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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집/기획] 스페셜리포트
 
KBS 직원들에게 남기는 마지막 글
[정연주의 한국언론 묵시록 ⑧] 해임에 이은 체포... 경쟁하듯 '정연주 잡기'


▲ 2008년 8월 6일, 당시 정연주 KBS사장이 서울 여의도 KBS 본관 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감사원의 해임요구 결정 등 이명박 정권 출범 이후 벌어진 사퇴압력에 대해 입장을 밝히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서울=오마이뉴스) 정연주 기자 = 2008년 8월 8일, 베이징 올림픽이 개막되었다. 나는 후진타오 중국 국가 주석 명의로 올림픽 개막식과 개막식 당일의 만찬에 공식 초대되었다. 중국의 신문·출판·방송·영화 등 미디어를 총괄하는 '국가 신문출판광전(廣電)총국'(광전총국으로 약칭)의 왕태화 총국장(장관)의 초대로 이뤄진 일이다.

왕태화 총국장과는 KBS WORLD 채널의 중국 진출을 위해 4년 동안 공을 들이는 과정에서 인간적인 신뢰가 깊어졌다. 중국을 상대로 하는 일에는 인간관계를 중요시하는 '콴시'(관계)와 인내,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그것은 마치 술을 익히는 과정과 비슷하다는 것을, KBS WORLD 채널의 중국 진출을 추진하면서 깨달았다.

그러나 나는 올림픽 개막식과 만찬에 참석하지 못했다. 이명박 정권이 그렇게 하도록 내버려 두지 않았다. 개막 나흘 전인 8월 4일 검찰이 나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취했고, 바로 다음 날 감사원이 KBS 특별감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KBS 이사회에 나의 해임을 요구했던 것이다. 그러자 이사장을 비롯하여 여당쪽 이사가 다수를 점령한 KBS 이사회는 8월 8일 임시 이사회를 열어 해임 제청안을 통과시킬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톱니바퀴처럼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막바지 해임 작전이 진행되고 있었다.

베이징 올림픽 개막, 해임, 체포

올림픽 개막식이 열린 8월 8일, KBS 이사회에서 내 운명이 결정되는 날 아침 출근 때 보니 경찰이 KBS를 에워싸고 있었다. 경찰 버스만 1백 대가 넘었다. 엄청난 병력 규모였다.

2018년 초부터 활동을 시작한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 조사에 따르면 그날 KBS 주변에는 기동대 31개 중대(사복 7개 중대), 살수차 4대, 방송차 2대, 조명차 2대 등 대규모 경찰병력이 동원되었음이 밝혀졌다.

이날 이사회가 열리기 전후하여 KBS 내부에서는 해임 논의에 반대하는 KBS 직원들의 저항이 있었고, 당시 사복 경찰 7개 중대 6백 명이 KBS에 난입하여 직원들을 폭력으로 진압한 일이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직원 6명이 부상을 입기도 했다. KBS에 경찰이 들어오도록 요구한 인물은 유재천 당시 KBS 이사장이었다.

경찰청 인권침해사건 진상조사위원회는 지난 4월 조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KBS 내 경찰 병력 투입은 '정연주 사장 해임 제청을 위한 임시 이사회의 원활한 개최'를 위한 것이라고 지적하고, "KBS에 대한 공권력 투입은 과도한 대응"이라고 밝혔다.

사복경찰 6백 명의 보호 아래 진행된 KBS 이사회는 8월 8일 6명의 여당 이사(총 이사 11명)만이 마지막까지 남아 나에 대한 해임 제청안을 가결시켰다. 이들 여당 이사 6명은 이사회 전날 밤, 같은 호텔에 숙박을 하면서 나의 해임작전을 최종 점검하기도 했다.

올림픽 개막식에 참석한 이명박 대통령은 귀국 후 첫 월요일인 8월 11일 KBS 이사회에서 제청한 나의 사장직 해임에 바로 서명했다. 나의 KBS 시절은 이로써 막을 내렸다.


▲ 2008년 8월 8일 오전 정연주 사장 해임을 위한 이사회가 열리는 여의도 KBS본관에 사복경찰 수백명이 노조원들을 밀어내며 투입되고 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검찰과 감사원, '정연주 잡기'에 서로 경쟁

이에 앞서 5월 중순에 들어서자 검찰, 감사원, 국세청 등 권력기관들이 총동원되어 일제히 공세를 펴기 시작했다. ([한국언론 묵시록 ④] '사퇴압박...검찰은 어떻게 죄를 만드는가' 참조) 당시 검찰과 감사원은 같은 시기에 마치 경쟁하듯 앞다퉈 KBS의 관련 서류들을 뭉텅이로 가지고 가는 바람에 나의 변호인들조차 필요한 자료들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다. 검찰과 감사원은 서로 공을 세우려는 듯 사건을 휘몰아 가면서 앞서거니 뒤서거니 나를 소환 조사하려 했다. 검찰이 다섯 차례, 감사원이 일곱 차례, 내게 출두를 요구했던 것이다.

나는 모두 거부했다. 주변 조사도 마무리되지 않는 상황에서 나를 불러 조사하겠다는 것은 이미 짜놓은 틀 속에 나를 집어넣으려는 정치적 의도가 너무나 분명했기 때문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해임 제청에 서명한 날 밤, 나는 KBS 사장실에서 새벽녘까지 짐 정리를 한 뒤 KBS 직원들에게 남기는 마지막 글을 썼다. 지나온 5년 4개월의 세월이 말 그대로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5년여 전인 2003년 봄, 초록의 생명력이 차고 넘치던 여의도의 KBS에 발을 들여놓던 때가 떠오릅니다. 엊그제 같기도 하구요.

그날 저는 '독점에서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으로' '집중에서 분산으로' '폐쇄에서 개방으로'라는 세 가지 시대정신을 이야기했습니다. 저는 이 세 가지 시대정신을 KBS에서 실현하기 위해 ◇ KBS 사장의 제왕적 권력을 해체하고 ◇ 회사 지도부에 집중되어 있는 독점적 의사 결정 구조와 경직화된 관료주의 조직의 폐쇄성을 없애는 한편 ◇ 일선 직원들의 독창력과 창의력을 억압하는 과거의 틀을 깨고, 자율과 자유의 공간을 최대한 넓히기 위해 지난 5년여 동안 노력해 왔습니다.

저는 일정한 성과가 있었다고 보고 있습니다. KBS 조직구조를 수직적 위계질서에서 수평적 관계로, 자율과 자유가 제약받지 않은 조직문화로 바꾼 것만으로도 제 소임의 상당 부분은 성취되었다고 보고, 지난 5년여를 행복하고 보람된 제 삶의 중요한 한 부분으로 간직한 채 이제 떠나려 합니다...

떠나려 하니 많은 일들이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KBS 드라마가 모든 장르에서 싹쓸이 1등을 한, 불가능을 성취했던 2004년 가을 이야기, 이달의 기자상을 휩쓸어온 보도본부의 경이로운 변화와 성취, KBS WORLD 채널의 중국 진출을 위해 4년 동안 마셨던 술이며, 그 많은 토론과 중국 관리들과의 만남, 대팀제 도입과 지역국 기능조정을 위해 1년여 동안 치열하게 진행했던 토론과 힘들었던 사내 의사 취합 과정, 방송법 개정과 공공기관특별법 관련한 온갖 싸움들, 수신료 인상을 위한 노력과 이를 둘러싼 회사 안팎의 갈등과 비판... 이제는 그 모든 일들이 그냥 아련한 시절의 사진첩처럼 아름다운 추억으로 남아있습니다...

몸은 KBS를 떠나지만 마음은 오래도록 이곳에 머물 것입니다. 밖에 있으면서 그동안 방송 독립을 위해 지키고자 했던 원칙이 법정에서 확인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싸울 것이며, 글과 활동을 통해 언론의 자유, 방송의 독립, 우리나라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을 다할 것입니다...

KBS 떠나자 해방감, 그러나 이내 목을 옥죄어 오는...

이 글을 사내 게시판에 올리고, 정오 조금 못 되어서 사장실을 나와 KBS를 떠났다. KBS 본관 밖으로 나오니 아직도 경찰이 일부 남아 KBS 주변을 지키고 있었다.

본관 앞 계단을 내려와 주변을 둘러보았다. 여러 생각이 몰려왔다. 가장 먼저 든 생각은 나의 퇴진을 둘러싼 온갖 압박과 악다구니에서 이제는 해방되는구나 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런 안도감도 잠시뿐, 곧 다가올 검찰의 올가미가 목을 옥죄어 오는 느낌을 피할 수 없었다. 체포영장을 발부받아 강제구인하여 조사할 것이고, 구속영장을 청구할 가능성도 매우 높았다. 검찰은 그런 말을 수시로 흘려 왔던 것이다.

집에 도착하여 아내와 점심을 하고 쉬고 있는데, 검찰에서 연락이 왔다. 체포 영장이 발부되어 강제구인을 하러 오겠다는 것이다. 그들은 분명히 나의 해임만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현직 KBS 사장을 구속할 때 올지도 모를 정치적 부담도 피하고, 해임된 나를 체포한들 당시 뜨겁게 달아오르던 올림픽 열기에 그냥 묻힐 수도 있었던 터다. 나를 법률적으로 지원해온 변호인단에 연락했다. 검찰청에서 만나기로 했다.

나는 참으로 유능하고 든든한 변호인을 가지고 있었다. 법조계 원로이자 민변(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초대 회장을 역임한 조준희 변호사(2015년 작고)가 변호인 단장을 맡았고, 실제 재판은 민변 7, 8대 회장을 지낸 백승헌 변호사를 비롯하여 송호창, 김기중, 한명옥 변호사가 맡았다. 이분들의 도움으로 나는 검찰과 맞서 싸워 이길 수 있었다.


▲ 2008년 8월 14일 당시 정연주 전 KBS사장의 변호인 송호창 변호사는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기자실에서 브리핑을 열었다. ⓒ 오마이뉴스 권우성

30년 만에 다시 검찰에 잡혀 오다

오후 4시 조금 지나 아파트 문 벨이 울렸다. 검찰 수사관 두 명이 문 앞에 서 있었다. 이들과 함께 아파트 지하 차고로 내려가니 기자들이 잔뜩 기다리고 있었다.

카메라 플래시가 터지고, TV 카메라 기자들이 조명을 켠 채 내가 강제구인되는 장면을 촬영했다. 검찰 수사관이 타고 온 자동차를 타고 검찰청으로 이동했다. 저만치 검찰청 건물이 보였다. 만감이 교차했다. 30년 만에 나는 다시 검찰에 잡혀온 신세가 되었다.
<계속>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0년 2월 22일, 토 5:39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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