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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시간: (EST) 2020년 8월 07일, 금 8:25 am
[종교/문화] 종교
 
조지 플로이드 사건이 드러낸 미국의 원죄 '인종차별'
필라델피아 흑인 빈민가에서 목회하는 이태후 목사 기고

(서울=뉴스앤조이) 이태후(목사)

"I can’t breathe."

"숨을 쉴 수가 없어요"라는 절박한 간청에도 아랑곳없었다. 백인 경찰은 그의 목을 짓누른 무릎을 움직이지 않았다. 주머니에 손을 넣은 채, "말을 할 수 있으면 괜찮은 건데" 비정한 말을 내뱉을 뿐. 얼마 지나지 않아 피해자는 그 자세 그대로 운명했다. 어쩌면 이 사건은, 경찰의 공권력 집행에 순응하지 않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남성의 또 다른 안타까운 죽음 정도로 끝났을 수도 있었다.

20불짜리 위조지폐를 사용했다는 혐의로 경찰에 체포되어 경찰의 손에 목숨을 잃은 조지 플로이드(46). 당국은 현장에 있던 네 명의 경찰에게 아무 혐의를 묻지 않았고, 단지 파면하는 것으로 여론을 잠재우려 했다.

사건 경위를 지켜보던 시민이 동영상을 소셜미디어에 공유했고, 무자비한 폭력이 미국 시민들을 자극했다. 8분 46초. 백인 경찰관 데렉 쇼빈이 무릎으로 희생자 조지 플로이드 목을 누른 시간이다. 미국 역사를 바꾼 시간으로 기억될 수도 있는 '8분 46초'는 시민을 보호해야 할 경찰관의 잔인함을 적나라하게 노출했다. "엄마, 엄마"를 외치며 "숨을 쉴 수 없어요"라고 16번 간청했는데도, 시민들이 죽을지도 모르니 제발 그만하라고 외쳤는데도, 경찰관은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사건이 일어난 미니애폴리스에서 시작된 시위는 뉴욕·시카고·LA·필라델피아 등의 대도시뿐 아니라 중소 도시로도 퍼졌다. 분노한 시민들은 연일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이번 시위는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으로 촉발되었지만, 전국적 시위로 확산한 데는 여러 이유가 배경으로 자리하고 있다. 바로 오랫동안 미국 사회를 좀먹고 있던 제도적인 인종차별, 심화되는 빈부 격차, 유색인종을 향한 경찰의 폭력 등 몇 가지 복합적인 요인이다.


▲ 포틀랜드에서 수천 명이 행진하면서 조지 플로이드, 아마드 알버리, 브레오나 테일러를 애도하고 항의 시위를 벌였다. 사진 출처 플리커

2월에는 조지아주에서 조깅하던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마드 알버리(25)가 트럭을 타고 쫓아온 백인 부자에게 살해당했다. 당시 백인 부자는 아무 처벌을 받지 않았고, 그렇게 묻히는 줄 알았는데 사건을 기록한 동영상이 5월 초 공개되면서 정의를 요구하는 여론이 조성되었다.

집에 있던 응급의료요원 브레오나 테일러(26)가 3월 13일, 문을 박차고 들어온 경찰 손에 살해당했다. 경찰은 그가 마약을 소지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새벽에 급습한 것인데, 집에서 마약은 찾을 수 없었다.

세 사건은 연관성이 없지만, 선량한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얼마나 경찰의 폭력에 무력하게 노출되어 있는지를 여실히 드러낸다. 동영상이 없었다면 그들을 살해한 경찰들이 아무 처벌도 받지 않았을 것이고, 또 다른 희생자를 만들어 낼 수도 있었다는 자각이 이번 시위 배경이다.

그런데 이보다 더 큰 이유가 있다. 바로 미국의 원죄다.

미국이 하나님 축복을 받아 부유한 나라가 됐다는 신화가 한국교회에 팽배하다. 미국의 역사를 제대로 들여다보면 그런 생각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 확인할 수 있다.

백인들, 성경 이용해 노예제도 정당화집단으로 린칭 참여한 뒤 예배하기도

미국은 유럽에서 이주한 백인들이 네이티브 아메리칸의 땅을 빼앗아 세운 나라이다. 거짓말로 네이티브 아메리칸을 속이거나 학살해서 땅을 탈취했다. 일부 부족과 맺은 조약 가운데 아직도 유효한 것이 있지만, 미국 정부는 지킬 의도가 전혀 없다. 대량 학살로 멸종 위기에 처한 일부 네이티브 아메리칸은 사람이 살 수 없는 척박한 땅에 - 미국 정부가 마지못해 그들에게 떼어 준 - 갇혀 힘든 삶을 연명하고 있다.

네이티브 아메리칸에게서 약탈한 광활한 땅은 유럽에서 이주한 백인들에게 거의 무상으로 주어졌다. 광대한 땅을 경작하기 위해 백인 농장주들은 아프리카에서 강제로 끌고 온 노예들을 이용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보자. 1790년 미국 남부의 면화 생산량은 1000톤이었다. 그런데 1860년 면화 생산량이 100만 톤으로 늘어난다. 이 같은 놀라운 성장이 어떻게 가능했을까. 같은 기간 아프리카 노예 숫자는 50만 명에서 400만 명으로 증가했다. 놀라운 성장은 늘어난 노예 숫자를 통한 노동력 증가로 이루어진 것이다.

아프리카 노예들은 사람 취급을 받지 못했다. 아무런 교육도 받지 못했고, 스스로 글을 깨우친 노예는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 농장주들은 노예들을 '다루기 위해' 거의 매일 밤 노예를 채찍으로 때렸고, 그 비명 소리가 다른 노예들에게 악몽을 가져다주었다. 남부의 여러 주에는 말을 듣지 않는 노예의 신체를 절단하거나 사지를 찢어서 시체를 매달아 놓아도 된다는 법조문마저 생겼다. 이 모든 게 노예들에게 공포심을 조장해 백인에게 복종하고 저항하지 못하게 하는 방책이었다.

노예를 소유했던 백인들은 성경을 이용해 노예제도를 정당화했다. 창세기 9장에 나오는 '함의 저주'를 근거로, 아프리카인들이 노예가 되는 게 하나님 뜻이라고 설교했다. 그들을 아프리카에 그대로 놔두면 짐승처럼 살면서 우상숭배해서 지옥에 갈 텐데, 미국에 와서 문명의 혜택을 받고 복음을 듣게 되었으니, 노예 된 것이 '축복'이라는 해괴한 논리를 펴기도 했다. 정작 아프리카 노예들은 백인들이 예배하는 교회에는 들어갈 수 없었다.

미국은 하나님의 축복으로 부강해진 나라가 아니다. 네이티브 아메리칸과 아프리카 노예들의 피와 땀으로 부강해진 나라다.


▲ 전용 식수대에서 물을 마시는 흑인. 과거 미국의 백인과 흑인은 서로 다른 식수대를 사용했다.

링컨 대통령이 1863년 노예해방을 선언했지만, 아프리카계 미국인들 삶은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법적으로 자유가 됐지만, 사실 노예에서 거지 신세가 된 셈이다. 자유의 몸이 되어 농장에서 풀려났지만, 아무런 경제적 보상을 받지 못했기 때문이다. 해방 노예들은 다시 이전에 일하던 농장에서 더 열악한 환경 가운데 일했다. 노예일 때에는 그래도 자기 재산이기에 백인들이 조심(?)해서 다뤘지만, 이후로는 고용인으로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을 소모품같이 취급했다. 백인 농장주들은 두 번 생각하지 않고 마음에 들지 않는 일꾼을 불구자로 만들거나 살해했다.

해방과 함께 투표권이 주어졌지만, 백인들의 집요한 공작으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투표를 못 하게 만드는 법안이 책정되었다. 그러는 동안 KKK(Ku Klux Klan)로 대표되는 백인우월주의자들 테러에 시달려야 했다. 이들은 흰색 두건을 쓰고 말을 타고서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모여 사는 동네로 들어가 방화·약탈·살인을 일삼았다. 경찰은 단 한 번도 관여하지 않았다. 심지어 경찰관, 지역사회 지도자 상당수가 KKK 단원이었다. 아직도 건재한 여러 KKK는 자신들이 "미국의 순수성을 수호하는 백인 기독교인"이라는 사실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1882년부터 1968년까지 미국에서 린칭(lynching)이 4743건 발생했는데, 이 가운데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희생된 사건은 3446건이었다. 백인 폭도들은 사소한 이유를 붙여서 - "검둥이가 내 아내를 쳐다봤어" 등 -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집단 구타해서 죽이고, 시체를 나무에 매달아 놓음으로 공포심을 조장했다.

대부분의 린칭 현장에는 사진사가 있어 희생자 시신과 기념사진을 찍어 엽서로 만든 뒤 친지들에게 자랑스럽게 보내기도 했다. 주일예배 시간에 교회로 향하던 무리가 마을에 린칭이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목사까지 현장으로 몰려가 합세한 후 돌아와 예배한 일도 있다. 그런데 미국 정부는 아직까지 단 한 명도 린칭으로 처벌하지 않았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이 경험한 최악의 폭력은 오클라호마주 털사(Tulsa)에서 일어난 학살 사건이다. 1921년 5월 30일, 한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엘리베이터에서 실수로 백인 여성 발을 밟았다. 다음 날 신문을 통해 부풀려진 소문이 백인들에게 퍼지기 시작했다.

무장한 백인 폭도들은 6월 1일 아침, 당시 'Black Wall Street'로 알려진 그린우드 지역으로 몰려가 난동을 부리기 시작했다. 이 폭동으로 35개 블록(1256채)이 잿더미가 되었다. 교회·학교·병원·도서관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폭도들의 약탈·살인·방화로 그린우드는 폐허로 변했다. 희생자만 300명 정도에 이르는데, 이 폭동으로 처벌받은 이는 한 사람도 없었다.


▲ KKK는 백인우월주의, 반유대주의, 인종차별, 기독교 근본주의, 동성애 반대 등을 내세웠다.

민권운동 이후에도 인종차별 여전

민권운동 이후 아프리카계 미국인의 형편은 조금 개선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조금만 들여다보면 인종차별은 여전하다. 내 친구 Ruth Naomi Floyd는 사진작가이며 유명한 재즈 뮤지션이다. 어느 날 그녀는 연주 여행을 위해 공항에서 보딩하고 있었다. 초청 단체에서 일등석 표를 보내 줘서 맨 앞줄에 서 있는데, 한 백인 여성이 왜 일등석 줄에 서 있느냐고 물었다. 아프리카계 미국인인 그녀가 일등석 표를 샀을 리 없다고 믿는 무지와 편견을 드러낸 것이다.

후배 목사 중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친구가 있다. University of Virginia에서 공부할 때 백인 친구들은 종종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Fred, 너는 무슨 운동을 해?" 아프리카계 미국인이니 당연히 운동해서 명문대에 들어왔다고 생각한 것이다. 아프리카계 미국인들 사이에서는 "Driving While Black, Breathing While Black"(흑인으로 운전하기, 흑인으로 숨 쉬기)이라는 웃픈 표현이 통용되고 있다.

내가 사는 빈민가 이웃들은 구조적이며 제도적인 차별에 희생을 당한다. 가난한데 모든 물건에 가장 비싼 값을 내야 한다. 그래서 "It’s expensive to be poor"(가난하면 돈이 많이 들어)라는 표현도 있다. 예를 들어, 슈퍼마켓에서 3~4불이면 사는 물 한 케이스가 우리 동네 가게에서는 12불까지 한다. 그런데도 당국의 손길은 여기까지 닿지 않는다.

우리 동네에도 몇 군데 있는, 빈민가마다 찾을 수 있는 가게 하나가 체크(수표)를 현금으로 바꿔 주는 Check Cashing이다. 왜 이런 곳을 이용할까? 빈민가에는 은행이 없다. 금융 서비스를 받기 어렵다. 체크를 현금으로 바꾸려면 예금할 계좌가 있어야 하는데, 대부분 은행은 checking account를 유지하기 위해 매달 수수료 10~15불을 요구한다. 계좌에 500불 이상 유지하면 수수료를 면제해 주지만, 빈민가에 사는 대부분의 사람은 급한 일이 생길 때 현찰 300불도 마련할 수 없을 정도로 금전적 여유가 없다. 울며 겨자 먹기로 Check Cashing Service를 이용할 수밖에.

그런데 수수료가 장난이 아니다. 개인 체크를 현금으로 바꾸려면 10~12% 수수료를 물어야 한다. 정부에서 발행한 체크는 3~5%이다. 지역에 따라 더 받기도 하지만, 이 정도 수수료가 평균이다.

은행이 없다 보니 갑자기 돈이 필요하면 Pay Day Loan이라는 서비스를 이용하게 된다. 2주 후에 값기로 하고 100불을 빌린 경우, 수수료는 20~30불 정도다. 급전 200불을 빌린 사람이 수수료와 이자를 포함해서 다 갚았을 때, 1000불 이상을 지불한 경우가 다반사다. Rent-A-Center, Auto Title Loan 등 가난한 이들을 노린 다양한 사업체가 이들의 피를 빨아먹는데, 당국은 아무 조치를 하지 않는다. 이런 사업체 모기업 중에는 세계적 기업도 있다.

조금 더 안전한 동네로 이사하고 싶어도 감당할 수 없어서 빈민가를 못 벗어나는 게 내 이웃들 운명이다. 수입에 비하면 적잖은 렌털비를 지불하지만, 세 들어 사는 거처는 정말이지 형편없다. 샤워도 못 하고 냉장고도 없는, 곰팡이가 잔뜩 핀 아파트. 그런데도 아무 힘이 없기에 불이익을 견디며 산다.

내가 사는 블록에 세 자녀와 함께 살던 여성이 있었다. 어느 날 천장이 내려앉아 위층에 고인 물과 쓰레기가 새로 산 침대 위로 쏟아져 내렸다. 집주인에게 이야기했더니 고쳐 줄 생각은 안 하고 "당신이 알아서 합판으로 막으라"고 했다며 내게 울면서 하소연했다.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내 이웃들이 겪는 차별과 고통은 너무나 크다.

또 하나 중요한 사실은 아프리카계 미국인 남자 3명 중 1명은 감옥에 간다는 것이다. 백인 남자는 17명 중 1명이다. 아프리카계 미국인 남성은 전체 인구의 6.5%이지만, 수감자 수의 40%를 차지한다. 학자들은 피부색이 이런 기현상을 좌우한다는 데 동의한다. 미국 형법에 따르면 1년 이상 선고받으면 중형(felony charge)으로 처리되는데, 문제는 범죄 기록이 평생 남는다는 사실이다. 중형 기록이 남으면 취직이 안 되고, 대부분 주에서 투표할 수 있는 권리를 박탈당한다. 주택 보조, 푸드 스탬프 등의 모든 혜택에서도 제외된다.

미국을 세계에서 가장 수감자가 많은 나라로 만든 죄목 중 하나가 마약소지죄다. 이 법안에도 인종차별이 존재한다. 마약소지죄로 기소돼 최소 형량 5년을 선고받으려면 (가난한 유색인종이 주 소비자인) 크랙은 5g, (부유한 백인들이 주 소비자인) 코카인은 500g이 있어야 한다. 오바마 대통령 임기 중 크랙 양이 조정됐지만, 법의 불공평한 적용은 여전하다.

지금까지 한 이야기는 아프리카계 미국인이 단지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겪는 차별 중 '빙산의 일각'이다. 'Black Lives Matter' 운동 이후, 지금까지 아프리카계 미국인을 죽인 경찰이 살인으로 기소당한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400년 넘게 이런 취급을 받았다면, 트라우마가 대를 이은 한이 되어 이들이 봇물 터지듯 거리로 나서는 일은 너무나 당연한 게 아닐까.

열흘 넘게 이어진 시위는 진정될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도시에서 교외로 확산하고 있다. 시위에 참여하는 인원이 계속 늘면서 초기에 잠시 발생했던 무질서한 약탈은 사라졌다. 평화로운 시위 문화가 정착되고 있다. 이번 기회로 미국의 원죄인 인종차별을 직시했으면 한다. 미국이 정의롭고 평등하며 폭력을 배제하는 평화로운 나라로 거듭나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 조지 플로이드는 미니애폴리스의 컵 푸드 가게에서 위조지폐 20달러를 사용하려 했다는 혐의로 백인 경찰에게 붙잡혔다가 목숨을 잃었다. 컵 푸드 가게 앞에 조지 플로이드를 애도하는 의미를 담은 피켓들과 물건들이 놓여 있다. 사진 출처 플리커

유학생·새터민 등 한국서 멸시 경험우리 안의 인종차별 인정하고 용서 구해야

우리는 이번 사태를 어떻게 이해하고 반응해야 할까?

우리 안에 있는 인종차별을 인정하고 회개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 우리 모두 자기 안에 있는 편견과 차별을 직시해야 한다. 아직도 우리가 사용하는 차별적인 언어 표현이 있지 않나(깜둥이, 쪽발이, 짱깨 등). 이런 표현을 우리 어휘에서 제거해야 한다.

대한민국은 인종차별이 가장 심한 나라 중 하나다. 여러 해 전 한국에서 공부하는 해외 유학생들을 위한 수련회에 참석한 적이 있다. 짐작대로 미국이나 유럽에서 온 학생들은 하나도 없었고, 그 자리에는 중국·동남아·남미·아프리카·아랍권에서 온 학생들만 있었다.

나의 제안으로 유학생들에게 '오픈 마이크 시간'을 마련했다. 한국에서 힘들었던 일, 즐거웠던 일을 이야기해 달라고 요청했다. 그러자 멕시코에서 온 인디오 학생이 울먹이며 말했다. "저는 지난 1년 동안 투명 인간이었어요. 수업에 들어가면 제 주변에 아무도 앉지 않고 심지어 교수님도 알은체하지 않아요. 제게 인사하는 유일한 분은 기숙사 경비 아저씨입니다." 그러면서 흐느껴 울었다.

다른 학생들도 비슷한 이야기를 나눴다. 백인 학생들은 어디를 가도 영어 한마디해 보고 싶은 중·고등학생이나 젊은이가 말을 걸어 준다. 반면, 그렇지 않은 유학생들은 박사과정에서 공부하든, 아프리카에서 온 정부 관료이든 간에 상관없이 무시와 멸시를 경험해야 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 형상대로 지음 받았다고 믿는 그리스도인에게 인종차별은 죄악이다.

대한민국에 존재하는 또 다른 차별은 같은 민족을 향한 것이다. 중국 동포, 새터민을 향한 차별이 있다. 여러 해 전, 새터민 자녀에게 가장 인기 있는 학원이 북한 말투를 서울 말씨로 교정하는 학원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흘린 적이 있다. 한국을 방문해 새터민을 만났을 때 한국교회에 나가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를 많이 듣는다. 입을 여는 순간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는 한국 기독교인이 불편해서 그렇단다. 나는 그들의 말에 충분히 공감할 수 있었다.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리는 그리스도인들이다. 요한계시록은 그곳을 이렇게 묘사한다.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있도다(계 7:9-10)."
오순절 성령강림 사건은 성령님께서 바벨탑 저주를 뒤집어 새로운 한 인류를 창조한 구속사적 순간이다. 이 사실을 믿는가? 그렇다면 갈등 해소와 화해, 정의와 평화를 이루기 위한 노력은 예수의 제자 된 우리가 마땅히 감당해야 할 영적 헌신이다.

남북 간의 이데올로기 갈등, 우리 전통문화와 서구 문화의 충돌 속에서 근현대사를 이루어 온 우리 역할이 어쩌면 새로운 갈등으로 위기감이 고조되는 이 시대를 '화평케 하는 자'(Peace Maker)가 아닐는지! (*이태후 / 필라델피아 흑인 빈민가에서 17년째 동네 목사로 살아가고 있다.) (본보 제휴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0년 6월 30일, 화 7:24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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