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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에세이] 기고
 
박정희, '사태 악화되면 내가 발포명령'
[김재규 평전 제20회] 주부들이 시위대에 김밥과 음료수 날라다 주는 시민혁명 수준


▲ 부마항쟁 ⓒ 진실위 자료사진

(서울=오마이뉴스) 김삼웅 기자 = 김재규는 마침내 올 것이 왔구나, 싶으면서도 참담한 심경을 가누기 어려웠다.

10월 18일 부산에 계엄령이 선포되고, 그는 헬기를 타고 시위 현장을 둘러봤다. 그리고 부산 관계기관 책임자들을 만나 상황을 들었다. 서울에서 청취한 보고 보다 상황이 훨씬 심각하다는 판단이었다.

현지에서 상황을 알아보니 180명의 구속자 중 학생은 16명에 불과하고 나머지는 모두 민간인이고, 검경이 주장한 남민전이라는 불순세력의 배후조종이란 증거도 없었다.

자연발생적인 반정부 민란의 성격으로 주부들이 시위대에 김밥과 음료수를 날라다 주는 등 시민혁명의 수준이었다.

정확한 실정을 보고하기 위해 대통령을 만났다. 경호실장 차지철과 비서실장 김계원 등이 함께하는 자리였다. 김재규는 12월 8일 열린 군사법정에서 검찰신문과 변호인 반대신문에 이어 진행된 재판관의 신문에서 그때 대통령에게 보고한 내용을 다음과 같이 진술했다.

데모 양상을 보니까, 데모하는 사람들에게 주먹밥을 주고 사이다 콜라를 갖다 주고 경찰에 밀리면 자기 집에 숨겨주고 하는 것이 데모하는 사람들과 시민들이 완전히 의기투합한 상태였습니다. 그 사람들의 구호는 주로 체제에 대한 반대, 조세에 대한 저항, 물가고에 대한 저항, 정부에 대한 불신에 관한 것이었고, 이런 것이 작용해서 경찰서 11개를 불 지르고 경찰차량 10대를 파괴해 소각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각하께 보고 드렸습니다. "각하, 체제에 대한 저항과 정부에 대한 불신이 이렇습니다"라고 하면서 각하의 생각을 좀 누그러뜨리려고 했지만 또 반대효과가 났습니다.

이곳엔 변호인밖에 없긴 하지만 이 말씀은 밖으로 안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각하께서는 "이제부터 사태가 더 악화되면 내가 직접 쏘라고 발포 명령을 내리겠다. 자유당 말기에는 최인규와 곽영주가 발포 명령을 했으니까 총살됐지, 대통령인 내가 발포 명령을 하는데 누가 날 총살하겠느냐."고 하셨습니다. 이런 데다가 차지철 경호실장은 "캄보디아에서는 300만 명이나 희생시켰는데, 우리는 100만, 200만 명 희생시키는 것쯤이야 뭐가 문제냐"고 했습니다.

누구나 들으면 소름 끼칠 내용들입니다. 이렇게 건의를 쭉 해봤지만 건의하면 할수록 반대효과만 났습니다. 처음에 제가 부임할 때는 순리적인 방법으로 유신체제를 바꿔놓을 절호의 기회라고 생각했는데, 결국 불가능이라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주석 9)

유신말기 박정희와 차지철의 시국인식은 그야말로 '소름 끼칠' 정도였다. 그들은 권력을 놓지 않기 위해 능히 못할 짓이 없었다. 박정희는 어떤 심리였을까. 박정희의 '정신분석'을 연구한 신용구 씨는 "대담하면서도 소심했고 공격적인 동시에 한없이 유약했던" 인물로 분석한다.

박정희가 메시아적 존재를 자아 이상으로 설정한 것은 죽음에 대한 그의 무의식적 공포와 매우 밀접하게 관련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두 가지의 강렬한 불안 - 유기불안과 거세불안 - 으로 인해 늘 생존에 위협을 느끼고 있던 그로서는 죽음에 대한 공포 역시 그만큼 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지나칠 정도의 경쟁적 태도나 강박증 역시 죽음과 관련돼 불안을 해소하기 위한 노력의 부산물이었음을 감안할 때, 결국 그의 핵심적인 갈등의 요체는 죽음에 대한 공포였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런 문제들에 시달리던 그의 입장에서는 절대적인 힘을 가진 메시아적 인물이 되는 것보다 더 효과적인 불안 해소 방법은 없었을 것으로 보인다. (주석 10)

김재규는 비장한 결심을 하기에 이른다. 온건한 방법도, 충간도 먹히지 않는 상황에서는 자신의 몸을 던지기로 결단한다. 박과 차의 거침없는 발언으로 보아 장차 나라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 지 우려되었다.

저는 이승만 대통령과 박정희 대통령을 비교해보았습니다. 이 대통령은 물러설 때 물러설 줄 알았는데, 박 대통령의 성격은 절대로 물러설 줄 모릅니다. 국민과 정부 사이에서 반드시 큰 공방전이 벌어지고, 수없이 많은 사람이 상할 것이 틀림없었습니다.

그리고 현재만 하더라도 약 400~500명이 교도소에 있고, 학교에서 쫓겨난 학생 수가 800~1000명 정도입니다. 결국 자유민주주의를 해야 할 나라가 독재를 하면서, 원천적으로 정부가 해서는 안 될 독재를 저질러놓고 독재체제를 반대하는 사람을 처벌하거나 완전히 적반하장 격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아무리 생각해봐도 역시 방법이 없습니다. 아까 말씀드린 바와 같이 대통령 각하와 자유민주주의 회복과는 아주 숙명적인 관계이기 때문에 결국 자유민주주의 회복을 위해서는 한쪽을 희생할 수밖에 도리가 없었습니다. (주석 11)

박정희, 딸과 아들 비리 감싸기만


▲ 사진은 지난 1977년 3월 서울 동대문구 용두동의 경로병원 개원식에 참석한 최태민 씨(왼쪽에서 두 번째)와 당시 영애이던 박근혜 양. ⓒ 연합뉴스

박정희는 집권 말기에 이르러 가족에 대한 통제력도 크게 상실하고 있었다.

김재규의 결단에 일조를 한 사건이 있었다. 딸 근혜에 대한 불미스런 얘기는 주변에 널리 알려졌다. 정보부가 취합한 내용을 김재규가 보고했으나 대통령은 오히려 딸을 감쌌다.

정에 흔들리는 박정희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는 최태민(崔太敏)이라는 괴목사의 등장이다. 큰딸 근혜 양에게 접근한 최 목사는 순경출신으로 한때는 불가에 입문했다가 목사로 변신한 미스터리의 인물이었다. 그는 1975년 구국선교단ㆍ구국봉사단이라는 조직을 만들어 자신은 총재, 근혜 양은 명예총재로 앉혀 놓고 각종 이권에 개입하는 등 말썽을 빚었다.

말썽이 끊이지 않자 1977년 9월에는 대통령이 최 목사의 비리를 수사해 온 김 정보부장과 최 목사를 직접 대면시켜 놓고 친국(임금이 직접 심문하는 일)까지 했으나 문제는 해소되지 않았다.

친국 며칠 후 박 대통령은 선우련 비서관에게 "근혜 곁에서 최 목사를 얼씬도 못하게 하라"고 특명을 내렸다. 그러나 근혜 양이 최 목사를 옹호하고 나서자 선우 비서관은 다시 대통령에게 이를 보고했다. 그제서야 대통령은 심증을 털어놓았다.

"내가 특명을 내리고도……, 근혜가 엄마도 없는데 일까지 중단시켜서 가엾기도 하고 나도 마음이 아팠고……."

결국 그렇게 최 목사 사건은 흐지부지되었고, 10ㆍ26 이후 전두환 합수본부장이 최씨를 강제로 강원도로 쫓아낼 때까지 그의 활동은 계속됐었다. (주석 12)

박근혜가 대통령에서 탄핵 당할 때 국정농단의 주역 최순실이 바로 최태민의 딸이다. 박정희가 그때 최태민을 사법처리했으면 '딸의 비극'을 막을 수 있었을까.

김재규는 박정희 가족의 비리에 대해 어느 누구도 진언하지 못한 것을 샅샅히 보고하였다. 아들 지만의 문제도 포함되었다. 항소심 선고가 있는 1980년 1월 28일 「항소이유 보충서」에서 진술한 내용이다.

본인이 결행한 10ㆍ26혁명의 동기 가운데 간접적인 것이기는 하지만 중요한 것 한 가지는 박 대통령이나 유신 체제 자체에 관한 것이 아니라 대통령의 가족에 관한 것이기 때문에 공개된 법정에서는 밝힐 수 없는 것이지만 꼭 밝혀 둘 필요가 있으므로 이 자리에서 밝히고자 합니다.

구국여성봉사단과 관련한 큰 영애의 문제

구국여성봉사단이라는 단체는 총재에 최태민, 명예총재에 박근혜 양이었는 바, 이 단체가 얼마나 많은 부정을 저질러왔고 따라서 국민, 특히 여성 단체들의 원성이 되어왔는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아니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 영애가 관여하고 있다는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아무도 문제 삼은 사람이 없었고, 심지어 박승규 민정수석비서관조차도 말도 못 꺼내고 중정부장인 본인에게 호소할 정도였습니다.

본인은 백광현(당시 서울 고검 검사로 정보부에 파견 근무를 했고, 후에 내무부장관을 지냄) 안전국장을 시켜 상세한 조사를 시킨 뒤 그 결과를 대통령에게 보고하였던 것이나 박 대통령은 근혜 양의 말과 다른 이 보고를 믿지 않고 직접 친국까지 시행하였고, 그 결과 최태민의 부정행위를 정확하게 파악하였으면서도 근혜 양을 그 단체에서 손 떼게 하기는커녕 오히려 근혜 양을 총재로 하고, 최태민을 명예총재로 올려놓은 일이 있었습니다. 중정본부에서 한 조사보고서는 현재까지 안전국(6국)에 보관되어 있을 것입니다.


▲ 1977년 육사에 재학중이던 박지만 생도를 박 대통령 가족이 면회하던 날 기념사진. 당시 육사 교장이었던 정승화 장군(오른쪽), 경호실 작전차장보였던 전두환 장군(왼쪽에서 세 번째), 차지철 경호실장(박 대통령 오른쪽) 등이 눈길을 끈다 ⓒ 남산의 부장들

지만 군의 문제

육군사관학교는 전통적으로 honor system이 확립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육사에 입학한 지만 군은 2학년 때부터 서울 시내에 외출하여 여의도 반도호텔 등지에서 육사 생도로는 도저히 용납될 수 없는 오입을 하고 다녔읍니다. 그래서 본인이 박 대통령에게 육사의 명예나 본인의 장래를 위하여 다른 학교에 전학시키거나 외국유학을 보내는 것이 좋겠다고 간곡하게 건의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건의는 결코 받아들여지지 아니하였습니다. 위와 같은 문제는 아이들의 문제이기는 하지만 이 문제에 대한 박 대통령의 태도에서 본인은 그의 강한 이기심과 집권욕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비록 자녀들의 문제이지만 이런 일들이 있다는 것 자체가 국민을 우매하게 보기 때문에 일어나는 것임은 물론입니다. 따라서 이 문제를 이런 기회에서나마 밝혀두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주석 13)

주석
9> 안동일, 앞의 책, 108~109쪽.
10> 신용구, 『박정희 정신분석, 신화는 없다』, 243쪽, 뜨인 돌, 2000.
11> 안동일, 앞의 책, 109쪽.
12> 앞의 책, 373~374쪽.
13> 앞의 책, 373~374쪽.
 
 

올려짐: 2021년 10월 04일, 월 4:35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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