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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경제
 
The day Suncheon turned into hell 020520
순천이 지옥으로 변한 그날
여순사건 재심에서 72년만에 무죄... 진실위에 기록된 한맺힌 증언


(서울=오마이뉴스) 김성수 기자 = 지난 20일 여순사건 당시 무장봉기를 도왔다는 죄목으로 군사재판에서 처형된 장환봉씨에 대한 재심재판에서 사후 72년 만에 무죄가 선고됐다. 여순사건은 국군14연대가 제주4.3사건 당시 진압명령을 거부하고 무장봉기를 일으킨 사건이다. 여순사건으로 최소 수천 명 희생자가 발생한 것으로 추정되며 이 과정에서 많은 무고한 민간인이 학살되었다.

장환봉의 딸 장경자는 지난 2006년 아버지가 1948년 여순사건으로 무고하게 학살되었다며 필자가 한때 몸담았던 진실화해위원회(아래 진실위)에 이 사건에 대한 진실규명을 신청했다. 1948년 부친이 학살 당했을 당시 장경자씨는 3살의 어린아이였다.

지난 2008년 1월 24일은 울산보도연맹사건에 대해 노무현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사과한 역사적인 날이다. 이날 이른 아침 필자는 울산보도연맹사건 추모식에 참여하기 위해 버스에 몸을 실었다. 버스 안에는 진실위 직원 외에 여러 민간인학살 유족회 회원들이 있었다. 그날 버스 내 옆자리에 앉은 이가 바로 고 장환봉의 딸 장경자 선생이었다.

버스에서 장경자 선생에게 나는 지난 1980년대 철도기관사 생활을 했다고 이야기 했다. 그러자 그는 자신의 부친도 철도기관사였는데 1948년 여순사건 때 억울하게 학살 당했다고 눈물을 쏟았다. 그리고 그는 기막힌 자신의 인생역정을 줄줄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울산으로 가는 버스 안에서 우리들의 대화는 이렇게 시간이 지나는 줄도 모르게 끝없이 이어졌다.

우리들의 그 대화로부터 약 1년이 지난 2009년 3월 2일 여순사건은 진실위에서 진실규명 결정을 받았다. 그리고 이 진실위 결정을 바탕으로 장경자 선생은 국가를 상대로 재심을 신청했고, 결국 그의 부친이 억울하게 학살된 지 72년 만에 법정에서 무죄를 선고받은 것이다.

그럼 1948년 여수 순천에서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그들은 아버지를 사살 후 불태웠다


▲ 여순사건 당시 ⓒ 진실위 자료사진

장경자 선생 외 19명은 1948년 10월 22일부터 1950년 1월 2일까지 국군 3연대ㆍ12연대 외 진압군과 순천경찰이 자신의 부친 장환봉 외 민간인을 반군에 협력했다는 혐의로 연행해 매산여고 담벼락 길, 이수중학교 부근 공동묘지, 구랑실재 등지에서 구타해 학살한 후 시신을 소각했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진실위는 이 사건에 대해 3년간의 조사 끝에 아래와 같은 사실을 밝혀냈다.

1948년 11월 20일경 순천경찰은 순천철도국 기관사 장환봉을 체포해 철도국 창고에 감금했다. 그리고 1948년 11월 30일경 군경이 장환봉 외 감금되어 있던 30∼40명을 조곡동 죽도봉에서 사살 후 그들의 시신을 불에 태웠다.

장환봉 외에도 438명은 여순사건 직후인 1948년 10월 말부터 1950년 2월까지 순천시내 일대에서 국군 제2연대 그리고 순천경찰서 경찰에 의해 불법적으로 집단사살 되었다. 특별히 국군 제2연대 부대원들은 순천 진압작전부터 1949년 초까지 순천시내 민간인을 연행하여 북국민학교, 순천농림중학교에서 고문조사한 후 학교 건물 뒤편에서 집단 사살했다.

국군 제3연대 부대원들은 순천진압작전 이후 1949년 초까지 순천농림중학교와 순천 철도국에 주둔하면서 순천거주 민간인을 불법적으로 사살하거나, 연행해 고문조사한 후, 북국민학교, 순천역, 낙안면 등지에서 위법적으로 사살했다.

국군 제4연대는 순천진압작전과 1949년 토벌작전 과정에서 순천시 남국민학교와 풍덕동 옛 펄프공장 등지에 주둔하면서 순천시내에서 마을을 수색하고 소개했다. 이 과정에서 4연대는 민간인들을 주둔지로 연행해 고문조사한 뒤 사살했다.

국군 제12연대는 1948년 10월 하순, 1949년 1월 순천농림중학교, 풍덕동 옛 펄프공장, 구례읍 등에 주둔하면서, 순천시내 등지에서 마을을 수색하고 소개했다. 이 과정에서 제12연대는 주둔지와 북국민학교ㆍ황전지서 등지로 민간인을 연행해 조사한 후, 인근 순천농림중학교 등지에서 사살했다. 또한 이들은 마을을 수색하고 소개한 후, 마을 인근에서 민간인을 사살했다. 특히 12연대 지휘관들은 소심한 부하에게 즉결처분을 지시하거나, 난폭한 부하에게 대검으로 민간인의 목을 베라고 한 뒤 총에 걸고 다니게 하는 등 야만적 행위를 자행했다.

국군 제15연대는 순천 탈환 이후부터 1949년에 걸쳐 순천남초등학교, 풍덕동 옛 펄프공장 등지에 주둔하면서, 순천 전 지역을 대상으로 마을을 수색하고 주민을 소개했다. 그 과정에서 가옥을 소각한 뒤, 민간인들을 연행해 불법적으로 집단사살 했다. 특히 15연대는 친인척들에게 반군 협조 혐의가 있는 민간인들을 척살하도록 교사하거나, 민간인을 살상해 전과를 허위보고하는 등의 행위를 자행했다.

한편, 순천경찰서 경찰은 1948년 10월 말부터 1949년 말까지 사찰계를 중심으로 관내 반군토벌 및 반군협력자 색출작업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민간인들을 본서나 읍면별 지서로 연행해 고문조사한 뒤 불법적으로 사살했다.

모진 고문과 구타

당시 민간인들 중에는 반군에게 밥을 해주었다는 이유로 경찰에게 사살된 희생자들도 있었다. 희생자의 연행과정을 목격한 김태옥은 지난 2008년 진실위에서 당시 상황을 이렇게 진술했다.

"여순사건 당시 두월리 무도마을에 산사람들이 내려와 밥을 해달라 해 해코지할까 두려워 마을사람들이 밥을 해줬다. 1949년 2월 12일 쌍암지서 경찰들은 반군에게 밥을 해줬다는 이유로 마을주민 4명을 쌍암지서로 연행했다. 그리고 주민들에 대한 모진 고문과 구타가 이어졌다. 다음날 1949년 2월 13일 쌍암지서 경찰들은 끌려간 4명을 지서에서 살해했다. 그래서 희생자 유족들은 인부들이 말을 끄는 수레에 시신들을 실어 수습해왔다."

이 외에도 당시 승주읍 유흥리에선 딸을 겁탈하려던 경찰을 가로막던 어머니가 사살 당하는 사건이 있었다. 희생자 유족 조현규는 훗날 진실위에서 당시상황에 대해 이렇게 진술했다.

"1949년 8월 11일 마을의 남자들이 나무를 베러 산에 간 사이 쌍암지서 순경들이 마을에 들어와 주민을 소집했다. 경찰이 집집마다 돌며 남아 있는 사람이 있는지 확인했다. 유흥리 463번지 조아무개의 집에 순경이 들어와 어머니 장순심을 집 밖으로 나가라고 위협했다. 딸의 위험을 직감한 장순심이 순경을 가로막았다. 그러자 순경이 모녀에게 총을 쏘았다. 장순심은 현장에서 즉사했고, 딸 조아무개는 총알을 맞고 다리에 장애를 입었다".

당시 어머니를 순경의 총탄에 잃고 평생 장애인이 된 딸 조아무개 역시 훗날 진실위에서 그때를 회상하며 이렇게 진술했다.

"그때가 49년 음력으로 7월 여름 더울 때였어요. 제가 열여섯 살이었는데. 마을엔 노인들하고 여자들만 있었는데, 산판일(벌목)에 안 나간 남자들이 있는지 찾으러 왔다고 나중에 들었어요. 우리 집에는 어머니와 저만 있었는데 순경 한 명이 집에 들어왔어요. 마당에서 순경이 어머니만 나오라고 어머니를 밀어냈어요. 어머니가 저만 남겨두고는 못 나가겠다고 마당에서 버텼어요. 그러니까 그 순경이 어머니를 총으로 쐈어요. 그리고 제가 서 있었는데 저를 한 방 쐈어요. 저는 총을 맞고 쓰러졌어요. 오른쪽 허벅다리에 맞았는데 총알이 살을 뚫고 나갔어요. 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고 나서 한참 질뚝질뚝 걸었어요. 음력 7월에 어머니가 죽었는데 음력으로 4월생인 막냇동생이 있었어요. 100일도 안 된 아기였는데 어머니가 죽고 나서 젖을 못 먹어 그해 음력 11월에 죽었어요. 저를 쏜 그 사람 얼굴을 기억 못해요. 검은색 경찰 옷을 입었는데. 제가 서 있다가 총에 맞고 쓰러졌는데. 어떻게 됐는지 정신도 없고 기억도 안 나요."

판교리의 경우 참고인 강서봉은 이렇게 진술했다.

"서면 판교리 거주 순천 매산중학교 학생 최승수(당시 19세), 최승모(당시 17세)가 1949년 10월 18일경 글을 잘 쓴다는 이유로 반군에게 끌려가 산속에서 삐라 작성을 했다. 이후 서면지서 경찰들에게 체포된 최승수, 최승모는 구타와 고문 끝에, 서면 용담골 뒤 대장굴 부근에서 사살되었다."

당시 군대의 진압작전을 목격한 참고인 이아무개는 이렇게 진술했다.

"진압군이 순천에 들어와 길거리에 있는 민간인들을 무차별적으로 총살하는 경우가 많았다. 당시 시내 중심지에서는 특정한 집단학살 장소가 있어서 거기서만 학살된 것이 아니라, 시내 곳곳의 후미지고 으슥한 장소이면 거의 학살장소였다. 진압군이 들어온 지 2∼3일 후에도 진압군을 반군으로 오인해 환영하는 농민들이 많았는데, 이들을 모두 사살했다."

머리가 짧다는 이유로 사살되었다

당시 반군협조 혐의자 색출과정을 목격한 참고인 장아무개는 이렇게 진술했다.

"제8관구 경찰청 부청장이 모여 있는 사람들을 향해 '맘 같아선 너희들을 다 죽여 버리고 싶다'며 이를 갈았다. 복수심에 사로잡힌 군경은 객관적이고 공정한 심사를 할 수 없었다. 군용팬티를 입거나, 머리가 짧다는 이유로 반군협력자로 몰려 사살되었다."

아버지의 학살을 목격했던 희생자 유족 김관은 이렇게 진술했다.

"시계방을 운영하던 아버지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던 편이었는데 14연대가 도움을 요청했다. 요구를 거절하면 개죽음을 당하니 어쩔 수 없이 밥을 해주었다. 그런데 순천이 진압된 후 아버지는 순천경찰들에게 연행되어 순천 성동국민학교 옆 공터에서 사살됐다."

유족 최두용은 9남매 중 본인을 비롯해 4남매만 살고 5남매가 부모와 함께 죽었다. 큰형이 반군에게 끌려 산으로 간 뒤 가족이 죽음을 당했다. 유족 최두용은 이렇게 진술했다.

"여순사건이 난 후 큰형이 산에 끌려간 뒤 경찰들이 와서 집에 불을 질러서 이 집 저 집 전전했어요. 이후 경찰들이 와 부친을 물에 처넣고 밟고 때린 다음 끌고 갔어요. 며칠 후에 광주형무소로 끌려가, 6ㆍ25가 터지자 죽었어요. 모친은 부친 면회를 갔다 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경찰들에게 죽창으로 맞아 왼쪽 팔이 잘린 채 사살됐어요.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형은 이모네 집으로 밥을 얻어먹으러 가는 길에 지서 앞에서 경찰이 쏜 총에 맞아 죽었고, 다른 형제들도 경찰한테 죽었어요."

국군15연대 2대대 12중대 소속 참고인 김아무개는 이렇게 진술했다.

"반군협조자 사살 뒤에 손가락, 귀, 목을 잘라서 허위로 전과를 보고했다."

국군 4연대 1대대 4중대 소속 참고인 조아무개는 이렇게 진술했다.

"마산 15연대가 4연대와 함께 순천, 보성, 담양, 장성 등 진압 및 토벌작전지역에서 반군에게 식량 등을 제공한 마을을 포위한 뒤, 부녀자와 아이들까지 포함한 마을주민 전부를 모이게 해, 많은 주민들을 집단으로 사살한 일이 있었다."

시신을 거리에 전시했다

당시 상사지서 의용경찰 이아무개는 이렇게 진술했다.

"서북청년단들은 대검으로 척살을 많이 했다. 이북 출신들은 가족을 대살하는 등 가혹하게 처리했다. 억울한 죽음이 많았다. 사살 후 가족에게 통보해 밤에 가족들이 시신을 수습했다. 죄질이 악질인 경우 시신을 거리에 전시하기도 했다."

진실위는 여순사건의 조사결과 439명의 희생자 신원을 확인 할 수 있었다. 그리고 1948년 10월 말에서 1950년 2월까지 순천지역 여순사건에서 군경에 의한 민간인희생자 수는 약 2000여 명 정도로 추산했지만 정확한 피해규모는 파악할 수 없었다.

또한 진실위는 여순사건이 현지 토벌작전 지휘관의 명령 아래 발생했지만, 최종적 감독책임은 국방부, 그리고 대통령 이승만과 국가에 귀속된다고 판단했다. 또한 경찰 최상급기관인 당시 내무부 치안국이 여순사건과 관련해 직접 명령을 내렸거나 보고받았는지는 확인할 수 없지만, 지휘 및 관리책임을 면할 수는 없다고 판단했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0년 2월 10일, 월 5:56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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