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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에세이] 생활 에세이
 
이러면 살아도 사는 게 아니야... 암 수술을 포기하다
[송성영의 암과 함께 살아가기2] 암센터에서 마취 상태로 '희망가'를 불렀다니...

(서울=오마이뉴스) 송성영 기자 = 서울 큰 병원에서 암이 얼마나 진행되어 있는지 좀 더 정밀한 검사를 하기 위해 날을 잡아놓고 해미 가야산 산막으로 향했습니다. 도중에 두 아들과 몇 가지 약조를 했습니다. 술, 담배 끊을 것. 음식 조절할 것을 비롯해 암 투병을 위한 준비를 녀석들이 하자는 대로 할 것 등등.

"우리도 담배 끊을 테니까 아부지도 약속 지키셔..."
"좋다. 나도 니들에게 부탁할 게 있다. 아부지 때문에 불안해하지 말고 평소대로 생활하는 거다. 평소대로 음악 작업하고, 당장 산막에 돌아가면 양파 모종 심고 마늘밭에 거름 내고. 애초 계획대로 사람들에게 곶감도 나눠주고. 오늘은 인상이 생일이니까 케이크도 하나 사고..."

서산에 도착하자마자 한살림 매장으로 향했습니다. 주변 분들이 병문안 와서 건네주신 봉투를 털어 위암에 좋다는 유기농 식재료를 구입했습니다. 그리고 녀석들은 서로 약속이라도 한 듯 자신들의 주머니에서 고등학교 때부터 피어온 담배를 꺼내 가차 없이 던져 버렸습니다.


▲ "우리도 담배 끊을 테니까 아부지도 약속 지키셔..." ⓒ 송성영

현미며 두유, 참마, 두부 등등 평소 먹기 힘든 값비싼 유기농 먹을거리들을 싸들고 산막에 돌아오자마자 썰렁한 아궁이에 불부터 지폈습니다. 그런데 곶감이 엉망진창이 되어 있었습니다. 감을 따다가 삐끗한 허리로 보름 넘게 천 개가 넘는 곶감을 깎아 놨는데 멀쩡하게 매달려 있는 곶감이 거의 없었습니다. 입원해 있던 일주일 내내 물까치들이(떼로 몰려다닌다 하여 흔히 떼까치로도 불립니다) 곶감 잔치를 벌였던 것입니다. 녀석들이 한 개를 집중적으로 파먹은 게 아니라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조금씩 파먹어 온전하게 보존된 곶감이 거의 없었습니다.

"짜식들이 감나무에 달린 것이나 쪼아 먹을 것이지 일부러 다 따지 않고 냄겨 놨구먼... 사람들 한티 나눠주고 남는 것은 팔아 볼까도 했는디..."
"에이그 참. 지금 곶감이 문제여. 인저 아빠 건강만 생각 혀."
"그려, 누가 먹었든 상관있냐. 물까치든 누구든 맛있게 먹었으면 됐다. 그래도 그렇지 저 눔의 새끼들이 한 개나 제대로 파먹을 것이지..."

몇 년 동안 피어온 담배를 쓰레기통에 던져 버렸듯이 산막으로 돌아온 두 아들이 달라졌습니다. 새벽까지 자지 않고 해가 중천에 떠서야 일어나던 녀석들이 이른 아침에 일어나 함께 산책을 나섰고, 지 애비 식단에 맞춰 아침밥상을 차리고 지게를 짊어져 땔나무를 구해오고 양파를 심었습니다.

"에이 아빠! 꼭꼭 씹어서 천천히 드시라니께."
"천천히 먹잖어 짜식들아."
"빨리 씹어 삼키고 천천히 먹으면 안 되지... 씹는 것을 천천히 해야지..."

밥 먹을 때마다 꼭꼭 씹어 먹고 짠 음식 등등 위암에 해로운 음식들을 가려내는 등 시시콜콜 참견하는 게 다소 성가시긴 했지만, 그런 녀석들이 대견하고 고맙고 아프게 다가왔습니다.

두 아들은 나름 인터넷 검색 등을 통해 암환자들에게 좋은 항암식품 등을 찾아냈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솔숲에 들어가 마음을 다스리는 명상과 몸을 다스리는 기혈운동을 하면서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며 평상심을 잃지 않고 일상의 글을 쓰는 일이었습니다. 평소 좀처럼 찾지 않는 읍내 도서관을 찾아가 암 관련 서적을 들춰 보며 꼼꼼하게 암과 함께 하는 일상의 기록을 시작했습니다.


▲ 읍내 도서관을 찾아가 암 관련 서적을 들춰 보며 꼼꼼하게 암과 함께 하는 일상의 기록을 시작했습니다. ⓒ 송성영

마취제에 취한 상태에서 부른 희망가

그리고 며칠 후 좀 더 자세한 검사를 받기 위해 서울 큰 병원에 다시 찾아갔습니다. 따로 병동이 마련되어 있는 암센터는 이른 아침부터 사람들로 북적거렸습니다. 암 세포가 얼마나 퍼져 있는지를 알기 위해 좀 더 심도 있는 검사를 하는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습니다. 여기저기 검사장을 찾아다니며 은행처럼 번호표를 뽑고 차례를 기다려야 하는 피검사부터 CT 촬영, 내시경, 그리고 그 이름도 헷갈리는 MRA인지 MRI인지와 심전도 검사에 이르기까지 태어나서 처음 접하는 별의 별 검사를 다했습니다.

정확한 기억은 없지만 열 가지에 가까운 검사를 받았던 것 같습니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인데 그 모든 검사들이 수술을 위한 종합 검진이었던 것입니다. 분명 의사나 간호사가 종합검진에 대해 언급 했을 것인데, 위를 다 잘라내야 한다는 말 한마디에 그로기 생태가 되어 정확히 기억하지 못했거나 당연히 수술을 받을 것이라 여겨 의사가 구체적인 설명을 생략 했을 것이었습니다.

내시경처럼 마취된 상태로 검사를 받아야 하는 것도 있었습니다. 몽롱한 상태로 두 아들에게 짐짓 여유를 부린답시고 기념사진을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내가 왜 병원에 와 있는지 잠시 망각한 의식상태. 초점이 없는 눈빛. 핏기 없는 얼굴. 암 센터에서 검진을 받는 사람들의 얼굴빛이 내 얼굴빛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검사를 마치고 산막으로 돌아오는 길목에서 마취가 풀리고 있는데 운전대를 잡은 큰 아들 인효가 그럽니다.

"아빠 노래 한 거 기억 안나?"
"무슨 노래? 어디서?"
"병원에서 불렀잖어... 이 풍진 세상을 만났으니 너의 희망이 무엇이냐... 정말 기억 안나?"
"가물가물... 그랬구나. 병원에서 그랬어... 부귀와 영화를 누렸으니... 그 노래 불렀구나."

몽롱하게 마취제에 취한 상태에서 사람들이 보건말건 '푸른 하늘 밝은 달 아래 곰곰이 생각하니 세상만사가 춘몽 중에 또 다시 꿈 같도다...' 라는 가사로 이어지는 희망가를 불렀던 것입니다. 그것도 사람 많은 큰 병원에서.

"그 노래 제목이 희망간디, 니 엄마와 심하게 다툴 때 종종 부르곤 했었다."
"우리 어렸을 때 그 노래 아빠가 불렀던 거 기억나."

그 노래가 왜 그런지 모르겠지만 내겐 희망가가 아닌 절망가처럼 슬프게 들려옵니다. 그제서 나는 어린 시절 술에 취하면 늘상 노래를 불렀던 아버지를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시골 마을이 어느 날 갑자기 도시화 되어 농지를 잃고 농기구 대신 술병을 들었던 아버지의 희망가는 절망가였던 것이었습니다.

그날 산막으로 돌아와 병원에서 아들의 모바일에 찍힌 핏기 없는 내 모습을 보았습니다. 만취상태로 비틀거리며 담장을 짚고 집으로 돌아오던 나의 어린 시절 아버지의 모습 같았습니다. 초점이 없는 눈빛. 핏기 없는 얼굴. 수술을 받게 되면 암환자가 되어 핏기 없는 얼굴로 살아야 할 것이었습니다.


▲ 그날 산막으로 돌아와 병원에서 아들의 모바일에 찍힌 핏기 없는 내 모습을 보았습니다. 만취상태로 비틀거리며 담장을 짚고 집으로 돌아오던 나의 어린 시절 아버지의 모습 같았습니다. ⓒ 송성영

그렇게 파리한 얼굴빛으로 두 번째 서울 큰 병원에 다녀온 이후 그동안 암 관련 언론 보도 자료와 서적을 통해 알게 된 지식들과 평소 생각하고 나름 실천해 오고 있는 생태적인 삶을 접목시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의 방향을 잡아 나갔습니다.

수술을 하지 말아야겠다

헌데 인터넷 검색이나 다양한 암 관련 서적을 통해 암에 대해 알면 알수록 내 몸은 수술대에서 점점 멀어져 갔습니다. 위를 모조리 잘라내는 전절제 수술을 받고 나면 식도와 소장을 연결해 식사를 해결해야 합니다. 위장이 주먹만 하다면 소장은 손가락만합니다. 그 손가락만한 소장에서 소화시켜야 하기 때문에 하루에 일곱 여덟 차례 나눠 식사를 해야 합니다. 그 고통은 둘째치고라도 그 일곱 여덟 차례의 식사를 누가 챙겨줄 것이며 그 식단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가.

수술과 더불어 그 고통을 감내한다하더라도 완치 되는 것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중기 암은 수술로 끝나지 않습니다. 상태에 따라 방사선과 항암치료에 들어갑니다. 방사선 치료는 암세포뿐 아니라 정상 세포까지 무차별 죽입니다.

암세포의 성장이나 증식을 억제하는 항암제는 그동안 제 1세대라 할 수 있는 화학항암제, 혹은 세포독성 항암제, 2세대 항암제로 알려진 표적항암제, 3세대 항암제인 면역항암제 등이 나왔고, 그와 더불어 2020년 현재 4세대 항암제라는 '대사 항암제'가 임상단계에 들어갔다고 합니다.(항암제에 대한 치료효과와 문제점 등의 구체적인 설명은 차후에 하겠습니다.)

4단계까지 왔다는 것은 긍정적으로는 그만큼 암치료제의 발전이 있어 왔다는 것이고, 다른 한편으론 그동안 신약이라는 이름으로 나온 항암제들이 그만큼 부작용이 많다는 반증입니다. 1세대, 2세대, 3세대 걸쳐 새로운 신약이 나올 때마다 언론은 암환자들의 생명을 연장 시키는 차세대 신약이라 앞 다퉈 보도 합니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엄두도 못내는 고가의 차세대 항암제라 하더라도 모든 암에 적용되는 것은 아닙니다. 거기다가 환자에게 사용해도 얼마 후엔 내성이 생겨 더 이상 듣지 않고 부작용을 일으키기도 합니다. 부작용이 생기는 것은 항암제가 암세포만 공격하는 게 아니라 정상 세포도 공격하기 때문입니다. 그 공격으로 탈모, 설사, 구토 증상이 일어나는 것이지요. 하여 화학자들은 항암제를 독약이나 다름없다고 말하기도 합니다.

다시 정리해서 말하자면 수술이나 항암제 치료 등은 환자의 신체 기능을 약하게 하여 면역력을 떨어뜨립니다. 면역력이 약해지면 그 부작용으로 암이 재발하고 전이가 발생할 수 있습니다.

부작용 염려가 없다는 4세대, 대사 항암제가 동물 임상 등을 통해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좀 더 지켜봐야 그 효과를 정확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이 또한 상용화 과정에서 어떤 부작용이 발생할지 알 수 없는 일이니까요.

이러저러한 다양한 암 치료에 따른 부작용을 견뎌내고 5년 이상 살아남게 되면 완치 판정을 받게 됩니다. 5년 동안 수술과 방사선 혹은 항암제 치료를 마치고 정밀검사를 통해 암 세포가 보이지 않으면 완치 판정을 받게 되는 것이지요.

하지만 5년 완치 판정을 받았다 하여 암에서 완전히 해방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5년 이후 면역력 약화로 합병증이 생기거나 어딘가에 꼭꼭 숨어 있던 암세포가 방심한 틈을 타고 나와 재발, 전이 될 수 있습니다. 암세포가 사람마다 다르듯이 암 치료에 대한 효과 역시 사람마다 다릅니다. 물론 항암제가 몸에 맞아 재발과 전이, 합병증 없이 말끔하게 완치되어 5년은 물론이고 10년 이상 생명을 유지해가며 큰 무리 없이 일상생활 하는 사람들도 얼마든지 있습니다.

해가 거듭될수록 차세대 항암제의 개발로 암환자들에게 나름 좋은 성과를 거두고 있습니다. 하지만 나처럼 가진 게 별로 없는 암환자들에게는 그 값비싼 항암제는 그림의 떡입니다. 거기다가 나처럼 위 전체를 잘라내야 하는 진행형 중기 암인 경우에 수술 후 5년 생존, 그 이상 살아남을 확률은 반반이라 봅니다. 사람마다 그 선택이 다르겠지만 결국 병원에 의지해 수술을 할 것인지 말 것인지의 선택은 의사가 아닌 암 환자 당사자인 내게 달려 있었습니다.

암 전문의들은 당연히 수술하지 않으면 당장 죽게 될 것처럼 말하면서 수술을 선택해야만 살아남을 가능성이 많다고 합니다. 하지만 나는 그 반반의 선택에서 수술을 하지 않기로 결심했습니다. 의학적 근거가 빈약한 이 황당한 결심을 수술 후 완치 될 것이라 굳게 믿고 있는 두 아들에게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참으로 난감했습니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0년 11월 13일, 금 3:49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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