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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 종교
 
질문 없는 성경 읽기의 해악…교회 부적응자와 사회 부적응자 사이에서
[탐독의 시간] 레이첼 헬드 에반스 <다시, 성경으로>

(서울=뉴스앤조이) 여운송 기자

기독교판 색깔론: "그래서 성경 믿어, 안 믿어?"

한국 정치판에는 영원한 블랙홀이 있다. 바로 '색깔론(너 빨갱이지?)'이다. 한번 이 프레임에 걸려들면 '빨갱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증명하는 데 모든 에너지를 허비하게 된다. 정작 중요한 국정 사안은 하나도 다루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결국엔 "그래서 빨갱이냐 아니냐"만 남는 것이다.

한국 기독교판에도 비슷한 것이 있다. 철옹성 같은 '성경무오론'. 바꿔 말하면 '성경의 내용이 역사적·과학적으로 틀림없는 사실이라고 믿느냐(믿으라)'는 것이다. 이 질문은 많은 신자를 당혹스럽게 한다. 성경 속 많은 내용이 현대인의 상식과 인권 감수성에 반하기 때문이다. ('지구 나이는 6000년이다', '그랜드캐니언은 노아의홍수 증거다', '하나님은 가나안 족속을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모조리 죽여 없애라 하셨다',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해야 한다' 등)

성경에 대한 문자적 믿음은 신앙을 판가름하는 '리트머스종이'인 듯하다. 여기에 권위주의적 목회자들의 묵살, '의심=죄'로 보는 문화까지 더해지면 신자들의 답답함은 가중된다. 이는 신앙생활의 커다란 걸림돌이기도 하다. 성경을 문자적으로 믿지 않는 사람의 구원을 위태롭게 보는 상황에서 신자들은 맹목적 신앙으로 치닫거나, 모순과 부조리를 해결하지 못한 채 신앙을 잃고 교회를 떠나게 된다.

성경 내용이 진짜냐 가짜냐 하는 집착에 가까운 논쟁을 벌일 때마다 교회 부적응자와 사회 부적응자 사이에서 양자택일을 강요당하는 것 같다. 우리에게 주어진 선택지는 믿음 없는 사람이 되거나 상식 없는 사람이 되는 것밖에 없을까. 양극단을 피하면서도 건강한 신앙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균형 잡힌 성경 읽기의 길은 요원한 것일까.


▲<다시, 성경으로> / 레이첼 헬드 에반스 지음 / 칸앤메리, 박명준 옮김 / 바람이불어오는곳 펴냄 / 404쪽 / 1만 7500원

성경 악플러에서 성경 러버(Lover)로

"명확한 답을 찾아 성경을 파헤칠수록 도리어 더 많은 문제와 맞닥뜨렸다. (중략) 성경은 더 이상 어린 시절 위로를 주던 이야기도, 사춘기 때의 유익한 안내서도, 대학 시절의 확실한 답안지도 아니었다. 내 20대의 성경은 늘 나를 넘어뜨리는 걸림돌이요 한때 내가 알았다고 생각한 하나님과 나 사이를 가로막는 거대한 장벽일 뿐이었다." [<다시, 성경으로>(바람이불어오는곳), 24~25쪽]

여기 우리와 같은 고민의 시기를 거쳐 온 탁월한 스토리텔러가 있다. 미국 기독교 작가 레이첼 헬드 에반스(1981~2019)는 <다시, 성경으로>에서 신앙 여정을 반추하며, 자신이 어떤 변곡점을 거쳐 성경을 새로운 의미로 받아들이게 됐는지 생생하게 보여 준다. 성경을 마법의 책처럼 여기고 천진하게 믿던 어린 시절부터, 성경의 모순과 폭력성 때문에 배신감까지 느끼며 고민을 거듭하던 시기, 의심하지 말라는 주변의 회유·권면·걱정·질책을 쓴웃음 머금고 들어야 했던 시기, 마침내 "성경 악플러"(26쪽)가 되어 순진한 신자들의 신심을 도장 깨기 하듯 흔들고 다녔던 흑화(?)의 과정까지.

성경에 대한 끝없는 의문과 교회의 실망스러운 반응 때문에 결국 교회를 떠났던 저자는, 여러 시행착오와 혁신적 전환을 거쳐 이전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성경과 교회를 사랑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겪은 절망과 환희, 당혹과 경탄이 책에 고스란히 실려 있다. 평소 이 문제로 대내외적 갈등을 겪어 온 신자라면 서문의 몇 단락을 읽는 순간, 마치 다른 누가 내 이야기를 써 놓은 듯한 기분에 휩싸일 것이다. 흔들리며 걷는 방랑의 길에 동지를 만난 것 같은 안도감과 동질감에서 오는 기쁨과 위로는 말할 것도 없다.
"성경이 고정불변하고 언제나 정답만을 말하며 확실하고 절대적이라고 우기기를 멈추는 순간, 우리는 살아 숨 쉬며 우리를 당혹스럽게 하고 놀라게 만드는 성경을 만난다." (29쪽)

사실(fact)의 세계에서 진실(truth)의 세계로

이 책에서 저자의 결정적 기여는 닫힌 질문의 틀("믿어, 안 믿어?")에서 한 가지 답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노는 물을 바꾸는 데 있다. 이러한 전환은 성경을 사실(fact)의 세계로 보는 함정에서 벗어나 진실(truth)의 세계로 보게 한다. 저자가 성경을 다시 사랑하게 된 전환의 핵심이 여기에 있다.

많은 이가 성경 내용이 사실이 아니면 성경의 권위가 무너질 것처럼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의 권위는 그것이 틀림없는 사실이라는 데서 생기지 않는다. 하나님나라의 진실을 담은 '이야기'라는 데서 나온다. 모든 이야기는 그것이 만들어진 구체적인 삶의 정황을 반영하고, 동시에 앞으로 만들어 가고자 하는 세계의 지향과 가치를 포함한다. 성경도 마찬가지다. 성경 텍스트의 사실성 여부에만 집착하면 오히려 성경 이야기에 담긴 풍성한 진실을 놓치고 만다.

이를테면, 성경의 창조 기사에는 지체 높은 왕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하나님 형상이라는 이스라엘의 신앙고백이 담겨있다. 창조 기사를 사실의 눈으로 읽으면 성경 속 귀중한 진실 선언은 시야에서 사라지고 '창조냐 진화냐' 하는 앙상한 사실 논쟁만 남는다. 모세가 정말로 홍해를 갈랐느냐는 사실에만 집중하면 출애굽 기사에 담긴 하나님나라의 정신, '고통당하고 소외된 자를 돌아보시는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잃어버리기 일쑤다.

과학혁명 이래로 모든 진리는 증명 가능한 사실(fact) 영역에 국한한 것으로 간주됐다. 사실이 아니면 의미가 없는 세계가 도래한 것이다. 그러나 성경 이야기에는 과학적 사실을 탐구하는 눈으로는 포착할 수 없는 진실의 사각지대를 열어젖히는 힘이 있다. 성경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일을 해석하고 변혁할 상상력과 실행력의 원천이 될 수 있다.

그리스도인은 성경을 사실로 수용하느냐 마느냐의 이분법적 차원을 넘어, 그 안에 담긴 진실을 창조적으로 전유해야 한다. 성경을 따르기 위해 사회 부적응자가 될 필요는 없다. 성경 이야기는 교회나 사회 한쪽에 국한될 정도로 빈약하지 않다. 우리에게는 성경에 담긴 풍성한 하나님나라의 진실을 토대로 사회와 교회를 창조적으로 변혁할 책임이 있다.

정답의 유혹을 넘어 어린아이 같은 믿음으로

"세상에서 가장 강력한 이야기들이 성경과 함께 우리에게 주어졌다. 그 힘을 선용할지 악용할지, 억압의 도구로 사용할지 해방의 도구로 사용할지는 바로 우리 손에 달려 있다." (118쪽)

수많은 그리스도인이 성경 이야기에서 정답을 찾아왔다. 그렇기에 너무나 많은 경우 정답이라는 확신을 갖고 오답을 택했다. 저자는 우리가 얼마든지 성경을 아전인수격으로, 심지어 왜곡 정도가 아니라 억지에 가깝게 해석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116쪽). 기독교 역사상 최악의 만행 중 하나로 꼽히는 십자군 전쟁은 성경으로 정당화되었다. 노예제도와 인종차별은 물론이고 여성을 차별하고 억압하며 교회 내 여성 리더십을 제한하는 몰상식한 논의도 성경에 기반하고 있다. 창조 질서 운운하며 소수자들을 핍박하는 이들 뒤에도 절대 불변의 성경이 굳게 버티고 있다.

이 모든 것은 성경의 핵심과 콘텍스트를 고려하지 않은 맹목적 읽기에서 비롯된다. 성경 이야기가 전하는 진실의 핵심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것이고, 상술한 교회의 과오들은 이 진실과 확실히 거리가 멀다. "역사의 특정한 시점에 특정한 집단의 사람들에게 쓰인 내용을 보편적으로 모든 사람에게 적용하려고"(334쪽) 하니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사실에 대한 이야기는 정답이 정해져 있다. 하지만 삶의 자리에 단단히 뿌리박은 진실에서 나온 이야기는 구체적인 시공간 속에서 창조적 담론과 변혁적 실천을 끊임없이 재생산하는 공동체를 만든다.

성경은 삶의 곡절마다 딱딱 맞아떨어지는 답이 있는 삶의 지침서가 아니다. 성경은 명백한 답을 주기보다는 우리보다 훨씬 앞선 하나님의 백성들 이야기를 들려주며 우리에게 질문한다. 그리고 우리 삶의 자리에서 나온 이야기를 토대로 다시 성경에게 질문할 것을 요구한다.

성경 읽기는 정답을 습득하는 일방적 학습이 아니다. 성경 저자와 독자가 서로의 삶의 지평을 넘나들며 질문을 주고받는 끊임없는 대화이다. 성경이 주는 것은 근본적으로 지식이 아니라 지혜이다. 진실이 담긴 이야기는 지식을 떠먹여 주지 않고 지혜를 찾아 나서도록 격려한다. 성경은 수많은 질문거리를 들고 함께 모여 이야기 나누는 공동체를 위해, 우리 삶의 자리에 하나님나라의 통치를 가져오려는 믿음의 방랑자들을 위해 활짝 펼쳐진 하나님의 이야기보따리다.

그리스도인은 '어린아이 같은 믿음'을 회복해야 한다.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은 순진무구한 수용이 아니다. 어린아이에게 끊임없는 "왜?" 세례를 받아 본 자라면 무슨 뜻인지 금방 알아챌 것이다. 어린아이는 관심 없는 것을 묻는 법이 없다. 성경 이야기에 대한 "왜"와 우리 삶의 자리에 대한 "왜"는 불신의 죄악이 아니다. 오히려 성경과 우리 삶에 대한 진정 어린 사랑과 관심의 표현이며, 세상 속에서 진지하게 신앙생활을 이어 가게 하는 원동력이다. 하나님이 들려주시는 이야기보따리 앞으로 모이자. 들을 귀 있는 자는 듣고 깨달을 것이다.

"어린아이와 같은 믿음이 질문 없이 수용하는 것을 뜻한다고 말하는 사람은 진짜 어린아이를 별로 만나 보지 못한 사람이다. (중략) 우리는 답을 바라지만 하나님은 좀처럼 답을 주시지 않는다. 그 대신, 그분은 부드럽고 편안한 당신의 품에 우리를 안으시며 말씀하신다. '자, 내가 이야기 하나 해 줄게.'" (361~362쪽) (본보 제휴 <뉴스앤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0년 5월 08일, 금 4:26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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