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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 종교
 
세계적 기독교 저술가들은 코로나19에 대해 뭐라 말했나
코로나19에 대한 기독교적 응답…톰 라이트, 존 파이퍼, 월터 브루그만, 존 레녹스가 벌이는 가상 대담


▲ <뉴스앤조이> 코로나19 가상 대담에 참석한 패널들. 왼쪽부터 톰 라이트, 존 파이퍼, 월터 브루그만, 존 레녹스. 사진 출처 플리커

(서울=뉴스앤조이) 여운송 기자 = 대형 서점 매대 한쪽을 가득 채운 전염병 관련 서적들은 코로나19의 세계적 확산에 대한 우려를 반영합니다. 국내외 기독교 출판 시장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세계 유수의 신학자와 목회자, 변증가가 기독교 신앙 관점에서 이 사태를 어떻게 봐야 할지 이야기하고자 펜을 들었고, 국내 다수 출판사가 이를 번역‧출판했습니다.

<뉴스앤조이>는 주목할 만한 번역서 네 권을 재구성해, 저자들의 가상 대담을 만들어 봤습니다. 선정 도서는 톰 라이트의 <하나님과 팬데믹>(비아토르), 존 파이퍼의 <코로나바이러스와 그리스도>(개혁된실천사), 월터 브루그만의 <다시 춤추기 시작할 때까지>(IVP), 존 레녹스의 <코로나바이러스 세상, 하나님은 어디에 계실까?>(아바서원)입니다.

네 권 모두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기독교적 응답으로 쓰인 100쪽 전후 소책자입니다. 저자들은 모두 세계에 이름을 알린 대표적인 기독교 저술가입니다. 저자들의 신학적 관점과 대안을 비교할 수 있도록 대담을 구성했습니다. 아래 나오는 질문에 대한 모든 답은 책 내용에 근거합니다.

- 가상 대담에 참여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간단한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톰 라이트 / 바울과 초기 기독교를 연구하는 톰 라이트입니다. 영국성공회 더럼의 주교를 역임했습니다. 케임브리지·세인트앤드류스 등 여러 대학을 두루 거치며 신약과 초기 기독교 역사를 가르쳤고, 현재 옥스퍼드대학교 선임연구원으로 재직하고 있습니다.
존 파이퍼 / 기독교희락주의자 존 파이퍼 목사입니다. 조나단 에드워즈에게 큰 영향을 받았습니다. 미국 베들레헴침례교회를 33년간 담임했습니다. 현재 베들레헴신학대학교 총장으로 섬기고 있으며, 디자이어링갓(desiringGod)이라는 단체를 설립해 전 세계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며 더 크고 깊은 기쁨을 추구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월터 브루그만 / 구약학자이자 대중 설교자로 살고 있는 월터 브루그만입니다. 1961년 에덴신학교에서 강의하기 시작해 2000년대 초 컬럼비아신학교에서 은퇴했으니, 대학에서만 40년 넘게 구약을 가르쳤군요. 구약 가르침을 토대로 현실 문제를 진단하고 시대를 변혁해 가는 예언자적 상상력에 관심이 많습니다.

존 레녹스 / 옥스퍼드대학교에서 수학과 과학철학을 가르치는 존 레녹스 교수입니다. 기독교 변증가로도 활동하고 있습니다. 과거 C. S. 루이스 선생님의 마지막 강의를 들었지요. 리처드 도킨스, 크리스토퍼 히친스 같은 무신론자들과 공개 논쟁을 벌이기도 했습니다. 유명한 신학자분들과 함께 자리할 수 있어 영광입니다.


▲ 코로나19 관련 번역서. 왼쪽 위부터 시계 방향으로 <하나님과 팬데믹>(비아토르), <코로나바이러스와 그리스도>(개혁된실천사), <다시 춤추기 시작할 때까지>(IVP), <코로나바이러스 세상, 하나님은 어디에 계실까?>(아바서원). 뉴스앤조이 여운송

- 코로나19 사태에 대한 책을 쓰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레녹스 / 코로나19는 모두를 난감한 상황에 빠뜨리고 있어요. 이 문제를 어떻게 생각하고 대처해야 하는지 수많은 사람이 물어 왔습니다. 저는 기독교 신앙이 코로나19 같은 이슈에 대해 다른 종교·철학에서 찾을 수 없는 답을 제시해 준다고 믿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희망에 대해 확실히 말할 수 있고, 죽음 앞에 선 불확실한 상황에서도 평안을 느낄 수 있지요. 그 희망의 이유를 설명하고 싶었습니다.

무엇보다 전염병이 창궐하는 가운데 '사랑의 하나님이 과연 존재하시는가'에 대한 물음에 답하고 싶었습니다. '하나님은 분명 존재하신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전염병을 맹목적으로 바라보는 무신론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 주고 싶었습니다.

파이퍼 / 제 집필 의도도 교수님과 비슷합니다. 코로나19 시대에 생존 가능성을 논하는 세상의 확률 게임으로는 사람들에게 전혀 소망을 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오직 거룩하고 의로우신 하나님만이 우리 소망이지요. 절대주권자이신 하나님이 바이러스를 완벽하게 다스리고 계시다는 사실을 통해 희망을 주고자 했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이 코로나19를 통해 우리에게 회개와 심판의 메시지를 던지고 계신다는 사실을 성경 말씀을 토대로 제시해, 현실 안주형 신자들에게 경종을 울리고자 했습니다.

브루그만 / 신앙 공동체 지도자로서 제가 맡은 책임감 때문이지요. 저는 시대 상황과 대화하며 구약성경에 담긴 예언자적 통찰을 제시하는 데 힘써 왔습니다. 저에게는 신앙의 렌즈를 통해 현 상황을 비판적‧신학적‧성경적으로 해설하고 교회를 인도할 책임이 있습니다. 목회 현장에서 고민하는 이들을 돕기 위해, 신앙 공동체가 담대함과 기쁨으로 선교적 정체성을 지켜 나가도록 격려하기 위해 이 책을 썼습니다.

라이트 / 저는 많은 사람이 팬데믹이 불러일으킨 질문에 성급하게 해결책을 제시하는 것이 우려스러웠습니다. 분노한 신과 재앙을 직접 연결하는 등 마음속에 쉽게 떠오르는 자동적 반응이 여기저기서 들끓더군요. 기독교 내에도 음모론이 많았습니다. 하나님이 이 사태를 통해 무엇을 말씀하시려는지 정확히 알고 있다고 주장하는 경우도 있었고, 재앙을 종말과 재림의 징조로 보는 시각, 이 힘든 시기를 공포 마케팅을 활용해 전도할 절호의 기회로 보는 시각도 있었습니다.

저는 이런 입장을 거부하고 그저 기도하고 애통하며 자제하는 시간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펜을 들게 되었죠. 어쩌다 보니 존 파이퍼 목사님과는 여러 차례 논쟁하게 되는군요.

- 코로나19는 하나님이 만드신 건가요?
파이퍼 / 이것은 제가 단언할 수 있습니다. 코로나19는 하나님이 보내셨습니다. 하나님을 감상적으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 세상 모든 일은 하나님의 분명한 의도와 목적, 완벽한 계획 아래서 일어납니다. 하나님은 절대주권자이시기 때문에 그분이 허락하지 않으시면 단 하나의 바이러스도 활동할 수 없죠.

그렇다고 그분이 악하십니까? 절대로 그럴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십니다. 그분이 의롭지 않으시면 우리의 반석이 될 수 없습니다. 그분은 홀로 뛰어나시고 그분의 의로우심의 기준은 그분 자신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올바름의 기준입니다. 하나님은 코로나19를 만드셨고, 지금도 완벽히 다스리고 계십니다. 그분의 계획 안에서는 코로나19도 선하고 옳습니다.


▲ 존 파이퍼는 절대주권자 하나님이 코로나19를 만드셨으며 그분의 계획 안에서 완벽하게 통제하고 계신다고 말했다. 사진 출처 플리커

레녹스 / 목사님, 잠시만요. 하나님은 결코 악의 창시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기계 로봇으로 만들지 않고 자유의지와 선택권을 주셨지요. 인간의 죄 때문에 창조 세계에도 결함이 생긴 것입니다. 코로나19도 그 결과일 따름입니다. 사실 바이러스 자체는 나쁘지 않습니다. 대다수 바이러스는 우리 생명을 유지하는 데 꼭 필요합니다. 기껏해야 1%만 병원성이 있지요. 지진을 유발하는 지각변동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각 표층의 움직임 때문에 지구가 균형을 유지하고 생물이 대규모로 멸종하지 않을 수 있어요.

라이트 / 이 질문은 결국 하나님이 세상을 책임지고 주관하시느냐는 물음과 직결됩니다. 예수님 안에서 자신을 드러내신 하나님이 이 세상을 주관하시는 것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악에 대한 완벽한 설명은 있을 수 없습니다. 그런 일은 질서 정연한 창조 세계 내에 악이 들어찰 적절한 자리를 내어 주는 일입니다. '하나님이 홀로코스트를 허용하셨다'는 등 악에 대해 온갖 이유를 갖다 붙이는 합리주의적 접근은 오히려 급진적 무신론을 불러일으켰습니다.

브루그만 / 하나님이 코로나19를 일으키신 분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습니다. 복음의 하나님이 바이러스로 말미암은 위기 안에, 위기와 함께, 위기 아래 계심을 신뢰할 수는 있지만요. 이 바이러스를 세계화를 촉진해 온 인간의 오만, 천연자원의 무분별한 남용, 약자들을 향한 착취에 대해 하나님이 되돌려 주시는 역풍이라는 식으로 이해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종종 우리 탐구보다 더 깊은 신비와 맞닥뜨리면 이를 하나님의 행위로 간주하고는 합니다. 사실 그것을 무엇이라 부르든 상관없습니다. 우리 능력과 설명을 벗어난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게 중요하지요. 하나님의 세계 안에 있는 우리 삶에는 계몽주의가 추구하는 합리성의 세계 그 이상의 것과 그 밖의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아는 정도로 충분합니다.

- 그리스도인들은 고통과 재앙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요?
파이퍼 / 재앙은 자연적 결과가 아니라 죄가 침투한 세상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돌이켜 회개하라는 그분의 자비로운 신호죠. 하나님은 재앙의 생생하고 고통스러운 현실을 통해 세상에는 궁극적 안전과 만족이 없다는 점을 일깨우고자 코로나19를 보내신 겁니다. 이 바이러스는 세상이 하나님을 경홀히 여기는 죄의 영적 추악함과 끔찍한 도덕적 현실을 보여 줍니다. 우리를 깨우쳐 오로지 그리스도만을 의지하게 하시려는 거죠. 우리 모두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무한한 가치에 비추어 삶을 재정렬하라는 하나님의 우레와 같은 신호입니다.

모든 자연재해는 회개를 촉구하는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장차 종말의 심판을 통해 수천 배나 더 큰 고통이 주어질 것을 미리 보여 주는 경고이기도 합니다. 많은 이가 사람들이 무의미하게 죽어 나가는 모습을 보며 놀라워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이라면 '오히려 너희가 아직 죽지 않은 것을 놀라워해야 한다. 너희도 회개하지 않으면 그런 심판을 받을 것이다'고 하실 겁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세상에 전하시는 메시지입니다.

레녹스 / 제 생각은 목사님과 조금 다릅니다. 재앙을 하나님의 직접적 심판이라고 섣부르게 말하는 것은 불필요한 상처를 유발할 수 있습니다. 이런 반응은 사람들에게 희망을 줄 수 없어요. 물론 재앙 중 일부는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말이 기독교의 가르침이기도 하지요. 그러나 예수님은 오히려 고난과 개인적 악행의 연계를 부인하셨습니다.

우리는 고통을 꼭 나쁘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고통은 위험을 경고하고, 운동할 때 신체를 발달하게 하고, 성품 형성에 기여하기도 하니까요. 부모가 자녀에게 고통스러운 경험을 거치도록 허용하는 것은, 일정한 고통은 자녀들에게 유익하기 때문이죠. 양쪽 입장을 균형 있게 취해야 한다고 봅니다. 자연적 악으로 고통받는 것을 하나님의 심판으로만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이 재앙을 통해 하실 말씀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도 경계해야 합니다.

라이트 / 코로나19가 사람들에게 회개를 요청한다는 말은 틀렸습니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에게는 욥기를 읽어 보라고 추천해 주고 싶네요. 욥기에는 해결책이 나오지 않습니다. 미해결이 욥기의 핵심입니다. 우리는 단지 애통하고 불평하고 상황을 자세히 말씀드리면서 하나님께 맡겨 드릴 뿐입니다.

종말에 대한 불안을 조장하는 가르침도 지양해야 합니다. 하나님나라가 임했다는 궁극적 선언은 개별 재앙이 아니라 예수님에게서 나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사역과 죽음과 부활 사건 자체를 회개에 대한 궁극적 요청으로 봐야 합니다. 이 사건이야말로 유일한 회개 요청이자 하나님이 세상에 하고 계시는 일에 대한 유일한 실마리입니다.

예수님은 포도원 비유에서 주인이 종들을 보낸 이후에 최후의 수단으로 보낸 아들입니다. 소작농들이 아들마저 죽인 이후로 주인은 더 이상 종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이후 그에 비길 만한 경고나 표적은 없었습니다. 전 세계를 향한 회개 메시지는 예수님을 통해 이미 왔습니다. 복음 이야기를 살피지 않고 개별 재앙에서 하나님이 무엇을 하고 계시는지 비약적 결론을 내려서는 안 됩니다. 이는 예수님을 배제한 채 하나님에 대해 추론하려는 아주 기초적인 실수입니다.


▲ 톰 라이트는 궁극적 표적인 예수 그리스도를 배제한 채로 개별 재앙을 전 세계적 회개를 촉구하는 하나님의 뜻으로 해석하는 일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사진 출처 플리커

브루그만 / 많은 사람이 오해하듯, 현대 바이러스에서 전염병에 대한 구약의 언급으로 논의를 이어 가는 게 꼭 지나친 확대해석인 것만은 아닙니다. 정확한 상응은 아니더라도 충분히 상상하고 묵상할 지점이 있습니다. 위기의 순간마다 우리는 성경을 새롭게 다시 읽도록 요구받으니까요.

재앙이 가져오는 파괴적 결과들은 우리에게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를 새롭게 하라고 요청하고, 우리가 부여받은 여러 책임을 새롭게 다시 실천하라고 촉구합니다. 우리는 이 요구에 순종하면서도 재앙 자체가 아니라 재앙 한가운데서도 자비로 함께하시는 하나님을 봐야 합니다. 인류에 대한 견고하고 한결같은 유대감을 보이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품어야 합니다. 그분은 재앙 한가운데서도 사랑과 관대함으로 환대를 향해 나아가고자 열망하는 자신의 백성을 기꺼이 도우십니다.

- 전 지구적 혼란 속에서 기독교 신앙이 무슨 유익을 줄 수 있나요?
파이퍼 / 진리의 하나님 말씀이 우리에게 밀려오면 이루 말할 수 없는 위로가 찾아옵니다. 성경을 통해 비치는 하나님의 영광이 있기 때문이지요. 그 위로는 우리에게 무덤 저편의 소망을 줍니다. 그것은 현재의 소망이자 능력이 됩니다. 상황이 좋을 때나 나쁠 때나 하나님 말씀은 견고한 평화와 기쁨을 주죠.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의 심판과 고통은 징벌이 아니라 정화입니다. 신자들을 향한 하나님의 목적은 심지어 그들이 죽는 순간에도 자비입니다. 우리가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할 수 있는 것은, 코로나19를 멈출 능력이 있지만 그렇게 하지 않으시는 주권자께서 이런 와중에도 우리 영혼을 지탱하신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

레녹스 / 무신론은 답이 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제거한다고 고통이 제거되지는 않습니다. 하나님을 제거하면 오히려 궁극적 희망이 제거됩니다.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의 존재를 믿음으로 궁극적 희망을 줍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하나님이 없다면 선과 악의 개념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코로나19에 대한 선악 평가를 할 수 있는 객관적 실재로서의 기준이 없어지니까요.

무엇보다 기독교가 제시하는 희망은 하나님이 성육신과 십자가 죽음을 통해 인간의 고통을 친히 체험하신 분이시라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분이 부활을 통해 죽음을 정복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고통의 문제를 해결한 사람이 아니라 친히 고난을 겪은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랑하게 된 사람입니다. 그분을 믿는 것은 장차 고통 없는 세계로 인도하는 구원을 약속하죠. 다른 종교나 철학에는 이런 것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용서·평화·희망을 제공합니다.


▲ 존 레녹스는 재앙 상황에서 무신론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언급했다. 사진 출처 플리커

라이트 / 기독교 신앙은 하나님이 가난·병·소외에 특별한 관심이 있다고 믿습니다. 의료, 교육,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사회복지 등 우리가 당연히 여기는 사회적 태도 대부분이 기독교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지금 여기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할지 알려 줍니다. 신자들은 믿음 안에서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하나님나라 도래와 창조 세계를 회복해 나가는 하나님의 거대한 사역에 동참합니다.

브루그만 / 예레미야를 보십시오. 그는 황폐한 예루살렘 황무지에서 또다시 축제를 기념하며 즐거워하는 소리가 들릴 것을 기대합니다. 사회적 모임들이 활발하게 열리면 삶은 다시 시작될 것이고, 많은 이가 기뻐하며 회복과 새 생명을 주시는 하나님께 찬양과 감사 제물을 바치게 될 거라고 말이지요.

예레미야를 포함한 모든 그리스도인이 공유하는 희망의 근거는 자기 백성에 대한 하나님의 한결같은 사랑, 견고한 유대감입니다. 하나님은 한순간도 하나님의 백성과 세계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황폐함 속에서도 하나님은 계속 신실하셨습니다.

물론 지금 우리가 직면하고 있는 바이러스는 우리가 만들어 낸 악한 현실 질서와 관련 있습니다. 그러나 불순종에는 벌, 순종에는 상이라는 '동등 보응'을 넘어선 그 이상의 자비가 있으리라 희망하며 우리는 신앙을 실천해 나갈 수 있습니다. 야웨 하나님을 믿는 우리가 재앙 속에서도 희망할 수 있는 이유입니다.

- 코로나19 시대, 그리스도인과 교회의 역할은 무엇일까요?
파이퍼 / 이런 때일수록 그리스도인은 다른 어떤 관계보다 예수님을 더 보화로 여겨야 합니다. 우리가 멸망해야 마땅한 죄인인 이유는 예수님의 무한한 가치를 멸시해서입니다. 코로나19를 통해 주시는 하나님의 경고 메시지 앞에서 겸손히 돌이켜야 합니다.
위험 속에서도 선을 행해야 합니다. 위험 속에서 베푸는 선행은 단순한 선행보다 기독교의 맛과 빛을 더 강하게 만듭니다. 자기 연민과 두려움을 극복하고, 용기와 기쁨과 사랑으로 선을 행하여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야죠.

레녹스 / 무엇보다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사실 우리는 이런 일을 처음 겪지 않습니다. 기독교는 지난 2000년 동안 역병을 다뤄 왔습니다. 크리스천 공동체가 있는 도시는 사망률이 다른 곳의 절반 수준이었습니다. 희생과 돌봄의 행습이 있었기 때문이죠. 마르틴 루터는 역병이 우리 의무를 용해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죽을 준비를 해야 할 십자가로 의무를 돌린다고 말했지요. 이웃을 섬기고 돌봄을 제공하며 우리 스스로 대가를 지불하면서도 타인을 사랑하는 방법을 찾는 게 교회 역할입니다.

라이트 / 하나님은 항상 충성된 자신의 백성을 통해 그들과 함께 창조 세계에서 일하시고 회복해 가셨습니다. 교회는 이런 일이 왜 일어났는지 원인에 집착하지 말고 이웃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물어야 합니다. '이런 일이 생기면 누가 가장 위험에 처하는가', '그들을 돕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누구를 보내야 할까' 물어야 합니다.

코로나19는 종말의 표적이 아니고 회개를 요청하거나 전도할 기회도 아닙니다. 이 슬픔을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을 외쳐 댈 기회로 삼는 일을 거부해야 합니다. 우리는 고통받는 세상에서 기도하는 사람들로 부름 받았습니다. 세상이 울고 있습니다. 지금은 예수님이 친구 무덤 앞에서 눈물 흘리셨듯이 교회가 고통받는 자들 옆에 겸허히 자리해야 할 때입니다. 애통하는 마음에서 기도할 때 이웃을 향한 창의적 행동이 나옵니다.

브루그만 / 그리스도인은 타협하지 않는 희망을 집요하게 붙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신실하심에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의 영속적 사랑을 증언해야 합니다. 이 증언은 신앙 공동체의 행동에서 나옵니다. '두려움의 시기에 진정한 이웃으로 처신하는 것', '이웃에게 관대함과 환대를 보이는 것', '이웃을 배려하는 정부 정책에 힘을 실어 주고 널리 알리는 것' 등이지요.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지는 의료‧복지 혜택이 단지 비상사태에 따른 일시적 예외 상황일 필요는 없습니다. 교회가 나서서 이러한 정책이 진정한 '뉴노멀'(new normal, 이전에 비정상적으로 보였던 현상과 표준이 점차 아주 흔한 표준으로 자리매김하는 사회현상 - 기자 주)이 되게 해야 합니다.


▲ 월터 브루그만은 언약 관계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의지하며 재앙을 재맥락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사진 출처 플리커

기도하는 게 중요합니다. 사실 성경은 재앙 자체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재앙을 자세히 묘사하지도, 야웨의 긍정적 기도 응답에 많은 에너지를 쏟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강조점은 신실하게 기도하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으실 것을 기꺼이 신뢰하며 재앙을 재맥락화하는 것, 관계의 유효성과 신뢰성을 확인하고 강화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하나님 백성은 그 앞에 회개하고 겸손해야 합니다. 언약에 기초한 삶을 회복해야 합니다. 이를 인정하며 기도할 때 언약 관계가 회복됩니다. 하나님과 맺는 관계의 진실성과 신뢰성을 회복하고 상황의 주어를 '재앙'으로부터 '야웨의 통치'로 전환해야 합니다. 주어가 바뀌면 재앙의 위협 아래서도 이웃들과 어떻게 더불어 살아야 할지 방향을 조정할 수 있습니다.

- 마지막으로 코로나19로 고통을 겪고 있는 신자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파이퍼 /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우리 삶과 죽음까지도 자비로우신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그리스도의 일이 마칠 때까지 우리는 죽지 않습니다. 그러나 회개하십시오. 이 재앙이 우리 행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아닌지 우리 마음을 면밀히 살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도 멸망할 것입니다. 이것이 예수님의 메시지였습니다.

기뻐하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십시오. 이 상황은 결국 세계 복음화라는 하나님의 확고한 목적을 이루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는 결코 헛되이 죽지 않으셨습니다. 그분은 세계 복음화를 통해 자신의 고난에 대한 보상을 받으실 것입니다. 이 세계적인 전염병도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이루는 데 이바지할 것입니다.

레녹스 / 먼저 전문가의 의료적 지침을 따르십시오. 사회적 거리 두기는 이웃을 보호하고 그들을 사랑하는 방법 중 하나입니다. 그리고 올바른 관점을 가지십시오. 팬데믹이 전혀 새로운 상황인 것처럼 과장하면 안 됩니다. 우리는 이미 죄로 인해 사형선고를 받은 상태입니다. 이미 죽을 것이 확실한 세상에서 코로나19가 죽을 확률을 높였다고 애처로이 울먹이며 우울해진다면 우습기 짝이 없겠지요.

복음이 약속한 영원을 기억하십시오. 예수님만이 평안을 줄 수 있습니다. 그분만을 신뢰해야 합니다. 우리가 그분의 손을 추적할 수 없을 때조차 우리는 그분의 선하시고 지혜로운 마음을 신뢰해야 합니다. 그분은 우리를 위해 친히 고통을 당하신 하나님이시니까요.

라이트 / 하나님은 치유와 소망을 주시려고 고통받고 죽어 가시면서 전염병 시대의 최전선에 계십니다. 애통하고 기도하십시오. 분명하게 '왜'를 말할 수 없을지 몰라도, 희미하게나마 이웃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 찾을 수는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나라는 예수님 사역 안에서 '하늘에서 이룬 것같이 이 땅에서도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나라를 이루실 것입니다.

브루그만 / 우리는 새로운 역사적 가능성에 관한 대담한 상상에 참여하도록 부름 받았습니다. 예언자적 상상력은 새로운 사회적 가능성을 기대하게 하죠. 물론 우리 상황은 불안하기에, 이전의 안전하고 확실한 것을 붙잡고 싶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언적 전승은 옛날에 안주하지 않고 담대히 새롭고 신실한 행위를 만들어 냅니다.

새로움은 시간이 흐르면 자동으로 오는 그다음이 아닙니다. 퍼즐 맞추기처럼 깔끔한 기술적 성취도 아닙니다. 신비에 싸인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새로움은 손쉬운 해결책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탄식을 낳고 통제의 상실과 포기라는 당혹스러움을 수반합니다.

탄식하고 부르짖으십시오. 출애굽의 해방은 백성들의 탄식과 부르짖음에서 시작했습니다. 탄식은 우리가 충격과 당혹감, 그리고 죽음의 옛 세상과 생명의 새 세상 사이에 서 있음을 인정하는 표시입니다. 성금요일의 아픔 없이 부활의 아침은 오지 않습니다. 탄식은 하나님의 새 창조라는 미래로 들어가는 좁은 문입니다! (본보 제휴 <뉴스앤조이>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0년 7월 17일, 금 9:14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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