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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 문화
 
뉴욕 청년은 왜 핸드폰을 사려고 구걸했을까
[서평] 미국 긱경제 노동자 80여명 면담 반영... 책 '공유경제는 공유하지 않는다'

(서울=오마이뉴스) 김홍규 기자 = 국가인권위원회는 10월 29일 택배 노동자들의 연이은 사망과 관련해 장시간 노동 문제를 개선하고 법적 보호장치를 시급히 마련해야 한다는 내용의 위원장 성명을 발표했다.

성명은 "노동자의 생명과 안전은 노동을 제공하는 과정에서 보장받아야 할 가장 기본적인 권리"라고 전제했다. 그러면서 "노동자의 건강권 및 생명권 위협의 문제가 지속되지 않도록 시급히 대책을 모색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영애 국가인권위원회 위원장은 성명에서 1919년 ILO 총회에서 하루 8시간, 1주 48시간 노동이 정해졌는데, "택배 노동자들은 주6일 근무, 주당 평균 71.3시간, 하루평균 12시간 이상 일하는 것으로 나타나 100여 년 전의 국제기준조차 무색하다"고 지적했다.

'플랫폼 노동'이니 '디지털 기반 노동'이니 하며 첨단 기술과 편리함을 자랑하는 달콤함 말 뒤에는 초기 산업사회의 노동 현장만도 못한 살벌한 현실이 존재함을 직면하는 순간이다.


▲ "공유경제는 공유하지 않는다" - 긱이코노미의 민낯과 무너지는 플랫폼 노동자, 책표지 ⓒ 롤러코스터

아래 내용은 래브넬이 <공유경제는 공유하지 않는다>(긱이코노미의 민낯과 무너지는 플랫폼 노동자, 2020, 롤러코스터)에서 비정규직이 일상화된 경제 형태인 긱경제를 묘사한 부분이다.

"아무리 앱이 만드는 현대적 요소로 포장한다고 해도 긱경제는 초기 산업사회와 유사한 형태를 보여준다. 당시에는 노동자가 장시간을 일하고도 시간이 아니라 생산량을 기준으로 임금을 받고, 산업 안전이란 개념조차 존재하지 않았으며, 산업재해에 대해 보상받을 길도 거의 없었다." (21-22쪽)

래브넬은 책에서 '공유경제'를 "이윤을 위해 자산이나 서비스를 빌려주는 것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앱 기반 기술의 집합체"라고 정의했다. 긱경제와 같은 의미로 사용한다. 우리로 얘기하면 '플랫폼 노동'이라고 더 잘 알려진, '배달의 민족'이나 '요기요' 등이 매우 유사한 운영 체계와 원리를 보인다.

래브넬은 미국의 대표적인 긱경제 기업인 에어비앤비, 우버, 태스크래빗, 키친서핑 노동자 약 80명을 면담했다. 책은 면담 내용을 바탕으로 이들 기업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이 어떤 삶을 살고 있으며, 공유경제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참여 계기는 무엇인지를 자세히 풀어냈다.

긱경제 기업들은 노동자들에게는 '언제 무슨 일을 할지를 노동자가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다'고 광고한다. "좋아하는 일만 골라서 자유롭게 하세요. 요금은 직접 매기시고요." 가사 대행업체인 태스크래빗이 일할 사람을 끌어들이는 문구다.

하지만 노동자들의 선택권은 수시로 제약을 받는다. 오랫동안 디지털 플랫폼을 떠나 있으면 이용 정지를 당하거나 페널티를 받기 때문에 컴퓨터가 관리하는 일정을 따라야 한다. '배달의민족' 라이더들이 여러 대의 핸드폰을 켜놓고 있고, 정해진 배달 시간을 지키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고 달리는 이유다.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

"임시 노동, 적시 일정 관리, 대량 정리해고를 모두 채택한 공유경제는 노동자를 박대하는 수법을 기술적으로 혁신한 결과물에 지나지 않는다. 공유경제는 기업이 아무도 책임지지 않고 고용한 임시 인력을 앱과 연결해 주문이 들어오는 즉시 일정을 생성함으로써 편의를 제공하는 시스템이다."(292쪽)

"1만 명을 10~15분간 고용할 수 있습니다. 일이 끝나면 그 1만 명은 증발하죠." 책에서 인용한 한 CEO의 말은 매일 매일 우리 주변에서 벌어지는 일상이다. 긱경제는 디지털 플랫폼을 통해 필요한 사람을 필요한 곳에 언제든 '공급'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하지만, 긱경제는 필요하지 않다고 판단되는 사람은 언제든지 아무런 법적·사회적 보호장치 없이 사라지게 만들 수 있다는 이면의 또다른 사실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플랫폼 노동', '공유경제'라는 새로운 형태의 긱경제는 수백 년의 투쟁을 통해 쌓아온 노사 간의 기초적인 계약마저 쓸모없게 만들었다. 노동자들을 개인화하고 모든 책임을 지게 만드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는 긱경제를 통해 적나라한 모습을 보이는 듯하다. 심지어 노동자들은 자신의 노동력을 홍보하고 판매하는 기업의 역할까지 하게 되었다. "경제적 위험이 기업과 정부로부터 평범한 노동자에게 전가되는 현상"(293쪽)이 긱경제에서 일상적으로 벌어진다.

"공유경제 기업은 노동자에게 자율성과 사업의 발판을 제공한다고 홍보하지만, 사실은 복잡한 알고리듬으로 노동자가 검색 결과에 나오고 작업을 배정받는 과정에 깊이 관여하게 만든다. 신뢰라는 미명하에 노동자는 평가로 점철된 온라인 원형 감옥에 갇혀 신원조회를 받고, 평점과 후기를 받고, 지속적으로 모니터링을 당한다. 그러면서도 자신에게 일을 맡기는 사람이 누구인지 모르고, 기본적인 보호장치를 제공받지 못하고, 상당한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332쪽)

우버 택시 기사가 손님에게 폭행을 당할 때나, 태스크래빗 노동자가 의뢰인으로부터 턱없이 적은 임금에 비해 부당하게 많고 더러운 일을 요구받을 때도 기업은 노동자들을 지켜주지 않는다.

노동자가 회사의 책임을 묻는 경우 복잡한 절차와 부당하게 체결된 계약을 근거로 시간을 끌거나 책임을 회피한다. 오히려 의뢰인이 매긴 아무런 근거도 없는 부당한 평가를 이유로 불이익을 주는 데는 신속하게 움직인다.

배달 라이더의 노동조합인 '라이더유니온' 위원장인 박정훈이 최근 펴낸 책 제목이 <배달의민족은 배달하지 않는다>(빨간소금)이다. 공유경제 기업, 플랫폼 기업, 앱 기반 기업, 긱경제 기업 가운데 어떤 것을 선택해 부르던 이들 기업의 모습을 매우 정확하게 꼬집은 제목이다.

긱경제 기업은 중개만 할 뿐 생산수단을 보유하거나 노동자를 고용하는 데 인색하다. 그야말로 배달 기업이 실제 배달을 담당하지는 않는 것이다. 노동자들에게 감독과 업무 지시, 통제는 하지만 노동자들에 대한 고용이나 안전에 대한 책임에는 인색하다.

"공유경제 기업이 성장하고 급증하면서 수세대에 걸쳐 구축된 경제적 이득과 노동자 보호장치가 무너지고 있다. 노동자들은 초기 산업사회로, 다시 말해 노동자 보호장치가 존재하지 않고 노동자가 기업과 엘리트층의 지배를 받으며 큰 위험에 노출되어 있던 시대로 돌아갔다."(332-333쪽)

돈이 아닌 사람에 집중하는 사회 만들어야


▲ 우버이츠 배달원으로 채용된 한 남성이 뉴욕 공원에서 폰 개통을 위해 구걸하는 모습 종이에는 “우버이츠의 배달원으로 고용됐습니다. 증거도 있습니다. 일하기 위해서는 앱을 이용해야 하는데 폰이 없어서 아직 시작하지 못했습니다. 폰을 개통하기 위해 30달러를 모으고 있습니다. 꼭 일하고 싶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책 40쪽 사진 촬영. ⓒ 롤러코스터

"지금까지 공유경제를 다룬 책은 언론인이나 경영학 교수의 저서 일색이었다. 대부분이 그런 변화가 바람직하고 문제는 미미하다는 식으로 공유경제를 찬양했다. 하지만 나는 사회학자로서 좀 더 비판적인 시각에서 공유경제를 바라본다."(24-25쪽)

래브넬이 밝힌 책을 쓴 이유다.

우리나라도 다르지 않다. 요즈음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분류작업과 배달을 하며 아파도 쉬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기까지 일을 해야 하는 택배 노동자들의 모습이 연일 언론에 오르내린다. 그런데도 미국에서 학위를 받은 경영학과 교수 홍성태가 쓴 '배달의민족' 김봉진 대표를 인터뷰한 책 <배민다움>(북스톤)은 한 인터넷 서점에서 4주째 경제경영 부문 '톱10'을 달리고 있다.

홍 교수는 머리글에서 "김봉진 대표가 생각이 깊은 터라, 그의 이야기를 차분히 듣고 정리하여 경영학 교육의 자료로 삼으면 좋을 것 같아 심도 있는 인터뷰를 제안했더니 흔쾌히 협조"해 주었다고 썼다. '배달의민족'이 "문화를 만드는 회사"라는 것이 글쓴이의 핵심 주장이다. 그의 눈에는 거리에서 고통을 감내하는 수많은 '플랫폼 노동자'들의 삶은 보이지 않는 것 같아 아쉽기만 하다.

래브넬은 책에서 80여 명의 긱경제 참여 노동자들을 크게 세 부류로 구분했다. '고도의 사회문화적 자본과 기술'을 소유하고 있어 긱경제 기업들이 주장하는 선택권을 실질적으로 누릴 수 있는 성공한 사람들. 그 반대편에는 '마지막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긱경제에 뛰어든 그야말로 치열하게 삶을 위해 투쟁하는 '분투자'.

우버이츠 배달원으로 일하기 위해 핸드폰을 사려고 뉴욕 공원에서 구걸하는 청년이 대표적이다. 그리고 그 중간에 있는 사람들. 래브넬은 많은 자본과 기술을 가지고 어느 정도 성공한 사람들도 긱경제의 특성으로 인해 위험 부담이 점점 커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오늘날 공유경제가 일으키는 파괴의 결과물은 위태로운 품팔이로 또 하루를 버티는 삶에 지나지 않는다."(332-333쪽)

세월호 참사 이후 우리 사회는 '이윤보다 생명을', '돈보다 사람을' 중시하겠다고 선언했다. 문재인 대통령 후보의 선거 구호도 '사람이 먼저다'였다. '공유경제'나 '플랫폼 노동'이라는 그럴듯한 말로 포장된 긱경제는 사람을 이윤 추구를 위한 도구의 극한적인 형태로 전락시키고 있다.

100년 전보다 못한 노동환경에서 과로사로 죽어가는 택배 노동자들 소식이 연일 언론에 보도되는데도 이윤을 앞세운 기업뿐 아니라 고용노동부조차 별다른 대책을 세우지 않고 있다.

코로나19로 새로운 삶의 패러다임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세월호 참사 때 우리가 했던 다짐이 바로 사람과 노동, 세상을 대하는 우리들의 생각과 자세를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삶의 패러다임 전환 선언이었다.

코로나19에 굳이 기대지 않더라도 그때의 다짐과 선언을 기억하고 삶으로 소환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 수년이 지난 지금까지 세월호 참사의 진상 규명조차 못 하는 것이 결코 우연이 아니다.

<공유경제는 공유하지 않는다>는 노동과 사람을 가볍게 여기는 '뿌리 깊은 폐단'을 그대로 둔다면 아무리 '새로운 기술과 해법'을 제시하더라도 그것은 새로운 삶의 패러다임이 될 수 없음을 보여준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0년 11월 13일, 금 3:34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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