 박요셉 기자 = 서울을 떠난 김 선생이 도착한 곳은 무봉리舞鳳里라 불리는 지역이었다. 충남 예산군 신양면에 위치한 무봉리는 '봉황이 춤을 춘다'는 이름처럼 얕은 산들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는 구릉지대다. 김 선생 부부는 무봉리 다섯 마을 중 가장 안쪽에 있는 '안골'에 터를 잡았다.

어지럽게 흩어진 봉우리들은 험준하지 않았지만 아주 완만하지도 않았다. 마을과 마을의 경계를 형성하고, 도시와 시골을 가르기에 충분했다. 마을에는 그 흔한 구멍가게 하나 없었다. 평생 서울에서만 살았던 김 선생은, 안골에서의 첫날 밤을 회상하며 "그렇게 적막하고 어둑한 밤은 생전 처음이었다. 너무 조용해서 잠이 안 올 정도였다"고 말했다.

서울 숭실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고 있었던 그는 20년 전 남편과 함께 이 '깡시골'로 내려왔다. 교회를 개척하겠다는 남편을 따라….

"너, 제정신이니?"

김 선생이 사람들에게 가장 많이 들은 말이다. 고등학교 2학년,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신학대학교에 진학하겠다고 했을 때도, 신학과 4학년이던 23세에 지체장애 2급인 12살 많은 목사와 결혼하겠다고 했을 때도, 가족들은 반대했고 지인들은 우려했다.

멀쩡히 잘 다니던 학교를 관둘 때, 16가구밖에 살지 않는 안골에 교회를 개척하겠다고 했을 때도 주변에서는 한사코 말렸다. 거듭되는 반대와 만류를 물리치고 교회를 세운 지도 어느덧 20년이 흘렀다. 안골교회 김진희·서영수 목사 부부의 이야기다.

지난 4월 출간된 <산 너머 안골에는 누가 살길래>(북인더갭)에는 김진희 목사가 안골에서 보낸 시간이 꾹꾹 눌러 담겨 있다. 김 목사는 2001년 여름, 예산에 정착한 뒤 고등학교 제자들과 근황을 나누기 위해 온라인 커뮤니티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이 기록들을 오랜 시간 외장 하드에 묵혀 두었다가, 교회 창립 20주년을 맞아 책으로 엮게 된 것이다. 4월 26일, 안골교회 예배당에서 김진희 목사를 만나 지난날에 관한 소회와 앞으로의 다짐을 들었다. 추가 설명을 요하는 부분은 서면 인터뷰를 통해 보완했다.

"영어 사전에 보면 out of mind는 크레이지(미쳤다)의 동어적 표현이다. 사람들에게 나는 그저 미친 인생일 뿐이다. 그러나 영적 선각자들의 말에 귀를 기울여 보라. 진정한 영적 삶은 마음에서 벗어난 상태라는 것이다. (중략)

내면에서 일관된 목소리가 들리면 아무리 불가능해 보이더라도 때론 고통스럽고 때론 죽음을 각오해야 할지라도 주저하지 않고 선택해 왔다. 그 선택은 풍요로운 영적 삶과 깨달음을 향한 새로운 지평으로 항상 나를 이끌었다." (230쪽)


▲ <산 너머 안골에는 누가 살길래 - 서울 떠난 김 선생, 스무 해 시골 교회 사역 이야기> / 김진희 지음 / 북인더갭 펴냄 / 312쪽 / 1만 6500원


▲ 김진희 목사가 일기처럼 쓴 지난 20년 기록에는 별의별 기상천외한 사건이 나온다. 그는 그런 경험들에 그저 감사하다고 말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안정된 직장을 그만둔 이유

- 안골에 교회를 개척한 지 20년이 흘렀습니다. 강산도 두 번이나 변했을 그 긴 시간을 돌아보면 어떤 생각이 드나요?

"시간이 너무 빨리 지나간 것 같아요. 그저 하늘에 감사하다는 생각이 가장 커요."

- 지난 주일(4월 24일)은 부활절인 동시에 안골교회 창립 20주년이었죠. 감회가 새로웠을 것 같습니다.

"교인들과 부활의 기쁨을 나누며 지난 20년을 돌아보는 시간을 보냈어요. 코로나19만 아니었다면 더 많은 분과 함께했을 텐데 그러지 못한 게 아쉬워요."

김 목사는 나중에 보내 준 설교문에서 이렇게 썼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늘 도전을 해야 했는데 그것이 안골에서 보내는 삶을 매우 역동적이고 활기차게 만들었습니다. (중략) 고통스러운 순간이 많았지만 그럴 때마다 한 발자국 물러나 큰 그림을 바라보곤 했습니다. '지금 이 순간은 하나님이 그리신 큰 그림 중 어느 조각일까.' 그런 생각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20여 년 전, 교직 생활을 그만둔 것도 하나님 뜻을 이루기 위해 뛰어든 도전이었다. 그때의 결심이 역동적이고 활기찬 지금을 낳았다고 고백하지만, 막연했던 결심이 확고해지기까지는 연단의 과정을 겪어야 했다.





사진3: 예배당 안팎에서 이런 글귀를 쉽게 볼 수 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남편 서영수 목사는 26세에 뇌출혈로 쓰러진 후 몸의 절반을 쓰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나 시골 목회를 향한 뜻은 결혼 후에도 변함이 없었다. 현실을 생각하면 김 목사라도 안정된 직장에서 돈을 벌어야 했을 것 같은데, 모든 것을 내려놓고 떠났다니.

- 교회 개척이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어떻게 그런 결심을 하게 됐나요?

"책에도 썼지만, 생계를 걱정하며 고민하던 제게 어느 목사님이 해 주신 말씀을 듣고 바로 사표를 냈어요. 하지만 학교 사정으로 6개월을 더 출근해야 했죠. 그 기간 날마다 제 자신에게 물었어요. 지금 내게 가장 절박한 것이 무엇인지를요."

김 목사는 지금 자신이 가장 집중해야 할 대상이 무엇인지 기억나게 해 준 일화를 들려줬다.

"출근하면 남편이 아이를 돌봤어요. 어느 날, 초등학교에 갓 입학한 아이가 등교하기 전에 아빠에게 머리를 묶어 달라고 했어요. 남편은 몸이 불편하니까 한 손으로 머리를 제대로 묶어 주지 못했죠. 아이는 계속 떼를 쓰고, 결국 둘이 껴안고 엉엉 울다가 학교를 안 간 날이 많았대요. 전화로 학교에서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터져 나오는 눈물을 참느라 입술이 피가 나도록 깨문 기억이 나요.

그래도 먹고살아야 한다며 제 자신을 독하게 다스렸어요. 어린 딸에게도 '세상이 만만한 줄 아느냐'며 엄하게 대했고요. 생존이 중요했던 시기였지만 속으로는 무언가 잘못됐다는 생각을 떨쳐 버릴 수 없었어요."

남편을 따라 시골로 내려가야겠다고 결심했지만 학교의 만류로 6개월을 더 버텨야 했다. 공교롭게도 그 시기에 김 목사가 학교에서 가르친 주제가 '가정'과 '사회'였다. 김 목사는 "바쁜 학교 일 때문에 몸이 불편한 남편을 방치하고 딸에게도 혹독했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라, 내 가정 하나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면서 다른 아이들을 가르친다는 게 부끄러워졌다"고 말했다. 아이들을 가르칠 자격이 없다는 자책과 회의감이 밀려올 때가 많았다면서.

"그런 상황에서 마태복음 6장 33절 말씀이 마음속에 깊이 박혔어요.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원래 성격상 한번 마음을 정하면 그대로 밀고 나가요. '그래,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한번 이 말씀을 제대로 믿어 보자'고 결단했죠."

쥐와 벌레들과의 20년 동거

2001년 8월, 무봉리 안골마을에 도착하니 있어야 할 사택이 보이지 않았다. 한여름 장마가 지나간 자리를 2m 높이 풀들이 점령해, 오랫동안 방치된 폐가를 집어삼켰기 때문이다. 김진희 목사는 쑥대밭을 헤치며 겨우 찾은 문을 당기니, 수년 묵은 곰팡내가 한가득 풍겨 왔다고 회상했다.

- 본래 서울 태생이시잖아요. 시골에서 지내는 삶에 적응하기가 어려웠을 것 같아요.

"결혼하고 나서 하루도 제대로 쉰 적이 없었어요. 시골에 내려가면 그래도 잠은 푹 잘 수 있겠다는 생각에 조금 들뜨기도 했죠. 그런데 가 보니까 수도와 전기는 모두 끊겨 있고 벽과 천장에는 곰팡이가 가득하더라고요. 기가 막혔죠. 그래도 이미 닥친 현실에 별다른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그냥 하나둘씩 수리하다 보니 일주일이 금세 지나가더라고요."

김 목사는 무덤덤하게 이야기했지만, 책에는 별의별 사건이 다 등장한다. 안골에서의 첫 출발을 기념해 데려온 백구 '예원이'가 앙고라토끼 '예솔이'를 덮치고 나중에는 옆집 닭까지 물어 죽인 일, 아침에 닭장 문을 열어 보니 암탉이 밤새도록 쥐에게 엉덩이를 파먹혀 죽은 채 발견된 일(놀러 온 남편 동료 목사가 묻어 줬다), 창고와 부엌은 물론이고 급기야 딸의 침대에까지 시간과 장소를 불문하고 나타나는 쥐와 벌레들…. 김 목사는 "지난 20년은 쥐와 함께한 시간이기도 하다"고 말했다.

"쥐 때문에 처음으로 안골에 살기 싫다는 생각을 했다. 날마다 부엌에 들어가는 게 공포스러웠다. 곳곳에 쥐 끈끈이가 펼쳐져 있고 언제 나타날지 모를 쥐 때문에 전전긍긍해야 했으니까. (중략)

여름이 되면 엄청난 곤충들을 만난다. 이불 속으로 커다란 거미나 지네같이 생긴 돈벌레가 다니는 것은 일상이고 방방마다 펄쩍이는 개구리, 풍뎅이, 나방에다 파리와 모기는 기본이다." (73~74쪽)

김 목사는 2개월 전에도 팔뚝만 한 쥐를 잡았다며 손을 들어 보였다. 끈끈이에 잡힌 쥐가 살기 위해 내지르는 괴성은, 아무리 들어도 소름 끼치고 적응이 안 된다고 했다. 마을 주민들은 낡은 사택을 허물고 다시 지어야 한다고 지적하지만, 미자립 교회 입장에서 신축은 언감생심이다. 16년 전, 서울 아현중앙교회 지원으로 예배당을 건축한 것만 해도 감사한 일이라고 김 목사는 말했다.


▲ 황토로 지은 안골교회 예배당. 뉴스앤조이 박요셉

- 지인들은 반년도 못 버티고 귀경할 거라고 했다죠. 20년이 지났습니다. 쥐와 벌레들과의 동거 생활을 어떻게 버티셨나요?

"이삿짐을 풀고 다음 날 새소리에 잠이 깼어요. 신기하더라고요. 밤이 되면 또 어떻게요. 거실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면 별이 쏟아질 것처럼 떠 있더라고요.

적막한 밤을 비추는 달은 얼마나 환한지, 풀잎마다 맺힌 아침 이슬은 어찌나 영롱한지, 산과 들이 사계절을 보내며 어떻게 변화하는지, 매 순간 자연이 주는 경이로움에 놀라며 감탄했어요. 한 달 살아 보니 이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 이곳에서 평생 살 수 있겠다.'"

낮에는 기상천외하고 엽기적인 사건을 겪어도 밤과 새벽이 되면 언제 또 그랬는지 고요한 시간이 찾아왔다. 도시는 각종 볼거리와 놀거리, 사람들로 넘쳤지만, 그 속에서 김진희 목사는 늘 외로웠다고 했다.

시골에서는 혼자였지만, 혼자가 아니었다. 상점 하나 없고 아는 사람도 없는 이곳에는 모든 것이 존재했다. 산과 나무, 바람과 공기, 달과 별과 함께하면서 하나님이 허락하신 고독과 평안을 배웠다고 그는 말했다.

"자연은 과연 하나님의 창조의 영이 가득한 곳이었어요. 그 시공은 그 누구도 판단하거나 비교하거나 정죄하지 않은 채 모든 존재를 있는 그대로 받아 주는 치유의 장이었죠. 도시에서 지치고 상처받은 제 영육은 날로달로 회복되고 건강해지기 시작했어요."

"아침 해는 그저 자신의 빛을 발했을 뿐인데 하늘은 온통 그라데이션 효과를 내며 인간은 감히 흉내낼 수 없는 채색으로 우리의 마음을 온통 설레게 한다. 단순해지고 허허로워진 겨울 들판은 하늘을 돋보이게 하는 데 한몫 거든다. 도시처럼 하늘을 미쳐 보기도 전에 우리의 눈을 유혹하는 보암직하고 먹음직한 것들이 여기엔 없다. 그래서 우리는 하늘을 온 마음으로 볼 수 있다." (119쪽)

교회 개척은 인사에서부터 시작

- 가끔 지방에 교회를 개척했다가 주민들 텃세나 반대에 부딪혀 어려움을 겪는다는 이야기를 듣습니다. 혹시 유사한 경험은 없었나요?

"크게 반대하거나 그러진 않았어요. 땅 주인이 마을 출신 목사님이었거든요. 또 다른 목사님이 이곳에서 농사를 짓다가 그만두기도 했던 터라, 주민들에게도 무작정 낯설거나 특별히 반대할 이유는 없었던 것 같아요. 오히려 젊은 부부가 앞으로 어떻게 먹고살려고 '깡시골'에 왔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말씀을 많이들 하셨죠. 걱정을 많이 하셨던 것 같아요."

- 어떻게 주민들과 친분을 쌓으셨나요?

"그때 세운 원칙 중 하나가 '인사'였어요. 항상 웃으며 열심히 인사를 했어요. 그리고 좀 더 적극적으로 교회 앞마당과 텃밭을 가꿨어요. 모르는 게 있으면 어르신들을 쫓아다니며 여쭤보기도 했고 틈나는 대로 농사일도 조금씩 도와드리면서요. 시골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이니까, 마을 어르신들도 시간이 지나면서 예쁘게 봐 주신 것 같아요."

주민들은 마을에 젊은 사람들이 왔다면서 목사 부부를 잘 챙겨 줬다고 했다. 지나가는 길에 "요리할 줄 아냐"며 커다란 호박을 건네고, 직접 기른 농산물을 나눠 주기도 했다.

당시 안골교회는 이제 막 시작한 작은 교회였지만, 무봉리 주민을 비롯해 예산 지역사회 전체를 돕기 위해 노력했다. 피아노 연주를 한번도 들어 보지 못한 이들을 위해 작은 음악회를 열고, 이를 계기로 예술과 문화로부터 소외된 시골 분교 아이들을 위한 공연을 마련했다. 문맹으로 고통받고 있는 어르신을 위해 마을 학교를 열고, 여름마다 도시 교회 청년들을 초대해 농촌 봉사 활동을 했다. 책 부록에 실린 '안골교회가 걸어온 길'을 보면, 미자립 교회가 어떻게 이 많은 행사를 기획할 수 있었을지 신기할 정도다.


▲ 안골교회 예배당. 원래 교인들이 둘러앉아 서로 마주보며 예배를 드렸는데, 코로나19 때문에 구조를 바꿨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 조그만 행사라도 돈과 사람이 필요하기 마련인데요. 어떻게 두 분밖에 안 계시는 미자립 교회에서 이렇게 많은 활동을 매년 지속할 수 있었나요?

"이곳에는 교육이나 문화로부터 소외된 이들이 많아요. 그들의 절실한 모습을 보면서 그때마다 돕고 싶은 마음이 들었어요. 하늘이 주신 마음이라 믿어요. 여기 와서 깨달은 건, 뜻을 세우면 하나님께서 어떻게든 채워 주신다는 겁니다. 이 뜻에 공감하는 여러 지인들이 기꺼이 동참해 준 덕분에 초창기 몇 년 동안 아이들과 장애인들을 위한 음악회를 개최할 수 있었어요. 매년 여름에는 숭실고등학교 제자들을 비롯해 도시 교회 청년들이 마을을 도왔고요. 이것도 안골교회 사역에 관심 있던 지인 목사님들께서 협력해 주신 덕분입니다."

- 개인적으로 마을 어르신을 대상으로 진행한 한글 교실 이야기가 무척 인상 깊었어요.

"마을에 정착하고 2~3년 정도 되니 아주머니들과 친분이 쌓였어요. 이분들의 90%가 문맹이라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죠. 모두 그런 건 아니지만 아주 시골에서는 딸들을 학교에 잘 안 보냈대요. 아주머니들께서 한글을 배우지 못한 한을 토로하시는 걸 들으면서 마음이 많이 아팠어요. 선교에 큰 걸림돌이기에 이 문제를 어떻게든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했죠.

어느 날, 몇 달 정도 한글을 배운 아주머니 집에 모터가 고장났어요. 명함에는 '모타'라고 적혀 있었는데 그분이 '모'와 '타'라는 글자를 기억해서 용케 명함을 찾아냈고, 신이 나서 그 이야기를 자랑하신 적이 있어요. 당신이 한글을 읽고 무언가를 해냈다는 자신감에 충일한 모습을 보니 참으로 기쁘고 감격스러웠습니다."

늦깎이 어르신들의 학구열은 매우 뜨거웠다. 처음 한 달은 매일 5시간씩(오전/오후 각각 2시간 30분) 공휴일도 주말도 없이 공부했다. 명절에 어쩔 수 없이 쉬게 되면 보충수업까지 요구했다. 후에 이들은 안골교회 초대 교인들이 되었다. 김진희 목사는 '좋으신 하나님'이라는 짧은 찬양을 가르치는 데 6개월 걸렸다며, 어르신들이 3절까지 외워서 부르실 때 어찌나 큰 목소리로 찬양하시는지 반주 내내 눈물을 흘렸다고 말했다.

"그들은 새벽 4시부터 일어나서 한글을 공부한다. 매일 보는 단어 시험에 거의 100점을 맞는다. 처음에는 단어 시험 본다니까 청심환을 먹어야 할 정도로 긴장하시던 분들이 이제는 시험을 보지 않으면 사는 재미가 없을 정도가 되었다.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눈에 보이면서 한글 공부에 가속도가 붙는다.

- 글씨, 신문에 나오는 단어를 읽겠드라니까.

- 거, 머시기, 텔레비죤에 나오는 자막 있잖여. 이젠 제법 보이더라구.

- 한약방 갔는데 그기 써 놓은 약 이름이 눈에 보이는 기 어찌나 신기하든지.

- 나는 한글 다 배우면 부녀회장 할 거여. 마을을 싹 바꿔 놔야지.

- 난 운전면허 딸 겨. 될라나?

- 난 성경만 줄줄 읽을 정도만 되면 좋것써.

- 예끼, 그러면 한글 공부 끝이지." (94~95쪽)

사진6: 매년 여름, 도시에 있는 여러 교회 청년 100여 명이 봉사 활동을 하러 안골을 찾아온다. 사진 제공 김진희

신학과 졸업 후 수십 년 만에 받은 안수

김진희 목사는 올해 4월 22일 목사 안수를 받았다. 2018년 7월, 안골교회 초대 목사인 남편 서영수 목사가 두 번째 뇌출혈로 쓰러진 후, 김 목사가 뒤를 이어 담임전도사가 됐다. 서 목사는 사망 확률 90%를 극복하고 살아났지만, 청각을 잃고 침대에 종일 누워 있어야 하는 중증 와상 환자가 됐다. 서 목사는 이듬해 4월 공상 은퇴했다. 하지만 이름 뒤에 붙는 직함만 달라졌을 뿐, 두 사람은 과거에도 그랬듯 지금도 함께 안골교회를 섬기고 있다.

- 서 목사님 건강은 좀 어떠신가요?

"아직 걷지는 못하시지만 조금씩 나아지고 계세요. 본인 의지가 강하시고 회복하고자 하는 열정이 대단하신 분입니다. 누워 계시는 시간이 많지만 제가 늘 배우고 모든 것을 함께 의논합니다."

- 거동이 어려운 서 목사님을 간호하고 교회 사역까지 병행하면서 목사 안수를 준비하는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목사님이 쓰러진 뒤 중환자실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담임전도사로 파송받았어요.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목사 과정 진급을 준비해야 했죠. 3년 동안 매년 과정 고시와 논문·리포트 등 해야 할 게 참 많더라고요. 초기 논문 심사 때는 환자를 돌보느라 잠도 제대로 못 자고 하루에 병원 2~3곳을 다녀야 하는 상황이라 논문을 쓸 여력도 거의 없었고요. 이런 제 상황을 알지 못하는 심사위원들에게 형편없다는 평가를 받았는데, 그 자리에서 눈물을 쏟기도 했습니다. 너무 힘들어서 포기하고 싶을 때가 정말 많았어요. 그래도 제 어려운 사정을 이해하고 도와주신 분들이 계셔서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그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지난주 기독교대한감리회 충청연회에서 목사 안수식이 있었죠. 여러 감정이 복받쳐 올라왔을 것 같습니다.

"힘들게 과정 고시를 준비할 때는 목사 안수를 받으면 대성통곡할 것 같다는 생각을 했었어요. 그런데 막상 모든 과정이 끝나고 나니 의외로 덤덤해지더라구요. 지나간 것을 되새김질하며 눈물 흘리지 않으리라 마음먹은 터라, 유쾌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자리에 임했습니다. 기억력이 나쁜 탓에 고통스러운 일은 더 빨리 잊는 것 같기도 하고요.(웃음)"

"한 발짝 물러서서 내 삶을 관찰하면 길이 보이고, 그분의 섭리가 보인다. 과거와 현재, 미래가 지금이라는 영원 속에서 나선형으로 공존하는 그 안에는 사람과 사랑이 존재한다. 남편은 내게 특수인 동시에 보편적 인류였다. 한 사람을 온전히 이해하는 것은 과연 우주를 이해하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었다. 아픈 남편의 실존을 온전히 받아들이기 위해 밤잠 못 자며 눈물로 기도한 시간들만큼 나의 내면에는 원망이 아닌 긍휼만이 오롯이 채워졌다. 그것이 주님의 은총이다. 전보다 감사가 더 많아졌다. 아니, 감사로 가득하다." (307쪽)

- 앞으로 안골교회를 어떤 교회로 세우고 싶나요?

"안골교회가 지역사회의 영적 센터가 되는 거예요. 프로그램이나 행사 위주로 교회를 이끌고 싶지 않아요. 하나님 앞에서 더 침묵하고 기도하며 말씀 앞에 바로 서는 데 집중하려고 해요. 내 생각을 내려놓는 연습을 해야 하늘의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있으니까요.

앞으로 새로운 20년을 맞이하게 된 안골교회는 교회만이 할 수 있는 일에 집중하려고 해요. 수도원적 영성을 바탕으로 끊임없이 진리를 탐구하고, 침묵으로 기도하며, 노동의 가치를 소중하게 여기는, 영육의 균형을 잃지 않는 자리로 나아가려고 합니다."

- 비록 '목사'라는 타이틀은 최근에 부여받았지만, 목사님은 개척 초기부터 이미 '목회'를 해 오셨다는 생각이 듭니다. 목사님이 생각하시는 목회란 무엇인가요?

"남편은 '분주한 일상의 닻을 내리고 침묵을 통해 하나님의 현존을 마중하는 안골교회'라는 표현을 즐겨 썼어요. 바로 이 한 문장이 안골교회의 지향을 잘 드러낸다고 생각해요. 하나님의 임재를 교회뿐 아니라 우리가 숨 쉬는 모든 곳에서 경험해야 한다고 할 때, 교회는 진리가 선포되는 자리이자 영적 순례 여정에서 도반道伴이 되는 곳이에요. 나눔과 섬김, 배려와 사랑을 경험함으로써 하나님나라를 체험하는 곳이지요.

그러니 교회는 결코 수직적이거나 권위적이어서는 안 되고, 나이와 성별, 인종과 문화를 뛰어넘어 건강한 의사소통이 이뤄지는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안골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가 되는 그 길 위에 늘 함께할 겁니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2년 5월 16일, 월 2:36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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