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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에세이] 기고
 
유신헌법 만든 궁정동 안가에서
[김재규 평전 제25회] 악명 놓은 유신체제가 붕괴되는 계기를 만들어


▲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살해된 궁정동 총격사건과 관련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 그의 부하들이 군사법정에 섰다. 1979년 박정희 대통령이 살해된 궁정동 총격사건과 관련해 김재규 중앙정보부장과 그의 부하들이 군사법정에 섰다. ⓒ 보도사진연감

(서울=오마이뉴스) 김삼웅 기자(전 대한매일신보 주필) = 김재규는 결단했다.

더 이상 거사를 미루지 않았다. 운명의 날 10월 26일, 이날은 박 대통령이 충남 서산 삽교천 방조제 준공식에 이어 중앙정보부 소관인 대북송신소 건물 준공식이 열리기로 돼있었다. 중정부장도 당연히 참석해야 하는 자리였으나 차지철 실장의 방해로 참석하지 못하였다.

그래저래 울분이 가시지 않고 있는데, 오후 4시경 차지철의 전화가 왔다. 오늘 저녁 6시 궁정동에서 '대행사'가 열리니, 김 부장도 참석하라는 것이다. 마치 아랫 사람에게 지시하듯 말투였다. '대행사'는 대통령과 비서실장ㆍ경호실장ㆍ정보부장 등이 '술 시중'을 드는 젊은 여성들과 함께, '소행사'는 앞의 3인만이 식사하는 행사를 일컫는다. 사흘에 한 번 꼴로 대ㆍ소행사가 번갈아 열렸다.

중정부장의 관저가 있고 중정이 관리하는 청와대 인근의 궁정동 안가는 유신헌법을 만들 때 한태연ㆍ갈봉근 교수와 김기춘 검사 등이 비밀리에 모여 작업했던 곳이고, 소행사와 대행사가 자주 열리는, 유신세력에게는 유서 깊은 이곳에서, 10ㆍ26 대행사가 열리기로, 차지철로부터 '대행사'에 참석하라는 전화를 받은 김재규는 이날을 거사일로 작심하고, 정승화 육군참모총장과 김정섭 중앙정보부 2차장을 별도로 식사를 하자면서 불렀다. 그리고 박흥주ㆍ박선호 등 측근들에게 암시했다.

만찬장인 6평 가량의 온돌방에는 직사각형 식탁이 놓여졌다. 식탁 밑은 50㎝ 정도 패어 있어 방바닥에 앉아서도 발을 아래로 내려 뻗을 수 있도록 되어 있었다. 식탁에는 이미 부침ㆍ송이구이ㆍ생채ㆍ편육 등이 조촐하게 차려져 있었고 선(SUN) 담배 두 갑과 양주 시바스 리갈 2병이 준비되었다.

박대통령이 먼저 십장생도 8폭 병풍 앞 등받이 의자에 앉자 맞은 편에 김실장과 김부장이 박대통령 쪽에서 볼 때 좌우로 앉았고 차실장은 김부장의 왼쪽 모서리 측에 다소 비껴 자리를 잡았다.(주석 12)

술판이 시작되고 신민당 문제가 화제로 올랐다. 차지철이 중앙정보부의 무능으로 야당과 학생들이 날뛴다고 말하자 박정희가 "정보부가 좀 무서워야지, 비행조서만 쥐고 있으면 뭘 해. 부장이 저래서 정보부가 약하다는 소리를 듣지"라고 차지철의 발언을 감싸면서 김재규를 질책하였다. 김계원 실장이 화제를 돌리려고 애를 쓸 때 여자 2명이 들어왔다.

박대통령은 오른쪽에 앉은 신양(당시 한양대 연극영화과 3년)을 바라보며 "예쁘게 생겼군. 이름이 뭐지, 나이는?"이라고 묻고는 고개를 끄덕이는 등 노여움을 푸는 모습이었다. 이어 다시 왼쪽에 앉은 가수 심양에게 "본(本)이 어디지?"라고 묻고는 "며칠 전 작고한 총무처장관(심의환 씨ㆍ22일 사망)과 본이 같군." 하고 말했다. '그때 그 사람'이란 히트곡으로 인기절정에 있던 심양은 그전에도 대연회에 참석한 적이 있었고 이날도 박대통령이 대령시키라고 특별히 지시할 정도였다.

기분이 다소 좋아진 박대통령은 계속 술잔을 비웠고 빈 술잔을 주로 김실장에게 주었다. 김부장과 차실장은 형식적으로 술잔을 홀짝거리고 있을 뿐이었다.(주석 13)

김재규는 곧바로 50여m 떨어진 본관 자신의 집무실로 갔다. 2층 식당에서 식사중인 정승화 참모총장과 김정섭 중정 제2차장보에게 들렀다.

"조금만 기다려 달라. 각하께서 갑자기 만찬에 참석하라 해서 조금 늦어지겠다. 곧 올 테니 먼저 식사하고 있어라"고 말한 뒤 옆방인 자신의 집무실로 들어갔다. 낮에 꺼내두었던 웰터 권총을 집어들었다. 다시 한 번 점검했다. 서독제 7연발 권총은 여전히 '이상 무'를 알려주고 있었다. 바지 오른쪽 라이터 주머니에 권총을 꽂았다. 김재규는 평소 라이터 주머니를 개조해 권총을 집어넣을 수 있도록 해 두고 있었다.

집무실을 나서자 대기실에 있던 박흥주가 뒤를 따랐다. 건물 뒤켠을 돌아오다 박선호를 만났다. "둘 다 이리 모여." 김재규는 충직스런 두 부하를 불러세웠다.

"시국이 몹시 위태하다. 나라가 잘못되면 우리 모두 죽는다. 오늘 내가 해치우겠으니 방에서 총소리가 나면 너희들은 경호원을 처치해야 한다. 불응하면 사살해도 좋다. 각오는 되어 있겠지."

김재규는 놀라는 부하에게 권총이 든 호주머니를 툭 쳐 보인 뒤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여기 참모총장과 제2차장보도 와 있어."(주석 14)

김재규는 차지철과 박정희를 차례로 쏘았고, 총소리를 신호로 박흥주와 박선호가 달려드는 경호원 3명에게 발사했다. 이렇게 하여 박정희는 중정부장이 쏜 두 발의 웰터 권총탄에 맞아 숨지고, 악명 놓은 유신체제가 붕괴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운명의 갈림길, 중정이냐 육본이냐

다시 역사의 현장으로 돌아가 본다.

이번에는 박정희와 차지철을 저격한 다음의 과정을 김재규의 육성으로 들어보자.

1979년 10월 28일 합동수사본부에서 작성한 첫 '진술서'다. 진술서는 자신의 경력을 비롯 거사 과정이 담겨 있다. 여기서는 권총으로 박ㆍ차를 쏜 이후부터 '현장중계' 한다.

19시 42분경 현장을 이탈하여 맨발과 Y셔츠 바람에 집무실로 뛰어와 차량 대기실에서 "차 어디 갔어, 손님 모시고 나오라"고 외쳤습니다.

19시 45분, 본인은 본인 승용차에 육군참모총장, 김정섭차관보, 박흥주 수행비서와 동승하는 순간 본인이 총장에게 "큰일났소. 빨리 차에 타시오."했다. 승차 후 차 안에서 "무슨 일입니까" 묻길래 본인은 "큰일이 났어. 정보부로 가자"고 하자 총장이 "무슨 일이 났소" 하고 물었다.

이때 본인이 좌수 엄지 손가락으로 표시하며 우수 인지로 'X' 표시를(각하 살해됐다는 표시)하면서 저격당했다고 하자 총장이 "각하가 돌아가셨습니까" 하며 묻길래 본인이 "보안 유지를 해야 한다. 적이 알면 큰일이다."고 하면서 몹시 당황하여 경호차가 오는지 뒤를 돌아보았습니다. 총장이 "외부의 침입이요, 내부의 일이요" 물었으나 본인은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이때 본인은 차를 부(部, 정보부)로 가자고 하자 총장이 "육본 벙커로 갑시다" 하므로 이때 운전사는 미8군 영내를 통과하여 20시 05분 육본에 있는 B-2 벙커에 도착하여 벙커 참모총장실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본인은 김정섭 차장보에게 지시하여 청와대 실장에게 전화로 "이쪽 형편이 갈 형편이 못됩니다" 하자 "이리 오시오 다 끝났는데 거기 무엇하러 갑니까. 여기 다 모였으니 총리 모시고 오시오"라고 하자 김실장은 약간 전화를 멈추었습니다만 본인이 육군총장을 인질로 확보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고 응락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전화 통화를 끝냈습니다.

그리고 총장은 상황실 방으로 왔다갔다하여 무슨 조치를 취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러다가 22시 30분경 김계원 비서실장, 총리, 내무, 유혁인, 법무장관 등이 도착하였습니다. 법무부 장관이 본인에게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묻자 본인은 "지금 대통령이 유고입니다. 이것은 중대한 사태로서 경계를 강화해야 되겠고 국내 유혈 사건도 막아야 하기 때문에 2,3일간 보안을 단호히 유지해야 하고 각의를 열어 계엄을 선포해야 한다"고 강조하였습니다.

유병현 장군이 "위컴 대장이 미국에 가 있으니 제가 참모장에게 전달하면 됩니다. 외교부 장관이 내일 아침 미국 대사를 불러서 제가 통보하겠습니다" 했다. 이때 좀 늦게 도착한 문공장관이 "비상계엄의 사유를 어떻게 할까요" 하여 본인은 "소련의 브레즈네프가 사망한 지 여러 날이 되어도 아직 보안을 지키고 있었습니다. 우리도 보안을 지켜서 비상계엄의 사유는 유고(有故)로 하면 될 것입니다."

국방부장관실로 국무총리 이하 국방부장관과 육군총장이 자리를 옮기고 22시 55분경 본인이 김실장을 총장실 내에 있는 화장실로 데리고 들어가 "사태 수습이 급선무입니다. 보안을 유지해야 합니다"하여 "최단 시일 내에 계엄사령부 간판을 혁명위원회 간판으로 바꾸어 달도록 하시오"라고 말하였습니다. 22시 40분경 총장실에서 국방부 장관실로 옮겨 23시 각의를 소집하기로 결정했습니다.

유혁인(정무제1수석 비서관)이가 중앙청 근처에서 기자들이 취재 움직임이 있는 것 같다고 하여 본인이 외신기자의 보안유지를 위해 전재덕 차장에게 전화를 걸어 체크하라고 2차장보인 김정섭에게 지시하였습니다.

10월 27일 0시 40분경 국방장관 부속실 요원이 와서 김비서실장이 찾는다고 하여 장관실 입구 부속실로 나가보니 대기한 헌병 2명에 의해 체포당하였습니다.
(주석 15)

거사 다음날인 10월 27일 새벽 4시를 기해 비상계엄령이 선포되고 정승화 육군참모총장이 계엄사령관에 임명되었다. 얼마 후 정승화 총장이 사건 현장에 있었다는 혐의로 구속되고, 계엄사 내에 보안사령관 전두환을 중심으로 하는 합동수사본부가 꾸려지고, 계엄사는 합수부의 지침을 받아 계엄업무를 수행하게 되었다. 전두환이 등장하게 된 배경이다.

합수부는 사건발생 18일 만인 11월 13일 김재규ㆍ김계원 등 8명을 내란목적 살인 및 내란미수혐의로 육군본부 계엄보통군법회의 검찰부로 송치했다. 김재규는 사건 직후 승용차에서 중앙정보부로 가자고 말했으나 정승화 총장이 육군본부로 가자고 하여, 육본 벙커로 갔고 얼마 뒤 헌병에게 체포되었다. 중정이냐 육본이냐가 운명의 갈림길이 되었다.

일부의 주장대로 김재규는 자신이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거사였다면 그때 중정으로 가서 사후 조처를 취하는 것이 순서였을 것이다. 그런데 아무런 준비가 없는 육본으로 가고, 결국 체포되기에 이르렀다. 대통령을 저격한 엄중한 사태의 경황 중이라 할 지라도, 보안사령관과 중정부장을 지낸 사람으로서 그토록 준비없이 결행했을까 의문을 갖게 한다.

따라서 10ㆍ26 거사가 '우발범'인가 아니면 '확신범'인가는 재판과정과 취후진술, 변호인들과의 면담록 등 자료를 통해 추적될 것이다. 정부 대변인 김성진 문공부장관은 10월 27일 오전 박대통령 서거를 공식 발표했다.

박정희 대통령께서는 26일 저녁 6시경 시내 궁정동 소재 중앙정보부 식당에서 김재규 중앙정보부장이 마련한 만찬에 참석하시어 김계원 비서실장, 차지철 경호실장 등과 만찬을 드시는 도중에 김 정보부장과 차 경호실장 간의 우발적인 충돌 사태가 야기되어 김 정보부장이 발사한 총탄으로 26일 저녁 7시 50분 서거하셨습니다. (주석 16)

정부 발표에 이어 28일 오후에는 전두환 합수부장이 중간수사결과를 발표했다. 정부와 합수부는 '우발적 살인'이라 주장하고 있다.

김재규는 평소 대통령께 건의하는 정책에 대하여 불신을 받아왔고 자신이 모든 보고와 건의가 차지철 경호실장에 의하여 제동을 당하였을 뿐 아니라 양인의 감정 대립이 격화되어 있었고, 업무 집행상의 무능으로 수차례에 걸쳐 대통령으로부터 힐책을 받았다. 이로 인하여 최근 요직 개편설에 따라 자신의 인책해임을 우려하고 있던 차에 10월 26일 저녁 박 대통령, 김계원 비서실장, 차지철 경호실장과 서울 종로구 궁정동 소개 중앙정보부 안가에서 만찬 도중에 차 실장과 심한 의견 충돌을 한 뒤 밖으로 나와 권총을 찾아 들고 들어가면서 밖에 있던 부하들에게 "내가 해치울 테니 총소리가 나면 밖에 있는 경호원들을 해치우라"고 지시한 뒤 7시 35분경 방에 들어가 차 실장과 박 대통령을 쏘았다. (주석 17)

주석

12> 정병진, 앞의 책, 35~36쪽.
13> 앞의 책, 37쪽.
14> 앞의 책, 43쪽.
15> 「김재규의 10ㆍ26사건 최초 진술서」, 『월간조선』1987년 12월호.
16> 『한국일보』, 1979년 10월 28일자.
17> 앞의 신문, 1979년 10월 29일자.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1년 12월 13일, 월 6:47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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