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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기고/에세이] 기고
 
Jang Ilsoon critical biography 111319
생명사상의 원류 동학에 주목한 장일순
[무위당 장일순평전 34회] 동학의 종교ㆍ사상ㆍ철학의 기조는 생명사상이었다



▲ 동학 2대 교주 최시형 피체지 길목에 세워진 추모비와 장일순 선생의 글. 장일순 선생의 모심 사상(밑으로 기어라) 은 동학의 한울님에 뿌리를 두고 있다. 동학 2대 교주 최시형 피체지 길목에 세워진 추모비와 장일순 선생의 글. 장일순 선생의 모심 사상(밑으로 기어라) 은 동학의 한울님에 뿌리를 두고 있다. ⓒ 최장문

(서울=오마이뉴스) 김삼웅 기자(전 대한매일신보 주필) = 장일순은 어느 때는 실천적인 행동인인가 하면 어떤 때는 고뇌하는 사색인이었다.

실천성은 민주화운동과 신협운동 등으로 이어지고, 사색의 결정은 생명운동으로 발현되었다. 그렇다고 생명운동을 자신이 신앙하는 종교의 울타리에 가두거나 관념의 울안에 포획하는 것이 아니었다. 생명운동을 실생활에 연계시키고 시대적 가치로 사람들과 공유하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대체로 유명세를 타는 지식인들이나 정치인들은 허장성세로 한몫을 하려든다. 허접한 논리나 공허한 구변으로 떠들고 주목을 받으려 한다. 장일순은 이런 부류를 좋아하지 않았다. 지식인이 지식인다우려면 실사구시(實事求是)의 자세가 기본이라는 인식이었다.

뜬구름 같은 주장이 아니라 이웃들에게 보탬이 되는 실용성을 중시하고, 자신은 그런 자세로 살았다. 포도농사를 할 때에는 일체의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았고, 신협운동을 할 때에는 허튼 약속을 하지 않았다.

지금 세계가 땅이 죽어가고 있어요. 근데 여러분들이 이 일에 함께 한다는 것은 자기를 살림과 동시에, 자기 사는 게 뭐냐, 땅을 살려야지. 땅을 살리게 되면 유익한 모든 미물이, 여러분들 들으셨겠지요, 개구리들 메뚜기들 거미들 모든 유충들이 거기서 우글거리고 살게 돼. 그러면서 벼를 더 건실하게 자라게 하고 땅을 비옥하게 해줘. 그래서 서로 환원이 돼. 자연으로 돌아가는 거야. (주석 1)

한말 조선왕조는 무능한 군주와 탐욕적인 지배세력에 의해 국운이 크게 기울게 되었다. 양반들은 기득권을 유지하고자 나라 밖 사정에 눈을 감고, 피지배 백성 중에는 부당한 압제에 저항하기보다 양반족보를 사서라도 기득권층에 편입되려고 재산을 모을 때, 최제우와 최시형 등이 후천개벽에 나섰다. 두 사람은 반역죄로 몰려 처형되고 말았지만 그들이 뿌린 생명존중사상은 단절되지 않고 그 생명력이 이어졌다.

박정희 시대에도 다르지 않았다. 수많은 지식인과 언론인들이 권력에 빌붙어 독재를 미화하고 국민을 억압하는 도구 역할을 하였다. 장일순은 여러 부문에서 이들과는 다른 모습을 보였다.

독재의 시대에 반독재, 반생명의 시대에 생명의 가치를 내걸고 주변의 작은 일부터 실천해나갔다. 반부패투쟁, 협동조합운동, 생명운동이 그것이다.

장일순은 사회정의가 증발되고 이성이 마비된 유신시대에 사색인으로 행동하고, 행동하면서 사색하는 지성인의 정도를 걸었다. 발걸음은 빠르지 않았으나 멈추지 않았고, 사유의 폭은 넓었으나 편벽하지 않았고, 교우의 범위는 많았으나 차별을 두지 않았다.

19세기 말 서양 제국주의 열강의 정복과 지배의 마수는 아시아ㆍ아프리카 국가들을 주요 먹잇감으로 삼았다.

이들은 양육강식과 적자생존이라는 설익은 자연법칙을 침략과 약탈의 사회이론으로 환치하면서 포유류의 포식성을 거침없이 내보였다. 뒤늦게 '탈아입구(脫亞入歐)'에 성공한 일본도 이 대열에 합류했다.

그 시기 극동의 변방에서 "사람이 곧 하늘이다"라는 가느다란 목소리가 들렸다. 목소리는 제국주의 국가와 이에 뇌동한 내부 지배세력에 의해 곧 묻혀지고 말았지만, 완전히 생명력이 끊어진 것은 아니었다.

모든 가치 있는 씨앗은 땅에 떨어지면 반드시 생명을 틔우기 마련이다. 수운 최제우는 보국안민과 광제창생이라는 씨앗을 척박한 조선의 대지에 뿌렸고, 그 본질은 생명사상이었다.

선지자의 사상은 시공을 초월하고 능히 100년 1000년 앞을 내다보는 식견이 담긴다. 해월 최시형의 3경설(三敬說)은 일찍이 세계 어느 사상가나 철학자도 내세운 바 없는 고유하고 독특한 이데올로기에 속한다.

하늘을 섬기고(敬天), 사람을 섬기고(敬人), 천지만물을 섬기(敬物)라는 삼경설은 경천만 있고 경인이 없으면 이는 농사의 이치는 알되 실지로 종자를 땅에 뿌리지 않는 행위와 같다고 하였다.

사람이 사람을 공경함으로써 도덕의 극치에 이르지 못하고, 나아가 자연을 공경함에까지 이르러야 덕에 합일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것은 서구 중세의 신(神) 중심사상 체계와 근대의 이성(理性) 중심사상 체계를 뛰어넘어 인간과 한울님(신)과 자연만물을 일체화하는 통합적인 철학사상인 것이다.

동학의 양천주설(養天主說)도 다르지 않다. 내 안에 모신 한울님을 부모와 같이 받들고 봉양하며, 사람만이 아니라 천지만물을 똑같이 공경하라는 것이다. 즉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한울님을 잘 살려나가는 양천주 마음, 한울님을 인간과 동일시하고 나아가서 만물과 동일시하는 사상이 그것이다.

최시형은 이와 같은 신앙ㆍ종교ㆍ철학을 '사인여천(事人如天)'이란 넉 자로 집대성하였다.

"사람은 하늘이라 평등이요 차별이 없나니 사람이 인위로서 귀천을 분별함은 곧 천의에 어기는 것이니 제군은 일체 귀천의 차별을 철폐하여 선사의 뜻을 이어 가기를 맹세하라."는 의미가 담겼다.

동학의 종교ㆍ사상ㆍ철학의 기조는 생명사상이었다.
사람과 천지만물의 생명을 절대가치에 두었다. 장일순 등 눈썰미가 밝은 사람들은 오래 전부터 동학의 생명사상에 주목하였다.

인류는 지금 물질문명의 발달과 무한대의 욕망 추구로 인해 생태계가 파괴되고 지구촌이 이상기온으로 시달리고 있다. 장일순은 동학의 경천ㆍ경인ㆍ경물의 정신을 현재화하는 것이 지구촌을 살리는 길이라 믿고, 이를 자신의 철학으로 정립하고 설파하고 실행하였다.

동학의 2대 교주인 해월 선생은 밥 한사발을 알면 세상만사를 다 아느니라. 그런 말씀을 하셨어요. 의암 손병희 선생도 밥 한사발은 백부소생(百夫所生)이라. 즉 많은 농민들이 땀흘려서 만든 거다, 그러셨어요. 그런데 사실은 사람만이 땀흘려서 만든 것이 아니라 하늘과 땅과 일체가 앙상블이 되어서, 하나로 같이 움직여서 그 밥 한사발이 되는 거 아니에요? 그러니까 그 밥 한사발은 우주적인 만남으로 되는 거지요.

한걸음 더 들어가보면, 해월 선생 말씀에 이천식천(以天食天)이라는 말씀이 있어요. 하늘이 하늘을 먹는다는 말이에요. 동학에서 일컫되 인내천(人乃天)이라, 그리고 사람만이 하늘이 아니라 곡식 하나도 한울님이다 이 말이야. 돌 하나도, 벌레 하나도 한울님이다 이 말이에요. (장일순, 「세상 일체가 하나의 관계」)

동서양의 철학자ㆍ사상가 중에 하늘ㆍ사람ㆍ자연을 일체화시키고 이것을 공동운명체로 인식한 사람은 찾기 어렵다. 장자의 '무위자연'이나 루소의 '자연회귀'는 인간과 자연만을 화두로 삼았을 뿐 하늘(한울)은 배제되었다. 동학의 한울은 천리(天理)와 천기(天氣)를 포함한 것이다.

자본주의가 세계화된 지난 세기에 지구의 온도는 평균 1℃ 이상 상승하였다. 그런데 한반도는 '열 받을 일'이 그리 많았던지 1.5℃가 상승하여 불안감을 떨치기 어렵게 한다. 지난 여름의 이상고온이나 '온난화의 역설'인지 올 겨울의 한파는 생태계 파괴로 인한 지구온난화가 불러온 불길한 예측신호들이다.

공산주의 국가들도 별로 다르지 않았지만, 자본주의는 무한욕망과 무한경쟁을 본질로 한다. 그래서 자연을 파괴하고 각종 화학물질을 대량 생산하면서 하늘ㆍ땅ㆍ바다(하천)을 오염시키고 사람이 살기 어렵게 만들었다. 자본주의가 체제경쟁에서는 공산주의에 승리했지만, 그 댓가는 지구의 황폐화라는 무서운 업보를 지니게 되었다.

인간이 인간을 학대하고 착취하는 것이 자연법사상에 배치되듯이, 인간이 삶의 모태인 자연을 파괴하고 자연의 뭇생명을 손상하는 것은 천리에 역행하는 일이다. 인류는 지금도 여전히 경제발전과 성장이라는 구실로 산과 바다와 늪지를 파괴한다. 이명박의 4대강 파괴는 자연훼손의 일급 범죄에 속한다.

자연의 산물인 인간은 자연을 활용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최소화해야 한다. 무한대의 욕망과 편리주의가 산업화라는 이름으로 무차별적으로 자연을 파괴하다가 지금 자연으로부터 엄청난 보복을 당하고 있다. 인류사적인 재앙이다.

장일순은 늘 역설했다. 많이 늦기는 했으나 우리는 이제 새로운 길을 찾아야 한다고, 길은 멀리 있지 않다고, 동학의 시천주(侍天主:하늘님을 모신다)와 사인여천(事人如天:사람을 하늘처럼 섬긴다)의 사상과 경천ㆍ경인ㆍ경물의 정신을 찾는다면 인간과 하늘, 사람과 자연이 동귀일체(同歸一體)의 사회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라고, 인류ㆍ지구촌의 구원의 길이기도 하다라고.

<주석>
1> 앞의 책, 45쪽.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19년 11월 15일, 금 6:14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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