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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 문화
 
"피해자가 어떻게 저러지?" 당신이 상상 못한 것
[서평] 여성과 아이 입장에서 나눈 영화 이야기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영화 프로파일'


▲ 책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영화 프로파일> ⓒ 김대홍

(서울=오마이뉴스) 김대홍 기자 = 최근 나에게 죽비라도 내리치는 것처럼 책 선물이 한 권 도착했다. 첫머리부터 강렬하다.

"범죄 영화 장르를 엔터테인먼트로 소비하는 프로그램에는 참여하지 않겠다. 피해자로 소비되다 마는 여성이나 아이의 입장에서 분석하는 프로그램이라면 의향이 있다." 범죄심리학자 이수정 경기대 교수가 방송 섭외 연락에 대해 내놓은 답변이다.

그렇게 이수정, 이다혜, 최세희, 조영주 네 명의 여성이 의기투합해 오디오 방송 '이수정 이다혜의 범죄 영화 프로파일'을 만들게 되었다. 이 방송은 팔로워만 3만 명, 네이버 오디오클립 전체 순위에서 1위를 기록했는데 그 내용을 담은 책이 출간된 거다. 어쩐지 정자세를 하고 읽어야만 할 것 같다.

그날 저녁 'Love is Blue' 'El Bimbo' 등으로 유명한 폴모리아악단의 음악을 틀어놓고 열심히 책장을 넘기는 내 방에 아내가 들어왔다. 몇 년만에 책상에 앉아 책을 정독했는지 모르겠다. 그 모습이 신기했는지 아내가 "어쩐 일이래, 재밌나 보네?"라고 말을 걸었다. 고백하자면 책장은 아주 잘 넘어갔고, 내용은 무거웠지만 흥미로웠다.

"피해자가 어떻게 그럴 수 있지?" 이 궁금증에 대한 해답

익숙하지만 잘 모르는 것 그것이 바로 피해자, 여성, 아이일 것이다. 우리도 어떤 면에선 피해자일 테고, 여성에 둘러싸여 있고, 한때는 누구나 아이였으니까. 익숙하다는 것과 아는 것은 별개다. 모르는 채로 익숙해지는 것도 아주 많으니까.

"한 맺힌 남자도 있을 텐데, 한국에 한 맺힌 남자 귀신은 없다는 것이 참 신기합니다."(이수정) 생각해보니 그랬다. 왜 그럴까? "제가 가장 많이 들은 표현은 '며느리가 잘못 들어와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사위가 잘못 들어와서 집안이 망했다고는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역시 그랬다. 물론 지금 주위에서 누군가 '며느리가 잘못 들어와서 그렇다'고 말하면 기분이 '꽤' 불쾌할 것 같다.

뉴스에서 강력사건을 다룰 때 가해자만큼이나 때로는 더 많이 피해자를 다룬다. 피해자의 일거수일투족을 엿보게 될 때가 있는데, 종종 "피해자가 왜 저렇게 차분하지?" "피해자가 어떻게 가해자한테 다시 연락을 하지?" "피해자가 그 일을 겪은 뒤에도 어떻게 태연하게 일상생활을 하지?"와 같은 댓글이 달렸고, 나 또한 고개를 끄덕이곤 했다. '피해자다움'에 대한 선입견이 작용했음을 이 책을 통해 깨달았다.

- 내가 지금 혼자뿐이고, 아무도 날 도와줄 수 없고, 나의 억울함을 풀어 줄 조력자도 없다는 생각이 들면 어떻게든 이 고통스러운 상황부터 모면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고 순응이 시작됩니다.
- '나는 이 폭력으로부터 결코 도망칠 수 없구나.' 하는 체념 끝에 결국에는 폭력을 피하지 않게 됩니다.
- 가정 폭력을 용인하는 여성들 중에 이 남자의 아픔, 고통을 내가 치유할 수 있을 것이라는 판타지 속에서 잘못된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과거 수업이나 강의를 듣다 보면 진행은 매끄러운데 진부하게 느껴졌던 적이 있다. 누군가 "저거 몇 년 전 했던 것 그대로 하는 거야, 선배한테 들었어"라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시대에 따라 새로운 사례와 통계가 나오는데 그런 것들을 흡수하지 않으면 죽은 지식이 되고 만다. 책은 이다혜와 이수정이 대담한 내용을 엮었다. 두 사람 모두 열심히 최신 성과들을 흡수했다.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각종 통계나 실험 결과들을 가져왔다. 그런 점이 흥미롭게 다가오지 않았나 싶다.

'예언이 빗나간 종교를 믿던 사람들은 그 뒤 어떻게 됐을까, 그 종교를 버렸을까?' '상대방이 갖고 있는 믿음의 허점을 충분히 논리적으로 반박하면 설득될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왜 그럴까?' '권위에 대한 복종 성향이 성별이나 인종에 따른 개인차가 있을까?' 나 또한 궁금했던 점들이다.

이 책은 여성과 아동의 입장에서 글을 쓰지만 누구나 갖고 있는 편견과 선입견을 돌아본다는 점에서도 유익하다.

▲한국 살인사건 검거율은 90퍼센트로 매우 높다. 왜 그럴까. 이유는 계획을 세우기보다는 순간적으로 욱해서 일어나는 충동 살인이 많기 때문이다. ▲보이스 피싱은 상황판단이 떨어지고 IT 이해력이 떨어지는 노인이 주로 걸릴 것 같다. 그런가? 아니다. 전 연령대에서 피해자가 발생한다. ▲여성 범죄의 목적은 성폭력이나 강간일 것 같다. 그런가? 이 역시 아니다. 사고방식이 정상 범주를 벗어나 있거나 피해망상, 조현병처럼 극도로 병이 심화된 성범죄자 대부분은 성욕이 넘치기는커녕 발기부전이다.

바둑에서 몇 수 앞을 보려면 집중력 있게 생각을 펼쳐나가야 한다. 생각도 마찬가지. 두 사람은 여성이나 아이의 관점에서 생각의 가지를 뻗어나가는 게 훈련이 많이 된 듯 보인다. 귀신들림에 대한 대화가 흥미로웠다.

이다혜 재미있는 것이, 여성이 신내림을 받아 무속인이 되면 보통 장군님을 모십니다. 여자의 몸을 하고 있지만 굉장히 권위 있는 남자의 목소리로 호통을 치고 예언을 하는 것입니다. 혹시 여자의 목소리로는 조언을 할 수 없다는 것일까요?
이수정 아주 예리하고 흥미로운 지적입니다. 심지어 귀신일지라도 가부장적인 틀에서 벗어나기 어렵다는 것을 보여 주는 듯합니다

재미있는 가설이지만 생각해볼 대목이다. 책에선 범죄와 계급문제, 폭력의 대물림, 정당방위를 인정하지 않는 한국사회 문제, 리얼돌에 대한 인식, 남녀 성 규범의 변화, 소아성애는 사랑일까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룬다. 때로는 분명한 입장을 내놓지만 때로는 앞으로 기준이 어떻게 바뀔지 모른다면서 조심스런 자세를 취한다.

이수정 교수는 지난해 10월 영국 비비시(BBC) 선정 '올해의 여성 100인'에 뽑혔다. 하이힐은 당연한 것처럼 여기는 일본 기업 문화에 반기를 든 이시카와 유미, 여성에게 프로선수 자격을 주지 않는 전통을 깨고 나선 히요리 콘, 이란 첫 여성 올림픽 메달리스트지만 탄압을 받고 최근 망명 선언을 한 알리자데 제누린, 태국 최초 여성 승려인 다마난다 등이 뽑힌 사람들이다. 이 교수가 뽑힌 이유는 "스토킹 방지법 도입을 돕고 법률 시스템에 도전하고 있다"이다.

'올해의 여성 100인' 선정 사례처럼 이 교수는 법을 만들고자 하는 사람이다. 책에서도 강조한다. ▲현재 13세 미만인 의제강간연령(어느 연령 이하 연령과의 성관계를 성폭행으로 간주해 처벌하는 것)을 대폭 높여야 한다. ▲아동 유인 범죄의 경우 함정 수사를 허용해야 한다. ▲가정 폭력이 일어났을 때 가해자가 아니라 피해자가 집을 나가야 한다. ▲스토킹 방지법이 필요하다 등 매 토론 뒤에는 필요한 입법사항을 덧붙였다. 놀라운 건 최근 법무부가 입법예고한 방안에 상당수 제안사항이 들어 있다는 점이다. 이수정 교수의 뚝심과 한국 여성계에서 그가 차지하는 무게가 느껴졌다.

머리에 쥐가 나는 내용들이었지만 재미있게 읽었다. 당장 동의가 안 되는 대목들도 있었지만 마음 속엔 질문이 던져졌다. 관련 사안에 대해 검색을 해보고 자료도 찾아봤으니 이 정도면 저자로서는 성과가 아닐까 싶다.

영화 소개를 워낙 맛깔나게 해서 소개된 영화 상당수를 다시 찾아서 보고싶은 마음이 들었다. 영화 전문기자인 이다혜의 공이 아닐까 싶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0년 7월 24일, 금 9:13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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