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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경제
 
예나 지금이나... '전쟁' 중에 이상한 집회 여는 사람들
[역사로 보는 오늘의 이슈] 한국전쟁 기간, 부산을 어지럽힌 극우 세력

(서울=오마이뉴스) 김종성 기자 = 세계적인 코로나 사태 와중에 광복절 집회와 개천절 집회 문제로 세상을 심란케 하는 극우세력의 모습은 이번에 처음 나온 건 아니다. 눈앞에서 벌어지는 위기 상황에 집중하지 못하고 불요불급한 정치 놀음에 몰두하는 극우의 모습은 한국전쟁 때도 볼 수 있었다.

이들은 임시수도였던 부산에서 전쟁과 무관한 이상한 집회를 열고 폭력 시위를 벌였다. 2020년의 극우처럼 그때의 극우도 비상시국 하에서 엉뚱한 일에 몰두해 있었다.

한국전쟁 와중에 나온 이승만의 '개헌' 발언


▲ 홍천, 6.25전쟁 중 전방부대를 시찰 하는 이승만 대통령(1951. 8. 22.). ⓒ NARA/박도

1950년 6월 25일 한국전쟁 발발 직후 서울을 떠나 남하할 때 이승만 대통령의 마음에 걸리는 게 있었다. 전쟁 발발 26일 전의 2대 총선에서 친(親)이승만 세력인 대한독립촉성국민회가 전체 210석 중 14석을 얻는 데 그친 일이다.

1948년 제정된 헌법의 제53조는 "대통령과 부통령은 국회에서 무기명 투표로써 각각 선거한다"고 규정했다. 제55조에 따라 대통령 임기가 4년이었으므로, 1950년 총선에 참패한 이승만이 1952년 대통령선거에서 승리할 가능성은 극히 낮았다. 그래서 6.25 전쟁 발발 당시 이승만 입장에선 나라를 지키는 일뿐 아니라 자기 자리를 지키는 일도 벅찼다.

나라를 지키는 일과 자리를 지키는 일 사이에 우선순위가 있어야 하는데도 이승만은 이를 분명히 하지 못했다. 전쟁 중인에도 그는 새로운 여당인 자유당을 조직하고 이를 기반으로 헌법 개정에 주력했다. 그는 당선 가능성이 없는 국회 간선제를 피하고자 국민 직선제를 개헌 목표로 설정했다. 직선제에 자신을 가질 만큼 인기 있는 지도자는 아니었지만, 일단은 국회 간선제를 피하는 게 급선무였다.

그는 임시수도 부산에서 발표한 1951년 광복절 기념사에서 직선제 개헌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는 그가 1951년 8월 15일 이전부터 개헌 준비에 착수했음을 의미한다. 전쟁 초반부터 '잿밥'에 마음을 두고 있었던 것이다.


▲ 부산의 피난민들. 부산시 서구 부민동의 임시수도기념관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임시수도 부산 불안케 한 극우단체들

그러나 이승만의 계획은 장벽에 부딪혔다. 그가 1951년 11월 28일 국회에 제출한 직선제 개헌안은 2개월 뒤인 1952년 1월 18일 국회 표결에서 부결됐다. 찬성 19, 반대 143, 기권 1표였다.

합법적 방법으로는 정권 연장이 불가능했던 이 시점에서 '밥값'을 하고자 등장한 세력이 바로 극우단체들이다. 전쟁 중인에도 이들은 직선제 개헌 쪽으로 상황을 몰아가고자 임시수도 부산을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으며 국회의원들을 압박했다.

극우단체들은 무리를 지어 다니며 임시수도를 불안하게 만들었다. 전시라는 점도 감안하지 않고 이들은 '국회 해산'이라는 무책임한 구호를 외쳤다. 1952년 2월 19일자 <동아일보> 기사 '현 국회 해산 등 요구'에 따르면, 대한청년단이 주도한 극우 집회의 풍경은 이랬다.

"'의회 독재를 모책(謀策)하는 배신 국회의원을 타도하자' 등등의 문구를 나열한 전국애국단체공동투쟁위원회 명의의 삐라를 뿌리며 푸랑카드를 든 약 3백여 명의 청년들이 '때려라' '부셔라'고 아우성치며 어제 아침 11시 5분부터 11시 45분까지 약 40분 동안 국회의사당을 포위하고 시위하였다."

시위대의 기세가 어찌나 거셌던지 경찰들이 총을 꺼내들어야 할 정도였다. 위 신문은 이렇게 보도했다.

"이날 경찰관이 입초(보초 서는)한 경남도청 정문으로 물밀 듯 몰려 들어간 한 떼의 청년들은 그 선도자가 부르는 구호와 함성에 호응하여 국회의사당을 포위하고 이리 왔다 저리 갔다 하면서 외쳤다. 이(이동철) 경남경찰국장이 지휘하는 경남경찰대와 국회특경대는 총부리를 내대고 이들 시위 군중이 국회의사당으로 밀고 들어오지 못하도록 방지할 따름(이었다)."


▲ 한국전쟁 당시의 부산국제시장. 임시수도기념관에서 찍은 사진. ⓒ 김종성

'살인국회 해산' 삐라... 버스 파괴한 '깡패'들

극우 단체들은 그해 4월 24일 전남 순천의 평화관이라는 식당에서 육군 대위 서창선이 독립운동가 출신이자 내각제 지지자인 무소속 서민호 의원을 정탐한 일이 발각되자 총으로 쏘아 죽이려다가 되레 서민호의 총에 사살된 사건을 적극 활용했다. 이를 활용해 국회를 '살인마 집단'으로 몰아갔다. 그해 5월 19일 자 <동아일보> 기사 '출처 모를 괴벽보 시내 일대에 출현'은 이렇게 보도했다.

"지난 17일 집행된 고 서창선 대위 장례식과 때를 같이하여 부산 시내 가두에는 '백골단' 명의로 된 '고 서 대위의 명복을 빈다' '서 대위를 살해한 서민호의 석방을 결의한 일부 국회의원을 규탄하자' '살인 국회를 분쇄·해산시키자' 등등의 의미의 삐라가 광범위하게 각 전선주와 벽에 부쳐졌다."

벽보 작성자로 표기된 백골단은 이승만 정권의 심부름을 해주는 극우 깡패 단체였다. 이들은 정당방위 당사자인 서민호보다 서민호가 속한 국회 자체에 대해 적개심을 표출했다. '살인 국회를 분쇄·해산시키자'는 전단지를 부산 시내 곳곳에 부착하며 이들은 부산 민심을 어수선하게 만들었다.

이들은 시민들을 겁주는 정도에 그치지 않았다. 길거리에서 때리고 부수며 난동을 부리는 일도 서슴치 않았다.

5월 24일 자 <동아일보> 기사 '폭력화하는 반민국의(反民國議) 축출운동 데모대'에 따르면, 이들은 직선제 개헌을 반대하는 의원들을 '반민족 국회의원'들로 규정하고 대규모 폭력 시위를 벌였다. 약 1000여 명으로 구성된 이들은 국회를 포위하는 것은 물론이고, 플래카드를 들고 시가행진을 하면서 지나가는 버스와 전차의 유리창을 두들겨 깨기도 했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이들이 조심하는 게 있었다. "도청 앞길로 버스·전차·군용차·택시들이 통과하였으므로, 데모대는 그들의 행동을 방해한다고 하여 지나가는 버스와 전차의 유리창을 작대기로 두들겨 파괴하였다"고 기사는 말한다. 버스와 전차는 두들기고 파괴하면서도, 군인들이 탄 군용차와 돈 있는 사람들이 탄 택시는 건드리지 않았던 것이다.

또 경남도청 앞 길거리를 점유한 채 이곳을 광장처럼 활용하면서 소란을 피웠다. 위 기사는 이렇게 말한다.

"데모 군중은 오후 3시 현재 도청 앞 길거리에 전원이 주저앉아서 그들의 요구가 관철되어아 한다고 박수를 치면서 아우성을 치고 있다. 이로 말미암아 교통은 차단되었으며, 경찰 측에서 비공식으로 말하는 바에 의하면 오전 11시부터 지금까지 데모대와 경찰의 충돌로 이를 제지하던 경관 중 4명이 중상당하고 80명이 경상을 입었으며 기마대의 말 3필이 부상을 입었다고 하며 데모대 측의 부상자는 아직 미상이라고 한다."

이처럼 1952년 당시의 극우단체들은 전쟁 와중에도 정치적 이익에 급급해 임시수도 부산을 혼란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다. 당면한 위기의 해결을 위해 힘을 모아도 시원찮을 판국에, 정치적 이익에 눈에 멀어 세상을 심란케 만들었던 것이다.


▲ 임시수도기념관. 이승만의 관저로 쓰였다. ⓒ 김종성

난리법석의 결과물... '부산정치파동' '발췌개헌'

극우세력의 갖가지 난동에 힘입어 이승만은 임시수도 부산에서 정치파동을 일으켰다(부산정치파동). 그는 군대를 동원해 국회의원들을 체포하고 직선제 개헌안을 국회에서 통과시켰다. 반대파 의원들이 시도한 내각제 개헌을 무산시킨 그는 자신의 직선제 개헌안과 내각제 개헌안을 섞어 1952년 7월 4일 직선제 개헌을 통과시켰다(발췌개헌). 이를 기반으로 그해 8월 5일의 제2대 대통령선거에서 연임에 성공했다.

전쟁통에 이상한 집회를 연 한국의 극우세력은 이승만의 대통령 연임에는 기여했지만, 이들이 세상을 그릇된 방향으로 이끌었다는 점은 이승만에 대한 국민적 심판인 4.19로써 여실히 증명됐다.

전쟁이라는 국난 앞에서 사익을 추구한 극우세력은 결국에는 이승만 정권과 함께 국민의 심판을 받았다. 2020년 광복절 집회와 개천절 집회로 세상을 심란케 하는 극우세력을 보노라면, 강산이 여러 번 바뀌어도 항상 구태의연함을 유지하는 한국 극우세력의 딱한 처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0년 10월 08일, 목 8:32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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