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남북관계와 대선

(서울=오마이뉴스) 김종성 기자 = 대선 이슈에 가려 잘 부각되지 않는 것이 있다. 박경미 청와대 대변인이 대장동 사건에 대한 신속•철저한 수사를 촉구하는 문재인 대통령 메시지를 브리핑하고, 서울중앙지검이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에 대한 구속영장을 청구한 지난해 10월 12일 <조선중앙통신>이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아주 이상한 말'을 보도했다.

<조선중앙통신>은 전날 개막된 국방발전전람회 '자위-2021'에 있었던 김정은 위원장의 기념사를 전했다. 기념사에서 김정은은 "미국은 최근 들어 우리 국가에 적대적이지 않다는 신호를 빈번히 발산하고 있지만, 적대적이지 않다고 믿을 수 있는 행동적 근거는 없다"며 "명백한 것은 조선반도 지역의 정세 불안정은 미국이라는 근원 때문에 쉽게 해소될 수 없게 되어 있다"고 발언했다.

그는 그렇게 대미 경계심을 감추지 않으면서도 귀를 번쩍이게 할 만한 말을 내놨다. "우리의 주적은 전쟁 그 자체이지 남조선이나 미국, 특정한 그 어느 국가나 세력이 아니다"라는 대목이 그것이다.

"주적은 남조선이나 미국이 아니다"

전쟁이 주적이지 남한이나 미국이 주적이 아니라고 했다. 남한과 미국에 대한 경계심을 표하면서도 색다른 신호를 띄운 것이다. 뒤이어 "분명코 우리는 남조선을 겨냥해 국방력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다"라며 "이 땅에서 동족끼리 무장을 사용하는 끔찍한 역사는 다시는 되풀이되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정은 정권이 그동안의 대남•대미 접근법에 수정을 가하고 있음을 반영하는 현상이다. 이는 남한 역시 전통적 관점과 접근법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기존 방법에 매몰돼 있으면 북한이 만드는 새로운 흐름을 이해하기도 힘들고 대응하기도 힘들 것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보내는 시그널을 추종할 이유는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무시하고 모른 척 할 수도 없다. 미국과 더불어 한반도 이슈를 주도하는 핵심 변수는 바로 북한이다. 그렇기 때문에 수용 여하를 떠나 일단은 참고하고 때에 따라 활용도 해야 하는 것이 북한의 대남•대미 '사인'(sign)이다. 불필요한 충돌을 막고 한반도를 안정시키려면 꼭 필수적인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최근 한국에서는 안보와 직결되는 그런 신호들을 그냥 흘려보내는 양상들이 두드러지고 있다. 진보 대 보수의 대결 구도에 과도하게 사로잡혀 한반도 문제와 직결되는 새로운 조짐에 제대로 대처하지 못할 위험성이 드러나고 있다.

생뚱맞은 북한 주적론과 선제타격론이 남한 정치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제기되는 오늘의 현실을 안타까워하는 목소리가 전문가들 사이에서 쏟아져 나왔다. 지난 21일 오후 온라인으로 개최된 '남북기본합의서 발효 삼심년: 평가와 전망' 학술대회장이 바로 그 자리다.

통일연구원•국가안보전략연구원•국립외교원이 공동 주최한 이 학술대회의 제2세션 발표자로 나선 이정철 서울대 교수는 "미국 주적론을 폐기하겠다, 할 수 있다, 그리고 자기 주적은 전쟁 그 자체라는 국방발전전람회의 김정은 연설이 갖는 의미를 우리가 굉장히 중요하게 봐야 된다"라며 "그것이 어떻게 전개되느냐에 따라서 향후 정국이 전개되지 않겠나라고 생각한다"라고 한 뒤 이런 변화에 적극 대처할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최근의 국내 정치가 이런 흐름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고 아쉬워 했다. 진보 대 보수 대결을 부추기고 혐오주의를 양산하는 국내 정치가 대북관계에 부정적 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요즘 많이 부각되는 것이 소위 정체성 정치인데요 이번 선거에서 나타나는 수많은 혐오주의나 야당 후보가 제기하는 북한 주적론, 이런 정체성 정치가 남북관계에 미칠 영향도 굉장히 크고. 이것이 혐오주의와 결합될 때 남북관계가 정체돼왔던 역사를 다시 한 번 평가해야 되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남북관계를 비롯한 국제관계에서는 '전략적 모호성'이 어느 정도 필요한데도 그것이 실종될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우려했다. 미국 진영과 북•중 진영 사이에서 실용적•실리적 입장을 견지할 여지가 있는데도 한쪽으로 너무 명확히 경도될 위험성이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최근에 윤석열 후보가 <포린 어페어스>에 실은 글을 보면 '우리 야당은 전략적 명료성으로 외교와 남북관계를 대할 필요가 있다'는 입장을 전한 것 아니냐라는 생각이 듭니다"라고 한 뒤 "저는 개인적으로는 한국 외교는 여전히 전략적 모호성의 틀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 아니냐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남북합의 이행과 남북관계 전망'이라는 제목으로 진행된 제2세션의 좌장을 맡은 전봉근 국립외교원 교수 역시 국방발전전람회 때 나온 김정은의 시그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언급했다.

그는 '우리의 주적은 전쟁이지 남조선이나 미국이 아니다'라는 김정은의 발언을 "아주 이상한 말"이라고 평가한 뒤 "굉장히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활용해야 하는 게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든다"라고 말했다.

그는 최근에 조성되는 한반도의 새로운 국면들을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존의 냉전적 접근법에서 벗어나 새로운 대응책을 갖고 대응할 필요성을 언급한 것이다.

북한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흐름과 관련해 "한편으로는 굉장히 문제가 많으면서도 또 다른 한편으로는 우리가 활용할 수도 있는 게 아닌가 생각"한다고 밝혔다. 새롭게 형성되는 한반도 패러다임을 한편으로는 신중히 대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짚은 것.

제2세션 토론자인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 역시 한반도 패러다임 변화에 적극 대응할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새로운 상황에 대응하자면 "기존의 우리 측 접근 태도가 바뀌어야 한다"며 변화된 상황에 맞는 접근법을 구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제2세션 토론자인 최용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책임연구위원은 진보 대 보수의 국내 정치구도가 남북관계에 미칠 부정적 영향을 특히 우려했다. 그는 "한국도 그렇고 미국도 그렇고 점점 더 국내 이슈가 대외 정책을 지배하는 사회로 바뀌어 가는 것 같다"라며 정치 양극화로 인해 이런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국내 이슈가 대외정책을 지배해버리면 대외정책의 일관성을 기할 수 없게 된다'며 강한 우려를 표시했다.

미국의 대북정책만 바뀐 게 아니다. 북한의 대남•대미 정책도 크게 바뀌고 있다. 우크라이나와 타이완 해협에서만 새로운 국면이 출현하는 게 아니다. 한반도에서도 새로운 정세가 조성되고 있다.

한반도에서 조성되는 새로운 정세는 위 전문가들의 제언처럼 기존의 냉전적 접근법으로는 결코 대처할 수 없는 것이다. '우리의 주적은 전쟁'이라며 "아주 이상한 말"로 접근해오는 북한을 상대로 대응도 하고 협력도 하려면, 남한 역시 그에 맞는 자세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된다. 진보 대 보수 대결 구도가 남북관계에 지나치게 큰 영향을 주는 이번 대선 국면은 한반도 평화와 안정에 결코 이롭지 않다고 평가할 수 있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