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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경제
 
거리투쟁, 강연, 저술... '늙은 투사'는 쉴 수 없었다
[백기완, 영면] 거리의 백발투사... 그의 삶은 격동 현대사 자체였다 ④

(서울=오마이뉴스) 김병기 기자

통일운동의 거목,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 소장이 2021년 2월 15일 새벽에 영면했다. 향년 89세이다. '불쌈꾼', '거리의 백발 투사'로 불린 고인의 한평생은 격동의 현대사 그 자체였다. 고 백기완 소장은 오마이뉴스 10만인클럽 회원이었으며, 오마이북에서 그의 마지막 저서인 <두 어른> <버선발 이야기>를 펴내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고인의 격동적인 삶과 노나메기 철학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접했다. 독재정권 시절의 모진 고문 후유증으로 병상에 눕기 직전까지 거리로 나가 통일과 해방을 외쳤던 '불쌈군 백기완'의 삶을 5회에 걸쳐 재조명했다. 이 기사는 그 네번째다.[편집자말]


▲ 2012년, 여든 살. 전태일(1948-1970) 열사의 어머니이자 노동운동가 이소선 여사 1주기 추도식 마석모란공원 ⓒ 정택용

[다섯째 마당] 여든 살 투사

백기완이 본격적으로 다시 거리로 나선 건 2008년 기륭전자 비정규직 투쟁 때부터다. 단식 94일에 이르는 김소연, 유흥희 등 비정규직 여성노동자들의 투쟁을 엄호하기 위해서였다. 포클레인 점거농성 진압을 막으려고 단신으로 현장을 지키기도 했다.

원로 모임을 조직해 이명박 정부에 맞서기도 했다. 2009년에 터진 용산참사를 국가폭력에 의한 학살로 규정하고 빈민철거민들의 투쟁 현장에 갔다. 이 과정에서 '이명박 정권 어떻게 볼 것인가?' 시국강연회를 개최하여 이명박 정권 타도를 외쳤다.

그해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회고록을 출간했고 '노래에 얽힌 백기완의 인생이야기' 무대공연의 수익금을 노나메기 재단 추진위에 기부했다. 2010년에는 각계에 민중의 사상인 노나메기 운동을 제안, 2011년에는 '노나메기란 무엇인가' 특강을 진행하면서 '노나메기재단설립추진위원회'를 발족했고 첫 사업으로 벽시운동을 주도했다.

한진중공업의 부당한 대규모 정리해고에 반대하며 35미터 고공 크레인에서 300여일 넘게 농성을 벌이던 '소금꽃 노동자' 김진숙을 살리기 위해 송경동 시인이 주도한 희망버스를 타고 달려가기도 했다. 여든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문정현 신부와 함께 한진중공업 담을 넘어들어가 경비실 옥상을 점거한 백기완은 마이크를 들고 "이명박 정부는 합법을 위장한 김진숙에 대한 살인행위를 하고 있다, 야만의 시대로 몰아넣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후 진행된 현대자동차비정규직 문제 해결 희망버스, 밀양송전탑 건설반대 희망버스, 유성기업 노조탄압 분쇄 희망버스, 거제도 조선소 비정규직 우선해고 반대, 삼척 동양시멘트 비정규직 문제 해결 등 각종 희망버스 운동의 1호차 차장은 늘 팔순 노구의 백기완이었다.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을 여는 희망시국대회, 쌍용자동차 해고자들의 죽음의 행렬을 멈추기 위한 집회, 제주해군기지반대 투쟁을 위해 평화비행기에도 탑승했다. 이렇게 팔순 투사는 지치지 않고 거리 투쟁을 이어갔다. 당시 희망버스 운동과 정리해고로 고통받는 쌍용차 문제 해결에 앞장서다가 검찰 기소 9건, 검찰 벌금 딱지만 80차례 넘게 받았을 정도였다.

팔순 노구에도 불구하고 그의 매일은 또 다른 사회적 정의를 위해 온몸으로 연대의 발걸음을 구체적으로 옮기는 것이었다. 그가 아는 진보와 변혁은 늘 구체적인 거리와 광장에 함께 온몸으로 서는 일이었다.


▲ 2020년, 여든여덟 살 백기완의 삶이 남긴 것은 무엇인가. 그 중 하나는 경찰과 검찰과 법원에서 날아온 출두/조사/벌금/재판 통지서였다. 이것은 고달프고 가난한 이, 힘겹게 거리에서 싸우는 이들의 손을 잡기를 주저하지 않았던 오랜 삶의 명예증명서가 아닌가. ⓒ 채원희


▲ 2011년 6월, 일흔아홉 살. 살인적인 노동자 정리해고 중단을 촉구하며 한진중공업 85호 크레인에 올라 무기한 고공농성을 벌이던 김진숙 부산민주노총 지도위원을 응원하는 1차 희망버스. 경찰과 용역의 저지선을 뚫고 공장 안에 진입, 폐기물처리 차량 위에 올라 연설하는 백기완. 박종철 열사의 아버지 박정기(1929-2018), 박창수 열사의 아버지 황지익, 원로 평화운동가 문정현 신부가 함께 했다. ⓒ 노순택

2012년에는 한미자유무역협정 반대 집회에 참석했다. 백기완의 민중미학 특강을 10회 진행했고, 쌍용차 문제 해결을 위해 걷기 행사도 벌였다. 2013년에는 쌍용차 등 민주노총 67개 투쟁사업장 집회에 참석해 기자회견을 열었다. 노나메기 지방 순회 홍보활동을 하면서 각계를 대표하는 주요 인사들과 이명박 정권에 대한 문화투쟁의 하나로 '우리 시대의 저항선언문'을 발표했다. 죽음을 넘어서는 민중의 쇳소리 '백기완의 비나리 낭송의 밤'도 개최했다. 이 과정에서 금속노조한국지엠(GM)지부로부터 승용차를 기증받기도 했다.

여든 살이 넘어서도 백발의 투사는 거리에서 역사의 진보를 외쳤다. 백기완에게 진보란 무엇이었을까? 그는 힘겹게 진보해 온 민중의 역사에서 희망을 찾았다.

"진보는 아리아리라고 해. (탁자를 치며) 아리아리랑~ 길이 없으면 길을 찾아가고 그래도 길이 없으면 길을 내자는 거야. 제국주의나 악덕 재벌들이 깔아놓은 판을 깨자는 게 불림이야. 축구를 하면서도 '파이팅' 그러는데, 아니 시합하다 말고 누굴 죽여? 그럴 때에 '아리아리~' 그러자는 거야.

왜정 때 이런 불림이 있었어. '소나무 장작은 왜장작~' 좋은 장작은 왜놈들이 다 가져갔거든. 이때 춤꾼이 춤판에 뛰어들면서 왜놈 골통을 까는 것처럼 외치는 게 불림이야. 주어진 판을 깨고 우리 판을 만들자는 거지. 제주도에서 물질하던 아낙들이 하던 불림도 있어. '이어차~ 쳐라쳐라~' 아낙네들이 2천리 이상 바다로 나가거든. 배에다 고추장, 된장 싣고 나가는 거야. 파도를 우리말로 몰개라고 하는데 몰개를 뚫고 가면서 외치는 거지. 파도여 물러가라~ 이게 조선의 여인이야.

마지막으로 '질라라비 훨훨~', 질라라비는 닭의 원래 이름이야. 닭은 2만년동안 사람하고 살면서 자기 집을 짓는 것, 자기 입으로 먹이를 구하는 것을 잊어 버렸어. 사람들이 먹여주고 재워주지. 그래서 알도 낳고 늦잠 자는 아저씨를 깨워줬는데, 사돈에 팔촌이 왔다고 자기 모가지를 비틀어서 튀기려거든. 이에 화가 나서 오라를 풀고 날개를 쳐 날아가 버렸어. 울을 박차고 자기 해방의 경지로 날아가는 것을 '질라라비 훨훨~' 이라고 해. 세계 독점자본이 깔아놓은 판을 깨자는 것을 불림이라고 해."

2014년에는 국정원 댓글 사건 규탄 시국회의 '부정당선 박근혜 안돼!' 집회에 참석했다. 유성기업 고공농성자 격려를 위해 '희망버스'를 제안했고 '세월호 학살 만민공동회' 등이 주최하는 집회에도 참석했다. 민주노총 총궐기대회 때에는 "거짓을 몰아치는 양심의 바람 운동을 일으키자"고 연설해 호응을 이끌었다. '나는 왜 따끔한 한 모금에 이리 목이 메는가'를 주제로 민중사상 특강을 한 뒤 참여자들과 밤늦게 프레스센터 광고탑까지 거리행진해서 c&m 통신비정규직 고공농성자들에게 응원과 연대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2015년에는 세월호 1주기 집회에 참석했다.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에 맞서다 사망했던 민중총궐기 대회 때에도 지팡이를 든 채 선두에 있었다. 2016년에는 비정규노동자 쉼터 '꿀잠' 건립을 위해 '두 어른 전시회'를 열었고, 작품 판매 수익금 전액인 2억여 원을 꿀잠에 기부했다. 백기완은 이때 '민중의 배짱에 불을 질러라', '노나메기, 너도나도 일하고 너도나도 잘살되 올바로 잘사는 세상', '혁명이 늪에 빠지면 예술이 앞장 선다', '산자여 따르라', '천년을 실패한 도둑', '하늘도 거울로 삼는 쪽빛 아 그 빛처럼' 등의 글귀를 남겼다.


▲ 2016년, 여든네 살. 거리에서 투쟁하는 비정규노동자들의 쉼터 ‘꿀잠’ 건립기금 마련을 위한 <백기완 문정현 - 두어른>전에 출품했던 붓글씨 <혁명이 늪에 빠지면 예술이 앞장 서나니> ⓒ 백기완

백기완은 당시 완판됐던 붓글씨를 내놓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빌뱅이(거지)가 와도 안방이나 바깥채로 모시는 게 무지렁이들의 보편적인 인간상이야. 그런데 돈 많은 놈들이 둘로 나눴어. 주인이 있고, 머슴이 있어. 요즘은 어떻게 머슴을 지배해왔느냐? 그게 정규직과 비정규직이야. 돈 몇 푼주고, 일터는 똑같은데, 딱 갈라놓는 거야. 식민지 지배할 때 제국주의자들의 논법 있잖아.

분할, 분열 지배라는 거. 이건 인간적 범죄야. 노동자 계급의식을 파괴하는 반노동자적인 범죄야. 썩은 문명을 야기하는 반문명적인 정서야. 이걸 없애려면 비정규직이, 정규직이, 우리가 자각해야 해. 그러려면 거점이 있어야겠지. 이게 '꿀잠'이야. 노동자들이 잘 수 있고, 소주 한잔 하고 소리도 지를 데가 있어야 하잖아. 그 뜻을 다지는 데를 만들자는 거야. 비정규직 없애는 반문명의 싸움을 제대로 하자는 거야. 붓글씨 수준 낮다고 얕보지 말어! 강매하자 이거야! '꿀잠' 만들자는 거야."

백기완은 그해 2016년 뜨거웠던 광화문 촛불광장을 끝까지 지켰다. 23차 촛불집회까지 한 번도 빠짐없이 촛불을 들었다. 이 와중에 7편의 촛불 저항시를 발표했고, 마지막 촛불집회, 광화문이 촛불바다를 이뤘을 때에 마지막 순서에 무대에 올라가서 대중 연설을 했다. 광장의 대형 스피커에서 마지막으로 흘러나온 노래는 백기완이 죽음의 고문실에서 천정과 벽에 대고 읊조렸던 '임을 위한 행진곡'이었다.

사회적 연대활동도 주도했다. 2017년에는 세월호 3주기를 맞아 추모시 '쪽빛의 노래'를 발표했다. 조계종의 퇴행을 비판하다가 승적을 박탈당한 명진 스님과 조계종 적폐청산운동을 위해 '명진 스님 탄압을 함께 걱정하는 사람들의 모임'을 결성해 기자회견도 열었다.

또 한반도 전쟁 도발 음모 분쇄를 위한 재야 사람들 기자회견 자리에서 "우리들은 트럼프에게 정면으로 요구한다. 이 땅을 불더미로 만들겠다는 그 막말을 집어치우고 이 땅의 맑디맑은 자부심, 어기찬(굳센) 서사 앞에 사죄하라!"면서 본인이 직접 작성한 회견문을 발표하기도 했다. 그해 오마이뉴스와 함께 <두 어른>(백기완·문정현 공저) 책을 출간해 수익금 전액을 비정규노동자 쉼터 '꿀잠'에 기부했다.

거리 투쟁, 강연, 저술……. 여든 살의 늙은 투사는 쉴 수 없었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1년 3월 19일, 금 4:56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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