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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재시간: (EST) 2020년 7월 14일, 화 9:08 pm
[종교/문화] 종교
 
"인공 지능 시대의 믿음"
로봇에 양보하는 지능, 인간은 그보다 더 귀한 가치 추구해야

(뉴욕=뉴스M) 김영봉 목사(와싱톤사귐의교회 담임)

1. 몇 주 전 뉴스에서 이세돌 9단의 은퇴 소식을 보았습니다. 몇 년 전에 그는 구글에서 개발한 인공 지능 컴퓨터 ‘알파고’와의 대국에서 한 번 이기고 네 번 패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이세돌 씨는 바둑계에서 더 이상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어릴 때부터 ‘이기는 바둑’을 위해 노력해 왔고, 이길 수 없는 상대를 이기는 보람으로 살아왔는데, 이제는 이길 수 없는 괴물을 만났기에 더 이상 할 일이 없다고 느꼈다는 것이지요.

그는 은퇴 대국의 상대로 한국에서 개발한 인공 지능 컴퓨터 ‘한돌’을 택했습니다. 첫 번 대국에서 이겼지만, 나머지 두 번 대국에서는 내리 지고 말았습니다. 이세돌 씨는 이제 바둑이 아닌 다른 분야에서 새로운 일을 시도해 보겠다는 말로 인사를 하고 바둑계를 떠났습니다.

저는 바둑을 모릅니다. 하지만 인공 지능에 대해서는 관심이 많습니다. 인공 지능은 우리의 삶에서 떼려야 뗄 수 없이 우리 삶에 깊이 침투해 있습니다. 항상 우리 손에 쥐어져 있는 스마트폰은 인공 지능 기술로 우리에게 다양한 편의를 제공해 줍니다.

인공 지능의 미래는 놀랍고 또한 두렵습니다. 20년 안에 무인 자동차가 보편화될 것이라고 하고, 각 가정에 인공 지능 로봇이 한둘쯤은 있게 될 것이라고 하지요. 유발 하라리는 2050년 즈음에 인간은 불멸의 존재가 되고 신과 같은 능력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전망합니다. 앞으로의 전쟁은 사람과 사람이 싸우는 전쟁이 아니라 인공 지능 로봇이 싸우는 전쟁이 될 것입니다. 지금 존재하는 직업 중 많은 직업이 사라질 것이라고 합니다. 작게 잡는 사람은 60%, 크게 잡는 사람은 80%의 직업이 인공 지능 로봇으로 인해 사람의 손을 떠나게 될 것이라고 합니다.

가장 두려운 것은 “인공 지능 로봇이 만일 인간을 지배하고 부리는 상황이 오면 어떻게 되겠는가?”라는 상상을 할 때입니다. 이것은 저의 소심한 걱정이 아닙니다. 인공 지능에 대해 연구하는 사람 중 이와 같은 위협에 대해 심각하게 경고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스테펜 호킹은 2004년에 인공 지능 기술의 완성은 곧 인류의 파멸을 의미한다고 경고한 적이 있습니다. 그렇기에 인공 지능 연구자들은 그런 가능성을 미연에 방지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문제는 자신이 개발한 기술이 오용될 가능성이 충분히 있음에도 지금 당장 자신의 목적에 도움이 되면 하고 보는 인간의 성향에 있습니다. 대부분의 과학자들은 “가능한 것은 다 해 본다”는 본성에 따라 움직입니다. “이것이 과연 옳은 일이냐?” 혹은 “이것이 과연 인류에게 유익한 일이냐?”를 묻는 것은 과학 발전에 장애가 된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로 인해 오늘 우리가 누리는 문명의 발전이 가능해진 것은 사실이지만, 이 ‘가치 중립적 과학 연구’가 결국 인류를 파국으로 몰고 갈지 모른다는 염려는 괜한 걱정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즈음에는 인공 지능 연구에 대한 윤리적 가이드라인을 만들자는 노력도 있고, 인공 지능 로봇을 위한 법을 만들려는 시도도 있습니다. 아울러, 인공 지능 로봇과 인간은 어떤 점에서 다른가 혹은 인간은 어떻게 인공 지능 로봇을 어떻게 선용하며 공생할 것인가에 대해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2. 저는 오늘 인공 지능 로봇과 인간 사이의 차이점에 대해 생각해 보려 합니다. 그동안 제가 공부한 바에 의하면, 인공 지능에는 없고 인간에게만 있는 특징은 적어도 세 가지 있습니다.

첫째, 인공 지능은 자신이 다 알고 있고 다 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서 작동합니다. 인공 지능 컴퓨터는 수많은 데이터를 통해 학습시켜서 만들어집니다. 어느 정도 학습을 하고 나면 인공 지능은 인간의 뇌가 따라갈 수 없는 놀라운 속도로, 정확하게 그 과제를 처리합니다. 게다가 에너지가 고갈되지 않는 한 피로감도 느끼지 못합니다.

이세돌 9단이 인공 지능 컴퓨터를 당해 낼 수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인간은 실수라는 것에 항상 열려 있습니다. 실수하지 않는 인간은 없습니다. 게다가, 인간은 어느 정도 이상의 노동을 하고 나면 피로감을 느낍니다. 머리가 뜨끈뜨끈해지거나 멍해집니다. 그럴 때 착오를 범하고 실수를 합니다. 하지만 인공 지능 컴퓨터는 그러는 법이 없습니다. 그러니 장기전에서 인간이 당해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인공 지능이 혼란에 빠질 때가 있습니다. 자신이 학습한 데이터에 없는 사물이나 상황을 만날 때입니다. 이런 상황을 만나면 인간은 멈추어 서서 새로 나타난 그 사물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봅니다. 끝내 알 수 없으면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고, 그것이 무엇인지를 연구하기 시작합니다. 반면, 인공 지능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못합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데이터를 가지고 어떻든 답을 만들어 내려 합니다. 그래서 엉뚱한 답을 도출하게 됩니다. 인공 지능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시나리오가 바로 이것입니다. 무제한적 파워를 가진 인공 지능 로봇이 오작동을 하게 되면 엄청난 재앙을 불러 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의 무지와 한계와 약점을 인정하는 것이 인공 지능이 인간처럼 될 수 없는, 사람됨의 특징이요 장점입니다. ‘사람과디지털연구소’의 구본권 소장은 <로봇 시대, 인간의 일>이라는 책에서 “인간의 약점은 인간을 인간답게 하는, 기계와 구별되는 최후의 요소다”라고 결론 짓습니다. 참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인간이 개발한 과학 문명의 절정에서 인간은 비로소 자신의 한계와 약점이 오히려 강점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게 된 것입니다. 종교인들은 오래 전부터 그렇게 말해 왔는데 듣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제는 첨단 과학자들이 이 오래된 종교적 진리를 증거하고 있습니다.

사람이라고 해서 모두 자신의 한계와 무지와 약점을 인정하는 것은 아닙니다. 탁월한 두뇌를 타고난 사람들 중에는 자신의 오류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자신이 생각하고 암기하고 계산한 것들이 다 맞았기 때문입니다. 가끔 틀릴 때가 있지만, 몰라서 틀리는 것이 아니라 실수해서 틀립니다. 그렇게 자란 사람들은 자신이 틀릴 가능성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과 같이 사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경험해 보신 분들은 아실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기 생각을 절대화시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 중심적입니다. 다른 사람들과 대화가 되지 않습니다. 모두가 자기 생각대로 따라야 합니다. 그런 사람들은 자신의 무지 혹은 한계를 인정하는 것을 죽는 것만큼이나 싫어합니다. 자신의 존재감이 자신의 능력에 걸려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무신론에 빠지기 쉽습니다. 하나님을 진실되게 믿고 신뢰하려면 자기 자신의 무지와 한계의 가능성을 인정해야 합니다. 인공 지능 로봇처럼 자신의 지식과 판단을 절대화하고 직진밖에 할 줄 모르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머물러 고개 숙일 수 없습니다. 그런 사람과 더불어 사는 것은 마치 오작동하는 인공 지능 로봇과 사는 것처럼 어려운 일입니다.

3. 둘째, 인공 지능에는 없는 인간의 특징은 상상하는 것입니다. 인공 지능은 정답을 제시하는 기계입니다. 반면 인간은 질문하는 존재입니다. 현실에는 없는 어떤 것에 대한 호기심이 질문하게 하고, 그 질문은 상상하게 합니다. 그리고 그 상상을 현실로 실현시킵니다.

알버트 아인슈타인은 “인간의 가장 중요한 특성은 호기심에 있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무엇인가에 관심을 가지고 그것이 왜 그럴까를 질문하고 그 답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인간의 가장 중요한 장점이라는 것입니다. 그 호기심은 상상력을 자극합니다. 아인슈타인은 지식(knowledge)보다 상상력(imagination)이 더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지식은 제한되어 있으나, 상상력은 한도 끝도 없기 때문입니다.

인공 지능은 주입된 데이터를 통해 학습된 내용 안에서만 작동합니다. 입력된 데이터 안에 있는 한, 인공 지능은 정확하고 신속하게 결과물을 만들어 냅니다. 하지만 입력된 데이터를 넘어서지는 못합니다. 지식과 정보만으로 움직입니다.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한 호기심이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질문하지 않습니다. 주어진 명령을 수행할 따름입니다.

영화 <터미네이터>를 아시지요? 이 영화를 많이들 보셨을 것입니다. 영화를 보지 못한 분들도 그것이 어떤 영화인지는 아실 것입니다. 로봇같이 생긴 주인공 배우가 인공 지능 로봇으로 등장하지요.

그 영화 첫 편이 1984년에 나왔습니다. 그때면 겨우 286 컴퓨터가 나와서 보급될 때의 일입니다. 이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2029년입니다. 35년 전, 그 영화가 나왔을 때는 우리 대다수는 ‘과연 이런 미래가 올까?’라고 의심했습니다. 하지만 그 시나리오를 쓴 작가의 상상력은 정확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9년 후에는 그런 상황이 올 수도 있습니다.

그 영화로 유명해진 대사가 있지요. 무표정한 얼굴에 기계음 같은 목소리로 하는 말, “I will be back”입니다. 이것이 영화 역사상 가장 유명한 유행어라고 하지요. 인공 지능에 대해 글을 읽고 영상을 보다 보니 요즘 이 말이 자꾸 저의 뇌리에서 들리는 듯합니다. 영화 속의 그 인물이 현실로 다시 나타날 것이라는 예상 때문입니다. 인간의 상상력은 이렇게 놀랍고, 상상한 그것을 실현하는 능력도 이렇게 뛰어납니다.

셋째, 인공 지능에는 없고 인간에게만 있는 또 다른 특징은 공감하는 능력입니다. ‘인공 지능’(artificial intelligence)이라는 말이 의미하듯, 우리는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지능을 과학 문명을 통해 만들어 냈습니다. 하지만 ‘인공 감정’(artificial emotion)이라는 말은 아직 나오지 않았습니다. 일본에서는 ‘반려 로봇’이 이미 판매되고 있다고 하니, 로봇이 어느 정도 인간의 감정을 흉내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인공적으로 만들어 낸 감정은 무익합니다.

만들어 낸 감정 혹은 인위적인 감정을 경험해 보셨지요? 누군가 나를 향해 웃고 있는데 억지로 만들어 낸 웃음이라는 것을 느낄 때 어떻던가요? 혹은 누군가가 나의 아픔에 대해 거짓 감정으로 대한다는 것을 느낄 때 어떻던가요? 인위적으로 짜낸 눈물이 어떤 느낌을 주던가요? 마음 놓고 울지 못하는 사람 혹은 환하게 웃지 못하는 사람은 얼마나 불행한지요! 또한 그런 거짓된 웃음 혹은 거짓된 눈물은 얼마나 거북한지요!

인간의 삶에 정말 중요한 것은 지능이 아니라 감정 혹은 정서입니다. 부모들은 대개 자녀들이 똑똑한 아이로 자라주기를 바랍니다. 지능을 키우고 지식을 높이기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합니다. 하지만 정말 중요한 것은 지능 지수(IQ, intelligent quotient)가 아니라 감성 지수(EQ, emotional quotient)라는 연구 결과가 오래 전에 발표되었습니다. 앞으로는 감성 지수가 더욱 중요해질 것입니다.

저는 목회 여정 중에 자녀를 세상에서 제일 똑똑한 아이들 중 하나로 키우는 일에 성공했는데 그로 인해 그 아이가 공감 능력이 없는 사람이 되어 고통받는 사례를 여럿 보아 왔습니다. 지능은 높은데 감정은 죽어 버린 것입니다. 자녀를 키우면서 머리보다는 마음을 더 살펴야 하고, 성적표보다는 얼굴의 표정을 살펴야 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것입니다.

알고 보면, 지능은 얼마든지 컴퓨터에 내어 주어도 괜찮습니다. 그것은 오히려 우리에게 편한 일입니다. 공부 잘한다, 똑똑하다, 좋은 대학을 나왔다는 말은 모두 암기 능력이 뛰어나다는 뜻입니다. 우리 사회는 지식과 정보를 얼마나 정확하게 암기하느냐를 따라 인간을 등수 매겨 온 것입니다. 인간의 능력은 다양한데, 그 많은 능력 중에서 암기 능력 하나만으로 사람을 등수 매겨 왔으니, 이 얼마나 부당한 일입니까? 그런데 인공 지능의 발전으로 인해 앞으로는 암기 능력이 별로 중요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다행한 일인지 모릅니다.

인공 지능 시대는 우리에게 높은 지능과 해박한 지식이 아니라 안정된 정서와 따뜻한 감성에 더 큰 가치를 두게 만들 것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싶고 누군가에게 사랑받고 싶은 마음은 인공 지능 시대에 더 깊어질 것입니다. 인공 지능은 얼마든지 우리의 지능을 대신할 수 있지만, 인공 감정은 절대로 우리의 감정을 만족시킬 수 없습니다. 미래 학자들은 수년 내에 인공 지능 로봇과의 결혼이 합법화되는 시대가 올 것이라고 예상합니다만, 그럴수록 더 진정성 있는 감성의 나눔이 필요해질 것입니다.

4. 지금까지 말씀드린 인공 지능에는 없는, 사람됨의 세 가지 특징, 1) 자신의 한계와 약점을 인정하는 것, 2) 현실에 없는 것을 상상하고 그것을 추구하는 것, 그리고 3) 다른 사람의 처지를 돌아보고 공감하는 것은 성경이 가르치는 인간됨의 본질과 일치합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첨단 과학 문명이 성경의 진리를 더 선명하게 밝혀 주게 된 것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이 세 가지의 사람됨의 특징이 회복되고 자라게 해 줍니다.

첫째, 기독교 신앙의 출발점은 우리가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피조물이라는 말은 한계적인 존재로 지어졌다는 뜻입니다. 창조주에게 의존하지 않고는 살아갈 수 없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그뿐 아니라, 믿음은 자신의 죄성을 겸허히 인정하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그렇게 자신의 한계와 죄성과 연약함을 인정할 때 인간은 비로소 인간이라 할 수 있고, 사람다울 수 있습니다.

이 연약함의 비밀을 가장 깊이 체험했던 사람이 바울 사도입니다. 그는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꼭 자랑을 해야 한다고 하면, 나는 내 약점들을 자랑하겠습니다.” (고후 11:30)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을 제대로 만나기 전까지 바울도 강해지기 위해, 높아지기 위해, 완전해지기 위해 전심을 다해 노력했던 사람입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이후로 그는 자기 자신에 대한 모든 신뢰를 내려놓았습니다. 그리고 자신의 한계와 무지와 연약함을 받아들였습니다. 그때 그는 자신 안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했습니다.

과거에는 “하나님, 제가 얼마나 잘하는지 지켜만 보십시오”라는 태도로 살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만나고 나서 그는 “하나님, 저는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 없이 저 혼자 하는 일에는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저를 통해 주님께서 일하십시오”라는 태도로 살았습니다. 그랬기에 그에게서 사람 냄새가 진하게 풍겨났습니다.

둘째, 믿음은 현실에 없는 것을 상상하는 것입니다. 공상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계시해 주신 말씀에 근거하여 상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는 믿음에 대해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확신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입니다.” (히 11:1)
믿음은 지금 없는 것을 바라는 것입니다. 아무것이나 바란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것들을 소망하고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바라다보면 그것이 결국 이루어집니다. 또한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을 믿는 것입니다. 허깨비를 믿는다는 뜻이 아닙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 그리고 하나님 나라가 있다고 믿는 것입니다. 그렇게 믿으면 보이지 않는 그것이 실제로 존재한다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나는 믿음으로 살아가지, 보는 것으로 살아가지 아니합니다”(고후 5:7)라고 말합니다. “믿음으로 산다”는 말은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하나님 나라를 상상하며 이 땅에서 그 나라를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보면, 상상력 없이는 믿음에 있어서 자라기 어렵습니다.

셋째,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과거 한때 교리를 배우고 이해하는 것이 믿음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믿음은 머리의 문제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 인식이 바뀌었습니다. 믿음은 십자가에서 드러난 하나님의 뜨거운 사랑을 체험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에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이렇게 권면합니다.

“여러분 안에 이 마음을 품으십시오. 그것은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입니다.” (빌 2:5)

예수님의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을 추상적인 말로 하자면 공감하는 것이고, 자신을 낮추어 이웃을 섬기는 것이며, 자신을 희생하여 사랑하는 것입니다. 나 혼자만 생각하고 살지 말라는 뜻입니다. 인공 지능 로봇처럼 자신에게 주어진 과업을 수행하는 것만을 목적 삼고 직진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자주 멈추어 주변을 돌아보고 다른 사람의 존재를 알아주고 그들의 형편을 살피고 돌보라는 뜻입니다.

5. 제가 인공 지능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 동기는 두려움 때문이었습니다. 두려워할 이유는 충분하고, 두려운 예상이 현실이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하지만 인공 지능의 발전은 역설적으로 인간이 어떤 존재인지 그리고 어떤 존재가 되어야 하는지를 더 선명히 깨닫게 해 주는 예기치 않은 선물을 안겨 주었습니다. 인공 지능 시대에 더욱 선명해진 사람됨의 특성들을 생각하다 보니 제가 믿는 믿음이 더욱 귀해졌습니다. 믿음 안에서 성숙한다는 것은 곧 사람됨의 특성이 더 분명해지고 뚜렷해지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니, 인공 지능 시대에 기독교 신앙을 비롯한 모든 종교는 사라질 것이라는 전망은 오판일 가능성이 크다 싶습니다. 물론, 기독교를 비롯한 세계 종교들에게 있어서 인공 지능의 발전은 매우 큰 도전을 안겨 줄 것입니다. 인공 지능 로봇이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가 될 경우, 그 존재의 인간성을 인정해 주어야 할 것인가 말 것인가는 심각한 문제입니다. 인공 지능 로봇과의 결혼 문제는 동성 결혼 문제와는 비교할 수 없는 심각한 논쟁을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유발 하라리가 ‘호메 데우스’라고 부른, 거의 전능한 ‘AI 인간’은 스스로 신이 되려 할 것입니다.

그러니 앞으로 기독교는 만만치 않은 도전을 감당해 내야 합니다. 하지만 죄성에 물든 인간이 만든 ‘AI 인간’과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REAL 인간’은 결코 같을 수가 없고 대치될 수가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인공 지능 로봇이 흔해지는 시대에 종교의 필요성은 더욱 증가할 것입니다.

바야흐로 우리는 1932년에 A. L. 헉슬리가 그린 ‘멋진 신세계’(Brave New World)와 유사한 새로운 세상에 진입 중에 있습니다. 원제목 Brave New World라는 말은 셰익스피어의 희곡 The Tempest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Brave라는 형용사를 붙인 이유는 그 새 세상에서 만나게 될 만만치 않은 도전을 암시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진입하고 있는 인공 지능의 새 세상이 딱 그렇습니다. 기대와 설렘보다는 염려와 두려움이 더 큽니다. 하지만 누구도 피할 수 없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미 그 새 세상의 언저리에 발을 딛고 있습니다. 퇴로도 막혀 있습니다. 과학 문명이 열어 주는 대로 나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우주의 운행과 인류의 역사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믿습니다. 우리의 종국적인 정착지는 과학 문명이 만들어 낸 ‘위험 천만한 신세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보여 주신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우리는 인간의 형상을 닮은 ‘AI 인간’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지어진 ‘새 사람’의 미래를 믿습니다. 그렇기에 두려움에 짓눌리지 않고 조심조심 ‘위험 천만한 새 세상’을 향해 나아갑니다.

그리고 그 새 세상에서는 우리가 믿는 믿음과 우리가 전하는 복음이 더욱 중요해질 것이라는 희망을 가집니다. 인공 지능의 미래에 대한 가장 좋은 준비는 우리가 서 있는 믿음의 길에서 더욱 신실하게 살아가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피조물로서 우리의 한계를 겸허히 인정하고, 믿음의 눈으로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상상하며, 십자가에서 깨어진 하나님의 심장으로 자주 멈추어 이웃을 돌아보고 살피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다면, 인공 지능이 완성되는 ‘두려운 새 세상’에서도 우리가 믿는 복음은 “별과 같이 빛날 것입니다”(빌 2:15). (본보 제휴 <뉴스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20년 1월 11일, 토 12:49 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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