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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 종교
 
백인 복음주의자들은 왜 트럼프와 공화당 후보를 지지하는가
트럼프 현상과 2020년 미국 대선, 그리고 기독인의 선거 참여

(서울=뉴스앤조이) 이인엽(워싱턴앤리대학 교수)

기독인의 시각

2016년 미국 대선에서 백인 복음주의자들 중 81%가 트럼프를 지지했고, 이번 2020년 대선에서도 출구 조사 결과를 보면 76~81%의 백인 복음주의자들이 트럼프를 지지했다. 흥미로운 것은 역대 공화당 대선 후보에 대한 이들의 지지도는 후보와 상관없이 같은 수준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예를 들어 조지 W. 부시, 존 맥케인, 미트 롬니, 도널드 트럼프 등 최근의 공화당 대선 후보는 모두 백인 복음주의자들에게서 70~80%의 지지를 받았다.

그런데 미트 롬니는 복음주의자들이 이단으로 여기는 몰몬교 출신이다. 트럼프는 2번 이혼하고 3번째 부인과 살고 있으며, 플레이보이 포르노 영화에 카메오로 출연하기도 했고, 2016년 대선 전에 음담패설 녹취록이 공개되는 등 기독교적 삶과는 거리가 있는 인물이다.

심지어 트럼프는 한 인터뷰에서, 하나님께 용서를 구해 본 적이 있느냐는 질문에 대해 "나는 그런 경험이 없으며, 잘못을 하면 스스로 고치지, 하나님을 끌어들이지는 않는다(I am not sure I have. I just go on and try to do a better job from there. I don't think so. I think if I do something wrong, I think, I just try and make it right. I don't bring God into that picture. I don't.)"고 대답해, 복음주의 신앙과는 전혀 무관한 모습을 보여 주기도 했다. 이런 점은 백인 복음주의자들이 신앙적 원칙에 의해 공화당 후보를 지지하는 것인지, 자신들의 인종적·계층적 이익을 위해 공화당을 지지하면서 이를 합리화하기 위해 신앙을 끌어들이는 것인지 의구심을 자아내게 한다.




트럼프를 지지하는 기독교인들이 내세우는 이유는 주로 낙태, 동성애 문제 등이다. 그러한 신앙적 핵심 가치(?)를 지키기 위해, 그리 신앙적으로 보이지 않는 트럼프 같은 사람도 하나님이 선택해서 쓰신다는 논리를 펼친다. 문제는 이러한 논리에 매우 많은 신학적·정치적 논란과 맹점들이 존재한다는 사실이다.

먼저 낙태나 동성애 문제에 대한 성경의 언급은 아주 제한적이다. 이 두 가지를 투표의 절대적 기준으로 제시한다는 것도 바른 성경 해석인지 논란이 있다. 일관성에도 문제가 있다. 생명 윤리는 절대적이라며 낙태 반대에 목소리를 높이는 많은 기독교인들은, 생명 윤리와 관련되는 다른 이슈들, 예를 들어 미국 사회의 심각한 문제인 총기 규제에 절대적으로 반대하고 있다. 반면 사형제도는 절대적으로 찬성하고(특히 흑인 죄수들 안에서 억울하게 범인으로 몰려 사형당한 경우가 많다),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 간 이라크 전쟁을 열광적으로 지지했다.

오바마 케어도 문제가 많지만, 그전까지 인구의 15%가 넘는 4600만 명이 보험 없이 살고 있었다. 거기다 매년 의료비로 파산하는 사람이 200만 명인데도, 보수 기독교인들은 이에 대한 대안을 무조건 사회주의라며 반대해 왔다. 실제 낙태 문제를 조사해 보면, 상당수의 원치 않는 임신이나 낙태 결정은 빈곤 문제(2013년 연구에 따르면 낙태 여성의 69%가 빈곤층), 복지나 의료보험의 부족, 성교육과 피임 교육의 부재 등과 관련 있다. 그런데 많은 기독인은 낙태를 범죄화하는 데만 관심 있을 뿐, 낙태의 근본 원인을 해결하기 위한 정책들에는 오히려 반대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기독인들이 정말 낙태를 줄이고자 하는 것인지, 아니면 낙태 문제를 내세워 하나님의 이름으로 공화당에 투표하는 일을 강요하는 것인지 의구심을 갖는 이도 많다.

또한 낙태 문제는 여성의 선택권이라는 차원에서 간단하지 않은 문제이기도 하다. 동성애 문제도 성에 대한 관점을 넘어, 세속 사회에서의 개인의 선택권과 동등한 권리라는 차원에서 매우 복잡한 문제이다. 보수 기독교인들이 자신들의 성경 해석을 내세워 낙태나 동성애를 심각한 죄라고 규정할지라도, 우리는 신앙인인 동시에 정교분리 원칙이 적용되는 다문화·다종교의 세속 사회에서 살고 있다. 따라서 내가 믿는 기독교적 윤리를 바로 법으로 적용할 수 없으며, 법률은 사회 구성원들의 합의와 타협을 통해 만들어진다. 술 취함이나 간음, 이혼이 신앙적 기준에서 죄가 될 수 있지만, 그것을 법으로 만들어서 사람들을 처벌할 수 없는 것처럼 말이다. 과거 미국에서 금주법을 무리하게 실시했다가 밀주업과 마피아의 성장에만 기여한 것이 좋은 예이다.

버지니아대 사회학과 교수인 제임스 헌터는 <문화 전쟁 Culture Wars: The Struggle to Define America, Basic Books>(1995)이라는 책을 통해 보수 기독교인들의 정치 참여를 비판적으로 분석했다. 1979년 '도덕적다수'(Moral Majority)를 만들어 레이건의 당선과 재선에 영향을 끼친 제리 폴웰과, 기독교연맹을 만들었고 각종 사회적인 실언들로 유명한 팻 로버트슨 같은 기독교 지도자들로 대표되는 기독교 우파는, 기독교의 총체적 가르침을 낙태·동성애 등 몇 가지 윤리적 주제로 환원시키고 끝없는 문화 전쟁에 집착하며, 공화당과 노골적으로 결탁해 우파 정치인을 선출하고 대법원에 보수적 판사를 임명하여 자신의 의지를 사회에 강요하고 권력과 헤게모니를 추구한다는 것이다.

이미 수십 년간 낙태·동성애 문제를 내세워 공화당에 투표했는데, 그 문제가 해결되었는가? 결국 낙태나 동성애는 상당히 개인적인 삶의 문제이다. 이것을 정치권력과 법적인 판결로 해결해 보려는 시도 자체가 얼마나 현실성이 있는지도 질문해 봐야 한다. 트럼프는 과거 낙태나 동성애에 대해 지지하는 입장을 밝힌 적도 있다(트럼프는 민주당과 공화당 사이에서 4번 당적을 왔다 갔다 한 전력이 있고, 주로 리버럴한 뉴욕에서 기독교적인 생활 방식과는 동떨어진 삶을 살아온 인물이다). 그가 보수적인 대법원 판사들을 임명했지만, 현실적으로 미국에서 낙태·동성애 관련 판결들을 뒤집을 가능성은 높지 않다.


▲ 미국 워싱턴에 있는 대통령 관저 백악관.

하나님은 트럼프를 선택하셨고, 그 근거는 낙태와 동성애 문제라는 식의 매우 단순한 논리에는 많은 신학적·정치적·논리적 문제가 존재한다. 가장 큰 문제는 이에 대해 제대로 고민해 보고, 충분히 설명해 주는 기독교인들은 거의 찾아보기 힘들다는 사실이다. 결국, 트럼프를 지지하는 최종적 선택에도 논란이 있지만, 그런 선택에 이르기까지 매우 단순한 논리를 충분한 성찰과 고민 없이 확신하는 기독교인들의 사고 체계 자체에 대해 심각히 우려하게 되는 것이다.

언어학에는 기표와 기의라는 개념이 있다. 실제 그 대상·의미를 지칭하는 것이 기의라면, 그것을 표현하는 문자·상징이 기표이다. 이 두 가지에는 필연적 연관 관계가 없다. 예를 들어, 기독교적 상징물과 기독교 가치가 반드시 일치하지 않는다. 성탄절에 낭만적인 말구유 탄생 모습을 재현해 놓고 좋아하지만, 그것을 내 주위의 난민, 가난한 자, 의료 혜택을 못 받는 자 속에 예수님이 있다는 생각으로는 전혀 연결하지 못하는 점을 예로 들 수 있다.

트럼프가 지지한 앨라배마 상원의원 후보 로이 무어(Roy Moore)는 앨라배마주 대법원장을 지내던 2003년, 주법원 청사에 설치된 십계명 기념비를 철거하라는 연방법원의 명령을 거부해 처음 해직될 정도로 기독교적 상징과 문화에 집착한 인물이다. 그는 선거 캠프에서 찬송가를 부르며 하나님이 승리를 주신다고 공언했다. 그런데 여러 명의 여성이, 자기가 미성년자였을 때 검사였던 로이 무어에게 성추행을 당했다고 폭로해 충격을 주었다.

조지 플로이드 사건으로 시위가 한창일 때, 트럼프는 백악관 회견을 마친 후, 대통령 동선을 확보하기 위해 평화 시위대에게 최루탄을 쏴 해산시키고는, 핵심 참모를 대동하고 인근 세인트존스교회를 찾아 성경을 들어 올리는 뜬금없는 퍼포먼스를 벌였다. 이 사건을 보고, 복음주의자의 40% 이상이 트럼프 대통령이 신앙적이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문제는 신앙적 상징만 있으면, 심지어 그것을 신앙의 본질과 대치되는 인물이 사용하더라도 분별하지 못하고 무조건 지지하는 신앙인이 많다는 점이다. 그와 같은 신앙인은 기독교를 정치에 이용하려는 세력에게 가장 손쉽게 동원될 수 있다.


▲ 세인트존스교회 예배당 앞에서 성경을 들어 올리는 퍼포먼스 중인 트럼프. 사진 출처 플리커

결국 이들이 사회 속에서 지혜롭고 성숙한 신앙인이자 시민으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고 있는지, 아니면 하나님의 이름으로 보수 정당에게 표를 몰아주는 역할에 충실한 건지, 심각하게 질문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앞에서 언급한 제임스 헌터는, 이런 이유로 보수 기독교인들이 "공화당의 쓸모 있는 바보들"이라고 조소의 대상이 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물론 앞에서 말했듯이, 트럼프 현상은 보수 기독교인들의 낙태·동성애 문제 외에도, 미국의 장기적인 경제 불평등과 중산층의 좌절감, 다인종·다문화 현상에 대한 반발 등, 다양한 요인이 작용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4년간 트럼프의 정책을 보면서, 과연 신앙인의 이름으로 그를 지지하는 것에 문제가 없는가 질문해 보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트럼프 현상을, 미국 사회에 존재하는 최소한의 합의와 원칙이 무너져 온 과정이라고 이해한다. 미국에서는 현실에서 차별이 존재할지언정, 정부 지도자가 인종이나 종교, 신분 등을 이유로 공공연하게 사람을 차별하는 모습은 보기 힘들었다. 그런데 대통령은 이민자나 소수 인종을 범죄자, 해충 취급을 하며 백인 중산층의 불만을 돌리기 위한 희생양으로 삼고, 어린아이들을 케이지에 가두고, 정치적 목적을 위해 극우 인종주의 세력을 부추기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그가 자신의 정책에 반대하는 주지사에 맞서라고 트윗을 날려 극우 세력이 납치 계획을 세우는 일까지 벌어졌다.

최소한 선거 과정과 결과를 수용하는 것이 미국의 관례였는데, 트럼프는 자신이 패배했을 경우에는 선거 결과를 수용하지 않을 수 있다는 언급을 반복했다. 우편투표를 비롯한 선거 방식에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를 하면서, 선거 이후 대혼란이 일어날 수 있다는 불안감을 증폭시켰다. 특히 대통령 토론회에서 극우 인종주의 세력과 선을 그을 생각이 없냐는 질문에, 트럼프는 모호한 태도를 보이다가 "물러나서 대기하라(stand back and stand by)"라는 발언을 해 많은 이를 경악시켰다. '프라우드보이즈'(Proud boys) 같은 극우 신나치 조직에게, 자신이 선거에서 패배할 경우 무기를 들고 일어나라는 메시지를 보낸 것이 아닌가 하는 불안감까지 퍼져 갔다.

선거 결과가 나오면 패자가 승복 메시지를 내는 전통을 미국 역사상 처음으로 깨고, 아직까지 불복 의사를 견지하고 있다. 가장 신기한 점은 코로나19로 25만 명이라는 엄청난 국민이 목숨을 잃었는데, 정치적인 책임 공방에만 몰두할 뿐, 지도자로서 그에 대한 애통이나 아픔을 표현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다. 필자를 포함해 미국에서 이민자요 소수자로 살아가는 이들에게, 이러한 변화는 생존과 안전에 대한 위협감으로 다가왔다.


▲ 제46대 미국 대통령 당선인 바이든(오른쪽). 그는 오바마 정부에서 부통령으로 일했다.

앞에서 언급한 미국의 경제적 양극화로 많은 백인 중산층이 고통을 받았다. 그러나 '백인 복음주의자들'의 신앙관과 투표 행태를 보면서 질문하게 된다. 이들에게 타인의 고통에 대한 민감함이 있는지 의구심이 든다. 또한, 이들의 불만이 오히려 자신보다 더 가난하고 약한 소수자와 이민자에 대한 희생양 찾기로 나타나고 있는 것을 신앙적으로 합리화할 수 있는가 묻지 않을 수 없다.

사실 신자유주의와 세계화, 제조업의 몰락 등으로 백인 중산층이 영향을 받기 전에 가장 먼저 타격을 받은 이들은, 노예제와 인종적·경제적 차별 속에 미국 정착 역사가 시작되어 부동산이나 현금 자산이 없고 도심에서 노동자로 일하던 흑인들이었다. 흑인들의 거주지가 슬럼화할 때, 백인들은 안전한 교외로 빠져 나갔다. 조지 플로이드 사건에서처럼 구조적 인종차별은 지금도 진행형이다. 통계에 따르면 흑인 남성은 20명 중 1명이 수감되어 있고, 인생에서 3명 중 1명꼴로 감옥에 다녀올 가능성이 있으며, 흑인들은 같은 범죄를 저질러도 감옥에 가는 비율이 타 인종보다 훨씬 높다고 나올 정도로 구조적 차별에 시달리고 있다.

중남미의 이민자들은 목숨을 걸고 국경을 건너와, 미국 경제의 하부에서 백인들이 원하지 않는 저임금 일자리로 연명하며 힘겨운 생활을 이어 가고 있다. 최근 코로나19 사망자를 보더라도, 흑인과 히스패닉들의 사망률이 높다. 코로나19 감염에 취약한 대면 업무에 주로 종사하고, 의료 보건 서비스를 수혜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며, 대부분 사회적 거리 두기나 감염자 격리 등이 불가능한 주거 환경에서 살기 때문이다.

예수는 본인이 제국의 치하에서 차별받는 식민지 백성이자 정치적 박해의 희생자였고(헤롯의 영아 학살), 난민이었고(이집트로 피난), 가난했으며 교육받지 못했다. 그러한 출신과 배경으로 차별을 당했으며, 억울하고 잘못된 재판으로 고문과 사형선고를 받고 사회에 혼란을 일으키는 정치범으로 처형되었다. 그런데 예수를 믿고 사랑한다는 이들이, 이민자를 악마화하고 난민을 돕기를 거부하는 일을 과연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가?

낙태와 동성애를 강조하며 생명과 가족의 윤리를 강조하는 이들이, 살기 위해 도움을 청하는 고아와 과부, 난민의 호소를 거부하고, 심지어 어린아이를 부모와 갈라서 철창에 가두는 가혹한 정책까지 지지하는 일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는가? 99마리의 양보다 잃어버린 양 1마리에 우선순위를 두는 것이 예수님의 방식이고, 99마리를 위해 약한 1마리를 희생시키는 것이 세상의 논리라면 미국 복음주의 신앙인들의 행태는 어느 쪽에 가까운 것인가?

예전에 어떤 분이, 성경 공부 모임에서 구약의 룻기를 공부했는데, 룻의 이야기를 소수 인종이자, 난민, 경제적 능력이 없는 과부 여성의 사회적 문제로 연결시키자, 다른 분들이 그런 관점으로는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반응을 해서 놀랐다고 한다. 그러면 어떤 관점으로 해석했냐고 묻자, 자신이 힘들고 외롭고 배우자를 찾고 있을 때, 하나님께서 필요를 채워 주시고, 좋은 배필을 만나게 하시고, 자녀를 낳고 물질적으로 축복을 주신다는 등의 해석 이외에는 생각해 본 적이 없다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는 것이다.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 나의 구원, 나를 향한 하나님의 축복과 계획에 집중하는 것은 복음주의 신앙의 한 부분일 수 있다. 다만 그것이 모든 신앙의 핵심이 되어 버려서, 나의 문제와 고통에만 집착한 채, 예수님의 자비와 긍휼이, 나와 내 가족, 나와 비슷한 사람 이상으로는 뻗어 나가지 못하고, 타인, 특히 나와 다른 약자, 소수자의 고통에는 무감각한 모습의 신앙인으로 살고 있는 것은 아닌가 질문하게 된다. 그렇다면, 오늘 교회가 우리 사회 속에서 존재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고통스럽게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트럼프 지지자들이 모두 인종차별주의자는 아니며, 앞에서 언급한 대로 트럼프 현상에는 경제적 요인을 포함해 다양한 배경들이 깔려 있다. 그러나 트럼프 대통령이 보이는 인종차별주의적 발언들과 사회적 약자를 희생양으로 만드는 정책에도 그를 지지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신앙인들에게 약자의 고통과 구조적 불평등이, 절박한 신앙의 문제, 신앙적 가치로 이해되지 않는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게 만드는 것은 아닌가?

낙태·동성애로 대표되는 윤리적인 이슈에 집착하지만, 우리 사회의 약자와 소수자에게 막말을 서슴지 않고 돈·섹스·권력을 추구하며 인생을 살아온 트럼프 같은 인물도 자신들과 정치적인 입장이나 정체성이 같다면 하나님의 사람이라 칭송하는 것은 무엇일까? 결국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윤리라는 가치와 그 범위가 무엇인지, 정말 기독교 윤리라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인가, 아니면 그것이 자신들의 정치적·경제적·인종적 이해관계를 합리화하는 도구로 전락한 것인가도 질문하게 된다.

마치며

개인적으로, 선거 결과가 윤곽을 드러내면서 기억에 남는 두 가지 장면이 있었다. 하나는 트럼프 대통령의 영적인 조언자(Faith Adviser)인 폴라 화이트(Paula White)가 한 기도 모임에서 기도하는 장면이었다. 그는 하나님이 택하신(?) 트럼프에 맞서 악마가 선거를 조작하고 있다고 주장하며, 대적 기도를 하면서, 현재 전 세계에서 천사들이 동원되어 승리가 멀지 않았다고 하면서 방언 기도를 했다.

이 기이한 장면과 상반되는 다른 장면 하나는, 정치 평론가인 밴 존스의 선거에 대한 소감이었다. 그는 트럼프가 재선되지 않은 결과를 접하며, 감정이 북받치는 모습으로 말했다.

"오늘 아침에는 부모 노릇하기가 쉬워졌습니다. 아빠 노릇이 쉬워졌어요. 아이들에게 사람됨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이 쉬워졌어요. 아이들에게 진실을 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이 쉬워졌어요. 모든 사람들에게 쉬워졌어요. 당신이 무슬림이라면 미국 대통령이 당신이 미국에 있는 것을 원치 않는다고 할까 봐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당신이 이민자라면 미국 대통령이 당신의 아이를 빼돌리거나 아무런 이유 없이 '드리머'(dreamer)를 추방할까 봐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이번 선거 결과는) 지금까지 고통을 겪어 왔던 사람들의 억울함을 벗겨 주는 것입니다. '나는 숨을 못 쉬겠다'는 말은 단지 조지 플로이드에게만 해당되지 않았어요. 많은 사람이 숨을 못 쉬겠다고 느꼈습니다."

우리는 어디에서 예수의 마음을 느낄 수 있는가? 매우 조악하고 의심스러운 신학적·정치적 논리로, 특정 정당과 정치인을 하나님의 대리자로 참칭하고, 복잡한 현실의 정치적 문제들을 선과 악, 하나님과 사탄의 대립으로 단순화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남발하는 모습에서인가? 아니면 신앙의 언어가 아니더라도, 우리 사회의 최소한의 평등과 정의가 회복되기를 바라고, 소수자·약자들의 고통에 공감하며 눈물을 흘리는 모습에서인가? (*이인엽: 미국 버지니아주 워싱턴앤리대학(Washington and Lee University) 교수. 정치학을 가르치고 있으며, 한반도 문제와 미국의 외교정책을 연구하고 있다.)(본보 제휴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0년 12월 04일, 금 4:01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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