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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 종교
 
천국환송예배
[호산나칼럼]

(서울=코리아위클리) 최태선 목사(어지니교회) = 순교는 불행한 것인가. 모르겠다. 나는 순교의 상황을 경험해보지 않았다. 그러나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의 사고에서 순교는 절대적으로 혹은 무조건 피해야 할 위험이다. 그러나 성서 속의 기사나 유대교나 그리스도교 역사속의 순교자들의 이야기를 천천히 묵상해보면 순교자들의 생각은 달랐다.

먼저 다니엘의 세 친구의 기사를 생각해보자.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신앙으로 그들을 이해한다. 그런데 사실 ‘그리 아니하실지라도’가 의미하는 것은 나의 뜻과 하나님의 뜻이 다른 경우를 의미한다.

주님의 십자가가 바로 그런 경우이다. 주님이 십자가를 결정하셨을 때 그분이 불행을 택했다고 생각하셨을까.

잘 생각해보라. 물론 그분은 피땀을 흘리시며 기도하셨다. 결정하기가 어려웠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마침내 십자가를 지기로 결심하셨다. 그것이 망하는 것이고 불행한 선택이었는가. 대답은 긍정과 부정이 모두 가능하다. 세상의 세계관을 따르면 십자가는 망한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 나라의 세계관을 따른다면 그것은 승리다. 그러므로 긍정과 부정을 결정하는 것은 세계관의 차이이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들은 어떤 세계관을 가져야 하는가. 당연 하나님 나라의 세계관을 가져야 할 것이다. 하나님 나라의 세계관을 가지지 않는다면 애초에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이렇게 생각한다면 오늘날 그리스도인들 대부분은 자신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이 아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세상의 가치관을 따라 살아가려 하면서 자신을 그리스도인이라 확신한다. 이것을 키에르케고르는 ‘거위’에 비유했다. 그의 생각 속에서 날지 못하는 새는 새가 아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이 그렇게 되었다. 그가 지적하는 것이 바로 세계관의 잘못이다.

그러면 이제 우리는 대답할 수 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면 순교는 영광이다. 토를 달 필요가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면 순교는 어리석은 희생이다.

그렇다면 부활을 생각해보자. 부활은 십자가의 결과이다. 십자가가 없으면 부활도 없다. 십자가가 무엇인가. 그것은 죽음이다. 그리스도교는 그 죽음을 순교라고 한다. 그리스도교 진리가 명확해지지 않는가.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 없는 부활은 없다고 곧잘 말하면서도 십자가는커녕 조그마한 희생이나 양보조차도 용납하지 못한다.

무조건적인 환대나, 무조건적인 용서와 같은 성서의 요구가 오늘날 그리스도교에서 사장된 것은 바로 이런 그리스도인의 현실과 무관하지 않다. 그래서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부자로 사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터무니없는 주장을 하기에 이르렀다. 자신들의 욕망의 성을 지어놓고 그것을 하나님이 다 하셨다고 주장한다. 그 어처구니없는 주장을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잘도 수용한다.

그래서 나는 천국환송예배와 같은 어처구니없는 예배를 드리지 말라는 것이다.

고인이 순교한 경우에도 우리는 천국환송예배라는 이름을 함부로 사용해서는 안 된다. 순교를 판단하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순교는 십자가를 선택하는 것이며 십자가를 선택하지 않은 죽음을 모두 천국행으로 확정짓는 것은 순교를 부인하는 것이며 순교에 대한 모독이다.

천국환송예배는 순교자들의 축제가 되어야 한다. 잘 생각해보라는 의미이다. 과연 고인이 순교자인가. 그렇지 않다면 천국환송예배라는 축제는 무례한 것이며 어처구니없는 것이며 그리스도교를 말살하고 토대 자체를 허무는 가장 큰 악행이다.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와 복음을 선택하면 세상과의 충돌을 피할 길이 없다. 나는 그리스도와 복음을 택했다. 그러나 결과는 참혹하다. 나는 집 한 칸 없는 노년을 지나면서 세상의 멸시와 천대를 온몸으로 경험한다. 특히 아내와 두 딸들이 겪어야 하는 서러움은 나를 힘들게 한다. 정말 감내하기가 어렵다. 내가 딸들에게 집이나 차를 사줄 수 있는 부자로 그대로 남아있었다면 내 딸들은 그런 서러움을 당할 필요가 없다. 인간적으로는 정말 가족들에게 미안하다. 그러나 내가 선택한 길은 십자가를 지는 길이며 순교를 향해 가는 길이다.

세상의 부귀영화를 자녀들에게 주지 못하지만 나는 더 영광스런 십자가와 순교를 아이들에게 줄 수 있다.

다시 한 번 잘 생각해보라. 십자가와 순교를 아이들에게 물려줄 수 있겠는가. 그것이 더 영광스러운 일이라고 정말 믿을 수 있겠는가.

1573년 아나뱁티스트들이 유럽에서 박해를 받던 시절, 젊은 아나뱁티스트 John Van Munstdrop과 그의 아내 Jannesken이 네덜란드 아나뱁티스트 모임에서 체포되었다. 그들은 결혼한 지 일 년도 채 안 되었다. 그들은 앤트워프의 감옥에 감금되었다. 남편인 John이 먼저 화형을 당했다. 그의 아내 Janneken은 임신 중이어서 아이를 낳을 때까지 살 수 있었다. 남편의 화형 직후 아내 Janneken은 어린 딸을 낳았는데 자기와 같은 이름을 그 아이에게 주었다. Janneken이 남편의 뒤를 따라 화형을 당하기 전, 핏덩이 간난 아이에게 편지를 남겼다.

내 사랑하는 어린 양 내 딸아!

너로 인한 나의 슬픔이 크고 또 그렇게 지내왔구나. 그러나 네가 이해하는 나이가 되었을 때에 물론 이 길이 육신적으로는 너무나 어려운 길이 되겠지만, 좁은 길을 구하거라. 네가 성경을 부지런히 연구하고 읽으면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대해서 많이 나와 있는 것 같이 이 길을 보고 알게 될 것이다. 세상에는 십자가의 대적이 되는 이들도 많단다. 그들은 세상 가운데에서 이 길로부터 자유하려고 하고 도망가려고 한단다.

그러나 내 귀여운 아이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구원을 찾고 상속 받으려 한다면 우리는 그분의 십자가를 지어야 한다. 그분이 우리에게 지우신 십자가는 이것이니 곧 그분의 가신 발자국을 따라 가는 것, 그분이 말씀하신 것을 받아들이는 것인데 그분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내 이름을 위하여 핍박을 받고, 죽임을 당하며, 산산히 흩어지리라’ 하셨다. 그 분 자신이 이미 우리 앞서 그런 길을 가셨다. 그리고 우리에게 우리가 따라야할 모범을 남기셨다. 그 분을 위해서 우리는 모든 것을 버린다. 때로는 아버지도, 어머니도, 언니, 누나도 형, 오빠도, 동생도, 남편도, 아내도, 아이도 그렇다. 자기 목숨까지도 말이다. 내 사랑하는 딸아! 이것이 내가 네게 부탁하는 것이다.

아직 작고 어린 내 아기야!

내가 이것을 쓰고 있었을 때 너는 겨우 한 달이 지난 갓난아기였다. 나는 이제 곧 주님의 도움으로 나의 생명을 주께 드리고 이것을 네게 남기고자 한다. 그러니 너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과 늘 연합하여 나의 부탁하는 것을 이루거라. 세상의 허영과 자랑을 삼가고 지옥의 심연으로 인도하는 경관들도 삼가라. 너는 마치 아브라함이 그랬던 것처럼, 이곳에서 저곳으로 피해 다니며 어느 곳에서도 자유를 갖지 못했던 적은 수의 이스라엘인들, 그들을 보며 본향을 찾거라. 네가 너의 구원을 구하면 어느 길이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인지, 어느 길이 사망으로 인도하는 길인지 네가 알 것이다. 너를 여기 두고 떠나는 이 어미 마음에 내가 너를 기르는 것이 주님의 기뻐하시는 뜻이라면 얼마나 좋겠느냐? 그랬다면 내가 이 일에 최선을 다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주님의 뜻이 아닌 것 같다. 그것이 허락되지 않았지만 짧은 시간이나마 이렇게 너와 함께 있었다. 주께서 나를 너로부터 데려가실 수도, 그래서 네가 나 없이 아버지와 이 어미 없이 네가 지금 있을 수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짧은 시간이나마 함께 살 수 있었고 우리는 너무 친밀했으며, 주께서 우리를 너무나 잘 묶어 주셔서 세상의 어느 것, 온 세상과도 서로를 바꿀 수 없도록 만들어 주셨단다. 그리고 이제는 우리가 주님을 위하여 헤어져야 하는구나.

그러므로 나의 가장 사랑하는 어린 양 내 딸아!

나는 너를 여기 남겨두고 떠나야 한단다. 하지만 너를 창조하시고 너를 만드신 주께서 나를 네게서 취하는 것이란다. 이것이 그 분의 거룩한 뜻이다. 지금 나는 선지자들과 그리스도를 위하여 순교한 자들이 통과한 좁은 길, 그리스도를 위하여 죽은 자들, 영원한 것이 아닌, 유한할 수밖에 없는 의복의 몸을 벗어버린 수천의 사람들이 통과한 그 길을 통과해야 한단다. 그들은 지금 그 수가 차기까지 제단 아래에서 기다리고 있으며 너의 사랑하는 아빠도 그 중 한 분이시다. 그리고 내가 지금 그 분을 따르는 시점에 와 있구나. 이로써 내가 너를 주님께 그리고 그의 은혜에 위로하시는 말씀께 부탁하노니, 다시 한 번 네게 안녕을 고한다. 내가 너를 기다릴 것이다. 나를 따르라, 내 가장 사랑하는 아기야! 다시 한 번 아듀, 지상에서 내가 가장 사랑하는 아이야, 아듀! 그 이외에는 없다, 아듀, 나를 따르라, 아듀 잘 있거라!
-중에서 -


다시 한 번 이 편지를 천천히 읽어보라. 나는 눈물로 이 편지를 읽었다. 슬프기도 하지만 너무나 고맙기 때문이다. 나는 이 편지를 쓴 엄마가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바른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 행복한 선택을 했다고 생각한다. 이런 믿음을 선택하고 자신이 선택한 그 믿음을 따르라고 자녀(들)에게 말할 수 없다면 천국환송예배는 드리지 말라. 생명은 생명을 낳고 죽음은 죽음을 낳는다.
 
 

올려짐: 2021년 10월 25일, 월 2:29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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