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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정치
 
사람들이 잘 모르는 김대중이 전두환을 용서한 이유
김대중의 화해통합론의 정치전략적 성격에 대해서

(서울=오마이뉴스) 장신기 기자 = 전두환은 죽었고 그에 대한 정치적 평가는 끝났지만, 전두환 정권은 군사독재의 폭압성을 가장 압축적으로, 상징적으로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와 관련된 다양한 연구와 역사적 평가는 앞으로도 지속될 것이다. 이와 관련해서 전두환에 대한 화해·용서·관용의 정신을 강조한 김대중의 과거사 문제 해결 방식은 전두환 사망과 함께 다시 한번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왜냐하면 전두환은 죽을 때까지 자신의 잘못에 대해서 사죄를 하지 않고 피해자들에게 깊은 상처를 주었기 때문이다. 죽는 순간까지 이어진 전두환의 악행에 대한 분노는 가해자에 대한 화해·용서·관용의 정신을 강조했던 김대중 노선에 대한 비판으로 이어졌다. 비판의 핵심은 '악을 선의로만 대하면 안 되는 것이고, 역사 정의를 바로 세운다는 점에서 엄격한 단죄가 필요했는데 이 점을 김대중이 간과했다'이다. 김대중의 노선이 인간적, 종교적 차원에서는 이해할 수 있어도 정치적·역사적 차원에서는 실수였다는 것이다.

과거사 문제는 매우 복합적인 성격을 띠기 때문에 어떤 노선과 해법이든 이론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런 점에서 김대중 노선에 대해서 다양한 해석과 평가가 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필자가 보기에는 지금의 비판은 김대중의 과거사 문제 해결 방식인 화해통합론에 대한 정확한 이해에 기초한 것이 아니다.

김대중의 화해통합론은 그의 인간적·종교적 신념과도 관련되어 있지만 그와 함께 정치전략적 성격을 함께 갖고 있다. 그런데 후자에 대해서는 사람들이 대체로 잘 모른다. 심지어 김대중 노선을 이해하고 긍정하는 입장에서도 그렇다. 이와 같은 상황을 고려해서 필자는 전두환 사망과 관련해서 김대중의 과거사 문제 해결 방식인 화해통합론의 정치전략적 측면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한다.

화해통합론을 제시하다

김대중이 화해통합론을 제시한 것은 박정희 정권 때부터다. 김대중은 1973년 8월 납치테러 사건으로 죽을 고비를 넘긴 이후 1973년 10월 말 <뉴스위크>지 동경지국 버나드 크리셔 기자와의 인터뷰에서 "나는요, 박 대통령이 지금 하고 있는 정치, 이래가지고는 절대 안 되겠다 하는 생각을 강력히 가지고 있어요. 우리나라의 장래가 위험하다, 또 국민이 결코 행복할 수 없다,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 나는 박 대통령을 포함해서 어떤 개인에 대해서도 내가 개인적인 원한이라든가 어떤 복수심은 영원히 갖지 않겠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어요"라고 말했다.

이와 같은 입장을 밝혔던 김대중은 1979년 10·26 이후인 1980년 3월 1일에도 "지난날 많은 민주 인사와 저를 괴롭혔던 정치 보복은 종지부를 찍어야 합니다. 이제부터는 그러한 보복의 악순환이 우리 정치 풍토에서 말끔히 사라져야 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위와 같은 김대중의 입장은 전두환을 향해서도 그대로 이어진다. 김대중은 1980년 9월 13일 김대중내란음모조작사건 1심 재판의 최후진술에서도 "마지막으로 여기 앉아 계신 피고들께 부탁드립니다. 내가 죽더라도 다시는 이러한 정치 보복이 없어야 한다는 것을 유언으로 남기고 싶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김대중은 15대 대선을 앞둔 1997년 7월 4일 전두환·노태우 사면 문제에 대해 "전두환·노태우 전임 대통령의 사면 문제는 적극적으로 검토할 때도 됐다고 생각합니다. 다만 두 분의 진실된 사과 절차가 뒤따라야 될 것으로 봅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김대중은 광주학살과 관련된 문제에 대해서도 위와 같은 입장을 제시했다. 김대중은 광주항쟁과 직접적으로 연관된 김대중내란음모조작사건의 피해 당사자였기 때문에 피해자로서 이 문제에 대해서 말할 수 있는 처지이기도 했다. 미국에서 망명투쟁을 할 당시 김대중은 1983년 5월 22일에 열린 광주항쟁 3주년 추도식에 참석해 추도사를 했다. 이 자리에서 광주항쟁의 역사적 의미를 '한'의 관점에서 설명했다.


오늘 우리의 한은 38년 동안 계속된 조국 분단의 한, 건국 이래 거듭된 독재 정치의 한, 1961년 계속된 군인 정치의 한, 경제 건설이 소수에게 집중된 빈부 양극화의 한, 그리고 언론·국회·사법부 등 민권의 보루가 무력해가고 타락돼가는 것을 보는 한 등입니다. 광주 의거는 이러한 우리의 한을 풀고자 일어섰던 것이며 그 한을 안은 채 좌절된 또 하나의 한의 사건입니다. 그러므로 광주의 한은 민주 회복을 통해서 이러한 우리의 길고 긴 한이 풀릴 때만 해결되는 것입니다.

김대중은 한은 보복을 통해서 해소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소원 성취를 통해서 해소될 수 있다는 것을 판소리의 이야기를 통해서 설명했다. 이는 한을 발생시키는 근본 원인을 해결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으로서 광주의 한은 근본적으로 한국의 민주화와 평화통일을 이룩할 때 해결될 수 있다는 입장이다. 이것은 김대중의 화해통합론이 정치전략적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 2006년 10월 10일 청와대에서 열린 전직 대통령 초청 간담회 자리에 참석하려고 노무현 대통령과 김대중, 김영삼, 전두환 등 전직 대통령들이 함께 오찬장으로 들어서고 있다. ⓒ 연합뉴스

정치전략적 차원에서 본 화해통합론

김대중의 화해통합론이 인간적·철학적·종교적 성격을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그런데 그뿐만 아니라 대단히 정교하면서도 치밀한 정치전략적 성격을 갖고 있다. 뛰어난 전략가인 김대중의 진면목을 확인할 수 있는 부분이다. 필자는 이것을 3가지 관점에서 살펴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첫째, 평화적 민주화 이행과 관련한 것으로서 이는 4가지 측면에서 살펴볼 수 있다.

1) 김대중은 기존의 보수 인사들까지 포함한 최대연합이 필요하다고 보았다. 그래서 포용하려는 세력의 적대감을 완화시키고 우호 관계로 변모시켜서 군사독재 정권에 대한 최대압박을 하려고 했다.

2) 김대중은 독재 정권에 대한 최대한의 압박과 함께 박정희, 전두환과의 대화를 통해 평화적인 민주화 이행을 목표로 했다. 김대중은 군사독재 정권이 매우 폭력적이라고 보았기 때문에 그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국민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서 상대에 대한 극단적인 입장을 배제한 것이다.

3) 독재 정권이 민주화 세력을 폭력 혁명을 추구하는 위험한 세력으로 낙인찍는 상황에서 독재 정권의 의도가 관철되지 않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4) 미국을 고려한 것이다. 미국은 동북아 정세의 안정이라는 큰 목표에서 대한정책 방향을 고려했다. 이러한 미국의 의도를 잘 알고 있던 김대중은 한국의 민주화 과정을 불안하게 바라보는 미국 내의 분위기를 진정시키려 했다. 그래서 미국이 독재 정권을 지지하지 않도록 유도하려고 했다.

이처럼 4가지 관점에서 평화적 민주화 이행을 위해서 화해통합론을 제시한 것이다.

둘째, 국가안보 때문이다. 김대중은 화해·용서·관용을 국민통합적 관점에서 중요시했다. 그리고 국민통합은 국가안보에 있어 기본이 되기 때문에 김대중은 자신의 과거사 해결 방법을 국가안보의 관점에서도 인식했다. 김대중은 시민사회 내부의 견고한 연대 의식과 신뢰감이 형성될 때 진정한 국민통합을 달성할 수 있고 이것이 국가안보의 초석이 된다고 생각했다. 이것은 반공국가주의처럼 공포심과 배제의 원리로 제시된 권위주의 정권의 접근 방식과는 다른 부분이다.

셋째, 평화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그의 원대한 구상과 관련 있다. 한국의 지정학적, 역사적 조건에 의해서 과거사 문제는 국내 문제임과 동시에 남북관계, 국제적 성격도 갖고 있다. 그리고 그중에는 상호중첩된 것도 존재한다. 김대중은 이와 같은 과거사 문제의 복합적 성격을 잘 알고 있었고 이 문제를 동시에 해결해야만 한반도의 평화통일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이와 같은 점을 고려해서 김대중이 제시한 노선이 화해·용서·관용이었다. 김대중은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이룩하기 위해서는 북한과 일본 등 한국 주변 국가와 전방위적인 화해 협력이 필요하다고 보았고 그 연장선 상에서 국내 문제에 있어서도 동일한 노선을 강조한 것이다.

이처럼 김대중의 화해·용서·관용의 대상은 전방위적 성격을 띤다. 김대중의 화해통합론은 정교하면서도 담대한 정치적 비전 속에서 나온 전략이다. 김대중의 구상은 한국이 민주화 이행 단계에 있다는 점, 민주화 이후 평화통일의 길을 열어야 한다는 점 등 한국이 처한 거시적인 역사 조건에 대한 냉철한 분석과 이해에 기초한다.


▲ 14일 오전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에 입원중인 김대중 전 대통령을 병문안 온 전두환 전 대통령이 이희호씨에게 "아이고, 얼마나 고생이 많으십니까"라며 손을 잡고 위로하고 있다. 2009.8.14 ⓒ 사진공동취재단

역사 발전에 크게 기여

사실 김대중이 내세운 화해통합론은 인기를 얻기 어려운 면이 있었다. 엄격한 단죄를 통한 청산과 단절론은 선명해보이고 역사 정의에 더 부합한 것으로 보이기 쉽다. 그런데 사회는 다원적이고 복합적이다. 그래서 역사 인식과 이해관계 등에 있어서 선명한 구분이 가능하지 않는 영역이 상당히 존재한다. 정치가 어려운 것이 바로 이러한 점 때문이다.

김대중은 현실적인 구조의 변화를 통해서 과거사 문제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는 데에 목표를 두었다. 민주화 이행, 정권교체, 6·15를 통한 한반도 평화통일 시대의 개척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김대중은 화해통합론에 근거한 정치전략을 통해서 위와 같은 구조 변화를 이뤄냈다. 중대한 역사 발전이었다.

또한 김대중의 화해통합론은 국민통합적 관점에서도 서서히 빛을 보고 있다. 2020년 초 코로나19가 대구·경북 지역에 대규모로 확산되면서 병상 부족과 각종 물자와 인력이 부족할 때, 광주 호남 지역에서 보여준 따뜻한 연대의 정신은 대구·경북 지역을 포함한 모든 국민에게 감동을 주었다.

그리고 5·18 광주항쟁은 국가적인 보편성을 획득했다. 오랜 기간 지역적으로 이념적으로 매도당했던 5·18광주항쟁은 이제 4·19의거와 6·10항쟁처럼 국가적, 국민적 차원에서 인정받는 민주화운동이 되었다. 이와 같은 점을 생각해볼 때 김대중의 화해통합론은 정치적·역사적으로 볼 때 기여한 바가 크다.

김대중의 화해통합론은 그의 인간적·철학적·종교적 인식과 분명히 관련이 있다. 그가 남긴 대표적인 저서인 옥중서신을 포함한 수 많은 글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김대중의 화해통합론은 대단히 치밀하면서도 정교한 정치전략적 성격을 함께 갖고 있다는 점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김대중의 화해통합론은 앞으로도 계속해서 연구와 논쟁의 대상이 될 것이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1년 11월 29일, 월 6:59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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