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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에세이] 기고
 
'한살림선언' 통해 생명운동 지향성 밝혀
[무위당 장일순평전 46회] 1988년 '한살림연구회'를 결성해 실천방향 제시해


▲ 1992년, 원주 한살림 생활협동조합 총회에서 강연하는 장일순 선생 1992년, 원주 한살림 생활협동조합 총회에서 강연하는 장일순 선생 ⓒ 무위당 사람들 제공

(서울=오마이뉴스) 김삼웅 기자 = 장일순은 한살림운동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고 안전성이 유지되면서, 1988년 '한살림연구회'를 결성하였다. 연구회는 시대상황을 진단하고 성찰하는 한편 대안과 실천방향을 제시하였다. 여러 차례의 학습 모임과 토론회를 거쳐 동학사상과 두레공동체의 전통 그리고 일본의 생협운동과 스페인 몬드라곤 공동체 등 다양한 내용을 검토하고 토론의 결과를 문건으로 정리하였다. 장일순도 빠지지 않고 회의에 참석했다.

한살림연구회는 1989년 10월 선언문을 채택한다.

[한살림선언ㅡ생명의 지평을 바라보면서]란 제목으로 발표한 선언서의 주요 내용이다.

1장, 산업문명의 위기

핵위협과 공포이다. 자연환경의 파괴이다. 자원고갈과 인구폭발이다. 문명병의 만연과 정신분열적 사회현상이다. 경제의 구조적 모순과 악순환이다. 중앙집권화된 기술관료 체제에 의한 통제와 지배이다. 낡은 기계론적 세계관의 위기이다.

2장, 기계론적 모형의 이데올로기

학만이 진리에 이르는 유일한 길이라는 신념이다. 실제를 이원론적으로 분리해서 보는 존재론이다. 물질과 우주를 기계모형으로 보는 고전역학이다. 생명현상을 유기적으로 보지 않는 요소론적 생물관이다. 인간정신을 기계모형으로 보는 영혼 없는 행동과학과 육체 없는 정신분석이다. 직선적인 성장만을 추구하는 경제이론이다. 자연을 지배와 정복의 대상으로 보는 반생태적 자연관이다.

3장, 전일적(全一的) 생명의 창조적 진화

생명은 자라는 것이고 기계는 만들어지는 것이다. 생명은 부분의 유기적 '전체'이고 기계는 부품의 획일적 '집합'이다. 생명은 유연한 질서이고 기계는 경직된 통제이다. 생명은 자율적으로 진화하고 기계는 타율적으로 운동한다. 생명은 개방된 체계이고 기계는 직선적인 '인과연쇄'에 따라 작동한다. 생명은 정신이다.

4장, 인간 안에 모셔진 우주생명

사람은 물건과 더불어 다 같이 공경해야 할 한울이다. 사람은 자기 안에 한울을 모시고 있다. 사람은 마땅히 한울을 길러야 한다. '한 그릇의 밥'은 우주의 열매요 자연의 젖이다. 사람은 한울을 채현해야 한다. 개벽(開闢)은 창조적 진화이다. 불연기연(不然基然)은 창조적 진화의 논리이다.

5장, 한살림

한살림은 생명에 대한 우주적 각성이다. 한살림은 자연에 대한 생태적 각성이다. 한살림은 사회에 대한 공동체적 각성이다. 한살림은 새로운 인식, 가치, 양식을 지향하는 '생활문화활동'이다. 한살림은 생명의 질서를 실현하는 '사회실천활동'이다. 한살림은 자아실현을 위한 '생활수양활동'이다. 한살림은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는 '생명의 통일활동'이다.

새로운 세계를 바라보고 이를 준비하고 있는 각성되고 해방된 인간의 정신은 '자기 안에 있는 우주 안에 자기가 있음'을 깨닫고 있다. 진화의 분기점에 방황하고 있는 이 시대는 '우주 속의 인간', '인간 안의 우주'라는 자기 이미지를 지닌 새로운 이념이 나와야 할 때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바로 지금 여기에서 새로운 생명의 이념과 활동인 '한살림'을 펼친다. (주석 1)

진솔함과 조용한 확신 담긴 장일순의 치악산 강연

장일순은 1980년대 중후반기 한살림운동에 열정을 바쳤다.

성과도 있었지만 부작용도 없지 않았다. 새로 참여한 사람이 많았고 이탈자도 없지 않았다. 그런 속에서도 사람들을 만나 필요성을 강조하고 강연을 초청받으면서 나가서 이를 역설하였다. 생명과 협동을 통해 우리와 우리 후손들의 살터를 살리자는 것이 가치이고 지향점이었다.

1987년 1월 한살림공동체가 치악산에서 연수회를 열면서 특강을 요청했다. 장일순은 「화합의 논리, 협동하는 삶」을 주제로 열띤 강의를 했다. 그의 말이나 강의는 널리 퍼지는 울림이나 언설의 유창함보다 거기 담긴 진솔함과 조용한 확신이 듣는 이들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고 회자되었다.

치악산 연수회의 특강은 장일순의 강연 중에서도 사람들에게 오랫동안 얘깃거리를 남겼다. 재밌는 예화와 비화 몇 대목을 골랐다.

원효대사의 전기를 보면, 사복이 원효하고 같이 절을 짓는데 비탈에서 터를 닦고 나무를 실어나르고 이러는데, 사복이 있다가 "스님, 우리가 이렇게 걷는 동안에 많은 개미를 짓밟고 이렇게 나무를 해치고 하는데, 이것도 산 것을 해치는 것이 아닙니까? 큰 죄를 짓는 것 아닙니까?" 하니까 원효대사가 "그래, 네 말이 맞다. 확실히 죄를 짓는 거다. 그러나 오늘 이 절을 짓는 것은 사람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있는 일체의 것을 위해서 우리가 이렇게 절을 짓는 거니까 부처님께서도 이해해주실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다는 그런 이야기를 접한 적이 있어요.

성경에 보면, 예수가 배후에 딱 계신데 제자인 베드로가 선생님하고 가다가 물에 빠지는 거라. 이 믿음이 작은 자야, 내가 오라고 했으면 겁내지 말고 그냥 와. 그런데 거기 물에 자꾸 빠지는 거라. 사람이 물에 가면 빠진다고 하는 관념이 있기 때문이지. '나'라고 하는 장벽이 없어지게 되면 그 물을 걷고 가게 되는 거라.

그러니까 여러분들이 선화(禪畵)에서 달마가 갈대를 타고 물을 건너가는 것을 보시게 될 거예요. 그건 왜? 천상천하가 바로 '자기'야. 천상천하가 바로 '자기'라고. 일체가 '자기'라고 그런데 자기 몸이 '자기'는 아니야. 자기 몸이 '자기'가 아닌 동시에 전체가 '나'란 말이야.

우리가 이렇게 소비자협동조합, 또한 한살림, '한살림'이란 이야기 그 자체가 뭐냐. 생명이란 얘기거든. 하나란 말이야. 나눌 수 없는거다 이 말이야. 예를 들어서, 서 선생. (예.) 땅이 없인 살 수 없잖아요? (예.) 하늘이 없인 살 수 없지요. 전체가 없이는. 그런 관계로서 봤을 적에 저 지상에 있는 돌이라든가 풀이라든가 벌레라든가 모든 관계는, 이게 분리할 수가 있습니까? 분리할 수가 없어요. 하나지.

그렇기 때문에 일체의 존재는 우주에서 어떻게 분리할 수가 있겠어요. 우주는 분리할 수가 없잖아. 하늘과 땅과 떠나서 살 수가 있다고 하는 사람이 있으면, 떠나서 존재할 수가 있다고 하는 곳이 있다면 말씀해봐요. 일체의 존재는 하늘과 땅, 우주와 분리해서 이야기할 수 없다고. 그럼 그런 자격으로 봤을 때 일체의 중생, 풀이라든가 벌레라든가 돌이라든가 그거와 나와의 관계는 어떤가? 동격(同格)이지요. 동가(同價)다 말이야.

주석
1> 앞과 같음.
 
 

올려짐: 2020년 5월 22일, 금 2:32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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