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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
 
전두환 부인 이순자에 대하여
[김종성의 히,스토리] 내조자에 그치지 않은 '영부인'


▲ 전두환씨 부인 이순자씨가 28일 서울 종로구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노태우씨 빈소에 조문한 뒤 나오고 있다. ⓒ 사진공동취재단

(서울=오마이뉴스) 김종성 기자 = 이순자씨를 비롯한 전두환 유족들이 지금 이 상황에도 참회 한마디 하지 않는 것에 세상은 화가 나 있다. 그런데 그 참회의 대상이 무엇이어야 하는지 따져볼 필요가 있다. 특히 이순자씨의 경우 남편을 대신해 참회하기만 하면 끝나는 것인지를 생각해봐야 한다. 이순자 자신이 참회할 부분은 없는지 살펴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전두환 인생에서 이순자는 단순한 협력자나 내조자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전두환을 앞세우거나 전두환을 적극적으로 이끌어간 부분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이순자는 전두환보다 8년 뒤인 1939년 3월 24일 만주국에서 출생했다. 이순자는 자서전 <당신은 외롭지 않다>에서 아버지 이규동이 만주국에 있었던 이유를 설명하는 대목에서 "당시 만주 길림성 화순현은 조선 독립운동의 중심지였다고 한다"고 적었다. 또 "해방이 되자 아버지는 동북대한민단에 들어가 보안대를 조직했다"며 "불안에 떠는 조선 동포들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는 치안 기능을 수행했다"고 썼다.

이규동이 만주국에 있었던 실제 이유는 1992년 언론보도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그해 3월 1일 자 <한겨레> 기사 '친일인명사전 발간 차질'은 당시 추진되던 친일파 조사 작업과 관련해 "일본육사•만주군관학교 출신의 황군 장교로는 박정희 전 대통령, 정일권 전 국회의장, 최경록 전 주일대사, 백선엽 전 육군대장 등이 눈에 띄며 전두환 전 대통령의 장인인 이규동씨는 군관학교 출신은 아니지만 관동군의 고급 문관을 지낸 것으로 나타나 있다"고 말한다.

해방 이듬해인 1946년에 가족들과 함께 "어느 정도의 재산을"(이순자 자서전) 갖고 귀국한 이규동은 김재규•박정희와 함께 조선경비사관학교(육사) 2기로 입교한 뒤 육사 참모장, 육군본부 군수국 차장대리, 육군본부 경리감 등을 거쳐 만 49세 때인 1960년에 준장으로 예편했다.

이승만 정권에 대한 저항이 강렬했던 시점에 발행된 그해 4월 12일 자 <동아일보> '육군 경리감•헌병감 부정을 폭로'는 "자유당의 손도심 의원은 11일 상오 속개된 국회 본회의 벽두(에) 일신상 발언을 얻어 등단하여 육군 헌병감 이규광 준장과 그 친형인 육군본부 경리감 이규동 준장이 막대한 국고금 유용, 부정사실 은폐, 부정축재 등 부정을 감행하고 군을 혼란시키고 있다고 폭로했다"고 보도했다. 이규동은 그달 29일 군을 떠났다.

남편의 일은 내 일

이규동이 육사 참모장이었던 1950년대 전반에 그 집을 자주 출입한 육사 생도가 전두환이다. 중학생 때 전두환을 처음 본 이순자는 "여고 시절 내내 그토록 공부에 여념이 없었던 내가 언제부터 그이를 연인으로 느끼기 시작했는지는 확실치 않다"며 "분명한 것은 그이가 육군사관학교가 서울로 이주한 후에도 주말이면 어김없이 청파동 집 대문의 초인종을 눌렀다는 사실"이라고 자서전에서 말한다.

전두환을 좋아하게 된 뒤로 이순자는 자기 인생을 전두환에게 맞춰 나갔다. 1958년에 이화여대 의과대학에 진학한 것도 그래서였다. "대학 졸업 후 의사가 된다면 가난한 장교를 도울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었다"라고 회고한다. 이 생각은 대학 입학 얼마 뒤 바뀌게 된다. 재학 중에 결혼하면 퇴학당할 수밖에 없는데도 전두환과의 결혼을 위해 학교를 포기하게 된다.

이순자의 적극성은 둘의 관계에서도 나타났다. 1959년 1월 24일의 결혼식 날짜와 장소를 결정해 일방적으로 통보한 것은 이순자 쪽이었다. 결혼 후 11년간 거처한 곳도 그의 집이었다.

남편에 대한 적극성은 이순자가 남편 직장에 자주 출현한 일과도 무관치 않다. 이는 전두환의 부하 장교들을 당황케 만드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전두환이 부하 장교들에게 부부 동반이나 가족 동반을 지시하는 일이 잦았던 것은 이순자가 군부대에 관심이 많았던 점과 관련 있다고 볼 수 있다. 1980년 8월 21일 자 <경향신문> '새 역사 창조의 선도자 전두환 장군 2'는 "부대장으로 회식을 주재하면 가족동반을 지시해 부하 장교들이 당황할 때가 잦았다"라고 보도한다.

남편이 공수여단장일 때 이순자는 군부대에서 엎드려 쏴 자세로 사격 연습까지 했다. 이 모습을 담은 사진이 훗날 공개되기도 했다. 전두환의 직장은 사실상 이순자의 직장이나 마찬가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 사격 연습하는 이순자. 1996년 12월 26일자 <경향신문>. ⓒ 경향신문

이순자는 단순한 내조자가 아니었다. 상당히 적극적으로 남편의 활동 영역에 개입했다. 이 점은 전두환이 박정희 대통령의 지시를 받아 비밀리에 운영한 하나회와 관련해서도 나타났다.

군부 사조직인 하나회는 비밀 조직인데도, 이 조직에서는 부인들의 모임이 결성됐다. 하나회의 리더는 전두환이었으므로, '남편이 대령이면 부인은 준장'인 당시의 관행에 따라 하나회 부인들의 모임에서는 이순자가 대장일 수밖에 없었다.

1996년 10월 25일자 <경향신문> '진급 내조 시달리는 장성 부인들'은 하나회 장군의 부인들이 비(非) 하나회 장교 부인들로부터 "각별한 예우"를 받았으며, 하나회 장군의 부인들 내에서 서클이 형성돼 파워를 행사하는 일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이순자를 비롯한 하나회 장교 부인들이 남편들의 배경을 활용하고 다녔던 것이다. 남편의 비밀 사조직이 드러나지 않도록 하지 않고 이를 기반으로 모임 활동까지 했다는 것은 그가 남편 일에 얼마나 깊숙이 개입했는지를 알게 해 준다.

또 하나의 대통령

전두환이 대통령이 된 뒤에도 비슷한 장면들이 있었다. 전두환뿐 아니라 이순자 본인까지 텔레비전에 너무 자주 등장해 국민들이 싫증을 느낄 정도였다. 또 "대통령 영부인 이순자 여사는 22일 오전 과천 중앙공무원교육원에서 실시 중인 제2차 고위 공직자 부인 특별연수에 수강생으로 참가했다"는 1983년 2월 23일 자 <조선일보> 11면 기사에서 알 수 있듯이 공무원 부인들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남편 일을 '내 일처럼'이 아니라 '내 일'로 생각하고 살았음을 알 수 있다.

이순자는 남편의 비자금을 관리했다는 의혹도 받았다. 1996년 5월 5일 자 <경향신문> '이순자 씨가 돈 관리'는 "전두환 전 대통령 비자금 사건을 수사 중인 서울지검 특별범죄수사본부는 4일 전씨의 남은 비자금 대부분이 금융채권과 현금으로 전환돼 부인 이순자 씨와 측근 인사들이 관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고 보도했다.

그는 친정 사람들의 부정부패에도 연루됐다. 1988년 4월 24일 자 <중앙일보> '이순자 여사 친척, 민주(당에)서 부정 공개'에 따르면, 아버지 이규동, 작은아버지 이규광, 남동생 이창석, 제부 홍순두는 이순자와 전두환의 비호 하에 거액의 재부를 축적한 혐의를 받았다. '단군 이래 최대 어음사기 사건'인 장영자도 이규광의 처제였다. 이 사건이 전두환 재임기가 아닌 그 후에 드러났다면 이순자 친정의 연루가 한층 명확해졌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이순자와 그 일족은 부정축재뿐 아니라 권력투쟁에도 개입했다. 전두환 쿠데타 기획자인 허화평•허삼수가 1982년 중반부터 정권 내에서 고립되다가 그해 12월 20일 청와대를 나가게 된 것은 이른바 '이순자족'에게 밀린 결과였다.

전두환 정권 하에서는 전두환을 겨냥한 역(逆) 쿠데타 계획도 있었지만, 이순자를 겨냥한 역 쿠데타 시도도 있었다. 이순자 일족과 파워 게임을 벌였던 허화평•허삼수는 장영자 사건이 터지자 이들과 전두환의 관계를 차단하기 위해 총공세를 벌였다.

1994년 2월 6일자 <동아일보> '남산의 부장들 (173)'에 따르면 장영자 구속 17일 뒤인 1982년 5월 22일, 두 허씨는 전두환을 제외한 12•12쿠데타 주역의 상당수를 서울 궁정동 안기부장 사무실(안가)에 모아놓고 이순자족을 몰아내기 위한 일종의 '역적 모의'를 벌였다. 하지만 두 허씨는 역풍을 맞고 소외되기 시작했다.

두 허씨의 퇴진은 전두환 정권의 컬러를 바꿔놓았다. 집단지도체제 비슷했던 전두환 정권이 외형상 전두환 1인 체제로 변모했다. 이순자 일족이 훨씬 강해진 상태에서 외형상으로 전두환이 강해져 보이는 양상이 출현했다. 이렇게 전두환 정권의 컬러를 바꿔놓을 정도로 권력투쟁에 개입했다는 것은 이순자가 대통령 부인으로 산 게 아니라 또 하나의 대통령으로 살았음을 시사한다.

이순자는 대통령이라는 공식 타이틀만 없었다 뿐이지, 남편의 정치 행적에 깊이 간여했다. 공식 행사와 텔레비전에도 자주 등장했으니 '비선 실세'라는 표현으로는 부족하다. 그냥 실세였다.

이는 이순자씨 역시 전두환 폭정과 무관치 않음을 의미한다. <당신은 외롭지 않다>라는 자서전 제목처럼, 전두환이 가는 길에는 항상 이순자씨가 함께 있었다.


▲ 전두환씨가 11일 오전 광주지법에서 열리는 5•18 민주화운동 당시 '헬기사격'을 증언한 고 조비오 신부에 대한 사자명예훼손 혐의로 재판을 받기위해 연희동 자택을 부인 이순자씨와 함께 출발하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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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려짐: 2021년 11월 29일, 월 9:36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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