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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 문화
 
밤 하늘에 떠 있는 나의 별
[홍범도 장군 실명소설: 저격 34]




(서울=오마이뉴스) 방현석(소설가)

9

신흥리에 있는 남창일의 집으로 갔다.

남창일은 평양에서 진남포군영으로 옮겨와 있었다. 서진태의 집과 귀가 시간을 알려준 것도 남창일이었다. 장가를 들어 아이까지 있는 녀석의 집에 가지 않으려고 했지만 피투성가 된 옷을 입고 객사로 갈 수는 없었다.

"총을 쓰지 말았어야지."

남창일이 총상을 입은 내 어깨의 피를 닦아내고 모시로 묶으며 나무랐다. 다행히 뼈를 다친 건 아니었다. 나는 육혈포를 꺼내 남창일에게 보여주었다.

"백무아 거야. 계산은 얘가 하게 해야지."
"이럴 줄 알았으면 내가 쌍검으로 처리해버리는 건데..."
"좀 늘었어?"
"이젠 무현형이 살아서 돌아와도 날 못 이기지."

남창일은 두 팔을 펼쳐 들고 현란하게 휘저었다. 검을 들지 않은 빈손이었지만 완전히 빈말이 아닌 건 분명했다. 녀석의 자랑은 그의 부인이 들어올 때까지 계속됐다.

"이거 좀 드셔보세요."
그의 부인이 팥죽 한 대접과 백김치 보시기가 담긴 반상을 내려놓았다.

"저, 이거 때문에 오늘 죽을 뻔했는데."
"팥죽을 먼저 먹고 갔으면 이 꼴 안 당했지."
남창일이 내 어깨를 가리키며 팥죽을 먹으라고 윽박질렀다. 나는 반상 앞에 다가앉아 팥죽을 떠먹었다. 질지도 되지도 않게 맛이 아주 홀홀했다.

"왼손잡이신가 봐요."
팥죽에 든 새알심을 후후 불어 입에 넣는 나를 보고 남창일의 부인이 그에게 속삭이듯 물었다.

"얘는 본래 좌우가 없어. 좌우만 없는 게 아니고 위아래도 없지. 이 형님한테 말을 탁탁 놓는 거 봐."

남창일은 내가 오른손과 왼손을 다 쓰는 걸 위아래를 가리지 않는 것으로 몰아갔다. 내가 나이를 두 살 올리고 군영에 들어와서 자기와 동갑내기로 지낸 게 녀석은 못내 억울하단 투였다.

"그래. 상하를 모르고 좌우가 없어서, 살았다."

나는 숟가락을 쥔 왼손으로 방아쇠를 당기는 시늉을 했다. 왼손이 한 번은 네 목숨을 살려줄 거야. 신포수의 말이 비로소 떠올랐다. 신포수가 내게 왼손으로 저격하는 훈련을 시키지 않았다면 나는 오늘 살아서 억양기리를 빠져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상대가 짐승이든 사람이든 한순간도 손과 발에서 눈을 떼지 말라던 그의 말을 지켰더라면 애초에 육혈포를 놓치지도 않았을 거였다. 사정거리 안에 상대가 들어온 줄 모르면 포수가 아니야. 그의 말을 떠올린 바로 그 순간 귓전을 파고드는 소리가 있었다.

"팥죽 먹다 말고 웬 기도냐?"
나는 손바닥을 들어 남창일의 말을 막았다. 틀림없는 말발굽 소리였다.

"안 들려?"
남창일은 눈만 껌뻑거렸다. 아직도 녀석은 듣지 못한 모양이었다.

"이 시각에 말에 채찍질을 하는 자가 있어?"
남창일의 집은 진남포였지만 신흥리 변두리였다. 말을 달려서 지나갈 길도, 시각도 아니었다. 나는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남창일도 그제야 말발굽 소리를 들었는지 얼굴이 굳었다. 남창일의 부인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어느새 말발굽 소리는 집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군마가 아니고는 낼 수 없는 속도였다. 남창일의 집 작은 방에는 뒷문도 옆문도 없었다. 앞문을 열고 나가려는 내 팔을 남창일이 잡았다. 말발굽 소리는 어느새 사립문 앞에 다다랐다.

나는 왼손으로 허리춤에서 육혈포를 뽑아 들고 벽에 붙어섰다. 잠시 망설이던 남창일이 어쩔 줄 모르는 아내에게 빨리 이부자리를 깔라고 시켰다. 그의 아내가 이부자리를 깔자 그는 내게 이부자리 속으로 들어가라고 시키고는 자신의 웃옷을 벗어젖혔다.

"이리 오너라!"
사립문 앞에서 괄괄한 호령이 들렸다. 남창일이 벗었던 웃옷을 한쪽팔에 걸치는 시늉을 하며 방문을 열고 나갔다.

"포도청에서 어인 일이오?"
짐작한 대로 포도청의 군마였다.

"수상한 자가 이리로 오지 않았소?"
"군영에서 칼을 쓰는 자의 집에 오긴 어떤 놈이 오겠소"
"지나는 자는 보지 못했소?"
"허헛 참, 오랜만에 일찍 들어와서 밤농사를 좀 지어보려고 누웠는데 뭘 어떻게 보겠소."
능청을 떠는 것이 예전의 남창일이 아니었다.

"동짓날 긴 밤에... 좋겠수다. 그래도 지금 진남포가 발칵 뒤집혔으니까, 어서 짓던 농사 마저 짓고 군영으로 나가보는 게 좋을 거요."
"무슨 변고가 생겼소?"
"형방 나리가 급살을 당했소."
"아니, 포도청의 형방나리가 말이오?"
"그렇소. 포도청은 물론이고 군영도 비상이 떨어졌으니 빨리 나가보시오."

벗었던 저고리 고름을 매며 방안으로 들어온 남창일의 얼굴이 어두웠다.

"갈게."
가겠다는 나를 남창일이 막아섰다.

"못 들었어? 진남포가 발칵 뒤집혔다잖아. 여기가 제일 안전해. 내가 군영에 나가면서 사정을 살펴보고 올 테니 넌 꼼짝 말고 여기 있어. 저거나 마저 먹고."
남창일은 반상에 남은 팥죽을 가리켰다.

"그놈이 놀라서 그 객사에서 도망치진 않았겠지?"
"지금 그놈이 문제야?"
"응, 그놈만 문제야."
군영에 나갔던 남창일이 돌아온 건 새벽녘이었다. 선잠이 들었던 나는 남창일 부부가 문밖에서 소곤거리는 소리에 눈을 떴다. 나는 문을 열고 물었다.

"그놈은?"
"그놈이 문제가 아냐."
"아니면?"
"네가 문제야. 포졸과 군졸들이 진남포를 샅샅이 뒤지고 있어. 일단 피해야 해."
"난 피하려고 진남포에 오지 않았어."
남창일이 나를 방안으로 밀어 넣으며 따라들어왔다.

"어떻게 하려고?"
"그놈이 언제 객사에서 나오는지만 알려줘. 그 다음은 내가 알아서 해."
"오늘 밤 포구에서 열리는 청국놈들 불꽃놀이에 왜놈과 코쟁이들도 다 모이니까, 그놈도 거기 갈 거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거기에 가려고? 코쟁이들만큼 큰 키는 어디다 숨겨두고 가려고?"
자기보다 두 뼘이나 위에 붙은 내 머리를 올려다보면 녀석이 눈살을 찌푸렸다.

"코쟁이도 순검해?"
"안 하지."
남창일이 덧붙였다.

"말이 통해야 하지."
"코쟁이 옷 구할 수 있어?"
"구해서 뭣하게?"
"있어, 없어?"
"구할 수야 있지."

달음이가 야소교도가 되었고, 달음이의 여동생도 야소교도가 되어 진남포의 야소교도가 경영하는 옷집에서 일한다고 했다. 두 사람에게 전도한 장본인이 백무아였다.

"진남포의 서양 옷은 다 그 옷집에서 취급해. 백무아 일로 가장 많이 운 애가 말끔이야."
달음이의 여동생 이름이 말금이었다. 얼굴과 하는 짓이 말끔하다고 붙여진 이름이었다.

"넌 야소교 안 믿어?"
"우리 부모가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고 동학이 있는데, 왜 내가 남의 아버지를 떠받드는 서학을 믿어."

한양에서 개화당의 주장에 눈을 반짝이던 남창일의 모습이 떠올랐다. 반상, 양반과 상놈의 차별이 없는 세상을 만든다는 개화당에 귀가 솔깃했던 녀석은 어느새 백성이 하늘이 된다는 동학당이 되어있었다.

내가 총령에서 숨어지내며 밤낮으로 종이를 뜨고, 야소교의 교리서와 동학의 서책을 만드는 동안 서학과 동학은 이미 들불처럼 세상에 번지고 있었다. 진남포에서는 세 집 건너 한 집이 야소교를 믿고, 두 집 건너 한 집이 동학에 들었다는 풍문이 터무니없는 헛소문이 아니었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불어 내려가는 서학과 남쪽에서 북쪽으로 불어 올라오는 동학이 맞닥뜨려 회오리바람이 이는 진남포에는 한양에서 튄 개화당의 불티까지 옮겨 붙은 형국이었다.

장사꾼들은 장사꾼들대로 평양의 유상과 황해도의 송상, 의주의 만상이 진남포의 주도권을 놓고 격돌했다. 청국과 왜국의 상단이 진남포의 객점에 물산을 쌓아두고 객사에 진을 친 지는 이미 오래였다. 금광과 은광에 눈독을 들이는 코쟁이들도 조선의 이권 쟁탈전에서 빠지지 않았다.

"넌 서학이야 동학이야?"
남창일의 물음에 겹쳐지는 목소리가 귀를 파고들었다. 날 믿잖아. 난 고개를 저으며 귓전에 맴도는 백무아의 목소리를 털어냈다. 나는 믿는 사람이 있지. 하마터면 난 그렇게 대답할 뻔했다. 믿어야 할 그 사람은 이제 파란 눈의 남자를 따라 떠나버렸다. 난 허리춤의 육혈포를 꺼내 보였다.

"난 이걸 믿어."

진남포항은 동짓날 등불로 휘황했다. 동짓날을 설날만큼 성대하게 치르는 청국놈들은 악귀를 쫓는 폭죽놀이를 조선땅에 와서도 거창하게 벌였다. 청국의 상단과 군사고문은 대국의 위세를 자랑하려고 평양과 진남포에 사는 외국인들을 초대했다. 한껏 차려입은 왜놈들과 코쟁이들도 드문 볼거리를 놓치지 않으려고 포구에 몰려들었다. 그들에게 진남포 형방 따위 하나의 죽음은 안중에 없었다.

단상에서 인사를 나누는 유상의 도접장과 만상의 도접장, 송상의 대접장도 진남포 형방 따위의 죽음은 개의치 않는 표정이었다. 그들 셋은 한양 이북의 상권을 장악한 보부상단의 우두머리들이었다. 유상은 평양과 진남포의 상권을 틀어쥐고 있었고, 만상은 의주의 국경무역을 독점했다. 송상은 황해도 상권을 기반으로 동래의 왜관과도 거래하는 거대 상단이었다. 유상의 도접장은 청국상단의 우두머리를 가운데 두고 평안감사와 나란히 양쪽으로 앉았다. 의주에서 온 만상의 대접주는 왼쪽 끝에, 황해도 송상의 대접주는 오른쪽 끝에 앉았다.

왜놈 무장상단의 두목 다케이치 신지로는 왜놈 군사고문의 오른쪽에 앉았다. 이미 머릿속에 새긴 얼굴이었지만, 그래도 다시 한 번 백무아가 그린 '스겟찌'를 꺼내 확인했다. 나는 새삼 놀랐다. 콧구멍이 들리고 양쪽 눈가가 찢어진 놈의 얼굴과 '스겟찌'는 찍어낸 것처럼 같았다.

양복을 입은 나는 청국 사진사의 뒤에 자리를 잡았다. 육혈포는 사정거리가 너무 짧아서 군중들 맨 뒤에서 저격하는 것이 불가능했다. 단상에 앉은 청국놈과 왜국놈, 미국놈, 화란놈, 불란서놈들이 차례로 나와서 몇 마디씩 떠들고 나서 불이 꺼지기 시작했다.

포구에 내걸린 등불이 차례로 꺼졌고, 화톳불도 꺼졌다. 포구는 온통 어둠에 잠겼다.

팡.

요란한 폭음과 함께 첫 번째 폭죽놀이가 시작되었다. 폭죽이 하늘을 밝히며 치솟았다. 온갖 나라의 말이 뒤섞인 환호성이 터져 나왔다. 단상에서 일어선 다케이치 신지로도 만면에 웃음을 지으며 박수를 쳤다. 나는 서양신사 모자를 고쳐 쓰고, 왼손으로 육혈포를 뽑아들었다.

팡.

두 번째 폭죽이 터지는 것과 동시에 나는 첫 번째 방아쇠를 잡아당겼다. 탕. 사람들은 치솟는 폭죽을 바라보며 다시 환호성을 질렀을 뿐 아무도 총소리를 가려듣지 못했다. 오직 한 사람만이 환호성을 지르지 않았다. 다케이치 신지로는 인상을 쓰며 낭심을 움켜쥐었다. 명중이었다.

사람들의 환호성이 잦아들기 전에 세 번째 폭죽이 치솟았다.

팡.

이번에는 놈의 반대쪽 낭심을 조준했다. 두 번째 방아쇠를 당겼다. 탕. 사람들의 환호성 속에서 다케이치 신지로가 무릎을 꿇으며 주저앉았다. 낭심을 부여잡고 있던 손이 풀렸다. 명중이었다. 허리 높이의 단 위에서 사진을 찍던 사진사가 뒤집어썼던 보자기를 들추고 얼굴을 내밀며 돌아보았다. 그 순간 폭죽의 불꽃이 잦아들었다. 사방 어둠으로 덮였다. 나는 육혈포를 허리춤에 찌르고 돌아섰다. 뜨거워진 총열이 아랫배를 뜨듯하게 데웠다.

팡.

등 뒤에서 네 번째 폭죽 터지는 소리가 들렸고, 하늘이 환해졌다. 모두 솟아오른 폭죽을 올려다보며 환호성을 질렀다. 나는 서양신사 모자를 깊숙이 눌러쓰고, 천천히 박수를 치며 포구를 빠져나왔다. 슬픈 축제의 밤이었다.

나는 머리 위에서 터지는 폭죽 너머로 멀고 먼 밤하늘에 떠 있는 나의 별을 쳐다봤다. 보고 있나, 백무아.

(*덧붙이는 글 방현석은 소설가다. 소설집 <사파에서>, <세월>, <내일을 여는 집>, <랍스터를 먹는 시간>, <새벽 출정>과, 장편소설 <그들이 내 이름을 부를 때>, <십 년간>, <당신의 왼편>이 있다. 산문집 <아름다운 저항>, <하노이에 별이 뜨다> 와, 창작방법론 <이야기를 완성하는 서사패턴 959> 등을 썼다. 신동엽문학상(1991), 오영수문학상(2003), 황순원문학상(2003) 등을 받았다. 현재 중앙대 문예창작학과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2년 5월 10일, 화 8:20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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