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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 종교
 
오늘날의 주의 기도
[읽는설교] 본문: 마태복음 6:9-13

(서울=코리아위클리) 차옥숭 교수(한국 새길교회 신학위원) = 무사 두베 쇼마니는 아프리카 보츠와난 대학교 종교학부 강사로서 탈식민주의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학자입니다. 또한 탈식민주의 시각에서 최초로 여성학적으로 성서를 해석한 인물로 알려져 있습니다. 오늘 설교 내용은 1997년 두베가 ‘세계화 시대의 주기도문 해석’이라는 제목으로 쓰고, 김준우 목사가 번역한 원고를 토대로 한 것입니다.

기도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드립니다. 그러나 기도가 다른 인간적 갈망과 구분되는 점은 기도가 하나님과의 관계를 추구하는 인간의 의지를 반영한다는 점입니다. 두베는 기독교적인 관점에서 기도를 드리는 것은 언제나 자신의 비전과 가능성을 선언하는 일이며, 자신과 가족과 이웃, 지구와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들에 대한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려는 결단을 선언하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주님의 기도, 주님께서 가르쳐주신 기도, 가장 아름다운 기도로 알려진 주기도문만큼 신약성서에서 잘 알려져 있고 사림들이 잘 외우고 있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는 아이들은 스스로 성서를 읽는 것을 배우기 훨씬 이전부터 주기도문을 암송하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 주기도문이 기독교 신앙의 핵심이라는 점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주기도문의 비전은 이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가장 잘 드러내는 것일 뿐 아니라, 이 세상에서 기독교인들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통해 감당해야 할 역할을 가장 잘 보여주는 것으로 간주됩니다. 주기도문을 암송함으로써 기독교 공동체는 이 세상에 하나님의 뜻을 실현시키려는 결단과 책임을 새롭게 서약하는 것입니다. 이 기도를 주의 기도, 주님의 기도로 부르는 이유는 이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만나고, 그분과 대화하고 함께 일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두베는 주기도문 해석에 앞서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나는 아프리카 보츠와나의 흑인 여성으로서 식민주의, 신식민주의 시대를 살아남았고 지금은 세계화 시대를 살고 있다. 나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헤쳐 왔다. 아프리카 국가들의 찢어지는 가난과 더불어, 전쟁들과 군사 쿠데타들, 부패와 착취 속에 살아가는 것 사랑하는 친구들이, 이웃들이, 가족들이 에이즈(AIDS)에 걸려 서서히 죽어가는 것을 지켜보는 것은 삶과 죽음이 일란성 쌍둥이처럼 간주 되는 세상을 사는 것이다. 에이즈가 아프리카에 가장 심하다는 사실은 물론 아프리카의 경제적 현실과 연관되어 있다. 에이즈가 경제적 위기를 더욱 악화시키는 것은 덜 아픈 사람들이 그 빈약한 자원을 죽어가는 사람들에게 사용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끊임없는 전쟁과 쿠데타들은 가난과 연결되어 있다. 즉 사람들은 불충분한 자원에 직면하여 적자생존의 전략을 채택하기 때문이다. 아프리카의 경제 위기가 국가적 및 국제적 원인들과 연관되어 있지만, 아프리카의 위기는 종국에는 국제적 위기인 것이다. 죽음과 삶의 상황은 나로 하여금 세계화 시대에 기독교 신앙을 고백한다는 이것이 무슨 뜻인지, 주기도문을 드린다는 것이 무슨 뜻인지, 하나님의 피조물들을 위한 하나님의 비전은 무엇인가?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위에 건설하기 위해 기독교인들이 개인적으로 또한 집단적으로 감당해야 할 역할은 무엇인가? 성찰하도록 한다.”

두베는 세계화 시대의 특징은 국가와 민족, 대륙들 사이에 더욱 긴밀한 경제 체제로 연결되어 있고, 긴밀한 경제관계는 사실상 대규모적인 금전적 이득과 손실의 관계일 뿐 아니라, 종속과 상호의존, 착취와 엄청난 이익으로 경제적 거인들과 난쟁이들, 주인들과 하인들의 관계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세계화는 이 세계를 하나의 작은 마을로 바꾸어버린 경제체제로서 몇몇 사람들이 그 마을을 운영하고 이득을 얻는 체제로써 개발도상국에 공장을 건설하여 저임금을 착취함으로써 이익을 극대화시키는 다국적 기업들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님 말씀을 새롭게 듣고자 한다면 옛 성서 본문에 집착하고 그것만을 암기하는 데서 벗어나, 용기 있게 그 경계선을 넘어가서 예수처럼 “그러나 나는 이렇게 말한다.”라고 적극적 대안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옛 본문을 뛰어넘고, 보수적인 종교 기관들에 대항해서, 하나님의 피조물들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추구할 책임을 감당하는 모험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기독교 기관들이나 본문들 속에 거룩하게 된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은 하나님의 피조물 전체 속에서 거룩하게 되어야만 한다는 것이지요. 이 세상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는 것은 때로 기록된 성서 본문이 새로운 상황과 맞지 않고, 하나님의 피조물들을 위한 하나님의 뜻과 일치하지 않은 경우에, 그 본문에 도전하거나 그 본문에서 벗어나는 새로운 성찰을 요구한다는 것입니다.

두베는 주기도문의 맥락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마태복음에는 주기도문이 산상설교(마 5-7)의 맥락 속에 자리 잡고 있습니다. 예수의 산상설교는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의 율법을 받은 것(출 19-20)을 기억나게 하는 본문 구성으로 되어 있습니다. 시내산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노예로부터 벗어나도록 부르셨을 뿐 아니라, 이 새로운 백성이 문화적으로,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그들을 위한 하나님의 비전에 책임 있는 백성이 되도록 부르셨습니다. 반면에 마태복음의 독자들은 A.D. 70년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된 이후 살아남은 유태인 집단들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이 두 경우 모두에 있어서 공통적인 사실은 위기의 순간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이며 하나님의 비전을 철두철미하게 찾는 순간이라는 점입니다. 위기는 새로운 비전을 요청하며, 새롭게 보고 들어야 할 순간입니다.”

두베의 주기도문 해석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오늘의 시대 주의 기도문 해석

1.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주기도문의 첫 줄은 하늘을 가부장적 권력의 영역으로 제시합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기 때문입니다. 이런 표현을 다양한 형태의 성차별과 종속으로 고통 받는 여성들에게는 해방적 비전을 주지 못합니다. 다행스럽게도 많은 기독교인들과 비기독교인 독자들, 공동체와 기관들은 하나님이 아버지도 아니고 어머니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아버지”라는 단어를 사용한 것은 하나님을 표현하는 특수한 문화와 시대, 인간적 언어의 제한을 보여줄 따름입니다. 성차별에 관한 수많은 연구를 통해 권력의 영역을 남성적 언어로 상징하는 것은 여성들을 제외시키고, 종속시키는 사회적 관습을 강화시키는 표현이라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주기도문의 첫 줄은 “하늘에 계신 우리 어버이(parent)시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라고 읽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어버이라고 부름으로써 주기도문은 우리에게 가족의 이미지를 줍니다. 가족은 대부분 일치, 사랑 관계 돌봄, 함께 기거함을 뜻합니다. 기독교인들, 민족들, 종족들, 피부색이 다르고 모양과 체격이 다른 모든 사람들이 똑같은 어버이의 자녀들입니다. 주기도문을 암송하는 모든 사람들이 이 진리를 깨닫는다면, 어떻게 세계화 시대에 그 가족의 일부는 헐벗고 굶주림으로 죽어가는 데 다른 사람들이 지나치게 배부를 수 있겠습니까? 나는 모든 사람들이 이 세계화 시대에 주기도문을 통해 기도하는 일의 책임성을 다시 생각하도록 촉구합니다.

기독교인들에게 던지는 나의 질문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주기도문이 하나님의 세계와 백성들을 위해 갖고 있는 비전이 무엇인가? 우리가 하나님의 동역자가 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위에 건설하기 위해 진지하게 결단하면서 주기도문을 외우면 어떻게 되겠는가? 오늘 우리는 무엇을 하여야 하는가? 오늘의 시대에 적극적인 책임을 갖기 위해 주기도문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를 찾아보려는 것입니다.

주기도문의 첫째 부분은 세 가지의 간구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주 “하나님에 관해 그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고, 그의 나라가 임하고, 그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 입니다. 이 세 가지 간구 가운데 나중 두 가지는 어떻게 어디에서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어야 하는지를 밝힌 것입니다.

2. “나라에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위에 건설함으로써 가능합니다. 이 말은 주기도문이 “이 땅과 그 피조물들이 주님께 거룩한 것이 되도록 하라”고 권하는 것입니다. 서구 신학자들은 ‘하나님의 나라의 의미’에 관해 설명하면서, 이것이 특정한 지리적 위치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를 가리킨다고 주장합니다. 주기도문은 기독교 공동체들과 국가들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이 이 땅 위에 확립되도록 하나님의 규칙을 받아들일 것을 명령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의 규칙과 뜻이 하늘에서처럼 이 땅 위에서도 확립될 때 가능한 것입니다.

기독교인들은 하늘이 절대적 평화, 자족, 평등의 장소라고 이해해 왔습니다. 이런 이상적인 모습은 하늘에서의 하나님의 규칙에 대한 생각이며 이미지입니다. 하늘에서 이루어지는 일들이 이 땅 위에서도 이루어져야 한다고 믿는 것은 하나님의 규칙에 대한 생각들이 이 땅 위에서의 지리적 공간에도 영향을 미쳐야만 한다는 뜻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주기도문의 비전은 기독교인들과 국가들, 제국주의와 식민주의와 세계화의 구조와 윤리에 익숙하게 된 기독교인들과 국가들에 대한 도전임에 틀림없습니다.

기독교인들은 하나님의 규칙이 하늘에서처럼 이 땅 위에서도 확립되도록 만드는 과정을 통해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기 위해 결단하고 적극적 참여자가 되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주기도문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 위에 건설하는 데 있어서의 적극적인 파트너로서의 책임을 서약하는 것이며, 이 땅 위에 하늘에서와 같은 인간관계와 국제관계를 확립하기 위한 하나님의 파트너로서의 책임을 서약하는 것입니다. 이 땅을 거룩하게 간직하는 일은 오늘날 시대의 착취적인 경제체제와는 양립할 수 없으며, 부패하고 착취적인 정부들의 정책들 속에서 살아가는 것과도 양립할 수 없는 것처럼 보입니다.

3.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

양식은 우리의 생활에 없어서는 안 되는 필요입니다. 어느 곳에서나 매일같이 모든 사람들이 눈 뜨고 일하는 것은 집안에 양식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주기도문은 양식을 “인간적” 요구의 첫 번째 대상으로 간주함으로써 그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사람들이 먹기 위해 일한다는 것이 우습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냉장고 속에, 창고에 음식이 가득 차 있는데,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드리는 것이 불필요하게 들릴 수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우리의 삶에 있어서 양식이 핵심적인 것임을 말해 줍니다. 사람들은 매일 양식을 필요로 하며, 수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일용할 양식이 없이 양식을 얻을 수 있다는 확신조차 없이 연명하고 있습니다.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한다는 것은 그러므로 모든 사람들에게 양식이 주어져야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지만, 모든 사람에게 일용할 양식이 쉽게 주어지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기억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 드리는 것은 냉장고 속에, 창고와 가게에 음식을 가득 채워 넣고 사는 기독교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요청합니다. 즉 집이 없는 사람들, 직장이 없는 사람들, 심지어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는 사람들 중에도 먹을 것이 없고 그날의 자녀에게 줄 것이 없는 판국에 나는 왜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해야 할 절실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인가? 주기도문은 기독교인들과 공동체들로 하여금 일용할 양식이 없는 가족들이 있다는 사실, 일용할 양식이 없이는 그들이 살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는 하나님의 책임 있는 아들딸이 되어야 한다는 과제를 부여합니다.

하나님의 파트너가 되어 하나님의 가족들 나머지 모두에게,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에게 일용할 양식을 생산하고 공급하는 일을 위해서는 모두가 일용할 양식을 위해 평등하게 일할 수 있는 경제 구조를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파트너가 되어 그들의 필요를 충족시킬 수 있는 가능성을 부정하는 경제 구조는 지역적인 것이든 세계적인 것이든 도전받아야 하며, 새롭게 틀을 짜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세계화 시대에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 드리는 것은 회개를 요청하는 부름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옵시고”라고 기도드리는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이 일부 지역에는 양식이 남아돌고 수백만 명의 사람들은 먹을 것이 없는 경제 구조에 대해 편안하게 생각하는 기독교인들인지를 반성하고, 자신들의 경제적 상황이 이 세계를 위한 하나님의 뜻과는 일치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고 모든 사람들이 평화와 자족을 누릴 수 있는 경제 구조를 진작시키도록 해야 한다는 말입니다.

저는 여기에서 동학의 해월 최시형 선생님이 생각났습니다. ‘모든 사람이 하늘을 공유하듯이 밥도 나누어야 한다.’ 열심히 일해서 생산한 것을 조건 없이 나누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요. 두베가 우리에게 던진 질문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일하는 사람들 중에도 먹을 것이 없고 그날의 자녀에게 줄 것이 없는 현실에서 나는 왜 일용할 양식을 위해 기도해야 할 절실함을 느끼지 못하는 것인가?’에서 절실함 없는 주기도문 암송을 반성했습니다. 어느 기록에 의하면 1분에 어린아이들이 굶주림과 질병으로 2만 4000명씩 죽어간다는 현실에 직면해서도 말입니다.

4. “우리가 우리의 채무자를 탕감(용서)해 준 것같이 우리의 부채를 탕감(용서)해 주옵시고”

용서는 어려운 일이며 값비싼 대가를 지불해야 하고 훈련을 요구합니다. 마태복음의 상황, 즉 로마 제국의 식민지 상황에서는 보통의 유태인들이 부채를 짊어지고 살았습니다. 당시에는 제국세와 성전세를 물어야 했습니다(마 22:15-22 17:24 27). 또한 많은 사람들이 비좁고 불모의 땅에서 살아, 일자리가 없어 빚을 지게 되었습니다(마 18:23-35).17) 마태복음의 상황에서 주기도문을 드린 사람들은 당시의 다른 많은 식민지 유태인들과 마찬가지로 세금을 내지 못하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부유한 지주에게 돈을 빌린 후 갚지 못하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빚을 갚지 못해 투옥되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마 5:25-26 18:23-355)

그러므로 마태복음의 상황에서 부채의 탕감을 위해 기도하는 것은 당시의 경제 구조와는 상관이 없는 영적인 기도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주기도문은 로마제국 시대의 팔레스타인의 경제 구조에 대한 직접적인 논평이었습니다. 주기도문은 내지 못한 세금과 갚지 못한 빚은 그대로 없었던 일로 간주하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물론 의도적으로 탈세하고 빛을 때어먹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오히려 열심히 일하는 개인들과 민족이 가난과 부채의 악순환에 매여 있도록 만드는 경제구조에 대한 도전입니다.

주기도문의 비전은 억압적이며 착취적인 경제 정책을 통해 상환 불가능한 부채를 지도록 만드는 일은 하나님의 규칙과 뜻에 어긋난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이런 짓은 이 땅 위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만들어야 하는 기독교인의 역할과 반대되는 것입니다. 부채를 탕감하는 문제는 우리들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는 문제가 결코 아닙니다. 세계의 3분의 2가 외채로 인해 신음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어떤 국가들은 전체 국민 총생산액 이상으로 외채를 지고 있지만, 그들의 외채가 그들의 삶을 증진시키지 못하고 있습니다. 실제 이러한 국가들 대부분은 그들이 독립하기 이전의 식민지 상태보다. 더 나쁜 상태에 처해 있습니다.

아프리카 국가들에 대해 차관을 빌려주는 것은 밑 빠진독에 물 붇기와 마찬가지라는 말을 합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처럼 엄청난 외채를 지고 있는 국가들은 그들의 돈과 토지를 잃어버렸을 뿐 아니라. 그들의 자존심과 자율성도 잃어버렸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빚을 지고 있을 뿐 아니라, 그들의 운명이 은혜를 베푸는 자들의 자비에 달려 있음을 발견합니다.

그 백성들은 그 외채를 잘 사용한 그들의 정부에 대하여 분노를 느낄 뿐 아니라, 상환할 수 없을 정도의 이자율로 돈을 빌려주고 건강한 경제를 유지시킬 수 없도록 만든 국제적 통화 기관들에 대해서도 분노를 느낍니다. 이러한 국가들은 자신들이 부채를 안고 있으며, 그 부채를 상환할 수 없다는 사실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이런 국가들은 탕감을 요구하는데, 이것은 그들이 거의 1세기 이상 동안 자신들을 식민지로 삼아 자원을 착취하였으며 자기들의 이익만을 위해 국제 시장을 만들어 낸 소위 선진국들을 용서해야만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진국들을 비난하고 그들에 대해 원한을 품고 살아간다는 것에 그리 생산적인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주기도문은 대안적 모델을 제시하는데, 그것은 용서하는 것입니다. 기독교 공동체들과 국가들, 기관들은 과거의 실타래를 풀고, 현재의 착취적 구조를 해결해야만 하며, 공평과 정의, 평화와 자족의 공간을 건설하기 위해 노력해야만 합니다.

주기도문을 외우는 사람들은 이 땅 위에 하늘에서처럼 하나님의 나라가 건설되도록 적극적인 파트너가 되어야만 합니다. 주기도문을 외우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피조물들을 거룩하게 함으로써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도록 만드는 일에 헌신하신 예수님의 의식적인 파트너가 되어야만 합니다.

5.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옵시고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이것은 우리를 겸손하게 만드는 기도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시험과 악에 빠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는 이것을 그의 제자들에게 가르치셨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기독교 공동체들, 국가들, 기관들, 개인들 역시 세계를 위한 하나님의 뜻을 알고 있지만, 세계화 시대에 국가적 및 국제적 정부의 타락, 외채의 불법 사용, 불공정한 국제적 경제 정책들과 약자들에 대한 착취 문제에 대해 경계태세를 취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주기도문을 드리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은 이처럼 자신들의 서약과 책임을 방기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착취적인 경제 구조에 대해 편안한 마음을 갖고 있으며, 수십 억의 인구가 고통을 받고 있지만 자신들은 그 경제 구조를 통해 이익을 얻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들이 어버이의 뜻을 무시한 채, 착취적인 국제 시장과 부패한 정부들의 파트너가 되거나 은밀한 지원자가 되어버렸습니다. 이것이 시험에 드는 일이며 악에 빠지는 것이기 때문에, 여기서 벗어날 필요가 있는 것입니다. 여기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을 위해, 우리 자신들과 우리의 이웃들을 위해, 하나님의 파트너가 되고자 하는 결단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피조물 전체를 거룩하게 여김으로써 이 땅 위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함에 있어서, 억압적인 경제구조들에 대해 동참해 왔던 것을 회개할 때 우리는 유혹과 악으로부터 구원받을 수 있다는 말입니다. 부베는 오늘날 새로운 선교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20세기 초부터 서구 기독교는 비기독교 세계를 죄와 야만속에 타락한 자들로 간주하고 그들을 구원하기 위해 기독교화 시키는 선교를 시작했습니다. 이민족들에게 그리스도와 서구문화를 전파하기 위해 교회들과 단체들은 제국주의와 식민주의 운동과 손을 잡았습니다. 세계의 3분의 2가 기독교신앙과 접촉하게 된 것은 바로 이런 맥락에서였습니다. 이런 불행한 역사는 반복되어서는 안 됩니다.”

아프리카 보츠와나의 흑인 여성으로서 오늘날의 기독교선교는 이 땅 위에 하나님나라를 실현시키는 것을 방해하는 장애물들을 다루어야한다고 주장합니다. 선교는 이 땅 위의 생명을 타락시키고 개인과 모든 민족들의 평화, 평등, 자족을 위협하는 모든 구조적세력들과 기관들에게, 기독교선교는 죄를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들이 꽃피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세력이라고 정의해야 합니다.

오늘날의 선교는 아프리카 외진 곳에서 부시맨을 찾는 일에 초점을 맞출 것이 아니라 부패하고 착취적인 정부들이 터 잡고 있는 세계의 비인격적인 중심도시를 향해야 합니다.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는 기도가 이루어지도록 책임 있는 파트너가 되어 정의를 수호하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올려짐: 2020년 12월 22일, 화 6:21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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