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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에세이] 생활 에세이
 
샴푸 잘 받고... 미용실 어린 직원을 울려버렸네요
한 자리에서 하나만 계속하는 일의 대단함... 당신을 응원합니다

(서울=오마이뉴스) 권지현 기자 = 모름지기 자장면 고수가 있는 맛집은 도시에는 없다고 했다. 내가 한때 알고 지냈던 C의 말이다.

깎는 건지 마는 건지 늘 입과 턱은 수염으로 어수선하고, 반곱슬의 덥수룩한 머리는 감기만 하고 손질은 하지 않는지 언제나 제멋대로 곱슬거렸다. 목 늘어난 티셔츠만을 고집하며 어깨에 베이스 기타를 메고 왔다 갔다 하는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이, 다른 것도 아닌 '자장면'이었으므로 나는 무턱대고 신뢰할 수밖에 없었다. 재야의 고수 같은 느낌이랄까. 무엇보다 모든 것에 수더분하지만, 특히 일상적인 음식의 진한 맛에 많은 감동을 느끼는 그의 말은 때때로 귀담아듣게 하는 힘이 있었다.

그가 말하는 자장면 고수의 조건은 이렇다. 도심을 벗어나 국도를 달릴 때, 혹은 시골 마을을 지날 때 무심코 보이는 식당, 그 식당은 단층집이다. 지어진 지 족히 40년은 됨직한 건물에 간판은 글자 받침 하나쯤 없거나 간판 자체가 아예 없을 수도 있다.
식당은 식당인데 영업을 하는 건지 마는 건지 조금 애매한 느낌이 드는 입구에는 어김없이 색 바랜 초록색 플라스틱 발이 걸려 있고, 그 발을 걷고 들어가면 너무 닦아 색이 바랜 테이블이 네댓 개 있다. 그리고 오랜 시간 뜨거운 불 앞에서 웍질을 하느라 검붉게 패인 이마 주름이 인상적인 아저씨가 무심히 스테인리스 물 컵과 물통을 가져다주는 곳. 그 집이 바로 맛집 중에 맛집, 고수 중에 고수가 있는 곳이라는 거다.

설명이 너무 구체적이어서 어딘가 있는 그의 단골집 이야기 같지만, 그건 아니고, 단순히 그가 생각하는 상상 속 맛집의 기준이라고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골 어딘가에 그런 식당 하나쯤 꼭 있을 것 같긴 하다. 세상에는 으리으리한 중국 요릿집과 오랜 경력을 자랑하는 요리사들이 많고 많은데, 왜 그런 곳에 있는 식당이 맛집이고 고수냐고 했더니, 간단하지만 그리 간단하지 않은 대답이 돌아왔다.

한 자리에서 하나만 계속하는 거, 그거만큼 대단한 게 어디 있냐고. 하지만 그때의 나는 자주 포기하고, 쉽게 흥미를 잃는 일에 익숙해져 있었으므로 그것의 대단함을 알아챌 수 없었다.

한 자리에서 하나만 계속한다는 것


▲ "그만둘까, 누가 알아준다고, 돈도 안 되는데, 이게 뭐라고"를 말하며 스스로와 싸워온 20년이었다. ⓒ elements.envato

무언가 한 가지를 계속하는 것의 대단함을 실제 피부로 느낀 것은 그로부터 10년, 아니 15년도 더 지나서였다. 내일 당장 그만둔다고 말하던 하루하루가 쌓여 나는 어느덧 20년 차 방송작가가 돼 있었다. 그 무렵 나는 라디오 방송 원고를 쓰는 일에 꽤 만족하고 있었고,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죽을 때까지 딱 요 정도만 하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마흔이란 나이는 꿈을 꾸고 열정을 불태우고 어쩌고 하기보다 지금까지 해 온 것을 오래 잘하는 것만 해도 본전이란 생각을 하게 했고, 그래서 미래의 변화보다 과거의 유지에 좀 더 마음을 쏟고 있었던 것 같다. 그렇게 특별하지도, 그렇다고 지루하지도 않은 날들 속에서 매일매일 원고 쓰는 일만 반복적으로 해나가고 있을 시기, 코로나19라는 사상초유의 상황이 닥쳐왔다.

모든 것이 정지되고, 연결이 끊어지고, 정말 혼자서 쓰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일이 완전히 없어져버린 것이다. 양 사방이 벽으로 둘러쳐진 것 같은 상황 속에서 나는 글쓰기를 통해 세상과의 연결을 시작했다. 아마도 가진 재주가 그것밖에 없었고, 공포의 바이러스 확산 상황 속에서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 또한 글쓰기밖에 없어서였는지 모르겠지만, 놀랍게도 나는 짧게 짧게만 써오던 방송원고의 틀을 넘어 길게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속에 쌓여 있던 말을 글로 가지런히 풀어놓아 보니 오히려 카타르시스 같은 것이 느껴졌다. 내 속에 할 말이 많았다는 것도, 에세이 한 편 너끈히 채울 만큼의 긴 호흡의 글을 쓸 수 있는 '글쓰기 근육'이 있었다는 것도 처음 깨달았던 순간이었다.

글쓰기 플랫폼에 글을 쓰기 시작했고, 타 언론사에 기고를 하고, 목소리를 내기 시작하며,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대한 정의를 새롭게 써나갔다. 그냥 고만고만하게 살겠다고 마음먹었던 내가 마흔이라는 나이를 넘어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고, 변화에 눈을 뜨게 된 것이다. 스스로도 그런 나의 변화에 놀라고 있을 때, 가깝게 지내던 동화 작가님이 말해 주었다.

"20년 시간이 그냥 있는 게 아니라니까요. 그게 어디 가나요."

23살, 처음 방송작가로 입문한 나는 사막에 떨어진 것 같은 시간을 보냈다. 해내야 할 일은 한여름 뙤약볕처럼 쏟아지는데, 햇볕 한 줌 피해 숨을 곳 없이 막막한 사막처럼, 무엇을 어떻게 써야 할지 몰라 막막했던 때가 있었다. 타고난 재능이 없었던 나는 노력으로만 되지 않는 현실에 오래 좌절했고, 생계라는 버거운 현실 때문에 포기조차 하지 못하고 버티기만 했던 시간을 보냈다.

그렇게 버티다 보니, 어느새 일이라는 게 손에 익기 시작했고 글쓰기에도 어느 정도 요령이 붙어 방송작가라는 것이 내 직업 정체성이 되었다. 그리고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줄곧 방송 글을 써 온 게, 이제는 나에게 남에게는 없는 특별한 재주가 된 것이다.

오래 한 자리를 지킨다는 것, 오래도록 한 가지 일만 해 왔다는 건 숙련되고 노련하다는 말로만은 표현할 수 없다. 나에게 한 가지 일을 오래 한다는 것은 실력의 발전과 성장을 발견하는 일이기보다 날마다 다가오는 포기의 유혹을 피해 도망가고, 좌절과 실패에 걸려 넘어지지 않으려 버티는 일에 더 가까웠다.

매일 때려치울까를 고민했다. 오늘까지만, 다음 달까지만, 다음 개편까지만, 결혼할 때까지만, 그렇게 포기를 희망 삼아 지금까지 포기하지 않고 왔다. '그만둘까, 누가 알아준다고, 돈도 안 되는데, 이게 뭐라고'를 말하며 스스로와 싸워온 20년이었다.

그리고 그 20년의 시간이 그냥 흘러가버린 것이 아니라 쌓였다는 걸, 그 치열했던 시간들이 고스란히 쌓여 몸에 간직되고 있다는 걸, 20년이 지나고서야 알게 된 것이다. 지나온 시간이 헛된 것이 아니었구나, 그 시간들이 쌓여 나의 삶을 지탱하는 코어 근육이 되었구나를 깨달은 순간, 나는 다가오는 날들을 향해 다시 힘차게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을 얻었다.

시간 속에서 경험한 건 결국 내 안에 쌓인다


▲ 그날따라 직원은 정성스럽게 나의 머리카락을 씻겨주었다. 사소한 일에 정성을 쏟기란 쉽지 않은 일이어서, 나는 감동을 받아버렸다. ⓒ elements.envato

얼마 전, 미용실에 들렀다. 두 달에 한 번씩은 염색을 위해 찾는 곳이라 일하는 분들과도 익숙한 편인데, 그날따라 머리 샴푸를 해주는 직원의 손길이 너무 따뜻했다. 머리 감겨주는 일이 수고로운 일이긴 하지만, 큰 기술이랄 것까진 아니어서 대부분 손길이 대동소이하게 마련인데, 그날따라 그 직원은 정말 '한 올도 놓치지 않을 거예요'라고 결심을 한 듯 세심하고 정성스럽게 나의 머리카락을 씻겨주었다.

사소한 일에 정성을 쏟기란 쉽지 않은 일이어서, 나는 감동을 받아버렸다. 그래서 마무리할 즈음 누운 채로 말했다. "미용실에서 머리 감으면서 손끝에서 섬세한 배려와 정성이 느껴진 건 처음이에요. 덕분에 제가 오늘 아주 기분 좋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아요. 감사해요"라고. 그러자 그 직원의 손길이 잠시 멈칫하는 게 느껴졌다. 누워서 눈을 감고 있던 나는 조금 당황했다. 내가 오버한 건가, 왜 말이 없지, 싶은 순간 떨리는 목소리가 들렸다.

"제가 요즘 이 일을 계속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고 있던 중이었거든요. 그래서 마음이 조금 힘들었는데요, 고객님이 그렇게 말씀해주시니까 순간 제가 마음이 울컥하네요."

그 직원은 미용일을 시작한 지 5년도 더 됐는데, 아직 디자이너가 되지 못하고 있는 자신이 한심하게 느껴지는 요즘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만두고 다른 거 할까 하다가도 그러기엔 그동안 투자한 시간이 또 아까워서 고민이 깊었는데, 돌연 내 한 마디가 자신에게 위로가 됐다는 거다. 고마운 건 나였는데, 그녀가 더 고맙다고 했다. 하던 일을 그만둬야 하나 고민하던 차에 내 말이 좀 더 해볼까 하는 용기가 됐다며.

"나도 힘들 때가 있었는데 지나고 보니까 그렇더라고요. 시간이라는 게요, 그냥 흘러가버리는 것 같아도, 그 시간 속에서 경험한 건 결국 내 안에 쌓이더라고요. 지금 이 시간들도 아무것도 아닌 건 아닐 거예요."

이 한 마디로 나는 기어이 그 어린 직원의 눈물을 빼놓고 말았다. 말로 하진 않았지만, 그런 그녀를 보며 생각했다. 나도 그랬고, 그 누군가들도 그랬듯, 언젠가는 쌓이는 시간 속에서 분명 놀라운 것을 발견해 내고야 말 것이라고.

물론, 시간이 쌓이고 쌓여 결정(結晶)이 되기까지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손에 잡히지 않아 많이 흔들리고 의심하게 되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묵묵히 시간 속을 걸어가다 보면 우리 모두는, 먼지가 모이고 모여 별이 되듯, 각자의 자리에서 반짝이는 무언가가 되어있지 않을까.

어딘가 있을 자장면 고수도, 이제 다시 변화를 꿈꾸는 나도, 미용실 어린 직원도 그래서 우리는 서로를 응원하며 나아갈 수 있는 것일지 모른다. 오늘을 살아가는 모두를 응원하고 싶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1년 2월 18일, 목 6:38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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