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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시간: (EST) 2020년 9월 24일, 목 6:23 pm
[종교/문화] 종교
 
“모든 죽은 자를 위한 애도”
[호산나 칼럼] 2020 세계교회와 함께하는 한반도 평화통일 공동기도주일예배

(서울=코리아위클리) 정경일(한국새길기독사회문화원 원장)

[주님께서 가인에게 물으셨다. “너의 아우 아벨이 어디에 있느냐?” 그가 대답하였다.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주님께서 말씀하셨다. “네가 무슨 일을 저질렀느냐? 너의 아우의 피가 땅에서 나에게 울부짖는다.]
- 창세기 4:9-10 -

오늘은 한반도 평화와 남과 북의 통일을 위해 세계 교회가 한마음으로 기도하는 주일입니다. 코로나19 시대에 평화와 통일을 말하는 것이 탈맥락적인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지만, 재난이 장기화되고 있는 이때야말로 한반도 평화가 더욱 절실합니다. 전쟁 준비에 쓰는 인력과 시간과 자원을 재난 극복에 사용한다면, 우리 사회는 덜 고통스럽게 팬데믹을 지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번 팬데믹이 다른 세계, 다른 삶에 대한 상상력을 해방시키고 있다는 사실도 큰 의미가 있습니다. 분단시대에 문익환 목사님이 예언자적으로 꾸셨던 “어처구니 없는 꿈”을 재난시대의 우리도 꿀 수 있고, 꾸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분단의 벽은 아직도 높고 견고합니다. 코로나19 재난 속에서도 북은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했고, 남은 규모를 축소한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실시하겠다고 합니다. 전국 각지에서 ‘물폭탄’ 피해가 속출하고 있는데도 말입니다. 더 심각한 것은, 코로나 바이러스만큼이나 강한 반공 바이러스가 우리의 의식과 삶을 감염시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한국전쟁 발발 70주년이 되었는데도, 세대가 몇 번은 바뀌었는데도, 우리는 아직 전쟁 중입니다. 그런 적대가 지속되고 있는 것은 한국전쟁이 남긴 역사적 트라우마 때문입니다.

그림자의 대물림 : 역사적 트라우마의 유전

역사학자 도미니크 라카프라는 참혹한 사건은 피해자만이 아니라 “그 사건을 직간접적으로 접한 다른 모든 사람들―가해자, 부역자, 방관자, 저항자 그리고 후세의 사람들―에게도 다른 방식으로 영향을 미친다.”고 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죽음과 파괴를 경험하며 생긴 트라우마가 그것을 직접 겪지 않은 “후세의 사람들”에게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역사적 트라우마’입니다. 정신과 의사 레이첼 예후다도 홀로코스트 생존자의 자녀 세대가 부모 세대와 유사한 정도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PTSD)을 보인다는 사실을 밝혀냈는데, 주목할 점은 부모가 자녀에게 홀로코스트 경험을 이야기해 주지 않아도 트라우마가 세대에서 세대로 유전되었다는 것입니다.

한국전쟁도 홀로코스트만큼이나 끔찍한 역사적 트라우마를 남겼습니다. “인류 최초의 전면적인 이념전쟁”이었던 한국전쟁은 상대를 악마화하면서 절멸시키려는 양상을 띠었습니다. 또한 한국전쟁은 동족상잔(同族相殘)이었습니다. 일제강점기에도 하나였던 민족이 두 국가로 분단되어 싸우면서, 남한에서는 약 50만 이상의 군인과 민간인이 죽었고 북한에서는 약 250만의 군인과 민간인이 죽었습니다. 더 처참한 것은, 같은 마을의 민간인 이웃끼리, 심지어 친족과 가족끼리 서로 증오하고 죽였다는 사실입니다. 마을에서의 “작은 전쟁들”을 조사 연구한 박찬승이 무겁게 묻습니다.

내가 마을에서 만나본 한국전쟁은 이런 것이었다. 전쟁은 끝났지만, 전쟁의 어두운 그림자는 아직도 마을에 짙게 드리워져 있었다. 마을에서 벌어진 좌우익 간의 학살은 불과 두세 달 동안 벌어진 일이었다. 하지만 그때 있었던 일은 60년이 다 되도록 마을을 붙잡아두고 있다. 이들 마을은 전쟁의 그림자로부터 언제쯤 벗어날 수 있을까. 전쟁을 겪은 당사자들이 세상을 뜨면 그 그림자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까. 혹시 그 그림자가 대물림되지는 않을까.

마을에서의 상호 학살과 그로 인한 그림자의 “대물림”이 바로 역사적 트라우마입니다.

그렇다면,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저와 같은 전후 세대는 역사적 트라우마를 어떻게 경험할까요? 박명림은 “최고수준의 폭력이 강제한 생사투쟁, 완승완패 추구의 전쟁체험은 남과 북 각각에게 전체 우선주의와 함께, 타협과 공존의 사회질서 및 사유체계를 제거하였다.”고 합니다. 이를 그는 “전쟁속의 삶에서 전쟁 같은 삶으로[의] 전이”로 표현합니다. 그러므로 오늘의 전쟁 같은 삶을 이해하고 변화시키려면 어제의 한국전쟁이 남긴 트라우마를 돌아보고 들여다봐야 합니다.

20세기의 ‘지옥’과 21세기의 ‘Hell-朝鮮’

한국전쟁 중 11사단 빨치산 토벌대 9연대 연락장교였던 리영희는 “단테나 석가나 예수가 1951년 초겨울의 참상을 보았더라면 그들의 지옥을 차라리 천국이라고 수정했을지도 모를 일이다.”라고 탄식했습니다. 종교가 상상하는 지옥을 천국으로 여기게 할 만큼 한국전쟁은 잔인하고 참혹했다는 것입니다.

한국전쟁의 특징 중 하나는 전방의 전선에서 대결하는 군인들만이 아니라 후방 마을의 민간인들 사이에서도 상호 충돌과 학살이 발생한 내전이었다는 것입니다. 마을의 “작은 전쟁들”에서는 가해자와 피해자가 일방적으로 나뉘지 않았습니다. 민간인들은 서로에게 가해자였고 피해자였습니다. 민간인을 위한 안전지대나 중립지대는 없었습니다. 한반도 전역(全域)이 지옥 같은 전역(戰域)이었습니다.

마을에서의 학살은 대부분 알고 지내던 사람들 사이에서 그리고 대면 거리에서 자행되었다는 점에서 더 잔혹합니다. 평범한 마을 사람들을 잔인한 가해자로 둔갑시킨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박찬승은 마을에서 일어난 민간인 학살은 전쟁 전부터 축적되어온 다양한 갈등—신분·계급 간, 친족·마을 간, 종교와 이념 간―이 “국가권력의 마을 개입”으로 폭력화되면서 발생했다고 합니다. 국가권력에 조종당한 가해자들은 그들이 죽이는 존재를 인간이 아니라 ‘빨갱이’와 ‘반동’이라고 믿었습니다.

물론,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1954년 5월, 전쟁이 멈춘 지 불과 1년 만에 출판된 황순원의 『카인의 후예』는 국가권력이 어떻게 폭력을 부추기는지를 신랄하게 묘사합니다. 도농민위원회에서 나온 ‘캡 쓴 사내’가 ‘개털오바청년’에게 말합니다. “동무, 창의성을 발휘하시오.” 그리고 ‘반동 지주’들을 죽이러 갈 때 “이 부락 저 부락 사람을 반반씩 섞어서” 보내라고 알려줍니다. “작은 전쟁들”의 현실은 소설보다 훨씬 더 끔찍했습니다. 서로의 개인사를 잘 알고 있었기에 같은 마을 사람들이 더 적극적인 고발자가 되고 살인자가 되었던 것입니다.

한국전쟁 당시 마을에서 일어난 민간인 사이의 학살을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전쟁세대만이 아니라 전후세대의 삶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쳤기 때문입니다. 한국전쟁 체험담 연구를 해온 신동흔은 “전쟁체험을 통해 의미화하고 내면화한 현실인식들이 전후 한국사회를 움직여온 일종의 ‘시대정신’ 구실을 했다”고 주장합니다. 그가 전쟁 체험자들의 구술에서 분석한 전쟁 시기의 현실인식이란 “내가 살고 봐야 한다”, “어떻게든 힘을 기르고 ‘빽’을 가져서 억울함을 겪지 말아야 한다”, “사람은 언제 돌변할지 모르니 아는 사람일수록 더 조심해야 한다”는 것 등입니다. 신동흔은 이처럼 전쟁 과정에서 “체화된 신념”은 “‘세상을 산다는 일이 하나의 전쟁과 같은 일’이라고 하는 인식을 내면화시켰다”고 분석합니다. ‘Hell-朝鮮’이라는 말까지 나온 오늘의 한국사회에서 위력을 떨치고 있는 각자도생의 개인주의, 경쟁적 생존주의, 상호불신과 같은 사회적 병리현상은 한국전쟁의 집단적 지옥 경험에서 생긴 역사적 트라우마와 관련이 있는 것입니다.


▲ MBC <그것이 알고싶다> 등 일부 자료들에서는 1950년 한국전쟁 직후 수 개월 동안 최소 10만명에서 최대 20만 명의 민간인 보도연맹원들이 불법 처형당했다는 증언이 나와 있다. 사진은 한국전 발발 직후 대전 산내 골령골에서 정치범과 국민보도연맹원 등이 처형 당하는 장면. ⓒ 오마이뉴스 자료사진

‘아벨’의 자기부정과 자기분열

역사적 트라우마에서 우리가 특히 관심 갖고 주목해야 할 것은 피해자의 전쟁체험입니다. 앞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전쟁 당시의 남과 북은 서로에게 가해자이면서 피해자였습니다. 그때의 우리는 ‘카인’이면서 ‘아벨’이었던 것입니다. 한국전쟁은 남과 북 어느 쪽도 승리하지 못한 전쟁으로 남았고, 정전 후의 남과 북은 전쟁 시기의 적대관계를 지속적으로 이념화함으로써 체제를 유지·강화했습니다. 따라서 국가폭력의 희생자들도 이념에 따라 선택적으로 기억되었습니다. 피해자의 피해자다움을 국가권력이 이념적으로 규정한 것입니다.

정전 이후 남한의 민간인 학살 피해자는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전쟁 당시는 물론이고 이후에도 ‘빨갱이’로 낙인찍혔기 때문에, 국군이나 우파 민간인에게 입은 피해 사실을 밝히는 것은 자신이 ‘빨갱이’였음을 자인하는 셈이 되고 말았습니다. 즉 ‘증인’이 되는 것은 ‘죄인’이 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에 피해자들은 자신들의 피해 사실을 숨겼습니다.

심지어 피해자들은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가해자의 신념을 내면화하기까지 했습니다. 4.3 사건에서 살아남은 제주 청년들이 국군에 자원입대하고, 피학살자 가족이 반공 정치세력을 지지한 것도 그 때문입니다. 하지만 침묵과 자기부정의 대가로 얻는 것은 생존일 뿐 삶이 아니었습니다. 치유되지 못한 전쟁 트라우마는 피해자들에게 더욱 깊은 상처와 원한으로 내면화되었습니다.

물론, 학살 피해자들이 자신들의 피해와 고통을 공공연히 밝힌 때도 있었습니다. 1960년 4.19혁명 후 일 년 동안의 정치적 격변기 때였습니다. 이는 이승만 정권의 붕괴와 관련이 있습니다. “빨갱이들에게 죽음을!”이라는 살벌한 구호가 한국사회에서 처음으로 공공연하게 나온 시점은 1947년 ‘4월 27일’ 이승만 환영집회때였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2018년 4.27 남북 정상회담일과 같은 날입니다. 전쟁 전부터 ‘빨갱이’를 억압하고 학살하면서 권력을 형성한 이승만 정권은 전쟁 후에도 반공을 국시(國是)로 내걸었습니다. 그런 이승만 정권이 민중의 저항으로 무너지자 세상이 바뀌었다고 생각한 피해자 유족은 정전 후 7년 만에 민간인 학살 진상규명을 요구하며 전국적 시위를 벌였습니다.

하지만 세상은 너무나 빨리 다시 바뀌었습니다. 4.19혁명 한 해 뒤에 쿠데타로 정권을 찬탈한 박정희 군부 세력은 반공을 국시의 제일의(第一義)로 재천명했고, 즉각적으로 민간인 학살 피해자 유족을 좌익으로 낙인찍고 연좌제로 묶어 탄압했습니다. 이런 정치적 격변의 경험은 피해자 유족에게 또 한 번의 부정적 현실인식을 갖게 했습니다. 그것은 한국사회에서는 ‘빨갱이’는 죽임당해도 호소할 수도 항의할 수도 없는 ‘죄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2005년 출범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가 조사 신청을 받았을 때 그 건수가 약 1만 건으로 ‘100만 학살’ 피해자 유족의 극히 일부에 불과했던 것도 그러한 현실인식과 관련이 있었습니다.

더 비극적인 것은, 학살 피해자가 자기부정만이 아니라 자기분열도 강요당했다는 사실입니다. 김동춘은 “부모나 형이 실제로 좌익 활동을 했다가 학살당한 사람들은 아예 유족 모임에 나타나지 않는 경우도 있었고, 설사 나타나더라도 자신을 순수한 양민이라고 생각하는 유족들에게 따돌림 당하는 경우가 많았다”고 회고합니다. 그 한 예는 좌익 혐의가 있다고 규정 당해온 〈국민보도연맹〉 피해자 유족을 배제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피해자의 자기부정과 자기분열은 민간인 피학살자들에 대한 국가폭력이 얼마나 집요하고 잔인했는지를 보여주는 역사적 상흔이며 증거입니다.

역사적 트라우마는 라카프라가 강조한 것처럼 피해자만이 아니라 ‘가해자’의 몸과 마음에도 상흔으로 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인간이 인간을 죽였다는 것은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에게 결코 잊힐 수 없는 극단적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한 마을에서 발생한 민간인 간 학살은 한국인의 집단영혼에 커다란 트라우마를 남겼습니다. 게다가 전쟁으로 인한 분단 고착화에 따라 지정학적으로 사실상 ‘섬나라’가 되어버린 남한에서 가해자와 피해자는 계속해서 한 마을, 한 도시에서 함께 살아야 했습니다. 고립된 ‘섬’에서 화해와 치유 없이 공존하는 것은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에게 맨정신으로는 견딜 수 없는 끔찍한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가해자는 인간이 아닌 ‘빨갱이’를 죽였을 뿐이라며 죄의식을 지워버렸고 피해자는 생존을 위해 가해자의 신념을 내면화한 채 수치심 속에 수십 년을 살아왔습니다. 어두운 동굴 속에, 깊은 골짜기 속에, 비행장 활주로 밑에 묻혀 있던 아벨의 피가 울부짖는 소리가 우리 사회에 들리기 시작한 것은 최근의 일입니다.

어느 정치학자의 기도

그리스도인은 죽임당한 아벨의 증인이 되어야 합니다. 목소리 없는 이들의 목소리가 되어야 합니다. 월터 브루그만은 예언자적 상상력의 과제 중 하나로 “지금까지 오랫동안 부인되고 철저하게 억눌려 와서 있는지조차 몰랐던 두려움과 공포를 공개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시대 평화를 외치는 예언자적 그리스도인의 소명은 전쟁세대와 전후세대가 공유하는 두려움과 공포의 역사적 트라우마를 공개적으로 표현하고, 국가폭력의 희생자를 기억하고 애도하는 것입니다.

이 기억과 애도에는 남과 북, 좌와 우의 차별은 있을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가해자와 피해자 사이에서 중립을 지키는 것은 아닙니다. 주디스 허먼이 강조한 것처럼 “피해자와 가해자의 충돌에서 도덕적인 중립이란 선택 사항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언자적 그리스도인은 모든 피해자의 편에 섭니다. 남과 북의 국가권력에 의해 비인간으로 죽임당한 모든 인간, 여성과 아이와 젊은이와 노인의 편에 섭니다. 그것은 모든 죽은 자의 혼을 불러 애도하고 위로하는 것입니다.

정신과 의사 노먼 도이지는 “정신분석은 유령을 조상으로 바꾸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역사적 트라우마의 치유는 여수와 순천과 제주와 거창과 노근리와 신천에서, 한반도 전역의 무수한 마을에서 억울하게 죽임당한 모든 사람들의 유령을 찾아 애도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그들이 ‘빨갱이’나 ‘반동’이 아니라 “순수한 양민”이었기 때문에 이제는 애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들 모두가 ‘인간’이었기 때문에 애도해야 합니다. 그럴 때 그들은 유령에서 조상으로 바뀌게 되고, 그래야 그들의 죽음은 헛된 것이 아니게 됩니다. 여기서 애도는 정치적 기억을 넘어 종교적 기도로 나아갑니다.

한국전쟁을 연구하면서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정치학자 박명림은 “한국전쟁 연구는 집단죽음에 대한 대속(代贖), 영혼의 안식을 위한 레퀴엠(requiem)의 의미를 가져야” 하며 “한 사람의 (삶과) 죽음도 애도할 수 없다면 이 연구는 아무런 존재의미를 갖지 못한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인간의 집단죽음을 포함하는 전쟁과 혁명 등을 연구하는 자세는 약간은 종교적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고 합니다. 더 나아가 그는 이렇게까지 고백합니다.

필자는 이 연구를 진행하며 끝없는 죽임과 시체로 인해 밤이면 자주 가위눌려 헛소리와 땀으로 범벅된 채 잠 못 이루며 집필을 중단하곤 하였다가, 자신도 모르게 종교적이 되어가고, 끝내 하나님 앞에 무릎 꿇어 죽은 영혼을 위해 간절히 기도하는 변화된 모습을 깨달을 수 있었다.

‘정치학자’인 그의 고백 앞에 ‘신학자’인 저는 부끄러움을 느낍니다. 나는 그처럼 아파하며 괴로워하는가, 한국전쟁 중에 아벨이 흘린 피의 울부짖음을 목격하고 증언하려고 하면서 나는 그처럼 종교적인가, 묻지 않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어쩌면, 한국전쟁에서 죽은 모든 조상을 애도하고 역사적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것은 정치적 과제가 아니라 종교적 과제일 것입니다. 애도와 치유는 종교가 가장 잘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한국전쟁은 정지되었을 뿐 종식되지 않았습니다. 전쟁이 남긴 역사적 트라우마는 오늘 우리의 삶을 무겁고 아프게 짓누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아벨, 모든 죽은 자를 애도하고 위로하고 안식하게 하는 것은 ‘전쟁이 일상’이었던 과거만의 치유가 아니라 ‘일상이 전쟁’인 현재의 치유이기도 합니다.

이번 해 한반도 평화와 남과 북의 통일을 위한 세계교회 공동기도주일 주제 성구는 “평화를 이루기까지 있는 힘을 다하여라.”(시편 34:14)입니다. 한국전쟁 70주년이 되는 이번 해 남은 날 동안 있는 힘을 다해 평화를 이루기 위해 애쓰고, 정전 70주년이 되는 3년 뒤 2023년까지는 반드시 전쟁을 종식하고 남과 북의 사람들이 하나 되는 정의, 평화, 생명의 새 세상을 만들 것을 다짐하면 좋겠습니다.
 
 

올려짐: 2020년 8월 21일, 금 7:35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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