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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 종교
 
마리아에게 길을 묻다!
[새로운 시작을 위한 제언] 긴스버그와 트럼프의 마이너리티 리포트


▲ 긴스버그 @ 구글 캡쳐

(뉴욕=뉴스M) 브랜든 리 기자 = 노토리어스 R.B.G., 생전의 루스 베이더 긴스버그는 그렇게 불렸다. 여느 평범한 여성이라면 이런 닉네임을 지닌 것이 관심거리가 안됐겠지만, 브루클린 출신 래퍼의 이름 (노토리어스 B.I.G.)을 별칭으로 얻은 이가 미 연방 대법관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지난달 18일 미국은 노토리어스 R.B.G를 잃었다. 겉보기에 그녀는 여리고 담담하며 자그마한 여성에 불과했으나, 그 삶의 궤적은 누구보다 강직하고 강렬했기에 노토리어스는 적절한 닉네임이었다.

샌드라 데이 오코너에 이어 사상 두번째 여성 연방 대법관, 빌 클린턴 재임시절 지명되었으니 오랜 세월 그자리를 지켜왔다 하겠지만, 통상 생각하는 아메리칸 스타일과 달리 보수적인 미 법조계에서 조그마한 유대인 여성이 견뎌야 할 연방 대법관 자리의 무게는 상상을 초월했을 것이다.

2007년 레드베터 대 굿이어 사건을 비롯, 노동자, 여성 권리, 성평등등 사회적 약자, 소수자들의 권리 증진에 생을 바쳤고, 그녀의 강렬한 소수의견(dissents)과 사망전까지 밝힌 퇴임의사 거부는 미국내 평범한 이들의 가슴에 불꽃으로 남겨졌다. 2020년 9월 18일, 전이성 췌장암으로 세상을 떠난 87세의 작은 거인 긴스버그, 그녀는 인생에 나름 제목을 붙여본다면 긴스버그의 마이너리티 리포트 아닐런지.

긴스버그를 떠나 보낸 이틀 후, 대한 예수교 장로회 (합동) 105회 총회 소식이 들려왔다. 통합이든 합동이든, 서로를 장자 교단이라 여기는 이들의 총회인지라 교계뿐 아니라 사회적 관심도 모아졌다. 코로나 위기속 전광훈 사태와 소란한 정치 사회적 이슈들도 이에 한몫을 더한 것도 사실. 그런데, 교단을 대표하는 사람들이 모여 논의한 일이라기엔 믿기 힘든 결의가 불거져 나왔다. 105회 전통을 자랑하는 총회, 신학자들과 목회자들이 모여 결론 지었다는 내용은 여성 안수 불가였다. 고작…

"여자가 가르치는 것과 남자를 주관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오직 조용할지니라"(디모데전서 2:8),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고전 14:34) 등 여성 안수를 반대하는 근거로 성경구절을 들이대며 성경에 없는 것은 하면 안된다는 논리, 그것이 많이 배웠다는 이들이 머리를 맞댄 결과라는데 놀라는 한편, 실소를 금치 못했다.

성경에 없다? 그리 따지면, 우리사는 세상에 성경에 등장하지 않는 것들은 얼마나 많은가? 인공수정, 게놈 프로젝트, 인공지능과 로봇, 인터넷, 영상예배… 이중 어느것 하나 성경에 등장하는 것은 없다. 그럼에도, 우린 버젓이 이런것들과 어우러져 잘 살고 있다. 매우 비성경적으로 말이다.

1세기 고린도교회를 향해 던진 바울의 화두, 여성은 교회안에서 잠잠하라는 말이 어떤 맥락에서 온 것인지, 합동의 신학자들은 정말 모른다는 것인가? 아니면 알면서도 묵인하며 억지를 부리는 것인가? 여성에게 목사직을 허하면 동성애 허용으로 이어질 거란 우려는 마치 오늘 아침 우리 딸이 병에 걸린 이유가 옆집에 마녀가 살기때문이라 믿었던 중세 마틴 루터의 어머니 마가렛 루더를 연상케 한다. 개혁교회 전통의 합동이라는데, 루터를 따르자는 것인가, 아니면, 중세적 신비주의 스타일, 그의 어머니를 따르자는 것인가.

루터의 어머니를 극복하자면 깊이 묵상하고 새겨보아야 할 여인이 사실 따로 있다. 우리가 구주로 고백하며 따르는 예수 그리스도, 그의 어머니 마리아다. 사회계층과 빈부격차, 여성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이 분명한 누가복음은 누구보다 강렬한 마리아의 등장을 증언한다. 네 이웃의 아내를 탐하지 말라는 십계명의 전통이 수천년을 흘러온 시점, 남의 집 재산, 소와 나귀, 남종이나 여종과 동급으로 여겨지던 여성의 지위, 하루 세번 유대인 남자들의 기도문중 하나가 여자로 태어나지 않고 남자로 태어난 것을 감사했던 시절, 남자를 알지 못하는 여성의 임신은 곧 죽음을 의미했다는 건 당연한 상식. 하지만, 그 사회적 통념이 전해오는 압박, 불안, 두려움과 공포에 맞서 마리아는 고백한다.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어디 그뿐인가? 마리아는 찬미하고 노래했다. "내 영혼이 주를 찬양하며…권세 있는 자를 그 위에서 내리치셨으며 비천한 자를 높이셨고, 주리는 자를 배불리셨으며 부자를 빈손으로 보내셨도다…"(눅 1:52-53참조)

얼마나 강렬한 노래였던지, 2천년이 지나 제정 러시아의 마지막 짜르도, 남미의 독재자들도 마리아의 노래는 거부했다 한다. 말그대로 성경에 있는데도 불구하고.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 그녀의 마이너리티 리포트는 그렇게 선택받지 못한 노래로 주로 성경속에 조용히 머물러 왔다. 하지만, 레트로 열풍인 요즘, 그에 걸맞게 우리 역시 마리아의 찬미를 되살려야 할 때가 지금이 아닐까 한다.

105회 총회의 추억은 합동만의 것이 아니다. 그들의 형제?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 교단 역시 인상적인 총회의 추억을 남겼다.

필자가 신대원에 입학하던 때, 여성 안수가 통합 총회를 통과했으니 강산이 두번 넘게 변한 셈이다. 하지만 작년에 이어 올해 역시 1500명에 달하는 총회 총대의 남녀 비율은 글로벌한 충격을 전해온다. 2019년 총회당시 고작 30명미만인 여성 총대, 정체구성원의 2%가 되지 않는 여성의 비율을 본 영국의 어느 여성 신학자는 이렇게 말했다한다, 'weird group'(괴상한 무리). 비대면 총회라는 사상 초유의 사건이 세간의 관심을 끌기도 했지만, 그보다 주의깊게 보아야 할 것은 안타깝지만 통합교단이 보여준 뒤틀린 마이너리티 리포트였을 것이다.

이틀전 트럼프 대통령 내외의 코로나 바이러스 확진 소식에 미국와 한국의 매체들이 들끓었다. 바라기는 두사람 모두 안정을 되찾고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오기 바란다. 그런데, 덧붙여 소망한다. 평생을 가진 자, 힘있는 자, 중심에 머무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그런 이들에 둘려싸여 살아온 고령의 백인 대통령, 자신도 보이지 않는 바이러스로 인해 위태로울 수 있음을, 백악관에 거하지만 워싱턴 DC어딘가 노숙하는 이들과 일면 다르지 않을 수 있음을, 세상의 중심이 아니라, 자신도 주변인, 마이너리티 일 수 있음을 깨닫게 되기를.

가녀린 유대인 여성 긴스버그 대법관, 비만이 우려되는 거구의 백인 남성 트럼프 대통령, 마치 대척점에 서있는 두 사람의 모습 속에서 한국교회가 바라보아야 할 것은 어디에 있을까.

작년말 필자의 설교제목을 떠올리며 글을 맺는다.

"마리아에게서 길을 묻다!"

위기의 한국교회, 이제 우리는 루터의 어머니대신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길을 물어야 바로 그 때이다. (본보 제휴 <뉴스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0년 10월 08일, 목 6:26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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