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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 문화
 
쿠바 미사일 위기를 들여다보면 한반도가 보인다
[서평] 안병진 교수의 '예정된 위기'


▲ 경희대 미래문명원 안병진 교수의 <예정된 위기>는 쿠바 미사일 위기를 통해 한반도 정세를 분석한 책이다. ⓒ 모던 아카이브

(서울=오마이뉴스) 지유석 기자 = 남북 관계가 어렵다. 여기에 미국에선 존 볼턴 전 국가안보보좌관 회고록이 큰 파장을 몰고 왔고, 이는 한반도에도 영향을 미쳤다. 북한 김정은 국방위원장이 일단 군사행동 보류를 선언해 숨 고르기에 들어간 모양새다.

11월 북미 정상회담이 성사될 것이란 전망도 조심스럽게 일었다. 하지만 언제 또 한반도 정세가 요동칠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다. 마침 4일 북한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은 "미국과는 마주 앉을 필요가 없다"며 정상회담 가능성을 일축했다.

꽉 막힌 북미·남북 관계에 돌파구는 없을까? 그리고 북미 간 힘겨루기에서 우리는 어떤 역할을 맡아야 할까? 미국 정치 전문가인 경희대 미래문명원 안병진 교수가 2018년 쓴 책 <예정된 위기>(모던 아카이브 펴냄)는 이 같은 물음에 답을 주는 책이라고 본다.

이 책의 주제는 전 세계를 핵전쟁 공포로 몰아넣었던 1962년 10월 쿠바 미사일 위기다. 미국 유력 일간지 <워싱턴포스트> 출신의 논픽션 작가 마이클 돕스가 쓴 <1962>와 함께 읽으면 주제를 이해하기 쉽다.

무엇보다 이 책 <예정된 위기>는 미국 주류가 아닌, 한국 정치학자의 시선에서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에 접근한 점이 돋보인다. 저자는 고 존 F. 케네디 대통령이 집무실 상황을 녹취한 '케네디 테이프' 등 1차 자료를 바탕으로 당시의 위기 상황을 풀어냈다.

그런데, 이 책은 쿠바 미사일 위기를 다루지만 궁극적인 시선은 북미 관계에 맞춰져 있다. 얼핏 뜬금없게 들릴지 모른다. 저 멀리 카리브해에 있는 쿠바와 북한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하지만 분명 상관관계가 성립한다는 판단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쿠바를 들여다보면 북한이 보인다'. 이 책의 부제는 '북한은 제2의 쿠바가 될 것인가'인데, 참 적절한 제목이라는 느낌이다.

'베두인 전설', 그리고 '베를린 대전략'

이 책의 주제의식을 이해하려면 '베두인 전설'과 '베를린 대전략'이라는 개념부터 파악해야 한다.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토마스 프리드먼이 2002년 2월 자신의 칼럼에서 소개한 '베두인 전설'은 대략 이런 의미다.

"늙은 베두인족 족장이 칠면조를 사서 매일 먹이를 주며 정성껏 키웠다. 어느 날 누군가가 이 칠면조를 훔쳐갔다. 족장은 아들을 불러 큰 위험에 처했다고 경고했다. 아들은 그깟 칠면조 하나 가지고 호들갑 떠는 아버지를 무시했고, 결국은 낙타까지 도둑맞았다. 족장은 다시 칠면조를 찾아오라고 다그쳤지만, 아들은 칠면조에 집착하는 아버지의 말을 계속 무시했다. 결국 몇 주 후 족장 아들의 딸이 강간을 당했다. 그러자 족장은 아들에게 이렇게 한탄했다. '모든 건 바로 칠면조 때문이다. 칠면조를 훔쳐갈 수 있다는 걸 놈들이 알았을 때 우리는 이미 모든 것을 잃었다.'" - 본문 21~22쪽

저자 안병진 교수는 이 베두인 전설이 "쿠바 미사일 위가 당시 미소 정책 결정자들이 위기를 만들어내고 악화시킨 핵심틀"이라고 설명한다. 그 이유는 이렇다.

"베두인 족장처럼 미국은 일련의 작은 문제에서 상대방에게 약점을 보이면 강간(침공) 당할지 모른다는 강박관념을 가지고 있었다. 이렇듯 상호 간의 두려움과 불신은 기존 강박관념을 더욱 강화시켜 결국 의도하지 않은 방식으로 위기를 악화시킨다는 점에서 역설적이다." - 본문 22쪽

저자는 존 F. 케네디와 구 소련 서기장 니키타 흐루쇼프 모두 베두인 전설에 사로잡혀 위기를 증폭시켰다고 설명한다.

저자가 제시한 베두인 전설이란 분석틀로 설명해 보자. 앞서 적었듯 베두인 전설은 상대적으로 작아보이는 문제를 양복하면 침공이란 큰 위기를 부른다는 개념이다. 케네디의 경우 쿠바에서 물러서면 당시 동서 갈등이 첨예했던 베를린도 내줄 수 있다고 보았다.

반면 구 소련 서기장 흐루쇼프는 미국이 터키에 미사일을 배치한 데 위협을 느꼈다. 터키의 지정학정 위치를 감안해 볼 때 이 같은 우려는 근거가 없지 않아 보인다. 흐루쇼프는 더 큰 침공 위협을 상쇄하고자 선제적으로 쿠바에 핵미사일 배치 결정을 내린 것이다.

쿠바의 지도자 카스트로의 행태는 좀 더 무모했다. 카스트로가 친미 성향의 풀헨시오 바티스타 정권을 무너뜨리고 사회주의 혁명에 성공하자 미국은 군사행동을 포함한 다양한 방식으로 카스트로를 압박했다. 카스트로로선 초강대국 미국을 향해 결사항전 의지를 보여줄 필요가 있었고, 이에 대담하게도 구 소련을 끌어 들였다. 쿠바에 핵미사일을 배치하자는 아이디어를 낸 쪽은 옛 소련이 아닌 카스트로라는 게 정설이다.

지난 역사를 되짚어 보자. 미국과 쿠바는 2015년 마침내 국교정상화를 이뤄냈다. 하지만 국교정상화까지 길은 순탄치 않았다. 앞서 적었듯 미국은 군사행동을 포함해 다양한 방식으로 '체제 교체'(regime change)를 시도했다. 카스트로는 미국의 압박에 소련 핵미사일 배치라는 초강수로 맞섰다.

비록 제3차 세계대전 위기는 넘겼지만 미국과 쿠바는 협상과 공전을 거듭했다. 저자는 쿠바 미사일 위기 이후에도 베두인 전설은 양국 관계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부활했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접근 방식은 보다 온건한 접근을 선호하는 이들의 입지를 없애 버렸다.

책을 읽고 난 뒤 쿠바 대신 북한으로 변수를 바꿔 놓아도 전혀 어색함이 없어 보인다. 지난 과정을 돌아보자. 미국은 북한에 조금의 양보도 꺼렸다. 북한 역시 벼랑끝 전술을 구사하며 물러나지 않았다. 북한의 강경 입장은 다시 미국에 영향을 미쳤다. 저자 안병진 교수는 이 같은 악순환을 아래와 같이 설명한다.

"북한도 쿠바처럼 한국전쟁 이후 언제 미군 폭격기가 핵폭탄을 투하하려고 나타날지 모른다는 생각을 하며 살아왔다. (중략) 하지만 반복된 벼랑끝 전술은 피로를 가중시켜왔다. 1968년 푸에블로호 나포 사건 이후 수십 년간 북한의 허장성세와 거친 위협은 변하지 않았다. 클린턴 행정부 말기 북한은 워싱턴의 초대를 단칼에 거절해버리기까지 했다. 수십 년간 북한의 허장성세와 시간 끌기 전략에 지친 미국의 리버럴 진영도 북한과의 협상을 주저하게 되었다. (중략) 과거 북한과의 접촉 노선을 강조하던 로버트 갈루치 같은 인물마저 북한에 대한 압박에 쉽게 동의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 본문 240~241쪽

쿠바가 한반도 평화에 던지는 교훈

지난 몇 년 간 한반도 상황을 떠올려 보자. 일단 북미 관계의 물꼬는 2018년 터졌다.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싱가포르에서 정상회담을 진행한 것이다. 이에 대해 저자 안병진 교수는 두 정상의 만남이 성사된 데에는 두 정상이 양국 관계를 지배했던 '베두인 전설'이란 게임룰을 과감히 깨뜨렸다는 점이 크게 작용했다고 분석한다.

"김정은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핵무기 개발이라는 게임이 실패했다고 판단했다. 오히려 협상의 문을 닫고 그냥 뚝심 있게 핵무력을 완성했더라면 미국도 관심을 가지고 협상에 나섰으리라고 본 것이다. (중략) 최근 김정은은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성취하지 못한 북미정상회담을 성사시킴으로써 핵무기 개발 시도보다는 핵무기 개발을 달성한 뒤 협상을 시도하는 편이 미국의 관심을 끌기에 유리했다는 것을 증명한다." - 본문 232~233쪽

"도널드 트럼프는 지미 카터와는 전혀 다른 인물이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다. 그건 오직 현상 유지만을 추구하는 기존의 닳고 닳은 위성턴 내부 정치인과는 다르다는 점이다. 김정은이 트럼프와 대타협을 결심한 배경도 전형적인 국가안보 프레임을 가지지 않은 트럼프가 북한을 ICBM이라는 고급 상품을 가지고 동등하게 거래하려는 새로운 비즈니스 상대로 봤기 때문이라는 점도 있었다. (중략) 돈키호테식 허장성세 문화에 익숙한 김정은과 허세를 바탕으로 한 협상가 트럼프는 닮은 꼴이기에 두 사람은 서로에게 끌린 것이다." - 본문 301쪽

두 정상은 2019년 하노이에서 재차 만났다. 이때만 해도 북미 간 종전협정이 체결될 것이란 기대감이 높았다. 그러나 하노이 정상회담은 '노딜'로 끝났고 이후 북미-남북 관계는 얼어붙기 시작했다. 저자는 이 같은 상황을 예견한 것 같다.

"(김정은 위원장은) 미국이 비핵화뿐 아니라 정권 교체를 노리는 무리한 사찰을 고집하거나 경제 개혁 속도가 지나치게 빠를 경우 전략적 선회나 속도 조절을 시도할 수 밖에 없다. 어느 순간 김정은은 WTO 가입을 눈앞에 두고도 다시 핵카드를 만지작거려야만 할지 모른다. 남북정상회담에서 그토록 공손하고 겸손했던 김정은도 고모부와 형을 죽인 '무시무시한' 김정은으로 바뀔 수 있다." - 본문 321쪽

싹싹하게만 보였던 김여정 당중앙위 부부장은 독설에 가까운 언사가 담긴 담화문을 내놓았다. 이어 북한 당국은 남북공동연락사무소를 폭파해 우리 정부를 당혹스럽게 했다. 이런 맥락에서 볼 때, 저자의 예측대로 김정은 위원장이 언제든 보란 듯이 무시무시한 모습으로 등장할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언제 베두인 전설이 그늘을 드리울지 모른다는 말이다.

저자는 쿠바의 사례를 분석해 남북·북미 간 갈등상황을 풀어낼 21가지 정책 제안을 내놓는다. 모두가 깊은 시사점을 던지는 제안이지만 남북·북미 관계가 모두 얼어붙는 현 상황에선 '내적 변화에는 인내심이 필요하다'는 대목이 특히 눈길을 끈다.

정책 결정자뿐만 아니라 독자 모두 귀담아 들어야 할 조언이 아닐 수 없다.

"한반도에서 결과만 놓고 보면 유화 노선이나 강압 노선 둘 다 성공하지 못했다. 유화 노선에도 불구하고 북한은 제네바 합의를 시간 끌기 게임으로 만들어버렸다. 강압 노선에도 불구하고 붕괴하기는 커녕 ICBM까지 만들었다. 대화나 제재가 쿠바나 이란이 결국 대담한 행보를 하게 된 결정적 이유는 아니었다. (중략) 쿠바와 이란에서는 새로운 전략으로 선회할 수 있는 실용주의자인 라울과 로하니의 등장도 결정적이었다. 이런 전환은 끈기가 필요하다. 꾸준히 접촉하고 확대하며 불안감을 제거하면서도 경제적 정치적 자유를 확대하도록 유도해야 한다. 그 과정에서 레드라인을 넘는 행동에 대해서는 단호한 태도를 보여야 한다." - 본문 317쪽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0년 7월 17일, 금 9:55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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