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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에세이] 기고
 
접수되지 않은 '항소이유 보충서'
[김삼웅의 인물열전] 박정희를 쏘다, 김재규장군 평전 / 46회] "10ㆍ26 혁명이 자유민주주의의 회복을 위한 혁명인 점을 강조하였다"


▲ 김재규 전 중앙정보부장. 사진은 1980년 1월 23일 박정희 대통령 시해사건 항소심 2차 공판 당시 사진. ⓒ 연합뉴스

(서울=오마이뉴스) 김삼웅 기지 = 변호인단은 항소심이 사실 심리와 증거 입증의 마지막 기회이므로 힘을 모아 열정적으로 대처하였다.

재판정에서 연장자이며 법조계의 원로인 김계형 변호사가 대표변론을 통해 김재규의 10ㆍ26 거사의 역사적 의미를 설파하고, 이 사건으로 유신체제가 무너지게 되었으며, 한국사회가 크게 변화되고 있음을 역설하였다.

또한 변호인단은 「항소이유보충서」를 작성하여 계엄고등군법회의에 제출했지만, 사전에 양해했음에도 불구하고 재판부는 접수하지도 않은 채 판결 선고를 강행했다. 이 역시 상식과 관례를 무시한 처사였다.

「항소이유보충서」는 비록 항소심 판결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했으나 상고이유서 작성 때 참고가 되었다. 몸이 불편한 김재규가 옥중에서 직접 쓰지 못하고 구술한 것을 황인철 변호사가 받아 쓰고, 작성된 문안을 김재규가 가다듬어 완성한 것이다. '보충서' 중 고문당한 사실, 박근혜ㆍ박지만 관련 부분은 앞에서 소개한 바 있으므로 여기서는 생략한다.

(1) 첫 번째 단락에서는 10ㆍ26 혁명이 자유민주주의의 회복을 위한 혁명인 점을 강조하였다.

① 10ㆍ26 민주회복 국민혁명의 필연성
유신 체제를 철폐하고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우리나라의 국시에 맞는 일이고, 건국이념을 되살리는 일이다. 전 국민은 물론 미국 등 우방이 모두 열망하고 있었다. 만일 이를 하지 않고는 북괴와 싸워 이길 수 없고, 궁극적으로 적화될 수밖에 없었음이 분명한 이상 본인이 결행한 10ㆍ26 혁명은 필연적이고 불가피한 것이었다.

② 10ㆍ26 혁명의 적시성(適時性)
국민들의 유신 체제에 대한 저항은 일촉즉발의 한계점에 있었다. 이와 같은 위기에 처하여 박 대통령은 절대로 물러설 줄 몰라 국민의 엄청난 희생이 강요되고 있었다. 우리가 원하지 않은 불행한 사태가 발생할 경우 국제적으로 고립되고 특히 미국이 대한정책을 바꾸게 될 가능성이 있는 등 절박한 상황에서 도저히 더 이상 늦출 수가 없어서 10ㆍ26 혁명을 결행한 것이다.

③ 10ㆍ26 혁명의 방법
박 대통령의 희생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었다. 자유민주주의 회복과 박 대통령의 생명은 숙명적인 관계였다. 박 대통령을 사살하는 그 자체가 혁명이었다. 혁명이라고 하여 기본 룰(Rule)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 목적과 대상에 따라 그 방법이 결정되는 것이다. 유신 체제를 깨기 위하여 그 심장을 멈추게 할 수밖에 없었고, 그것으로 충분하였다.

④ 10ㆍ26 민주혁명의 결과
본인이 결행한 민주 회복을 위한 혁명은 완전히 성공한 것이다. 10ㆍ26 이후 유신 체제는 무너졌고, 자유민주주의는 회복되었다. 혁명 후에 완성하려던 혁명 과업을 수행할 수 없게 된 점은 심히 유감스럽다.

⑤ 나로 하여금 자결케 하라
자유민주주의를 회복한 나를 처형하면, 1960년 김주열이 죽어 4ㆍ19가 일어났듯이 국민이 가만있을 리 없다. 우리 정부가 내 죽음에 대한 책임을 지지 말고 나로 하여금 자결케 하도록 바란다. 본인은 자유민주주의를 회복시킨 것이 결과적으로 이 나라에 불행을 가져오는 일이 없도록 거듭 당부한다. (주석 7)


5ㆍ17쿠데타 3일 뒤 열린 상고심재판

김재규에 대한 군사재판이 급속도로 진행되고 있던 시점에 전두환 세력은 정권탈취를 기도하고, 외형상으로는 12월 6일 최규하가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단독 입후보하여 제10대 대통령에 선출되었다.

아무리 과도정부라 할지라도 최규하 정부가 순탄할 리 없었다. 유신체제의 구심이 사라진 마당이어서 공화당이나 유정희는 정치적 기능이 상실된 '불임정당'일 뿐이고, 최규하가 당선된 지 1주일도 안 돼 12ㆍ12 군하극상 사태로 보안사령관 전두환이 권력의 실체로 등장했기 때문이다.

이런 정치적인 상황에서 최규하는 12월 21일 제10대 대통령 취임사를 통해 "앞으로 1년 정도면 국민의 대다수가 찬성할 수 있는 내용이 담긴 헌법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고 과도정부의 기간을 예상보다 훨씬 늘려 잡았다. 최 대통령의 이같은 발언은 '3김'을 비롯한 여야 정당과 제야인사들의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 최규하는 대통령 취임과 더불어 긴급조치 제9호를 해제했다.

재야 세력과 일부 정치인들은 1979년 11월 24일 명동 YMCA에서 '통일주체대의원에 의한 대통령 선출 저지를 위한 국민대회'를 열고 최규하의 대통령 선출을 반대했으며, 신민당도 과도정부의 정치일정에 반발하고 나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과도정부가 정부 주도의 개헌안을 마련한다는 방침을 세워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와 마찰을 빚기도 했다.

자체의 정치기반 없이 신군부의 등에 업힌 꼴인 최규하 대통령으로서는 민주화를 바라는 국민의 염원을 제대로 수용할 수가 없었다. 학생, 노동자, 재야인사들은 정치 일정의 단축과 유신잔재 청산을 요구하며 대대적인 시위를 벌였고, 김대중ㆍ김영삼ㆍ김종필로 대표되는 정치 집단에서는 각기 이해가 엇갈린 상태에서 마찰을 빚어 정국은 날로 혼란이 확산되었다.

전두환 세력은 이런 분위기를 연출 또는 조장하면서 김재규 재판을 서둘렀다. 10ㆍ26거사로 '서울의 봄'을 맞은 여야 정당은 막상 유신체제의 핵을 제거한 당사자의 재판에는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고, 차기집권에 대해서만 동분서주하는 형국이였다. 재야세력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대법원은 10ㆍ26거사의 마지막 심판인 상고심을 1980년 5월 20일 열기로 하였다. 이 날짜는 정략적으로 잡혀진 것이었다. 신군부는 5월 17일 새벽 쿠데타를 일으켜 비상계엄을 전국에 확대 선포하고 계엄포고령 제10호를 발표, 모든 정치활동의 중지 및 옥내외 집회, 시위의 금지, 언론ㆍ출판ㆍ보도 및 방송의 사전검열. 각 대학의 휴교령 조치를 취했다.

이에 앞서 김대중ㆍ김종필 등 26명의 정치인을 합동수사본부가 연행하고, 김영삼을 가택연금하는 등 일대 정치적 탄압을 자행했다. 국회도 계엄군이 동원되어 봉쇄하였다. 18일 오전 광주에서는 전남대생들이 계엄해제와 전두환 구속 등을 요구하며 계엄군에 맞섰다. 광주항쟁이 시작된 것이다.

신군부가 예비한 시나리오대로 쿠데타 3일 뒤, 2심선고 113일 만에 서울형사지방법원 대법정에서 김재규 등의 상고심 재판이 열렸다. 내외의 관심은 쿠데타 실세들이 연출한 계엄령 전국확대라는 정치드라마에 쏠리는 것이 당연했다.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재판장 이영섭 대법원장, 주심 유태흥ㆍ주재황ㆍ양병호ㆍ임항준ㆍ안병수ㆍ김윤행ㆍ이일규ㆍ김용철ㆍ정태원ㆍ서윤홍 대법원판사였다. 대법원장을 포함한 14명의 대법원판사 중 민문기ㆍ한환진ㆍ나길조는 해외 출장으로 선고 공판에는 참여하지 않았다.

대법원 판사들은 하나 같이 유신정권에서 임명된 대법관들이다. 8명의 피고인 중 박흥수는 현역신분이어서 단심으로 사형이 확정되고, 7명만이 상고심을 받게 되었다.

선고공판은 김재규 등 7명의 피고인은 출정시키지 않고, 피고인의 가족 11명과 보도진, 기관원 등 12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상오 10시 8분, 재판장 이영섭 대법원장의 개정선언으로 막이 올랐다.

재판장은 판결 주문을 말하기 전에 피고인들과 변호인단이 제출한 「상고이유서」의 주장을 요약해서 설명했다. 이에 앞서 이돈명 변호사가 골격을 쓰고 변호인단이 수 차례에 걸쳐 다듬은 173쪽의 「상고이유서」를 살펴보는 것이 순서일 것이다. 상고심에서는 피고인들의 '최후진술'의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상고심의 「상고이유서」중 공판 절차상의 위법과 양형의 부당성 관련을 집필했던 안동일 변호사가 정리한 '머리말'을 소개한다.

머리말

1) 무릇 한 나라 한 민족의 흥망성쇠의 계기는 그 속에서 일어나는 대소사건의 진실한 모습과 참된 원인을 밝혀내고 그 사건 결과로 파급되는 모든 현상을 바르게 파악하여 그 사건에 내리는 올바른 가치 판단을 발전적 계기로 삼는 역량에 달려 있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치는 인류사, 민족사뿐 아니라 나라 안의 입법, 사법 등 각 분야별로 좁혀보아도 타당하고, 작게는 한 개인의 삶에서도 그대로 적용되는 진리임에 의심이 있을 수 없습니다.

2) 그런데 현행 헌정 체제 아래서 국가 권력의 핵을 맡고 있는 현직 대통령을 현직 중앙정보부장이 살해한 이 사건은 우리나라뿐 아니라 세계 정치사에서도 몇 세기에 한 번 있을까 말까 한 중대한 도전적 사건이라고 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이 도전에 대응하는 응전으로서의 이 사건의 사법적 판단이 이 나라의 사법사와 이 겨레의 발전사에 미치는 영향의 파고(波高)와 진폭은 매우 큰 것이라고 아니할 수 없습니다.

3) 그렇기 때문에 이 사건에 임했던 우리 변호인들은 제1심 개정 벽두에 모두발언이라는 형식을 빌려 이러한 취지로 공정한 결론과 적법한 절차의 준수를 힘주어 당부하면서 다 같이 영광스러운 역사의 주인이 되자고 한 바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변호인들의 이러한 소망은 불행하게도 아홉 가지 상고이유의 점에서 보는 바와 같이 그 절차나 내용이나 결론 할것 없이 비참하리만큼 무너지고 말았습니다. 바라건대 대법원에서는 정치ㆍ경제ㆍ사회 등 모든 분야가 혼미하고 불투명하여 진로를 찾지 못하고 있는 이 시점에서 이 민족의 위험스러운 현실 타개에 보탬이 될 올바른 판단을 내려주실 것을 바라 마지않습니다.


주석
7> 앞의 책, 371~373쪽. (발췌)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2년 3월 01일, 화 10:48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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