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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에세이] 기고
 
대법원 판사들, 사형을 선고하다
[김재규 평전 제31회] 10ㆍ26거사에서 207일, 2심선고 후 113일 만에 열린 상고심


▲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살해된 궁정동 총격사건과 관련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 그의 부하들이 군사법정에 섰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살해된 궁정동 총격사건과 관련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 그의 부하들이 군사법정에 섰다. ⓒ 보도사진연감

(서울=오마이뉴스) 김삼웅 기자

변호인단, 박정희 제거는 '국민저항권'

변호인단은 여러날 동안 합숙을 하면서 「상고이유서」를 작성하여 법원에 제출했으나, 당시 계엄령의 엄혹했던 상황이라 언론에서는 전혀 보도되지 않았다. 따라서 김재규의 재판은 밀폐되다시피한 공간에서 최소의 사람만이 지켜볼 수 있었을 뿐이다.

「상고이유서」의 특이점의 하나는 10ㆍ26 이후 '서울의 봄' 시기에 개헌론이 제기되고 헌법이론 중 새로 저항권이론이 등장한 것과 관련, 10ㆍ26거사를 국민저항권의 발로로 제시한 것이다.

맹자의 역성혁명론이나 플라톤의 폭군정벌론에서 보는 바와 같이 고대봉건군주정치 시절에도 국민의 자유와 재산을 침범하는 폭군은 반드시 절멸되어야 하고, 그 정벌은 도덕적 선(善)으로 평가받아 마땅하다고 하여왔고, 기원 12~13세기의 유명한 기독교 신학자인 존 솔스베리도 "참된 군왕은 신의 영상이므로 존경되고 추앙되고 또한 그에 복종하는 것이 의무이지만, 폭군은 이미 신으로부터 버림받은 사악의 영상이므로 일반적으로 피살되어야 한다. 그것은 폭정은 유독(有毒) 식물로 자라는 나무이기 때문에 잘라야 한다" 하여 폭군토벌의 신학적 정당성을 역설한 바 있으며, 근대 초기에 로크나 루소는 사회계약론의 이론에서 "누구나 간에 수임받은 범위를 넘어 법률에 의하지 아니하거나 법률을 악용하여 상대방의 권리를 침해하는 자는 폭력을 행사하는 것에 해당한다. 이러한 상태하에서는 그자와의 계약은 이미 해약되어 그 계약상 의무에서 해방되므로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을 방위하고 침략자에 저항할 권리를 갖는다. 이것은 너무나 명백한 사리이기 때문에 국왕의 권력과 신성성의 위대한 옹호자인 바클래까지도 그러한 경우는 국민이 군왕에 저항하는 것을 합법적이라고 인정 안 할 수 없다고 말하고 있다……" 하여 거듭 논의되고 일반적 인정을 받아, 드디어 저항권은 현대에 이르러 실정법으로까지 등장하게 된 것입니다.

<상고이유서>는 저항권사상의 근거로 미국독립선언과 버지니아 인권선언, 1789년 프랑스의 인권선언 등을 예시하고, 한국 헌법학자들이 제시한 저항권사상도 아울러 소개하였다. <상고이유서> 중 관련 부문이다.


▲ 최후진술하는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 자료사진

요컨대 오늘날 저항권은,
첫째로, 그 나라 헌법에 규정되어 있고 없음을 가림이 없이 당연한 권리고 인정되어야 한다. (이 점에 대한 참고로 1956년 8월 서독연방정부에 의한 공산당 해산 사건에 대한 독일연방공화국 헌법재판소 판결 이론 중 일부를 인용하면 "서독 헌법은 저항권의 조항을 두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와 같은 저항권이 이 헌법질서에서 인정될 수 있느냐 하는 문제가 애당초부터 부정적으로 대답될 것은 아니다. 특히 명백한 불법정권에 대한 저항권은 현대 법률관에 있어서는 결코 생소한 것이 아니다. 그와 같은 불법정권에 대하여 정상적인 법적 구제가 불가능하다 함은 우리가 경험을 통하여 잘 아는 바이다. 이 점에 대한 자세한 조사는 필요하지도 않다….

그리고 성문규정이 없는 경우에 굳이 성문적 근거를 찾자면 헌법의 전문. 국민주권의 원리. 인간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하는 헌법의 기본권 규정의 이면해석 등이 바로 그 근거가 된다는 것도 많은 학자의 찬동을 얻고 있는 실정이고,

둘째로, 저항권은 자유민주주의의 헌법질서유지와 기본적 인권의 수호를 위해서만 허용된다. 따라서 그것을 파괴하는 행위에는 여하한 경우에도 저항권 이론은 적용될 수 없다.

셋째로, 저항권은 그 헌법질서에 의하여 보장된 모든 방법에 의한 권리구제가 되지 않을 때에 최종적으로 적용된다. 따라서 헌법위원회라든가 사법기능이 건재하고 급박하지 않을 때에는 적용될 수 없다.

넷째로, 그 형태는 수동적 저항이나 능동적 저항이나 폭력적 저항이나 비폭력적 저항이나를 가리지 않고 위 세 가지 요건만 충족하면 적법한 저항권 행사로 인정된다고 하는 것이 그 골자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변호인단은 피고인의 본건행위 즉 "박정희 대통령은 유신헌법의 제정으로 자유민주주의를 말살하고 그 불법을 유지 존속시키는 유신의 핵이었으므로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기 위하여 그 핵을 제거하는 수단으로 다른 선택방법이 없어 그를 살해한 행위가 위 저항권 행사에 해당한다"고 분명히 제시하였다.

대법원 판사들, 사형을 선고하다

다시 공판 현장으로 돌아간다. 재판장은 판결 주문을 말하기 전에 피고인들과 변호인단이 제출한 <상고이유서>의 주장을 요약해서 설명했다.

1) 증거법칙에 위배한 점
2) 내란죄의 범죄불성립
3) 심리미진의 점
4) 저항권과 본 건 행위의 특징
5) 긴급피난의 점
6) 변호인 입회 없는 심리의 무효
7) 공판절차상의 위법
8) 독립재판권의 침해
9) 양형부당

재판장은 '상고이유'는 각 피고인마다 대법원 판사들의 의견일치가 되지는 않았으나 모두 상고이유가 없다는 것이 다수의견이라 말하고, 한참 뜸을 들였다가 "피고인들의 상고를 모두 기각한다"라고 선고했다. <상고이유서>는 철저히 배척되었다. 이로써 김재규는 사형수가 되었다. '기각'이란 한마디는 법률용어로 포장되었지만, 실제는 '생명을 빼앗는' 사형선고였다.

4ㆍ19혁명 후 들어선 민주당 정부를 군사쿠데타를 일으켜 붕괴시키고 18년 6개월 10일간 계엄령 4번, 위수령 2번, 비상조치 1번, 긴급조치 9번을 선포하면서 1인 통치를 자행한 독재자를 처단한 김재규는 끝내 사형수의 신세가 되었다.

김재규와 동시대의 프랑스 시인 장 주네(1910~1986)는 <사형수>라는 명작을 남겼다. 첫 구절이다.

사 형 수

감옥 안뜰 포석 위로 내 마음을 모는 바람
나뭇가지 걸리인 채 흐느끼며 우는 천사
대리석에 칭칭 감긴 하늘 나라 둥근 기둥
나의 밤에 찾아와서 구원의 문 열어주네.

죽어가는 가여운 세 다 타버린 재의 향취
담장 위에 잠든 듯한 눈망울에 담긴 추억
하늘 나라 위협하는 고통스런 그 주먹손
나의 손에 찾아와서 그대 얼굴 내려주네.

가면보다 가비얍고 탈보다도 강한 얼굴
장물아비 손보다도 나의 손에 더 무거운
그 얼굴에 지닌 보석 온통 눈물 범벅되어
어둡고도 강렬하게 청 꽃다발 투구 썼네.

그리스 목동인 양 엄한 표정 그대 얼굴
굳게 닫힌 내 손 안에 전율하는 그대 얼굴
주검 같은 그대 입술, 장미 같은 그대의 눈
천사장의 콧날인 양 뾰족 부리 그대의 코. (오세곤 옮김)


10ㆍ26거사에서 207일, 2심선고 후 113일 만에 열린 상고심의 결과였다.

14명의 대법원 판사들은 김재규와 박선호의 경우는 상고기각 10ㆍ반대의견 4, 김계원은 상고기각 9, 반대의견 5, 이기주ㆍ유성옥ㆍ김태원은 상고기각 8ㆍ반대의견 6, 유석술은 상고기각 14의 의견으로 각 상고를 기각했다.

14명의 대법원 판사 중 양병호ㆍ임항준ㆍ김윤행ㆍ민문기ㆍ서윤홍ㆍ정태원이 소수의견을 냈으나 이영섭 대법원장 등 다수에 밀렸다. 소수의견을 낸 이들 중 4명은 이 해 8월 9일 전두환 신군부 정권의 압력으로 법원을 떠났으며, 정태원 판사도 1981년 4월 법관 재임명에서 탈락되었다.

판결문은 재판 용지로 206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었으나 검찰논고를 복사한 듯한 내용이었다. 그나마 언론에 소수의견은 보도되지 않았다. 유신 이래 양심수들에 대한 재판의 경우 논고와 판결문이 복사판이었던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검ㆍ판사 동일체'라는 비아냥이 따랐다.

군사쿠데타로 세상이 다시 유신시대로 되돌아가던 엄혹한 시절, 양심과 법률에 따라 소수의견을 내고 그로 인해 신군부로부터 법복을 벗어야 했던 네 사람의 '소수의견'을 차례로 들어본다. 내용이 긴 경우는 임의적으로 발췌한 것임을 밝힌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2년 3월 22일, 화 5:02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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