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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시간: (EST) 2020년 11월 26일, 목 7:36 pm
[종교/문화] 종교
 
"코로나19 이후 가부장적 교회 시스템 지속 불가능"
[한국의 여성 신학자들] 강남대 백소영 교수②

[뉴스앤조이-강동석 기자] 신을 만난 인간의 학문. 백소영 교수(강남대 기독교학과 초빙)는 '신학'을 이렇게 정의했다. 신학은 신학자만이 아닌 인간 모두의 것이기에, 신학자는 공동체의 구체적 정황 속에서 인간 경험과 고통을 언어화해야 할 책무가 있다고 했다. 초월적 신앙으로 어떤 희망을 품어야 하는지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했다.

백소영 교수는 2005년 첫 번째 책 <우리의 사랑이 義롭기 위하여>(대한기독교서회)를 출간한 이후 20권 넘는 책을 냈다. 이 모든 작업은 앞서 언급한 그의 신학 이해와 맞닿아 있다. 백 교수의 글은 형식에서 자유롭고 어투도 대중 지향적이라 쉽게 읽힌다. 이는 그가 하나님을 잘 설명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신학을 공부해 왔고, 공동체와 더불어 일상을 살아온 여성 신학자이기 때문이다.

백 교수 책은 크게 네 가지 범주로 정리할 수 있다. <우리의 사랑이 義롭기 위하여>, <버리지 마라 생명이다>(꽃자리) 등은 '무교회 운동', <백소영의 드라마 속 윤, 리>·<드라마에서 긷는 영성>(꿈꾸는터) 등은 '드라마 영성', <엄마 되기, 힐링과 킬링 사이>·<적당맘 재능맘>(대한기독교서회) 등은 '개신교 모성 담론', <페미니즘과 기독교의 맥락들>(뉴스앤조이)·<성서 속 여성이 보내온 편지>(서울YWCA) 등은 '기독교 페미니즘'에 속한다.

백소영 교수가 처음부터 네 가지 주제를 연구하겠다고 마음먹은 것은 아니다. 삶의 자리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질문을 성찰한 결과라고 했다. 무교회 운동은 '우리는 어떤 공동체여야 하는가'에 대한 답이었고, 드라마 영성은 '일상은 신학·신앙 성찰의 매개체가 될 수 없는가'에 대한 답이었다. 개신교 모성 담론은 '왜 여자는 나 혹은 엄마 중 하나만 해야 하나'에 대한 답이었고, '기독교 페미니즘'은 '페미니즘은 기독교와 같이 갈 수 없나'에 대한 답이었다.

대중 강연과 저술 활동을 꾸준히 펼쳐 온 백소영 교수는 올해 2월부터 유튜브 '소영한 인문 신학'도 시작했다. 여성 경험으로 성경을 읽는 방법을 알려 달라는 요청에 응답해, '미드라시'(Midrash)라는 읽기 방법을 통해 안전하면서도 깊이 있게 본문을 풀어내는 영상을 올리고 있다. 백 교수는 많은 교인이 주체적으로 성경을 읽는 기쁨을 누리기를 바란다고 했다.

백소영 교수를 9월 21일 그의 연구실에서 만났다. 그와의 인터뷰를 2편으로 나눠 정리한다. 저번 글에서는 PK로서의 삶과 고민을 비롯해 박사 학위를 받기까지 여정을, 이번 글에서는 저술 활동과 여성 신학자로서의 생각을 담았다.


여성 신학자 백소영 교수를 만나, 그의 삶과 신학에 대해 들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 미국에서 학위를 마치고 돌아와 학자로 활동한 시점은 언제인가. 한국에 돌아온 후 생활은 어땠나.
댈러스에 간 것도 한국에 온 것도 남편 직장 때문이었으니, 참 '밀려 밀려' 살았다. 한국에는 2004년 4월 들어왔고, '한국의 무교회 운동'을 다룬 박사 학위논문을 일상 대중적 어투로 <기독교사상>에 1년간 연재한 내용을 묶어 <우리의 사랑이 義롭기 위하여>를 2005년 출간했다. 학교에 출강한 시점도 2005년 봄 학기부터다. 그 후 학기마다 한 과목씩 가르쳤다. 한국에 들어오고 조금 지난 뒤에 출강한 것은, 아이를 적응시키는 데 시간이 걸렸기 때문이다.

윤리학을 전공한 탓에 떠나기 전에도 한국 사회 양극화를 걱정했는데, 돌아와 보니 더 심해져 있더라. 더욱 가시화한 신자유주의적 양극화 구조가 눈에 들어왔다. 당시 나는 양극화 중 형편이 나은 쪽에 자리한 주부이기도 했다. 분당 지역에 사는 기혼 여자가 기독교사회윤리학을 한다는 데서 오는 괴리와 고민도 있었다.

언뜻 보면, 충분히 살 만한데 잠깐 자기실현하려고 한 과목만 가르치며 학교에 들락거리는 것처럼 비치기도 했다. 두 영역의 여성 집단으로부터 동시에 비난받는 경험으로 내적 갈등이 컸다. 소위 살 만한 전업주부 집단과 신자유주의적이고 경쟁력 있는 여성 전문가 집단이었다. 양쪽 집단 모두 프라이드가 엄청나더라. 내게 끊임없이 한쪽을 버리라고 했는데, 경계를 오가며 양쪽 허점을 많이 봤다. 그러던 중 나온 책이 <엄마 되기, 아프거나 미치거나>(대한기독교서회)다.

- <엄마 되기, 아프거나 미치거나>로 시작해, 한국 개신교 여성의 모성 경험을 다룬 책을 여러 권 냈다. 집필하기로 마음먹은 계기가 있다면.
댈러스에서 육아하면서 보낸 5년이 정말 힘들었다. 그때 경험을 '아프거나 미치거나'로 표현할 수 있겠더라. 그때는 내가 잘못됐다고 생각했다. 페미니즘을 배우고 자기 길을 간 선배들은 비혼을 선택하거나, 아이를 낳지 않거나, 육아를 하지 않았다. 나도 페미니즘을 배웠지만, 내가 전통적 배치에 맞지 않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런데 아이와 함께 간 놀이터에서 만난 네팔·인도·미국 엄마도 나와 똑같은 정서를 갖고 있더라. 같은 문제를 겪는데, 대부분 미국에 유학 온 엄마들이었다. 유학 왔다가 결혼한 이후에 자기 것을 놓고서 지금 위치에 강제로 배치됐다는 동질성이 있었다. 그러면서 이 공동 경험이 '제도적 감정'이라는 사실을 포착했다. 제도가 육아기 여성들에게 주는 분열감인 것이다.

이때부터 엄마들을 인터뷰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개신교 모성 경험'이 아닌 '모성 경험'으로 다루려고 인터뷰했더니, 마구 섞이더라. 인종을 나누기도 어려워 '한국의 개신교 여성'으로 좁혀 182명과 질적 인터뷰를 진행했다. 한국은 제도적으로 단행본보다 연구 논문을 더 높은 점수를 줘서, 등재 학술지에 내려 했다. 그런데 평가위원들이 182명 이야기를 어떻게 일반화할 수 있느냐고 묻더라.

평가위원들이 질적 인터뷰에 대한 이해가 없었던 것 같다. 다 남자이고 대부분 신학자라서 그랬을 수 있겠다. 결국 학술지가 아닌 책으로 출간하기로 했고, 단행본이니 풍부한 질적 자료를 굳이 압축할 필요가 없었다. 감사한 것은 단행본으로 내면서 책 내용이 대중화하며 실제적 변화가 일어났다는 점이다. 나름대로 운동도 진행됐고, 자발적 단체도 여럿 생겼다.

가끔 '무교회'에서 '엄마 되기'로 주제가 확 바뀐 것 같다고 질문하는 사람이 있다. 나는 두 주제가 던지는 기본 질문이 같은 범주라 생각한다. '주체 될 권리'를 소수 영웅에서 평민으로 끌어내려야 한다는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래야 사람들이 제도 안에서 노예가 되지 않는다.

그렇게 2009년 냈던 <엄마 되기, 아프거나 미치거나>는 거대 담론이 만든 '모범적 엄마' 이미지를 흔드는 책이었다(이 책은 21세기 한국 개신교 기혼 여성의 모성 경험을 △모성 결여형 △자격 미달형 △자유 부인형 △무한 책임형 △천상 소명형 △지상명령형으로 구분하고, 이를 만든 △유교적 전제 △기독교적 신념 △현대적 제도 장치를 언급하면서 대안으로 '제도의 재구성'을 이야기한다. - 기자 주).

- 182명을 인터뷰하고 풀어내면서 여러 감정과 생각이 교차했을 것 같다.
친정엄마 세대와 내 세대, 이렇게 두 세대로 나눠서 다뤘다. 책이 나왔을 때 친정엄마와 시어머니는 제목만 보고서도 반응했다. 엄마는 "내가 아프거나 엄마다", 시어머니는 "내가 미치거나 엄마다"고 하셨다. 각 키워드가 무엇을 뜻하는지 금방 안 것이다. <엄마 되기, 아프거나 미치거나>에 못 담은 젊은 세대 엄마 이야기를 이후 <적당맘 재능맘>으로 묶었다.

1G(generation)·2G·3G로 구분했다. 2G맘은 전업주부로 특징되는 친정엄마 세대다. '나 되기'는 제도 교육을 통해 훈련했지만, '엄마 되기'는 전통적으로 교육받은 분열적 세대다. 3G맘은 전문적으로 모성을 실천하는 후기-근대형 엄마인데, 나는 3G까지는 아니어도 2.5G 정도다.

재밌는 점은 각 연령대 엄마들이 비슷한 이야기를 한다는 것이다. 유형별로 수렴되더라. "시어머니는 왜 다들 똑같을까"라는 말도 있지 않나. 개성이 아니라 제도적 감정이라서 그렇다. 개인이 제도상 어느 위치에 배치되느냐에 따라 형성되는 동질의 감정이다. 모성 이해도 제도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책을 막 냈을 때, 한 여성 동료가 "책 한 권으로 세상이 바뀌니?"라고 반응했다. 전문가 여성도 아니고, 아이를 서울대 보내려는 알파맘도 아닌 대안적 사이-공간으로 엄마들을 오게 할 수 있느냐는 비판이었다. 그런데 출간하고 한 달 출장 갔다 왔더니, 강연 요청을 비롯해 연락이 엄청나게 들어와 있었다.

나를 부르는 곳이면 작정하고 거의 다 갔던 것 같다. 전국 지도를 그릴 만큼 특강을 많이 다녔다. 지역에 따라 2G맘이 많은 곳도 있고, 3G맘이 많은 곳도 있다. 그 세대에 맞게 언어를 맞춰 강연하는 게 중요했다. <적당맘 재능맘>은 4G맘을 향한 책이다(이 책은 근대 제도 말기 상황의 어려운 환경에서 나를 부양하고 너를 살리는 인간으로서 살아가도록 아이를 양육하는 '힐링맘'을 4G맘이라고 정의한다. - 기자 주).

이미 한국 개신교 엄마로서 평소 가진 의문이 많은 청중이라, 강연에서 툭 건드려 주기만 해도 모터가 스스로 돌아가듯 저절로 반응이 일어나면서 피드백이 쏟아졌다. 10년간 정신없이 돌아다녔던 것 같다. 출간 당시 육아기에 있는 엄마들은 나보다 10살쯤 어렸는데, 훨씬 자아가 강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주체로 서는 경험을 제도 안에서 많이 겪은 엄마일수록, 육아 공동체를 만든다든지 기존 모성 담론을 해체하는 다양한 실험을 하더라.

- 지금 2020년 시점으로 봤을 때, 모성 담론은 얼마나 달라졌다고 보나.
2013년 개정판(<엄마 되기, 힐링과 킬링 사이>)을 낼 때 대안 사례를 많이 담았다. 초판을 2009년에 냈는데, 불과 4년 사이 진행된 일들이 엄청났다. 이 책만의 영향이라기보다, 한 제도가 이미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는 상황이라 그랬던 것이다. 2020년 현재까지 많이 진전했다고 생각한다. 육아휴직을 자발적으로 신청하는 남자도 많아지지 않았나.

제도는 일만 하라고 하는데, 아이가 자라는 시간도 한정돼 있으니 관계를 맺으면서 아이 성장에 관여하고 싶은 아빠가 늘고 있다. 육아를 엄마·아빠만의 일로 제한하지 않고, 마을 단위 교회 단위로 혹은 시민단체나 공동체가 기르는 방식의 대안적 실험이 여러 곳에서 진행하는 중이다. 이런 모습을 보는 게 기쁘다.

강연 요청은 지금도 꾸준하다. 코로나19로 대면 강연을 많이 줄였는데, 최근 줌(Zoom)을 이용해 비대면으로도 진행했다. 예전에는 '많이 배우신 분이 좋은 소리를 하러 왔구나' 하는 식으로 반응하는 듯한 청중이 많았다면, 요즘은 구체적 고민 속에서 전문가에게 모니터링이나 피드백을 받으려고 강연을 의뢰하는 경우가 많다.

- 출간한 책 곳곳에 아들과 관련한 에피소드가 나온다. 육아가 힘들었지만, 육아를 통해 통찰한 것도 적지 않은 것 같다.
어렸을 적 나는 자기 의가 강해서 누가 나를 의심하는 일을 용납하지 못했다. 나를 평가절하하는 이들을 향해 큰 분노를 품기도 했다. 이게 교만일 수 있고, 바리새인이 자기 의에 사로잡히면 이러지 않을까 생각하기도 했다. 아이를 키우면서 이 지점을 성찰했다. 아이를 키우지 않았으면 무척 재수 없는 교수가 됐을 것 같다.(웃음) 모든 걸 계획대로 했을 테니까. 학생 본분에 대한 나만의 규범도 있었는데, 그 규범 속에 누군가를 가두지 않았을까.

우리 아이는 정말 이해 불가능한 '너'였다. 나를 닮은 구석이 1%도 없는 아이였달까. 육아기에는 아이와 오랜 시간을 보냈는데, 아이를 이해하기 위해 끊임없이 내 전제에 일단 괄호를 쳐야 했다. 그 훈련을 아주 힘들게 했다. 31살에 엄마가 됐는데, 지난 30여 년을 항상 내 기준으로만 봤으니까. '나'와 '너'의 경계가 부딪치는 경험이었다.
책에 쓴 에피소드인데, 겨울 공원에 생긴 빙판에서 아이가 장갑으로 바닥을 밀면서 썰매를 신나게 타길래, 썰매 탈 때 쓰라고 나무 막대기 2개를 구해다 줬다. 그런데 그걸 자기보다 나이도 어리고 덩치도 작은 애한테 뺏기더라. 그 모습을 보고 화를 냈더니 "엄마, 그거 원래 우리 것 아니었어"라고 대답하더라. 고마운 점은 그걸 보고 내가 내 관점을 반성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내 속의 자아가 완전히 제도 안에 포섭당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포섭당했다면 "이래서 세상을 어떻게 살래? 우리 것은 아니지만, 우리가 노동해서 가져왔으니 소유권을 주장해야지." 하고 아이를 다그치지 않았겠나. 그런데 여러 일을 경험하면서, 내가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은 낯선 시각들이 충격으로 다가와 내 속의 열망과 만났던 것 같다. 아이 때문에 당혹스러웠지만, 한편으로 기뻤다. 아이를 키우면서 계속 '아하!' 하는 순간을 체험했다.

부모님 보시기에는 내 모습이 답답했을 수 있다. 열심히 빨리 달려서 앞서가는 줄 알았던 애가 7년 정도 육아한다고 직업 세계를 포기했으니. 하지만 나는 그 시간이 마냥 괴롭지는 않았다. 아이에게서 새로운 시각을 봤으니까. 문명적 대안, 새로운 제도를 만들기 위한 '너'들을 볼 수 있는 시각을 많이 배웠다.

요즘에는 다들 출산을 꺼리는데, 이런 이야기를 책에 적어 놓다 보니, 교회에서 나를 불러 간증해 달라고 요청하는 경우도 있었다. 조심스러운 부분이다. 지금은 후기-근대 여성 배치상 육아가 매우 어렵다. 그래서 개인이 부여하는 의미와는 별도로 제도적 문제점을 언제나 강조한다.


백소영 교수가 낸 책들. 공저를 포함해 20권 넘는 책을 출간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 10년 넘게 드라마를 통해 신앙을 성찰하는 글을 쓰면서 책도 3권을 냈다. 드라마에 주목한 이유는 무엇인가.
같이 책 출판 작업을 했던 한 편집자가 드라마를 매개로 신학을 하는 글을 써 보지 않겠냐고 요청했다. <우리의 사랑이 義롭기 위하여>에서 무교회 운동을 다룰 때의 내 의도도 평신도에게 신학을 돌려주자는 말 아니었느냐면서. 일반적으로 신학을 어렵고 현학적이라고 평하는데, '평신도가 신학을 한다면 매체가 반드시 성경이어야 하나', '세속적 매체로는 못 하나' 하는 문제의식이 있었다. 당시 한국은 '드라마 왕국'이라고 할 정도로 드라마 소비가 많았다.

드라마를 썩 좋아하지 않았지만, 마침 시가와 친정의 두 아버지가 드라마를 좋아하셨다. 양가를 들락거리면 매일 드라마를 보고 계셔서 드라마를 쉽게 접했다. 잡지 <아름다운동행>에 3년 연재한 것을 묶은 책이 <드라마틱>(꿈꾸는터)이고, 이후 <빛과소금>·<주간기독교> 등의 요청을 받아 계속 쓴 글을 묶은 책이 <백소영의 드라마 속 윤, 리>·<드라마에서 긷는 영성>이다. 일상에 스며든 문화를 매체로 신학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한 내 나름의 답이었다. 드라마에 한정해서 꼭 드라마를 봐야만 영성이 생긴다는 말은 결코 아니다. 드라마에서도 영성을 찾을 수 있고 신학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교회에 가야만 예배할 수 있고 영성이 생긴다 여기고, 세속에 나오면 신앙적·신학적 성찰은 닫아 버리는 경우가 많지 않나. 교회 안에서는 영성 깊은 신앙인이라고 여겨지면서도, 교회 밖에서는 생존 때문에 양심을 저버리는 기독교인도 있다. 삶이 분리돼서 그렇다.

일상을 매개체로 신앙적·신학적 영성을 수행하다 보면, 24시간 기독교인으로 사는 훈련에 도움이 되지 않을까. 그러면 예배할 때는 은혜 충만하다가 예배당을 나와서 자기 집 앞에 있는 나물 파는 할머니에게는 갑질하는 일이 없지 않겠나. (성·속이) 분열된 삶을 막는 데 세속적 매체가 중요한 매개가 된다고 생각한다.

- 근래에 기독교 페미니즘 담론도 이야기해 왔다. '강남역 여성 혐오 살인 사건'을 비롯해 여러 이슈가 맞물리면서 페미니즘이 다시 주목받는 현상을 보며 어떤 마음이 들었나.
내 세대의 많은 페미니스트 여성 신학자 입장에서는 '뜨악' 하지 않았을까. 우리가 열심히 부르짖을 때는 반응도 없더니…. 사회학을 공부한 나는 '이제 올 게 왔구나' 싶었다. 1980년대 후반에는 전업주부 배치가 나쁘지 않았다. 제도가 주는 이익에, 삶에서 그다지 불리하지 않은 면도 있었다. 제도 안에서 잘 살고 있는 구성원이 많을 때는, 굳이 제도 바깥으로 나와 '주체로 서자'는 요구에 응답하지 않는다.

그런데 사회학적으로 3세대로 표현되는 요즘에는 '남자냐 여자냐'보다 어떤 전문성을 갖는지가 중요하다. 내가 전문가적 탁월성을 가졌는데도, 여성 배치에 놓여 불이익을 겪으면 못 견디는 것이다. 이 세대에게 페미니스트 담론은 당연한 것이니, '페미니즘 리부트'가 최근에 일어난 것도 당연할 수밖에.

우리 세대가 같이 들고일어나 흥분하기 힘든 것은 30년 전에 하도 기운을 뺐기 때문인 것 같다. 나도 페미니즘을 정리해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을 때 잠시 망설였다. 마침 내 언어로 내 신학을 풀어내던 때이기도 해서, 30년 전 배운 것을 다시 정리하는 일이 조금은 소모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도 이 주제로 강의하고 책도 낸 것은 두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첫 번째는, 요즘 세대 여성은 우리처럼 페미니즘을 학교에서 이론적으로 배우지 않고 인터넷으로 랜덤하게 배워 체계적이지 않다는 점이었다. 공존할 수 없는 페미니즘 이론을 막 섞어 버리거나 오해하고 있는 게 보였다. 정리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두 번째는, 기독교와 페미니즘을 어떻게 접목해야 하는지 고민이 체계적으로 진행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기독교 신앙은 교회에서, 페미니즘은 교회 바깥에서 배웠으니까. 실제 찾아오는 학생들이 질문하는 내용을 접하면서 정리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느꼈다. 그래서 선배이자 선생으로서 책임을 지고 내가 아는 이론들을 쭉 정리한 것이다. 고마운 점은 교회를 떠나려 했던 많은 자매가 "기독교 안에서도 페미니즘이 가능하겠군요", "페미니스트 시각으로 다시 점검할 때 내 신앙이 풍성해질 수 있겠군요"라고 반응하면서 이런저런 시도를 하는 모습을 보게 됐다는 것이다.


백 교수는 페미니즘을 통해 외부자적 시선으로 기독교 전통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뉴스앤조이 박요셉

- 페미니즘과 기독교 전통은 같이 갈 수 없다고 보는 시선도 여전히 있다. 페미니스트 중에서도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이 있고, 기독교 전통에서도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이 있는데.
래디컬 페미니스트 중에는 왜 아직도 기독교 전통을 붙잡고 있냐면서, 기독교를 버리라고 이야기하는 사람도 있다. 하나님과의 만남을 경험하지 못해 쉽게 이야기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신앙이 이미 내 삶의 중요한 부분이 된 자매에게 기독교는 쉽게 버려질 수 있는 게 아니다. 버리면 생존 불가능할 정도인데, 가능하겠나. 실존적 상황이 다르다.
복음주의 기독교인 중 남자 대다수가, 때로 여자조차도, 기독교 복음을 제대로 알면 성평등이 가능하고 모든 인류가 평등할 수 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페미니즘이라는 세속 이론까지 가져올 필요가 없다고 하면서, 이미 우리 모두는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하나라고 말한다. 그 말이 맞기는 맞다. 예수 복음의 핵심으로 들어가면 모든 차별은 무화한다. 그런데 왜 2000년 동안 모두가 그것을 보지 못했나.

성평등이 담긴 자명한 복음의 내용을 왜 인류는 2000년 동안 실현하지 못하고 실패해 왔는가. 외부자적 시선이 없었기 때문이다. 자기가 태어난 곳에서 쭉 살다 보면 내부자는 익숙해서 못 보는 경우가 생긴다. 낯설어져야 비로소 보이는 게 있다. 낯선 시각에서 기독교 전통과 텍스트를 볼 때 신앙의 핵심을 더 잘 볼 수 있게 된다. 그래서 페미니즘이 필요하다. 두 가지를 섞어 버리겠다는 게 아니라, 두 가지가 같이 가야 한다는 말이다.

한편으로는 기독교적 시각이 세속 페미니즘에 기여할 부분이 있다. 후기-근대사회 제도와 엮여서 개성, 각자도생, '나 혼자 살자'라는 제도적 감정과 맞붙게 되면, 페미니즘은 자칫 나의 생존을 위한 하나의 이기적 주장이 될 수도 있다. 모든 페미니스트가 그렇지는 않지만, 실제로 볼 수 있는 모습이다. 나는 후기-근대적 각자도생과 붙어 있는 페미니즘은 페미니즘의 위반이라고 생각한다.

페미니즘 태생 자체가 그렇지 않았다. '남자만 사람이냐? 우리도 사람이다'라는 말로 시작했으면, 모든 사람이 함께 사람으로 존중받는 세상을 향해야 한다. 내 입지를 확보하려고 '너'를 배제하거나 억누르는 방식은 페미니즘이 아니다. 세속 페미니즘이 자가당착의 길로 가지 않으려면, 기독교 신앙의 공동체적 비전 및 타자를 향한 연민·사랑과 접목하는 일이 필요하다. 기독교 페미니즘은 기독교 내부에서도, 세속 사회에서도 고유의 기여도가 있다는 말이다.

- 교회가 페미니즘을 받아들이면서 성평등한 공동체로 나아가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
나는 리버럴 페미니스트나 래디컬 페미니스트보다 우머니스트(흑인 페미니스트) 이야기에 동조한다. 우머니스트가 자기 공동체를 떠나지 못하는 것은 자기보다 더 약한 배치에 있는 아이 때문이다. 자신의 부재 상태를 감당해 줄 제도, 살림의 네트워크가 없으니 할 수 없이 그 자리에 있기로 결심한 것이다.

'이 제도에는 구원이 없어' 하면서 나가 버리는 것이 아니라, 페미니스트 개인들이 어떻게 이 교회라는 제도에 남아 하나님이 주신 삶을 풍성하게 살아 낼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을지 투쟁해야 한다고 본다. 물론 무조건 나가면 안 된다고 하는 또 다른 규범을 만들려는 게 아니다. 기껍게 가능하다면 '살고 살리는 기독교 페미니스트'가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살고 살리는 페미니즘이 교회 안에 있다면, 성평등뿐 아니라 모든 평등을 구체적으로 실현할 제도를 만드는 일이 가능하리라고 생각한다.

전반적으로는 희망적이다. 향후 10년 안에 많은 변화를 볼 수 있지 않을까. 담론도 교회에 들어갔고, 제도적 변화도 생길 테니. 가부장적 교회는 이제 생존이 불가능하다고 본다. 코로나19로 엎친 데 덮쳐, 현재 교회 시스템 자체가 지속 가능하지 않다. 새로운 방식의 '헤쳐 모여'가 필요하다.


백 교수는 가부장적 시스템으로 존속돼 온 교회는 코로나19 이후로 생존이 어려워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살고 살리는' 생존 공동체를 지향해야 한다고 했다.

- 한국 사회와 교회에서 '여성 신학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어떤 일인가.
한국 사회와 교회에서 여성이 신학자로 살아간다는 것은 언제든지 그만두고 도망가고 싶은 일이다.(웃음) 물론 도망가지 않은 덕분에 삶 전체를 통과하면서 '살고 살리는'이라는 키워드를 건져 올릴 수 있어 감사하다.

가장 오래되고 가장 드러나지 않는 투쟁이기도 하다. 독립운동, 민주화 운동처럼 운동성이 가시화하지 않았으니 무슨 투쟁을 하며 살았느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일상이 강요한 여성 배치에서 투쟁적으로 산 신학자다. 용기 내어 이번 인터뷰에 응한 것도, 일상을 사는 많은 여성의 언어가 들려져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여성 신학자는 여성 배치에서 자유롭지 않다. 여성의 교회 생활, 여성의 사회생활, 엄마로서의 삶…. 다 일상처럼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대부분의 여성이 겪는 광범위하고 오래된 투쟁 현장이다. 이 투쟁 현장에서 제도가 만들어 놓은 답에 굴복하지 않고, 하나님 안에서 몸부림치면서 내 나름대로 답을 찾았다. 그 답이 함께 살아가기 위한 것이라는 사실이 기쁘다. 이 기쁨으로 여성 신학자의 삶을 버티는 것이다.

- 교회란 어떤 곳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나.
'살고 살리는'이라는 키워드는 한마디로 '생존'이다. 한국교회가 지금까지 영혼 구원에 초점을 두다 보니, 초대교회만큼 하루하루의 양식을 책임지고 있지 않았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많은 중산층이 무너질 텐데, 한국의 많은 지역 교회가 '생존 공동체'가 돼야 하지 않을까. 교회를 '하나님의 오이코스'라고 표현한다. 오이코스는 독립 생존이 가능한 가족 단위를 의미한다. 교회는 하나님의 오이코스로서 어떻게 헤쳐 모일 것인지 고민하고 실천해야 한다.

- 이 시대 신학이 교회와 사회에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
교회 현장과 분리된 신학은 존재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다. 신학을 하려면 구체적 공동체가 필요하다. 이 시대 신학은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경험과 고통을 언어화해 줄 수 있어야 한다. 왜 아픈지 모르는 사람이 많은데, 아픔이 일단 드러나야 하지 않나. '아프거나 미치거나' 같은 단어로 나오듯이, 언어화가 중요하다. 그 이후에는 초월적 신앙으로 어떤 희망을 품고 가야 하는지 비전과 실제를 제시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

이것이 신학의 방향이라고 생각하지만, 신학은 신학자만의 것이 아니다. 신학은 사실 무례한 단어다. 신에 대해 학문을 하겠다는 이야기니까. 어떻게 인간이 신에 대해 학문을 할 수 있겠나. 내가 볼 때 신학은 '신을 만난 인간의 학문'인 것 같다. 그래서 나는 '인문 신학'이라고 표현한다. 신학자만 신을 만나는 게 아니니까. 신을 만난 인간에 대한 학문은 인간 모두의 것이라고 생각한다.

- 앞으로의 계획은.
앞으로 삶의 배치가 어떻게 되느냐에 따라 달라질 텐데, 내가 예상하는 다음 작업은 직업 영역에 대한 것이다. 내가 경력 단절이 오래되다 보니 아직 비정규직이다. 이제는 옛날처럼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바뀌는 식의 수순을 기대할 수 없다.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드라마틱하게 위치가 바뀔 수 있는 것이다. 일·노동·생계·직업·자아실현, 다양한 차원이지만 하나로 묶일 수 있는 '노동 영역'을 성찰하는 중이다.

'나'는 후기-근대적 삶의 벼랑 끝에서 생득권을 지키면서 '우리'의 생존을 가능하도록 노동할 수 있을까. 이것이 향후 10년간 배치될 내 자리라고 막연하게 생각한다. 실존적으로 고민하면서 통과하다 보면 결과물이 나오지 않을까. (본보 제휴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0년 11월 06일, 금 9:48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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