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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에세이] 기고
 
Jang Illsoon critical biography 112719
엄혹했던 박정희 정권시절, 왜 그들은 장일순을 찾았을까
[무위당 장일순평전 35회] 장일순의 무엇이 그들을 원주로 오도록 만들었을까



▲ 1973년 11월 5일 시국선언을 준비 중인 재야인사들. 정중앙 태극기 아래에 있는 이가 한신대 설립자인 장공 김재준 목사. 함석헌, 김지하, 계훈제, 천관우, 지학순 주교, 법정스님의 모습도 보인다. ⓒ 동아일보

(서울=오마이뉴스) 김삼웅 기자(전 대한매일신보 주필) = 장일순은 어느 면에서도 발광체(發光體)가 아니었다.

정치적인 거물도 아니고, 언론계나 학계의 걸물도 아니고, 그렇다고 종교계나 문화영역의 지도자도 아니었다. 유별난 사건으로 유명인사가 된 것도 아니고, 특이한 작품으로 저명인사의 대열에 오른 것도 아니었다.

5ㆍ16쿠데타 후 3년여 동안 옥고를 치렀지만, 박정희 정권에서 투옥된 민주인사는 수없이 많았다. 별 몇 개씩을 달고 5년, 10년 징역살고 고문으로 반주검이 된 인사도 적지 않았다. 글이나 선언서로 필화를 입은 문사들, 언론인도 있었다. 이들에 비하면 그는 약과에 속한다.

그런데도 1970년대 원주 그의 집에는 당대의 올곧은 인사들과 유신체제에 저항하는 청년들이 모여들었다. 청년들 중에는 나중에 권력의 곤룡포 속으로 끼어들거나 초심을 잃고 변절한 자들도 없지 않았으나, 다수는 군사독재의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이 땅의 민주화에 기여하였고, 장일순은 의식분자들의 정신적 구심체 역할을 하였다.

김금수, 김도현, 김동완, 김민기, 김병태, 김상현, 김성동, 김영주, 김영준, 김정남, 김중태, 김종철, 김지하, 김찬국, 김현장, 남재희, 리영희, 명노근, 박재일, 박우섭, 박의근, 박현채, 방용석, 백기완, 백낙청, 서경원, 서석재, 손세일, 손학규, 송건호, 송기숙, 송철원, 신대진, 신동수, 신현봉, 원경, 원혜영, 유인태, 유홍준, 이길재, 이돈명, 이문영, 이부영, 이우재, 이우정, 이철, 이철수, 이총각, 이해찬, 이현주, 이희천, 임광규, 임재경, 임진택, 임채정, 장경옥, 장기표, 장영달, 전옥숙, 정성순, 정성헌, 정인숙, 정호경, 제정구, 최기식, 최병욱, 최열, 함세웅, 황석영…. (주석 1)

이상은 장일순의 장례식에 참석한 명단이지만, 생전에 원주를 찾아 그의 얘기를 듣고 대화를 나누었던 인사들이다.

박정희의 긴급조치가 1호부터 9호까지 이어지던 엄혹했던 시절에 왜 그들은 장일순을 찾았을까.

질문이 바뀌어야 할 것 같다.

장일순의 무엇이 그들을 원주로 오도록 만들었을까. 명사도, 도사도, 당수(총재)도, 재벌도, 언론사 사주도 아닌 장일순에게 특별한 무엇이 있었을까. 한국현대사의 대표적인 지식인으로 박정희ㆍ전두환 정권과 치열하게 싸웠던 '사상의 은사' 리영희가 지켜본 장일순의 모습이다.

분야는 다르지만 장일순(張壹淳) 선생입니다. 나이는 1년 반 정도 위인데 인격, 사상, 품위, 경륜 모든 것으로 해서 내가 10년 위로 모시고 싶은 분이었어요. 마음으로는 웃어른으로 모셨어. 민주회복국민회의를 이끌었던 이병린 선생도 내가 스승으로 존경하는 어른이지요. 학문적으로는 직접 관계가 없지만 인격적으로는 그렇습니다. 사적으로나 공인으로서나 충실하게 살아오신 분으로 박형규 목사, 이돈명 변호사도 존경해요. (주석 2)

"마음으로는 항상 웃어른"으로 모셨다는 장일순에 대해 리영희는 "노장 사상과 사회적인 식견까지 갖춘 분으로 얘기합니다. 가톨릭, 노장사상, 사회의식이 조화된 분이라고 알고들 있지요."라는 문학평론가 임헌영씨의 질문에 다음과 같이 답한다.

그뿐만 아니라 불교도 깊었어요. 오히려 그분의 생활양식은 노자적이면서 불교적이고, 오히려 비기독교적이라고 볼 수 있어요. 그분의 생활양식은 가톨릭의 규율이나 범주에는 전혀 매이지 않았어. 어느 이념이나 종파에도 매이지 않기 때문에 모든 것을 포용할 수 있었다고 봅니다. 지학순 주교가 반독재, 반기독교 개혁에 큰 역할을 했는데, 장 선생이 그 뒤에서 영향을 줬다고 얘기하잖아요? 그런데 본인은 정작 "난 아무것도 한 일이 없어"라고 말씀하셨어. 이렇게 이야기하니 장 선생이 정말 보고 싶어지는군.
(주석 3)

젊은 시절부터 맑시즘에 관심을 가졌던 리영희는 장일순과 만나면서 새삼 '인간내면'의 중요성을 깨닫게 되었다고 밝힌 바 있다.

나는 그때 맑시즘에 상당히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어요. 때문에 대부분의 인간의 운명,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 계급, 집단을 사회적 관계나 물질적 토대와 관련시켜서 생각하곤 했어요. 그러던 것이 무위당 선생과의 여러 토론이나 그분의 삶에서 받은 영향을 통해서 사회적 관계나 지적 토대가 인간을 지배하는 것이라기보다 인간 자신의 내면적인 것이 분명하게 더 중요한 요인이라는 것을 차츰 깨닫게 되었던 것 같아요. (주석 4)

그 당시에 많은 지식인들이 반(反)군부독재 민주화운동의 행동양식으로 생각했던 맑시즘이나 사회결정론 또는 모든 것을 사회과학적 관점과 맥락에서 찾으려고 하는 사고방식, 그리고 서양학문의 합리주의적 사고의 틀과 환경속에서 나 또한 공부하고 가르치고 사회활동도 하곤 했는데 종종 벽에 부닥친단 말이에요.

그럴 때 원주에 내려가면 그런 벽이라든가 인위적인 방법의 한계 등이 동양적 사상의 지혜로써 극복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말이죠. 그런 다방면적인 여러 각도에서의 깨우침 같은 것을 무위당 선생과의 폭넓은 대화 속에서 얻을 수 있었습니다. (주석 5)


주석
1> 이용표, 앞의 책, 18~19쪽.
2> 리영희,『대화』, 466쪽.
3> 앞의 책, 468쪽,
4> 리영희 - 전표열 대담, 『녹색평론』, 2002년, 1,2월호, 65쪽.
5> 앞의 책, 67쪽.(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19년 11월 30일, 토 5:50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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