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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 문화
 
능숙해진 사격술
[홍명도 실명소설: 저격 7]




(서울=오마이뉴스) 방현석(소설가)

14

"다 뺏겼지?"
신포수는 완전히 거지꼴이 된 나와 산돌이를 다시 훑어보며 혀를 끌끌 찼다.

"총 값 모은 것도 다 뺏겼어요."
내년 한 해만 더 모으면 벼 열 섬 값이었는데 모두 수포로 돌아가고 말았다.

"산삼 밭을 뒤집어 놓고 가는 걸 보고 그럴 줄 알았다."
"아저씨가 산삼밭을 어떻게 알아요?"
"이 산에서 내가 모르는 것이 있을 것 같아?"
나는 의아한 눈빛으로 신포수를 바라보았다.

"그럼, 그동안 왜 안 캐갔어요?"
"사냥꾼은 움직이지 않는 건 잡지 않아."
나는 더 의아한 눈빛으로 신포수를 바라보았다.

"나는 낭림산맥 전부를 사냥터로 가졌고, 거긴 철을 들지 않은 네 아비의 유일한 사냥터였다."
그는 더 말하지 않았다.

"그렇지요. 아저씨가 이 산에서 사냥한 짐승들은 아저씨 것이고, 아비와 내가 캔 산삼은 우리 것이지요?"
그는 안개가 대치 전선을 위로 끌어올리고 있는 계곡과 눈에 덮인 능선을 굽어보며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눈은 왜 겨우내 이 산을 뒤덮고 있을까. 그냥? 아니야. 눈은 말이야, 마른 땅을 적시고, 그 땅속에서 움을 틔우는 씨앗들이 얼어 죽지 않게 온몸으로 지키며 겨울을 견디고, 날이 풀리면 녹아내려 나무와 풀을 키우고 계곡을 이루며 흘러가는 거야."
그렇지 않아도 느릿느릿한 말을 멈추고 신포수는 권련을 꺼내 물었다.

"그렇게 흘러가는 계곡물을 먹고 자란 짐승들은 모두 눈의 자식들이지. 그런데 누가 이 산의 풀과 나무, 짐승을 키웠다고 하겠어? 삼, 주인이 누굴까? 있다면 아침저녁으로 삼을 키운 이슬과 바람, 낮밤으로 삼을 지킨 해와 달이겠지."

신포수를 만나서 들은 가장 긴 얘기였다. 그의 말은 지난 5년 동안 내 가슴 한 구석을 불편하게 만들었던 미심쩍음을 깨끗하게 격파하는 일격이었다.

"먹다 남은 거 있어요? 산돌이 좀 줘요."
내가 사흘을 굶었다는 말은 하지 않았다.

"들어가자. 그렇지 않아도 왔으면 싶었다."
"제가요?"
그 경황에도 나는 반색을 하며 신포수를 쳐다봤다.

"아니. 저놈 말이야."
신포수는 턱으로 산돌이를 가리켰다.

"칫."
신포수는 땅을 파고 통나무로 벽을 세운 포수막의 거적문을 들어 올렸다. 신포수를 따라 들어간 토굴의 바닥에는 여전히 범 가죽이 깔려 있었다. 망설이는 내 어깨를 눌러 범 가죽위에 앉혔다. 무너지듯 내가 앉자 산돌이도 내 옆에 비스듬히 누웠다. 부러진 다리를 이끌고 이틀 밤낮을 걸은 녀석도 지칠대로 지쳐 있었다.

신포수는 멧돼지 고기를 말린 육포를 꺼내주고는 불을 피워 밥을 올렸다. 밥물이 끓는 냄새와 함께 더운 공기가 포수막을 채웠고, 나와 산돌이는 육포를 입에 문 채 스르르 잠에 빠져들었다.


15

포수막에 봄이 왔다.
겨우내 쌓인 흰 눈이 녹아내리며 진회색으로 변했던 산에 연두색이 차오르기 시작했다. 나무줄기에 물기가 오르고 잎사귀가 돋아나며 스산하던 강막골산은 며칠 사이에 초록으로 바뀌어갔다.

꿩잡이를 나가는 날이어서 아침을 늦게 먹는 대신 배를 꽉 채우지 않았다. 많이 이동하려면 몸이 가벼워야 했다.

산돌이도 평소보다 3할을 적게 먹였다. 꿩잡이는 산돌이의 역할이 절대적이었다. 은신술이 뛰어난 꿩을 산돌이가 찾아내야 사냥이 가능했다.

아침 해가 떠오르자 눈부시게 빛나는 햇빛을 타고 꿩들이 산기슭으로 무리지어 하강했다.

"몇 마리냐?"
신포수가 탄띠를 두르며 물었다.
"서른 마리가 넘습니다."
"정확히."
"서른여덟 마리입니다."
"가자."

산돌이가 앞장을 섰다. 겨우내 절뚝이던 녀석의 다리도 이제는 완전히 회복이 되었다. 나도 고구마가 든 바랑을 등에 메고 화승총을 손에 들고 따라나섰다. 비록 화승총이었지만 내가 몰이꾼이 아닌 신포수의 조수라는 분명한 표식이었다.

꿩이 내려앉은 골짜기에 도착했지만 눈에 들어오는 건 한 마리도 없었다. 경계심이 유달리 강한 녀석들은 인기척을 듣고 벌써 몸을 숨긴 다음이었다. 신포수는 꿩 무리가 물을 먹은 골짜기부터 수색을 시작했다. 얼었다 녹은 땅을 꼼꼼하게 살피던 신포수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곳에는 희미하지만 분명한 꿩의 발자국이 찍혀 있었다. 큼큼, 코로 그 자리의 냄새를 확인한 산돌이는 숲을 향했다. 경계심이 강하고 은신술이 뛰어난 꿩은 자신의 능력을 과신해 멀리 도망가지 않는 게 약점이었다.

"준비됐어?"
신포수는 노리쇠를 당기며 나에게 물었다.
"네."

"조준하여 방아쇠를 당기는데 0.4초, 탄환이 총열의 통과하는데 0.03초, 탄환이 스무 자 날아가는 데 0.07초, 총 0.5초. 몇 자 앞?"
"꿩은 1초에 열 자 날아오르니까 다섯 자 앞을 쏴야죠."
신포수는 검지를 들어 두 번 흔들었다. 일격필살!

잡목을 우회하던 산돌이 어느 순간 숲속으로 돌진했고, 꿩들이 푸드득 푸드득 날아올랐다. 신포수는 다섯 발을 쏴 다섯 마리를 떨어뜨렸고, 나는 한 발을 쏴 한 마리를 떨어뜨렸다. 그건 사격술의 차이만이 아니었다. 그의 소총은 장탄에 2초도 걸리지 않았지만, 내가 가진 화승총은 장약을 다시 하기도 전에 꿩들이 사정거리를 벗어났다.

"몇 마리냐?"
"여섯 마리 떨어졌고, 스물아홉 마리가 날아갔습니다."

숲에 떨어진 꿩 한 마리를 물고 나온 산돌이에게 신포수가 팔을 뻗어 다시 숲으로 뛰어들라고 신호했다. 숲으로 들어가지 않는 녀석을 향해 내가 다시 손짓을 하자 녀석은 비로소 숲 주변을 탐색했다. 귀를 세운 채 기습태세를 갖추고 천천히 움직이던 산돌이가 숲으로 뛰어들었고 세 마리의 꿩이 날아올랐다. 신포수가 두 발을 쏘고 내가 한 발을 쏴서 세 마리를 떨어뜨렸다. 첫 번째 작전에서 우리는 아홉 마리를 잡았다.

산돌이를 앞세워 우리는 숲을 수색해 떨어진 꿩을 회수했다. 아홉 마리의 꿩을 바랑에 담아 내가 짊어지고 우리는 두 번째 작전지로 이동했다. 총격을 당한 꿩 떼는 산의 정상 너머로 이동했다. 꿩들이 날아서 넘어간 산을 우리는 달려서 넘어갔다.

일주이격, 추격하는 주력이 첫째고 저격하는 것은 둘째다. 신포수가 몰이하기를 싫어하는 내게 한 말이었다. 우리는 정말 하루에 2백리 넘는 산길을 달린 날도 있었다. 멧돼지 한 마리를 사흘에 걸쳐서 추격할 때였다. 신포수는 목표로 삼은 상대를 포기하는 법이 없었다. 그 멧돼지를 쫓는 동안 노루와 사슴과 마주쳤지만 눈길도 주지 않았다. 사흘 동안 바위틈에 비박을 하면서 우리가 달린 산길이 450리였다. 그 멧돼지는 무섭게 잘 달렸지만 길목을 노리고 추격하는 우리를 끝내 이기지 못했다.

산의 정상을 넘어서면서부터 수색을 시작한 우리는 한 시간이 지나서 꿩들의 은신처를 찾아냈다. 이번에도 몰이는 산돌이의 몫이었다. 산돌이의 습격을 피해 날아오른 꿩은 모두 스무네 마리였다. 신포수가 네 발을, 나는 한 발을 썼다.

두 번째 발사한 것이 내 탄환이었고, 분명히 꿩이 휘청했는데 떨어지지 않고 고도를 유지하며 날아갔다. 사정거리를 벗어나기 직전의 꿩을 저격한 다음에야 신포수는 내 탄환을 맞고도 날아가는 꿩을 응시했다. 그 꿩이 시야에서 사라지자 그는 혀를 쯧쯧 찼다.

"머리를 겨냥했어야지."
"몸통에 제대로 맞았는데..."
"배보다 더 아래를 맞힌 거야. 배 아래는 치명상을 입어도 날개를 접지 않아. 바람을 타고 5리도 날아갈 수 있어."

"못 찾겠죠?"
"늑대가 찾겠지. 여기 아직 숨은 놈이 몇 마리야?"
"네 마리 떨어지고 열아홉 마리 날아갔으니까, 한 마리 남았습니다."

신포수는 나와 산돌이를 번갈아 쳐다보며 턱짓을 했다.

"주인께서 지시해."
산돌이는 내 손짓에 따라 숲을 향해 공격태세를 갖췄다.
"쏘는 것도 주인께서 해."
신포수는 내게 검지를 두 번 내밀어 보였다. 일격필살. 나는 장탄을 했다. 반대쪽으로 모습을 감췄던 산돌이가 돌진하는 소리가 들리고 곧 꿩 한 마리가 날아올랐다. 나는 호흡을 가다듬고 천천히 꿩의 머리를 겨냥했다. 탕! 명중이었다.
그런데 꿩이 떨어지지 않고 도리어 수직으로 상승했다.

"어... 정통으로 맞았는데."
나는 신포수를 쳐다보며 변명을 했다. 신포수는 씩 웃으며 하늘로 시선을 돌렸다. 수직상승하던 꿩이 갑자기 수직낙하하기 시작했다.

"좀 쏘네. 머리에 명중하면 저렇게 되는 거야."
두 번째 작전에서 잡은 다섯 마리는 신포수가 바랑에 넣어 짊어졌다.
"가자."

신포수의 말이 떨어지게 무섭게 나는 포수막으로 돌아가려고 발길을 돌렸다. 점심으로 고구마 두 개를 먹었지만 뱃가죽이 등에 가 붙은 것 같았다.

"이쪽으로 가야지."
돌아보는 나를 향해 신포수는 꿩들이 날아간 능선을 가리켰다.

세 번째 작전은 쉽지 않았다. 두 시간 가까이 잡목을 아무리 수색해도 꿩 떼를 찾을 수가 없었다.

산돌이가 하늘을 향해 으르렁거린 것은 포기하고 돌아가자는 말을 꺼내려는 찰나였다. 아무것도 없는 하늘을 쳐다보고 공격태세를 취하는 산돌이를 의아해 하는 나와 달리 신포수는 재빨리 노리쇠를 당기며 사격준비를 했다. 그리고 곧 꿩들이 날아올랐다. 잡목과 수풀 속에서 숙영하는 녀석들이 뜻밖에도 소나무 높은 가지에 은신해 있었던 것이다.

"탕"

신포수가 일격을 하고 나서야 나도 정신을 차리고 오른쪽으로 날아오른 꿩을 조준했다. 날개 아래, 몸통 상부를 맞은 꿩은 날개를 접고 바로 추락했다. 신포수는 네 발을 더 사용해서 세 발 명중시켰다. 한 발은 흔들리던 소나무 가지에 걸렸다.

"다섯 마리 떨어지고 열다섯 마리 날아갔으니까, 네 마리 남았습니다."
산돌이에게 아직 숨어 있는 꿩 수색을 시키려는 내 팔을 신포수가 잡았다.

"잡은 게 전부 몇 마리야?"
"열아홉 마린데 한 마린 회수를 못해서 열여덟 마립니다."
"됐다."
"남은 네 놈이라도 잡고 가죠."
"우린 이만하면 됐고, 얘들도 절반은 살려서 보내야지."

십리를 추격해 왔는데 눈앞에 있는 사냥감을 놔두고 돌아서는 게 아쉬워서 나는 발이 잘 떨어지지 않았다. 꿩 욕심보다도 내 사격술을 더 확인해보고 싶은 욕심이 더 크기도 했다.

"비 오기 전에 빨리 가자."
신포수가 머뭇거리는 나를 재촉하며 하늘을 쳐다봤다. 하늘은 오전과 마찬가지로 맑았다.

"말짱한데요."
"아냐, 비가 내릴 거야."
포수막에 돌아오자 해가 기울었고, 하늘은 먹구름으로 덮였다.

"정말 봄비가 내릴 거 같아요."
"그럼, 내가 빈말 하는 줄 알았어."
"아직 안 오는데요."
"내일 아침까지 안 오면 내 총 니 화승총하고 바꿔줄께."
"정말요?"
"정말인지 아닌지, 한 번 봐."

저녁을 먹고 나서 신포수는 잡아온 꿩의 내장을 끄집어냈다. 내게도 갈퀴처럼 생긴 나뭇가지를 꺾어오게 해서 날것의 내장 빼는 방법을 가르쳐주었다. 갈퀴모양의 나뭇가지를 항문으로 깊이 집어넣어 당기자 내장이 주르르 끌려나왔다.

"바로 쓰지 않는 꿩은 내장을 완전히 빼야만 해. 내장이 속에 남아 있으면 썩어 들어가서 고기도 못 먹고, 박제로도 못써. 건조시켜 약재로 못 쓰는 건 물론이고."

꿩은 해열제로 효험이 있었다. 지난겨울 산돌이와 내가 도망쳐왔을 때 신포수가 내준 육포도 꿩고기였다는 걸 나중에 알았다. 나도 산돌이도 타박상과 골절상을 입고, 신열까지 앓았지만 꿩고기 덕분이었는지 무사했다. 꿩 열여덟 마리의 내장을 다 빼냈을 때 밖에서 빗소리가 들리기 시작했다.

"정말이네요. 비가 올 줄 어떻게 알았어요?"
"꿩이 가르쳐줬잖아. 못 들었어?"
"에이, 꿩이 무슨 말을 해요."
"범바위 근처, 나무 위. 꿩은 날씨를 예측하는 신비한 감각과 영특한 능력을 가지고 있어. 그래서 평소에는 나무 위에서 쉬거나 잠을 자지 않는 녀석들이 비가 오기 전에는 반드시 나무로 피해. 오늘 마지막에 본 꿩들이 어디에 앉아 있었냐?"
"저는 제 총이 좋아요."

봄비는 초록으로 짙어가는 강막골산을 적시고, 멀리서 들려오는 늑대 울음소리와 함께 포수막의 밤은 깊어갔다. 늑대의 울음소리에 귀를 세우던 산돌이도 잠이 들고, 억새를 얹은 포수막의 지붕도 젖어갔다. (다음호에 계속)
 
 

올려짐: 2021년 10월 14일, 목 8:53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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