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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 종교
 
나의 창과 방패가 되어 준 자매들의 이야기
[탐독의 시간] 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 2030 연구원 모임 <부름받아 나선 이년>

(서울=뉴스앤조이) 김태인 = 보수적이기로 소문난 대한예수교장로회 합동(예장합동) 산하 신학교 출신 여성 사역자이자, 목사의 아내, 아들을 키우는 엄마. 그래서 <부름받아 나선 이년>(뉴스앤조이)에 수록된 기독교대한감리회(감리회) 출신 여성 사역자들의 이야기에 어떤 기대를 품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기대의 반은 맞아떨어졌고 반은 엇나갔다.

기대와 맞아떨어진 점은, 아무래도 여성 안수가 허용된 교단이라서 그런지 다양한 여성들의 이야기가 모여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신학교에 입학했을 때, 100여 명이 넘는 신학과 신입생 중 여학우는 고작 13명이 다였다. 지금까지 사역하고 있는 사람은 두세 명이나 될까. 일단 수가 적다 보니 경험을 나누는 일조차 한계가 있었다. 교회 현장에서 사역자로 만난 적은 수의 여성들도 둘 중 하나였다. 남성들의 성차별적 생각을 두둔하고 오히려 그 담론을 견고히 해 나가는 부류거나, 저항하며 목소리를 내다가 결국 교회를 떠나거나. 이 책을 통해 교회 현장에 있는 2030 여성 연구원들의 목소리를 비교적 많이 들을 수 있어 기쁘고 반가웠다.

기대와 다르게 엇나가 버린 점은, 다소 진보적이라고 평가받는 교단에서의 여성 경험이, 여성 안수조차 주지 않는 교단에 있던 나의 경험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우스운 이야기지만 내가 다니던 신학교에서는 "다른 교단 신학교는 과하게 진보적이고 자유주의도 선을 넘었다"는 얘기가 공공연하게 나돌았는데, 그렇게 진보연하는 곳에서도 결국 남성들이 모든 것을 휘어잡고 성차별을 일삼는 게 현실이라니. 약속이라도 한 듯 똑같은 모습이 우스웠다.


▲<부름받아 나선 이년 - 성차별적·가부장적 교회에 균열을 내는 2030 여성들> / 감리교여성지도력개발원 2030 연구원 모임 지음 / 뉴스앤조이 펴냄 / 228쪽 / 1만 4000원

"여성 목회자를 같은 목회자가 아닌 여성으로만 대상화하는 경험을 지겹도록 한다." (195쪽)

내가 사역자를 꿈꾸게 된 이유는 여타 사역자들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사람에 대한 열심을 다하며 살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신학교에서나 교회 현장에서나 동역자가 아닌 '여성'이 되기를 강요받았다. 첫 유년부 사역지에서는 교육부서 디렉터 목사가 내 앞머리 유무, 옷 스타일, 구두 굽 높이까지 정해 줬다. 다른 남성 사역자들에겐 간여하지 않는 부분을 내게는 '사역자가 어린 티를 내면 안 된다'는 명목으로 자신의 취향에 맞게 강요했다. 초임자였던 나는 경력도 많고 인맥도 넓다고 자부하는 그 남성 목사의 눈 밖에 날까 노심초사하며 말도 안 되는 '취향 오더'를 따르곤 했다. 철저한 '남성들의 리그'에서 이제 막 사역을 시작한 젊은 여성, 가야 할 길이 멀었던 내게는 선택권이 없었다.

이후 사역지를 구하면서 대형 교회 중등부 준전임 사역자 자리의 면접을 보게 됐다. 남성 디렉터 목사가 여자 중학생이나 교사를 심방하기 불편하니, 이를 담당하며 함께 사역할 여성 사역자를 구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갑작스레 면접 자리에서 준전임이 아니라 파트타임으로 사역하기를 권유받았다. 나중에 이유를 들으니, 가정이 있는 남성 디렉터 목사와 결혼하지 않은 젊은 여성 전도사인 내가 함께 있는 게 좋지 않다며, 매일 출근하는 준전임보다 주말에만 나오는 파트 사역자로 있는 게 모양새가 더 나을 것 같다고 했단다. 백번 양보해 어떤 부분을 염려한 건지 이해한다손 치더라도, 남성을 기준으로 사고하며 여성에게 부당한 손해를 너무나 당당하게 요구하는 태도에 '결국 남성들의 리그구나'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었다. 결국 그곳에서의 사역은 무산됐고, 다른 교회에서 사역을 시작했지만 상황은 늘 비슷했다.

젊은 미혼 여성이라는 이유로 받는 사역의 제약 때문에라도 빨리 결혼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여성인 내가 남성과 결혼해 아이 낳고 사는 것이 일생의 사명이라도 되는 것처럼 떠들어 대던 교회가, 막상 결혼을 한다고 하니 이제 곧 나갈 사람 취급을 했다. 더 정확히 말하면, 전도사로서의 명이 다한 것처럼 대했다. 당시 교역자 회의 자리에서 담임목사가 한 남성 전도사에게 "언젠가 담임목사가 될테니 잘 배워 두라"고 하더니, 내게는 머쓱해하며 "태인 전도사는 어차피 나갈 사람이잖아. 담임목사 사모될 거 아냐?"라고 했던 걸 잊을 수가 없다.

그렇게 나는 목사와 결혼했고 '사모'로 불리게 됐다. 나는 사모라는 호칭과 역할이 불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현재 섬기는 교회 교인들에게는 '전도사'로 불러 달라고 이야기했다. 실제로 어린이 부서를 섬기고 있기도 하지만, 남편이 목사라는 사실의 부산물로 내 호칭이 주어지는 건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 사모라는 호칭은 성경 어디에도 나오지 않는 가부장제적 유산일 뿐이다. 이는 한 사람을 하나님께서 부르신 '개인'이 아닌 '목사의 아내'로 대하게 한다. 누군가는 단순한 호칭일 뿐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사람들이 모인 공동체에서 한 사람의 정체성을 부여하는 호칭은 큰 의미를 지닌다.

목사 아내는 교회에서 불편한 '시어머니' 취급을 당하지만, 실제로는 남의 집안에 들어온 '며느리'처럼 온갖 눈치를 보며 제 역할을 해내도록 강요받는다. 자식이 클 때까지 아낌없이 사랑을 주는 '엄마'의 역할을 기대받고 모든 살림을 도맡아야 하지만, 수고를 알아주는 이는 드물다. 목사 아내는 한마디로 '열심히 섬겨야 하지만 말은 적게 하고 나대지 말아야 하는 존재'다.

목사 아내가 된 여성들은 같은 목사 아내이자 전도사인 내게 소셜미디어 메시지를 통해 종종 연락해 오곤 한다. 그들의 남편 중 몇몇은 나와 남편의 신학대학교·신학대학원 동문이기도 하니, 그들이 외부에 내비치는 이미지를 아주 잘 알고 있다. 거룩하고 신실한, 사람 좋은 목사의 이미지 말이다. 하지만 아내들에게서 들려오는 이야기는 아주 다르다. 육아에 전혀 참여하지 않고 밤새 게임만 하거나, 유튜브에 빠져 교회 일을 등한시하면서 '목회하느라 힘들다'며 아내에게 모든 것을 던져 놓는다는 이야기, 심지어 교인과 부적절한 관계를 들키고도 '목회하는 나'와 '사생활의 나'를 철저히 나누면서 '내조'가 사모의 책임이자 사명이라고 말하는 이들. 내게 고충을 토로하는 목사 아내들의 메시지를 보면 한숨이 절로 나온다.

남성 스피커로 가득한 교회에서 나고 자란 교인들은 남성 목사의 권위를 하나님과 동일시하곤 한다. 담임목사를 '주의 사자', '주의종'이라고 부르는 일도 부지기수니까. 목사 아내들은 이런 이야기와 분위기 속에서 나고 자라 목사와 결혼까지 했다. 이들에게 목회자 남편을 향해 다른 해석을 내놓을 용기와 창의성이 얼마나 있을까. 하물며 매일 함께 눈을 뜨고 밥을 먹는 이에게 "배우자 조력 없이 목회할 수 없다면 때려치워야지"(136쪽)라는 말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하지만 이 책에 담긴 것처럼, 우리와 같은 교회 현장을 살아가고 있는 다양한 여성들이 쏟아 내는 이야기는 용기와 창의성을 불어넣어 준다. 교회 안팎에서 다양한 직분과 역할을 맡고 있는 여성들의 이야기가 계속해서 터져 나오면 좋겠다.

"작은 균열들이 열결되며 '쫙' 하고 갈라졌다. 갈라진 틈으로 그동안 하지 못했던 생각들이 올라왔다!" (100쪽)

한 필자의 말처럼, 나의 경험 역시 견고한 가부장제 교회에 대한 의문, 저항, 균열로 이어져 왔다. 돌아보면, 성차별적이고 가부장적인 교회에서 불편함을 토로하는 것만으로도 함께 신음하고 괴로워하시는 하나님을 경험할 수 있었고, 남성 목사들을 통해 들어 온 '저 너머의 하나님'을 '지금 나의 하나님'으로 마주할 수 있었다. 의문과 저항, 균열로 이어진 틈으로 이전에 알지 못했던 하나님이 불쑥, 얼굴을 내미신 것이다.

다양한 사례, 다채로운 목소리, 하지만 여성들이 경험한 차별의 패턴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닮아 있다. 나와 같은 경험을 한 이들이 모여 있다는 것만으로도 용기가 샘솟는 것 같았고, 책을 읽어 내려갈수록 자매들의 아픈 경험이 나의 창과 방패가 되는 것 같았다. '부름받아 나선 이년'들의 목소리는, 불편했지만 표현할 언어를 알지 못해 묻어 둔 것을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창을 쥐여 주었다. 또한 홀로 아파하지 않아도 된다고, 스스로 검열하거나 2차 피해를 곱씹지 않아도 된다고 다독여 주며 피할 방패가 돼 주었다. 성차별적이고 가부장적인 한국교회에서 이렇게 자리를 지키며 싸워 온 무모하고 단단한 이들이 있다고 생각하니 마음 한구석이 든든해졌다. 하나님이 여성을 성직으로 부르시며 교회의 가부장성과 싸우는 '전사'로 택하셨다는 말에서는 숨통이 트이는 기분을 느꼈다. 내게도 이런 전우들이 있다니!

김태인 / 사역과 육아, 프리랜서로 일하며 하루 25시간을 살아 내느라 정신 없지만, 늘 소외된 이들의 든든한 창과 방패가 되고 싶은 마음을 품고 있다. (본보 제휴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2년 5월 09일, 월 9:40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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