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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에세이] 기고
 
이현주 목사와 '노자 대담' 책으로 묶여
[무위당 장일순 평전 52회] 기독교 목사가 노자 사상에 심취한 가톨릭 신자와 마주하다

(서울=오마이뉴스) 김삼웅 기자(전 대한매일신보 주필) = 이런 장일순을 오래 전부터 지켜봐온 사람이 있었다. 기독교 이현주 목사였다. 기독교 목사가 노자 사상에 심취한 가톨릭 신자를 자주 찾는 것도 특이한 현상이었다. 그래서 이현주는 본격적으로 장일순에게서 노자를 묻고 파고 들었다.

노자(老子)를 가운데 모시고 선생님과 마주 앉아 이야기를 나눔이 나에게는 분에 넘치는 영광이요 즐거움이었다. 그 즐거움을 이웃과 나누고 싶어서 이 책을 만든다. 주고받는 눈짓 하나 또는 한동안 이어지는 깊은 침묵 속에서 소리없이 전달되던 미세한 감동마저 문장에 담을 수 없어 미안함이 크나,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주석 1)

이현주 목사가 원주 봉산동으로 장일순을 찾아 노자를 듣고자 했던 시기는 1993년 3월부터였다. 그런데 장일순은 1991년 6월 14일 병마를 얻어 원주 기독병원에서 수술을 받고 투병 생활 끝에 병세가 다소 호전되었던 시기였다.

선생님과 나는 노자의 『도덕경』을 읽어가며 그 '본문'을 주석하려고 하지 않았다. 다만 당신의 '말씀'으로 가리키는 것이 무엇인지, 그의 손가락이 가리키는 바가 무엇인지, 그걸 알아보려고 했다. 그리고 바로 그 자리, 그의 '말씀'이 손짓하고 있는 자리에 석가와 예수, 두 분 스승이 동석해 있음을 알게 되었다. 그분들도 같은 곳을 가리키고 있었다. (주석 2)


▲ 장일순 선생님. ⓒ 무위당 선생을 기리는 사람들의 모임
이현주는 '장일순의 노자 이야기'를 책으로 엮으면서 개정판 머리말에서 "선생님께서는 내 짧은 인생에서, 초등학교에 처음 등교하는 막내의 손을 잡아 교실 문앞까지 데려다 주는 부모 없는 집안의 맏형 같은 그런 분이셨다."고 하면서, 많은 시간을 내어 노자의 풀이를 듣고 세 권으로 묶어냈다.

이현주는 책을 펴내면서 "가톨릭 신자이신 선생님과 개신교 신자인 나는 결과적으로 부대사(傅大士)의 문장에서 '유(儒)' 자를 빼고 그 자리에 '기독'을 넣은 셈이 됐지만, 짠맛이야 어느 바닷물이 다르랴? 공자께서도 크게 웃으시리라"라고 덧붙였다. 그가 인용한 부대사의 싯구는 이러하다.

道冠儒履佛袈裟 도관유복불가사
會成三家作一家 회성삼가작일가
도가의 관 쓰고 유가의 신발 신고 불가의 옷 걸치니
세 집안이 모여 한 집안을 이루도다.


장일순의 모습을 중국의 재가 승려 부대사의 선시로 그런 것이다. 여기에 한 가지 덧붙힌다면 동학사상, 해월의 생명사상이 아닐까 싶다.

장일순은 '노자 이야기'를 다 마치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임종을 앞둔 어느날 병상에서 이현주는 다짐한다.

"선생님, 이대로 가셔도 제가 마치겠습니다. 선생님은 늘 제 속에 계시니까 제 속에 계신 선생님과 이야기를 계속해서 마치도록 하겠어요. <무위당 장일순의 노자 이야기>를 완성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이렇게 하여 상ㆍ중ㆍ하 세 권으로 엮었던 책이 730쪽에 이르는 단권으로 간행되었다. 총 81장에 이르는 제목으로 풀이된 방대한 내용이다. 뒤의 일부는 엮은이의 작품이랄 수 있겠지만, 논어나 성경이 모두 제자들이 정리한 것이라 하여 공자와 예수의 말씀이 아니라고 하지 않듯이, "선생님은 늘 제 속에 계시니까" 라고 했던 이현주의 풀이는 곧 장일순의 말씀이라 할 것이다.

많은 사람에게 감명을 주고, 무수한 사연남긴 장일순

그릇이 크고 도량이 깊고 활동범위가 넓은 사람은 정사(正史)와 함께 야사나 비사도 많다. 거물 정치인이나 유명 연예인 또는 고위관료는 언론에 노출되기가 쉬워서 사사건건이 알려지지만, 재야인사의 경우는 묻힌 사연 즉 야사와 비사가 많을 수밖에 없다.

장일순도 다르지 않았다. 원주라는 지역의 한계, 재야라는 샛길, 30대 이후 민주화운동→한살림운동→생명운동이라는 수직선상의 외길에도 불구하고, 그는 많은 사람을 만나고 여러가지 일을 하였다.

마실 다니고 품앗이 하면서 사귄 사람들로부터 각계의 거물에 이르기까지 많은 사람에게 감명을 주고, 각각의 사연, 삽화를 남겼다.

농부의 추수가 끝난 논에는 떨어진 날곡이 남아 있다. 버리기 아까운 날곡은 새들의 먹이가 되거나 그냥 땅에 묻혀 썩는다. 여기서는 떨어진 날곡 몇 알을 주워 모았다.

민청학련 준비기금 150만원 마련

박정희가 문을 연 이래 계속된 군사독재 시대에 민주화운동가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가와 결을 같이 한다. 30여년 지속된 군사독재의 폭압시대에 희생자도 적지 않았고 고문과 투옥시에 얻은 질병으로 일생이 망가진 분들도 많았다. 우리가 오늘 이 정도의 자유와 권리를 누리고 살 수 있는 것은 모두 이분들의 희생의 대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장일순도 그 중의 한분이었다. 그런데 민주화운동사에서 장일순의 존재가 아니었으면 다소 건조하지 않았을까 싶다. 전쟁에는 전투병과 함께 병참ㆍ의료병이 필수적이듯이, 민주화투쟁도 다르지 않았다. 민주화의 전사들이 일선에 설 때 장일순은 병참과 의료 역할을 맡았다. 그리고 부상병들을 치료하고 보듬어 주었다.

'병참기지' 역할의 대표적인 사례는 1974년 민청학련 사건에 '뒷돈'을 댄 일이다. 박정희가 유신쿠데타를 강행하고 긴급조치 제1호를 발령하여 폭압통치를 시작하자 1974년 3월 들어 각 대학에서 유신철폐 시위가 빈발하는 한편, 전국 대학생의 연합시위가 계획되었다.

4월 3일을 기해 전국의 대학에서 일제히 유신철폐 시위를 하기로 한 것이다. 아무리 학생들의 운동이지만 전국 대학을 연대하려면 교통비 등 일정한 자금이 필요했다.

정보를 입수한 정부가 4월 3일 민청학련을 노동정권 수립을 위한 정부전복기도 음모사건으로 날조하면서 다수의 민주인사와 학생들을 구속기소했다. 그런데 자금을 장일순이 마련하였다. 급전 150만 원을 준비하여 김지하를 통해 민청학련의 총무이던 조영래 (뒷날 변호사)에게 전달되었다.

이 자금은 전국 시위준비의 기금으로 씌였다. 학생시위 준비에 일정한 자금이 유입된 정황을 포착한 수사 당국이 북한의 자금이 흘러들어온 것으로 조작하려들었다. 그리되면 많은 희생자가 생길 위험한 지경에 처하게 된다.

장일순은 마침 도쿄에 머물고 있던 지학순 주교에게 은밀히 사람을 보내 사정을 얘기하고, 학생들을 살리기 위해 지 주교가 돈을 준 것으로 해달라고 요청했다. 가톨릭주교를 공산주의자로 몰아가지는 않을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이로 인해 지 주교는 귀국길에 김포공항에서 중정 요원들에게 체포되어 혹독한 시련을 겪게 되었으나 끝내 자금 출처를 밝히지 않았다. 장일순도 이런 사정을 뒷날 선전하지 않았다. 장일순은 부모 유산으로 남아 있던 땅을 팔아 당시에는 거금인 150만원을 마련하던 것이다. (주석 3)

부채질로 아내를 재우다

장일순 내외가 쓰던 방은 남향으로 앉은 집의 문간방이었다. 하루 종일 해가 들어 여름에는 무척 더웠다. 거기다 아내 이인숙은 더위를 많이 탔다. 한여름에는 더워서 잠 못 드는 날이 많았다.
그런 날에는 장일순이 옆에 앉아 부채질로 아내의 더위를 쫓아 주었다. 장일순은 그렇게 먼저 아내를 재운 뒤에 잠자리에 들었다. 장일순이 아내에게 쓴 편지가 있어 여기에 소개한다.

여(汝)보세요.

평생을 피곤하게 가시는 당신에게 드리고 싶은 것이 마음에 있는데 표시가 잘 안 되네요. 오늘 보니까 피나무로 만든 목기가 있어 들고 왔어요. 마음에 드실지.

이 목기가 겉에 수없이 파인 비늘을 통해 목기가 되었듯이 당신 또한 수많은 고통을 넘기며 한 그릇을 이루어가는 것 같아요.
(주석 4)

올 수 없는 아이들

출판사 '두레'에서 일하는 조추자는 대학생일 때 두메 산골 마을에 가서 교육 봉사 활동을 하는 이화여대 '횃불회'의 회원이었다. 대학을 졸업한 뒤 조추자는 바로 친구 둘과 강원도 원주시 문막면의 한 마을로 들어갔다. 거기서 조추자는 천막을 치고, 난생 처음으로 불편한 시골 생활을 하며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아이들을 모아 가르쳤다.

그 무렵에 조추자는 장일순을 만났다.

"돈 한푼 안 받아도 올 수 없는 아이들이 있을 겁니다. 버려져 있는 아이들입니다. 그런 아이들을 찾아가야 합니다. 찾아가 그애들과 함께 일하며 나누세요. 책이 없어도 서로 아는 것을 주고받을 수 있잖아요? abcd가 중요한 게 아니잖아요? 일 속에서 당신들이 원하는 것을 모두 가르칠 수 있어요."

30년도 더 전의 일이었다. 그러나 조추자는 장일순의 이 말을 아직도 잊지 못하고 있다. (주석 5)

<주석>
1> 이현주,『무위당 장일순 노자 이야기』, 초판 머리말, 2004년, 개정초판 4쇄, 삼인.
2> 앞과 같음.
3> 선종원 증언, 「지학순과 장일순」,『무위당을 기리는 사람들』, 2001년 7월 20일.
4> 최성현, 앞의 책, 82~83쪽.
5> 앞의 책, 92쪽.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0년 11월 20일, 금 3:25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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