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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에세이] 기고
 
저에게 극형, 부하들은 살려주길
[김재규 평전 28회] "저의 부하들은 착하고 양같이 순한 사람들입니다"


▲ 김재규와 박선호 철모를 쓴 군인 사이에 앉아 있는 사람이 중앙정보부장 김재규이고, 포승줄에 묶인 채 김재규와 대화를 나누는 사람이 의전과장 박선호다. 김재규와 박선호 두 사제는 같은 날 세상을 떠났다. ⓒ 국가기록원

(서울=오마이뉴스) 김삼웅 기자 = 김재규의 부하들에 대한 애정은 남달랐다.

평소 인간적 신뢰가 있었기에 그들은 거사 당일 사전 모의가 없었는데도 말 한마디에 거침없이 죽을 자리에 뛰어들었을 것이다. 최후 진술에서도 자신은 죽이더라도 명령에 따랐을 뿐인 부하들은 살려 줄 것을 간절히 호소하였다. 최후진술의 마지막 대목이다.

또 입법부에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진정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라면 국민의 갈망을 받아들여 10ㆍ26혁명 지지 결의를 해야 한다고 봅니다. 만약 이렇게 하지 않는다면 자유민주주의 회복을 위해 무엇을 했느냐고 물어보고 싶습니다. 그 동안 긴급조치 9호 해제를 결의했지만, 지엽적인 일입니다. 더 긴급한 것은 자유민주 회복뿐이므로 자유민주주의 회복결의가 더 원천적인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지금 모든 것을 체념하고 가만히 눈감고 생각하면, 저의 혁명이 원인이 되어 혼란이 오고 국기마저 흔들릴 요인이 생길까 봐 몹시 걱정이 됩니다.

최 대통령에게 지금도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감상에 사로잡혀 있지 말고 정치는 냉혹한 것이니 제가 아무리 밉더라도 밉다고 생각지 말고 저를 끌어내어 저와 같이 혁명과업을 수행합시다. 저와 함께 국가의 핵을 만들고 중심 세력을 만듭시다. 국가의 장래를 반석 위에 올려놓읍시다. 이러한 이야기가 현재 분위기로 보아 받아들여질 리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진정 나라의 장래를 걱정한다면 감정을 초월해서 이성으로 돌아가 냉혹하게 정치 현실을 전망하여 국사를 그르치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재판부에 말씀드립니다. 연일 공판에 매우 피곤하실 텐데도 장황한 이야기를 경청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이 세상을 하직하고 가더라도 여러분에 대한 고마움을 간직하고 가겠습니다.

저는 오늘 마지막으로 자유민주주의 회복을 20~25년 앞당겨놓았다는,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자부심을 가지고 갑니다.

대한민국의 발전이 잘되도록 기원합니다. 대한민국의 앞날에 '자유민주주의 만만세'를 기원하고, '10ㆍ26 민주혁명 만만세'를 기원합니다. 다만 제가 이 세상을 빨리 하직함으로써 자유민주주의가 이 나라에 만발하는 것을 보지 못하고 가는 그 여한이 한량없습니다.

그러나 이미 모든 것이 기약되어 있기 때문에 제가 못 보았다 뿐이지 틀림없이 오기 때문에 저는 웃으면서 갈 수 있습니다. 저의 소신에 의한 행동이니 그에 알맞은 형벌을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끝으로 저의 부하들은 착하고 양같이 순한 사람들입니다. 너무 착하기 때문에 저와 같은 사람의 명령에 무조건 철두철미하게 복종했으며, 또 그들에게 선택의 여유나 기회를 주지 않았습니다.

그들 입장에서 볼 때 죄를 지었고, 저의 입장에서는 혁명을 했습니다만, 그러나 모든 것은 저에게 책임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을 희생시킨다고 해서 법의 효과를 얻는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 하나 중정부장을 지낸 사람이 총 책임을 지고 희생됨으로써 충분합니다. 저에게 극형을 내려주시고 나머지 사람들에게는 극형만은 면해주시기를 바랍니다.

특히 박 대령은 단심(單審)이라 가슴이 아픕니다. 매우 착실한 사람이었고, 가정적으로도 매우 모범적이고 결백했던 사람입니다. 청운의 꿈을 안고 사관학교에 지망했고, 지금 선두로 올라오는 대령입니다. 군에서는 더 봉사할 수 없겠지만, 사회에서 더 봉사할 수 있도록 극형만은 면하게 해주시기를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두서없는 말을 장황하게 해서 죄송합니다.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주석 9)

"피고인 김재규를 사형에 처한다"

최후진술이 끝나고 구형공판에 이어 12월 20일 오전 11시 제1심 선고공판이 열렸다. 재판을 시작한 지 16일 만이다. 변호인단이 선고공판을 미뤄보려고 온갖 노력을 기울였지만 허사였다.

군권을 장악한 전두환 신군부는 정권탈취를 최종 목표로 김재규 등을 하루 빨리 처형한다는 시나리오를 갖고 있었고, 군사재판부는 그들의 하수인 노릇에 충실했다.

김영선 재판장이 목소리를 깔고 "79보군형공 제88호 내란목적 살인 등 사건에 대하여 판결을 선고한다. 피고인 김재규를 사형에 처한다."라고 사형을 선고했다. 검찰이 구형한 그대로였다.

재판장은 양형 이유를 설명했다.

"국내외적으로 국가가 위기에 처한 시점에서 국가 원수를 시해한 것은 명백한 대역 행위로 어떠한 명분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기 때문에 내란 행위에 가담한 전 피고인들에게 극형을 선고한다."

재판부가 피고인들에게 극형을 선고하면서 내세운 '양형 이유'는 법관으로서는 기본도 갖추지 못한 용어를 쓰고 있었다. 우리나라 형법에는 '대역죄'나 '시해'라는 법률 용어가 없다. 그에 해당하는 '외환죄'나 '내란죄' 혹은 '살인죄'라는 용어가 있을 뿐이다.

그런데도 '대역죄', '시해' 따위의 왕조시대 용어까지 동원한 것은, 10ㆍ26 거사의 반역성을 드러내고자 하는 의도였을 것이다. '반국가 대역행위' 운운은 검찰의 논고에서 이미 씌여졌다. 따라서 유신체제와 이를 창도한 박정희의 반민주성을 역설적으로 입증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 1979년 12월 20일 김재규는 사형 선고를 받았다. ⓒ 동아일보

재판장이 김재규를 비롯 피의자들에게 사형을 선고할 때 이를 지켜 본 안동일 변호사의 기록이다.

이미 극형을 예측한 듯 체념한 자세로 피할 수 없는 마지막 순간을 기다리던 피고인들은 일순 표정이 굳어졌다. 초췌한 얼굴에는 경련이 일었으나, 방청석의 가족들은 막연한 기대마저 무너지자 고개를 숙인 채 눈물과 탄식을 쏟아냈다.

귀에다 손바닥을 대고 재판장의 판결을 경청하던 김재규는 사형이 선고되는 순간에도 흐트러지지 않은 자세로 재판장을 응시했다. 여전히 수염이 덥수룩한 채 병색이 짙은 검은 얼굴에 눈은 충혈되어 있었다. 흰색 한복에 검은 고무신과 털양말도 그대로였고, 두 손을 무릎에 얹은 자세도 구형 공판 때와 변함이 없었다. 이따금 마른기침을 했고, 길게 자란 머리칼을 쓸어 올렸다. 카메라 기자를 위하여 가끔 얼굴을 돌려주기도 했다. (주석 10)

김재규는 거사 직후 전두환이 보낸 헌병들에게 체포되어 보안사령부 서빙고분실로 끌려가 초주검에 가까운 고문을 당하였다. 그리고 특별감방에 수감되어 수사를 받다가 세간에서 "남한산성'으로 불리는 남한산성 서쪽에 자리 잡은 육군교도소로 옮겨 재판을 받았다. 민간 신분인데도 육군교도소에 수감한 것이다.

그는 또렷한 정신으로 최후진술을 하고 사형선고에도 흐트러지지 않는 자세를 보이고 있었지만, 육신은 보안사의 서빙고분실에서 당한 고문으로 만신창이가 되고 있었다.

서빙고에서 얼마나 '골병'들게 상처를 받았는지 온 몸이 피하 출혈로 시뻘겋게 되었고, 뇌출혈이 발생하는 등 사형집행 전에 이미 '산 송장'이 되어 있었다. 김재규 부장을 면회 갔던 6촌 여동생 김차분 씨는 김 부장의 손을 잡아 보았는데 그의 손바닥은 "검은 잉크로 온통 문신을 새긴 듯 새까맣고 군화 바닥처럼 딱딱하여 사람의 손바닥이 아니었다."고 말했다.

김차분 씨가 김재규 부장에게 "손바닥이 왜 이러느냐?"고 물었더니, 김 부장은 "고문을 받아서 이렇게 되었다"고 답했다. 김차분 씨는 고개를 들고 천장을 쳐다보니 천장에는 두 사람이 앉아 있었고 녹음기 같은 것이 돌아가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주석 11)

주석
9> 이상, 안동일, 앞의 책, 299~307쪽, 발췌.
10> 안동일, 앞의 책, 309쪽.
11> 오성현, 앞의 책, 196쪽.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2년 1월 31일, 월 7:16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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