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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민족/통일
 
"김정은 사망" 무조건 퍼나른 한국 언론은 대체 뭔가
선정주의 대명사 <글로브>를 대하는 미국과 한국 언론의 극명한 차이


▲ 왼쪽은 김여정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여성"으로 표현하면서 김정은 사망을 보도한 지난해 7월 20일 자 <글로브> 1면, 오른쪽은 "김정은이 죽었다"는 제목을 붙인 올해 10월 25일 자 <글로브> 1면. ⓒ 글로브

(서울=오마이뉴스) 이영훈 기자 =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지금까지 두 차례에 걸쳐 '사망'했다. 지난해와 올해의 언론보도만 놓고 보았을 때 그렇다. 건강이상설이나 쿠데타 발생으로 축출되었다는 루머는 제외한 숫자다.

지난해 북한의 태양절(4월 15일) 행사에 보이지 않아 건강이상설이 제기되자, 인터넷 신문 <뉴데일리>는 중국 외교부장의 조카에게서 나온 말과 홍콩 HKS TV 부국장이 웨이보에 올린 글을 토대로 김 위원장이 건강 문제로 4월 25일 사망했다고 보도했다.

미국에서는 지난해 4월 25일 타블로이드 매체인 < TMZ >가 "김 위원장이 죽었거나 회복하기 어려운 상태"라고 중국과 일본 언론을 따라 보도했다. 그렇지만 당시 < TMZ >는 "자신들이 이 사실을 확인한 바는 없다"는 말을 굵은 글씨로 덧붙여 조심스럽게 한 발을 뺐다.

지난해 7월 20일에 이어 올해 10월 25일에도 김 위원장의 사망을 연속으로 보도한 언론이 있다. 미국의 <글로브>로, 주로 세계 유명인사의 가십을 다루는 대표적인 타블로이드 언론이다.

'타블로이드'를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어렵지만, 연예소식과 뉴스를 선정적이면서도 쉽게 읽히도록 버무려 독자들의 이목을 끄는 매체를 의미한다. 원래는 신문 판형 가운데 하나로 일반 신문 절반 정도의 크기를 뜻했으나, 황색언론이 타블로이드 판형을 많이 사용하면서 황색언론의 동의어로 쓰이기도 한다.

내용상으로는 독자들의 기호에 맞춰 연예오락정보, 스포츠, 범죄, 유명인사 등에 초점을 두고 있다. 선정주의의 대명사로 일컬어지는 타블로이드는 교양지가 담아내지 못하는 대안적 공론장이라는 긍정적인 평가와 더불어, 독자가 세상을 잘못 읽도록 만들 수 있다는 부정적 평가가 팽팽히 맞서고 있다.

"거의 사실이 아님"에 위치한 <글로브>


▲ 김여정이 김정은을 죽였다고 주장한 지난 10월 25일 자 <글로브>의 "스페셜 리포트" ⓒ 글로브

지난해 7월 <글로브>는 김여정을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여성"으로 표현하면서 김정은 위원장의 자리를 차지했다는 사실을 "CIA 비밀문서"가 폭로했다고 보도한 바 있다. 이런 보도는 올해에도 이어졌다. <글로브>는 10월 25일 자에 "김정은이 죽었다"는 제목을 달고 살이 빠진 채 공식석상에 나타난 김정은은 김여정이 제거한 후 대체한 대역 인물이라고 "미국 정보통"을 통해 들었다고 보도했다.

이 신문은 김정은이 공식석상에 나타나지 않았던 지난 5월 6일에서 6월 5일 사이에 김여정이 김정은의 처형을 지휘했을 것으로 "CIA 스파이"가 보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김정은이 자신을 처형시키려 한다는 계획을 알고 난 후, 자신을 따르는 군부 세력의 지원을 받은 김여정이 외딴 정부 시설에서 그를 제거했다는 말을 "정보 분석가들"로부터 들었다고 보도했다.

'스파이', '소식통', '정보 분석가'에 '비밀문서'란 단어까지 요란하게 등장했지만, 이 신문의 보도 내용을 그대로 인용하거나 비중 있게 다룬 미국 언론은 없었다. 한국 언론이 앞다투어 <글로브>의 보도를 퍼나르다시피 한 것과 대조적이다. 이후 국가정보원(국정원)은 <글로브> 보도가 "사실이 아니다"고 밝혔다. 국정원은 인공지능 등 여러 과학적 기법을 통해 김 위원장의 건강 상태를 추적해 왔고 얼굴 피부의 상태까지 파악할 수 있는 초해상도 영상도 분석했다고 강조했다.

<워싱턴포스트>도 지난해 사망설 이후 김정은이 공식석상에 다시 모습을 드러내자 언론들이 왜 그런 보도를 내놓았었는지를 분석했다. 이 신문은 다른 나라와 달리 북한은 엄격히 통제된 나라이고 한국 언론들도 항상 믿을 수 있는 출처는 아니기에 "믿지 말고 확인할 것"을 주문하면서 "정보라고 해서 그다지 믿을 만한 것은 못된다"고 뼈아프게 충고했다.

그렇다면 <글로브>는 어떤 언론일까. 4100개가 넘는 언론의 성향과 팩트체크를 분석하는 웹사이트 '미디어바이아스팩트체크'는 <글로브>를 '사실 보도'의 기준에서 가장 낮은 단계인 "거의 사실이 아님"에 위치시키면서 "출처가 의심되는" 언론으로 평가했다. 음모론을 꾸준히 확산시키고 신뢰할 만한 근거 정보가 없거나 부실하며 투명성이 없는 '가짜뉴스'에 머무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미디어바이아스팩트체크'는 가짜뉴스를 "이익과 영향력을 얻으려고 공공연히 거짓말을 하거나 허위사실을 게재하려는 고의적인 시도"라고 못을 박아 놓았다. 결국 <글로브>는 "낮은 신뢰도"를 가진 언론이라는 부끄러운 점수를 받았다.


▲ "미디어바이아스팩트체크"는 <글로브>를 "사실 보도"의 기준에서 가장 낮은 단계인 "거의 사실이 아님"에 위치시키면서 "출처가 의심되는" 언론으로 평가했다. ⓒ 미디어바이아스팩트체크

앞 다투어 퍼나른 한국 언론의 책임

지난 1991년 미국 배우 톰 셀렉이 <글로브>를 상대로 한 법정 소송에서 '지면 사과'라는 승리 판결을 받아내긴 했지만, 가십거리 대상이 된 유명인사들이 이런 매체를 상대로 싸워 이기기란 쉽지 않다. <뉴욕타임스>는 유명인사들이 타블로이드들을 상대로 싸우고 싶어 하지만, 실제로 소송까지 가는 경우는 거의 없을 뿐 아니라 소송에서 이기는 일도 거의 없다고 말한다. 타블로이드 매체들은 수많은 변호사를 거느리고 공격적으로 맞대응을 하며 수년에 걸쳐 수십만 불이 들어가는 지루한 법정싸움으로 끌고 가고야 만다.

타블로이드 측 변호사들이 변호를 준비하면서 유명인사들의 사생활을 캐게 되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명예훼손을 충족시키는 기준이 법적으로 굉장히 높은 것도 큰 부담감으로 작용하게 된다. <뉴욕타임스>는 타블로이드의 전략을 "전갈 방어"라고 지적했다. 쏘일 것을 알기에 함부로 건드리지 못한다는 뜻이다.

영국의 BBC는 교양지가 사실적이고 직설적인 제목을, 타블로이드는 선정적이고 감성적인 제목을 뽑아낸다고 비교했다. 전자가 공식적인 언어를 사용한다면 후자는 극적이거나 선정적인 표현을 담아낸다. 달리 말해 교양지는 객관적 사실과 의견을, 이에 비해 타블로이드 언론은 유머, 스캔들, 기이한 이야기와 같은 개인적인 차원의 '재미'를 추구한다는 것을 뜻한다.

타블로이드가 대안적 공론장이라는 건설적인 기능을 하는 것은 구분된 경계선 안에서 놀 때다. 금기된 선을 넘어 재미가 사실로 둔갑하는 순간 사회는 극심한 혼란에 빠진다. 재미를 만들어낸 이들은 이미 법망을 빠져나갈 준비가 되었다.

그렇다면 미국 언론은 외면한 <글로브>의 김정은 사망 보도를 앞다투어 퍼나른 한국 언론의 책임은 어디까지일까? <워싱턴포스트>의 충고처럼 '믿지 말고 확인하는' 언론 본연의 자세부터 되돌아봐야 할 듯하다. 타블로이드로 전향한 것이 아니라면 말이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1년 11월 02일, 화 5:31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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