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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 문화
 
The reason why they sold Samter cheaply despite the financial difficulties 112719
경영난에도... '샘터'를 담배보다 싸게 판 이유
무명의 독자부터 법정 스님까지, 국내 최장수 잡지를 만든 사람들


(서울=오마이뉴스) 박균호 기자 = 1965년 우리나라의 한 국회의원이 국제기능올림픽 대회 준비를 맡았다. 그는 기술자들이 선의의 경쟁을 펼치는 대회가 필요하다는 뜻을 품어왔었고, 그 희망을 이룬 셈이었다. 대회 준비를 하면서 그는 많은 기술자로부터 '집안이 가난해서 학교에 다니지 못했다'는 한탄을 많이 들었다.

그 정치인은 배우지 못한 처지를 두고 자기 연민에 빠진 기술자들이 자신감과 자기애를 가질 수 있도록 수필 중심의 잡지를 창간하기로 작정했다. 이런 사연으로 '블루칼라'를 위한 교양 잡지가 탄생했는데 그게 바로 <샘터>다. 창간인은 국회의장까지 지낸 김재순이다.

국회의원이 만든 잡지였지만 정치색은 없었다. 독자들이 보낸 엽서 사연을 잡지에 게재했고 가격을 절대로 담배 한 갑보다 비싸지 않도록 책정했다. 1970년 창간 당시 100원으로 시작했으며 2019년 현재에도 담배 한 갑보다 싼 3500원에 판매한다.

초창기 <샘터>가 폭발적인 인기를 누린 것은 이해인 수녀, 법정 스님, 최인호, 피천득, 장영희와 같은 당대 최고의 작가뿐만 아니라 평범한 독자들의 담백한 이야기도 잡지에 실어주었기 때문이었다. 엽서로 사연을 보내면 잡지에 실어주는 아날로그 감성의 결정체이기도 했다.

김재순 국회의원은 잡지를 창간하면서 이름만 빌려준 것이 아니고 직접 초대 편집장(염무웅 선생)을 초빙했고 잡지에 글을 줄 필진을 직접 섭외하기도 했다.

소설가 최인호의 악필 알아맞히기 대회


▲ "공공그라운드"로 바뀐 옛 샘터사 사옥 ⓒ 백창민

<샘터>를 이끈 필진으로 소설가 최인호를 빼놓을 수 없다. 최인호 선생은 1963년 서울고 2학년일 때 '벽구멍으로'라는 단편소설로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입선하는 천재성을 선보였다.

역대 최연소의 나이로 신춘문예에 입선한 것보다 더 놀라운 그의 성과는 따로 있다. 1975년 9월부터 <샘터>에 소설 '가족'을 연재하기 시작해서 2010년 2월호까지 무려 34년 6개월간 총 402회의 글을 실은 사실이다. 그가 연재를 멈춘 것은 침샘암 투병 때문이었다. 최인호 선생이 <샘터>에 보낸 마지막 원고인 402회의 제목은 '참말로 다시 일어나고 싶다'였다. 안타깝게도 2013년 9월 25일에 별세했다.

소설가 최인호는 천재성과 성실함으로 유명했지만 악필로도 악명 높았다. 악필이라는 단점을 보완해줄 컴퓨터라는 훌륭한 문명의 이기가 있었지만, 그는 한 자 한 자 쓰는 정성은 펜으로만 가능하다는 지론으로 자신의 우군을 내쳤다.

한 자 한 자 정성을 쏟기 위해서 펜을 사용한 최인호 선생은 그 뛰어난 천재성 때문에 영감이 너무 빠른 속도로 몰려오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빠르게 글을 써야 했다. 덕분에 아무런 죄가 없는 출판사 직원이나 기자들이 그의 악필과 치열한 전투를 해야 하는 전쟁에 내몰렸다.

글씨체가 원래부터 좋지 않았기보다는 휘몰아치는 영감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빠른 속도로 글을 쓰다 보니 남들이 알아보기 힘든 악필이 되었다는 것이 좀 더 정확하겠다. 그러니까 머릿속으로 소설을 구상한 다음 정리가 되면 펜으로 단숨에 죽 써 내리는 스타일이다. 머릿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글을 손이 미처 따라가지 못하는 상황이다. 컴퓨터로 쓴 글은 마치 기계로 뽑아낸 칼국수 같다고 해서 펜을 고집했지만, 누구보다 컴퓨터가 필요한 작가가 아니었나 싶다.

악필과 관련한 그의 일화는 많다. 대표적인 일은 수십 년 동안 그의 글을 실은 샘터사가 주도한 것이었다. 연작소설 '가족'을 25년에 걸쳐서 연재 300회를 달성한 기념으로 악필 알아맞히기 대회를 개최한 것.

본인의 육필 원고를 두고 독자들의 대회가 열렸다는 것은 자랑스러운 일일 수도 있겠지만, 대회의 종목이 작가가 쓴 원고를 읽고 그 내용을 알아맞히기였으니. 이 대회를 기획한 직원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으나 평소 최인호 선생의 원고와 고군분투한 끝에 최인호 글씨에 통달한 사람이 심사위원인 것은 확실하겠다. 나만 당할 수 없다는 식이 아니었는지 궁금하다.

악필과 관련된 사건은 또 있다. 원고지 1200장 분량의 장편 소설 '낯익은 타인들의 도시'를 탈고한 뒤 출판사 직원을 자택으로 오게 해서 악필로 점철된 육필 원고를 컴퓨터에 일일이 입력하도록 한 일도 빼놓을 수 없다. 난공불락으로 보이는 악필을 해독해가면서 일일이 컴퓨터로 원고를 옮기던 직원은 수시로 최인호 선생의 감독과 검사를 받아야 했다. 아마도 그 출판사 편집자 인생에서 최대의 위기였던 그 대공사는 일주일 동안 계속 되었다.

최인호 선생이 신문 연재라도 하게 되면 그의 글씨체를 판독할 수 있는 전문가는 따로 양성되어야 했다. 일단 그의 글씨체를 해독할 수 있는 경지에 오른 기자는 타부서로 절대로 이동이 허락되지 않았을 뿐더러 출장도 가지 못했다고 한다. 그렇다고 그를 전담 마크한 기자들은 최인호 선생을 원망할 수 없었다. 예의 바른 최인호 선생이 연재를 시작하기 전에 미리 신문사를 찾아 '앞으로 끼치게 될 폐'에 대해서 양해를 구하는 인사를 했기 때문이다.

최인호 선생이 샘터사와 작업(?)을 하는 방식은 이랬다. 원고 마감일에 샘터사로 출근한 최인호 선생은 골방에서 파이프 담배를 피워가면서 글을 썼다. 두 시간 정도면 집필이 끝나는데 원고지와 녹음기를 대동하고 골방에서 나온다고 한다. 자신의 악필을 알아보지 못하는 출판사 직원을 불쌍히 여긴 선생은 우선 원고를 다 쓴 다음 소리를 내어 자신의 원고 내용을 녹음했다.

녹음기를 넘겨받은 샘터사 직원은 녹음된 육성 원고를 다시 받아 적는 식으로 작업을 해야 했다. 다행스럽게도 본인이 쓴 '아랍어처럼 라면땅 굴러가는' 글씨를 알아볼 수는 있었다. 나도 악필이어서 잘 알지만 모든 악필가는 자신이 쓴 악필은 알아보는 재주를 모두 갖추고 있다.

사실 타고난 천재 악필가인 내가 보기에 최인호 선생의 글씨는 악필이 아니다. 개인적인 생각이긴 한데 전체 글씨에서 나름의 일관성이 있다면 그것은 악필이 아니라 고유한 필체라고 봐야 한다. 최인호 선생의 글씨는 괴발개발이 아니고 물 흐르듯 유연한 글씨체라고 생각한다. 가을 날 요리조리 우아하게 날아다니는 잠자리를 닮았다고 해서 그의 필체를 잠자리체라고 부르는 이도 많았다.

샘터가 올해 가장 잘한 일


▲ 샘터 표지 ⓒ 샘터

법정 스님 또한 <샘터>를 떠올리게 하는 대표 필자다. 법정 스님도 샘터사 입장에서는 보물과도 같은 저자였으므로, 스님께서 만년필로 휘갈겨 쓴 원고를 간부들이 쏜살같이 달려가 받아왔다고 한다.

스님의 육필 원고를 컴퓨터로 입력을 할 때 담당 직원은 오타는 곧 죽음이라는 각오로 임해야 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만약 오탈자가 하나라도 스님 눈에 발각이 되면 여지없이 "더는 <샘터>에 글 못 쓰겠네"라는 호환마마보다 더 무서운 통보가 날아왔으니까 말이다.

그런 사태가 발생하면 편집부의 우두머리가 스님의 처소에 달려가 석고대죄를 해야 겨우 용서를 받을 수 있었다. 저 유명한 정채봉 동화 작가도 오탈자 때문에 법정 스님에게 혼이 난 샘터사 간부 중 한 사람이었다.

샘터사는 법정 스님이 1970년대 이후로 <샘터>에 기고한 글을 묶어서 단행본을 출간했는데, 이로 인해 매년 2월 말에서 3월 초만 되면 법정 스님으로부터 원고료 독촉을 받았다.

2019년인 지금도 필자가 출판사에 인세를 비롯한 '돈'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가정이 있고 생활인인 나 같은 작가도 출판사에 돈 이야기를 꺼내는 것이 조심스러운 일이다. 하물며 작가 하면 선비와 같은 고고함을 유지해야 할 것 같던 50년 전에, 일반인도 아닌 스님이 출판사에 돈을 재촉하는 것은 아무래도 '점잖지' 않은 일로 여겨졌을 테다.

더구나 평소 무소유 정신을 강조하고 실천하는 법정 스님 아닌가. 인세 독촉을 받은 샘터사 직원은 스님이 무슨 돈타령이냐고 투덜거렸을 터였다. 이상한 일이라고 의아스럽게 생각하기도 했을 것이다. 나중에서야 법정 스님의 인세 독촉의 비밀이 풀렸다. 스님은 매년 새 학기 초 등록금을 내야 하는 시기에 샘터사에서 인세를 받아 대학생 10명에게 장학금을 주었다고 한다.

2019년 10월 중순, <샘터>를 오랫동안 잊고 있던 옛 독자들은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된다. 통권 598호인 2019년 12월호를 마지막으로 무기한 휴간에 들어간다는 비보였다. 한때 이웃처럼 정겹고 가까웠던 잡지가 600호를 겨우 2호 앞두고 발행을 중단한다니. 말이 휴간이지 사실상 폐간이라는 언론의 친절한 부연 설명도 함께 따랐다.

한 달이 채 지나지 않아, 각계각층의 성원에 힘입어 휴간 없이 <샘터>를 계속 펴낸다는 공지가 샘터사 홈페이지에 게시됐다. 어쩌면 마지막 호가 될 수도 있었던 2019년 12월호의 특집 기사 주제는 "올해 가장 잘한 일, 못한 일!"이다. 샘터가 올해 가장 잘한 일은 휴간을 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한 일이다.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19년 11월 30일, 토 5:37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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