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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문화] 종교
 
American evangelicalism persecuting Christians 103019
기독교인을 박해하는 미국 복음주의
<리포트 포 아메리카> 창업자, "백인 복음주의권 순혈주의의 폭력성" 적시


(뉴욕=뉴스M) 신기성 기자 = 복음주의 기독교계의 지지를 받는 트럼프 행정부의 반이민정책이 미국 기독교를 박해하는 아이러니를 보여준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리포트 포 아메리카(Report for America)>의 공동 창업자인 스티븐 월드만은 TPM(Talking Point Memo)에 기고한 글에서 남미 이민자의 상당수가 기독교인인데, 미국 보수 기독교계가 이들의 미국 정착을 막고 추방하는 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월드만은 미국 기독교의 성장을 위해서 서류 미비 이민자를 받아들이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은 없다고 말했다. 그에 따르면, 남미에서 넘어오는 서류 미비 이민자의 83%가 기독교인이다. 만약 미국 정부가 그들을 모두 추방한다면, 약 900만 명의 기독교인이 미국을 떠나게 되는 셈이다.

최근 몇 십 년간 남미 이민자들은 미국 가톨릭교회의 성장과 부흥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전체 가톨릭 교인의 40% 정도가 히스패닉계이다. 교회가 자신의 인생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믿는 히스패닉 교인 비율이 백인보다 월등히 많다. 복음주의 개신교계도 마찬가지다. 약 1600만 명의 복음주의 기독교인이 히스패닉계이며, 모든 이민자의 15% 정도가 복음주의 기독교인이다.

이민자들은 미국 태생의 시민보다 종교와 종교 단체로부터 더 많은 영향을 받는다. 한인 사회도 교회나 성당에 출석하는 사람들의 비율이 한국보다 높다. 한인 사회가 교회나 성당을 중심으로 형성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트럼프 행정부의 반이민정책은 서류 미비 이민뿐만 아니라 합법적인 이민 절차도 까다롭게 만들기 때문에 이민 사회의 교회나 성당도 교인 수 감소가 예상된다. 실제로 미국에 들어오는 유학생 숫자가 줄어들고, 미국에서 학위를 마쳐도 취업 비자를 받기 어려워 고국으로 돌아가는 학생들이 늘고 있다. 결국 반이민정책의 강력한 지지 세력인 복음주의 기독교계가 기독교인 이민자들을 내쫓고 있는 형국이다.

미국 백인 복음주의권의 뿌리 깊은 순혈주의는 미국 기독교 역사에서 이미 여러 차례 잔인한 폭력성을 드러냈다. 미국에 처음 들어 온 낯선 교단의 기독교인들은 당시 기득권 기독교인들에 의해 강력한 반발과 차별을 겪어야 했다.

미국 역사 속 기독교 내 갈등과 박해

미국인들은 이민 역사의 시작을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온 필그림의 도착으로 여긴다. 그 이후로 자유로운 세상을 꿈꾸던 수백만의 이민자들이 미국에 건너와서 누구나 종교의 자유를 누리며 정착해왔다고 배웠다. 하지만 스미소니언의 케네스 데이비스는 이러한 믿음이 날조된 신화라고 지적한다. 이민 사회 내 종교 차별과 학대는 콜롬버스가 미국에 도착하기 전부터 존재했다.

첫 희생자들은 프랑스 가톨릭의 박해를 피해 미국에 건너 온 칼빈주의 위그노(Huguenot)들이었다. 그들은 1564년 플로리다 포트 캐롤라인(현 잭슨빌)으로 이주했다. 하지만 미국에 도착한 다음 해인 1565년에 가톨릭 스페인 군대에 거의 전멸을 당했다. 당시 스페인 군대 지휘관은 국왕 필립 2세에게 이런 편지를 보냈다: "포트 캐롤라인에 사는 프랑스인들을 전부 목매달았습니다... 그들은 이 지역에 참으로 혐오스러운 루터교 교리를 퍼트리고 있었습니다." 유럽에서 미국으로 온 첫 번째 이민자들의 역사는 학살로 얼룩지고 말았다.

반세기 뒤에 뉴잉글랜드에 정착한 청교도들은 반대로 가톨릭을 포함한 다른 개신교를 배척했다. 가톨릭은 이민 초기부터 수백 년간 차별을 당했다. 카톤 마더 같은 유명 목사들은 가톨릭 교인들은 재산을 갖거나 투표에 참여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설교했다.

1659년에서 1661년 사이 네 명의 퀘이커 교도들이 보스턴에서 교수형을 당했다.

독립전쟁 승리 후 매사추세츠에서는 개신교인들만이 공무원이 될 수 있었고 가톨릭 교인들은 교황의 권위를 공개적으로 부정한 후에만 임용되었다. 1777년 뉴욕 주는 가톨릭 교인을 공직에서 배제하는 법안을 통과시켰고 이 법은 1806년까지 시행되었다. 메릴랜드 주에서는 가톨릭 교인은 용납되었지만 유대인들은 공직에 나설 수 없었다. 델라웨어 주에서는 공직에 나서려는 사람은 누구나 삼위일체 신앙을 증명해야만 했다. 매사추세츠와 사우스캐롤라이나 등 몇몇 주에서는 주정부의 공식적인 지원을 받는 개신교 주립 교회들이 존재했다.

1779년 버지니아 주지사 토마스 제퍼슨은 종교에 관계없이 모든 시민에게 법적인 평등권을 보장한다는 법안을 마련했다. 교회와 국가의 분리는 1786년 버지니아 의회가 토마스 제퍼슨의 이 법안을 통과시키며 처음으로 이루어졌다.

반가톨릭 정서는 19세기에도 계속됐다. 1830년대에는 아이리시 출신 가톨릭 교도들이 핍박의 대상이 되었다. 1831년 뉴욕의 세인트 메리 성당이 개신교인들에 의해 전소되었다. 텔레그래프 발명으로 유명한 사무엘 모스는 1835년에 미국이 "장벽"을 세우지 않아서 다른 나라들이 "그들의 범죄자들"을 미국으로 보내고 있다고 경고했다. 또한 "적들의 편에 서 있는" 진보 미디어들에 의해 자신과 동지들이 부당한 공격을 받고 있다고 불만을 터트리기도 했다. (본보 제휴 <뉴스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19년 11월 04일, 월 12:36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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