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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경제
 
110 years ago today, Ahn Jung-geun wiped away the tears of 20 million people 103019
110년전 오늘, 2천만 백성 울분 씻어준 안중근
하얼빈 의거 110주년을 기념하며... 그때 안중근을 다시 전한다


(서울=오마이뉴스) 박도 기자


▲ 안중근 의사 ⓒ 눈빛출판

10. 26.

1909년 10월 26일. 그날 하얼빈에 머물고 있었던 안중근은 평소와 다름없이 아침을 맞았다. 그는 일찍 일어나 세면을 한 뒤 그동안 입고 다니던 새옷 대신에 평소 입던 옷으로 갈아입고 모자를 썼다. 간밤에 손질해 두었던 브라우닝 권총을 꺼내 약실에 총알 일곱 발을 장전한 뒤 손수건으로 총신을 정성껏 닦아 품속에 넣었다. 그런 뒤 하얼빈역이 있는 북쪽을 향해 무릎을 꿇은 다음 성호를 긋고 기도했다.

'천주님! 모든 것을 당신 뜻에 맡깁니다.'

안중근은 조용히 방문을 열고 밖으로 나와 잠자리를 마련해 준 동포 집주인에게 감사의 인사를 정중히 드렸다. 그런 다음 곧장 하얼빈역으로 바삐 걸어갔다. 하얼빈 역에 닿자 시계탑 시계는 오전 8시를 막 지났다.

그 시각, 하얼빈 역 일대는 이토 히로부미 일행의 특별열차 도착을 앞두고 평소보다 분주했다. 안중근은 하얼빈역 구내 1등 대합실로 갔다. 거기서 초조한 마음을 달래고자 차를 주문해 마시면서 흥분된 마음을 진정시켰다. 그러면서 이토가 탄 특별열차가 도착하기를 담담히 기다렸다.

한편, 1909년 10월 25일 밤 11시에 이토 일행을 태운 관성자(현재 창춘) 출발 특별열차는 하얼빈역으로 다가오고 있었다. 간밤 늦게 잠든 이토는 오전 8시 무렵 특별열차 귀빈실 침대에서 일어났다. 그는 차내에서 세수를 한 뒤 비서 모리의 도움으로 플록코트 정장을 갖춰 입었다. 그는 차비를 다 갖춘 뒤 차창 밖을 내다봤다. 그새 특별열차는 하얼빈역을 향해 천천히 접근하고 있었다.

이윽고 특별열차가 긴 증기를 뿜으며 하얼빈 역 플랫폼에 멎었다. 그러자 대합실에 있던 일본 거류민 환영객들은 영사관 직원의 지시에 따라 하얼빈 역 플랫폼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안중근은 그제야 중간 역 지야이지스고(채가구)에서 우덕순 동지의 거사가 실패한 모양이라고 단정했다(당시 안중근은 우덕순 등과 각자 구역을 정해 이토 히로부미 처단을 계획했었다 - 편집자 주). 안중근도 얼른 일본인 환영객 틈에 휩싸여 플랫폼으로 나갔다. 그는 재빨리 러시아군 의장대 뒤편의 일본거류민단 환영객 틈에 성큼 끼어 섰다.


▲ 옛 하얼빈 역 ⓒ 눈빛출판사

옛 하얼빈 역 플랫폼

오전 9시 정각, 열차 도착에 맞춰 하얼빈역 플랫폼에 도열한 러시아 군악대가 주악을 연주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러시아 재무대신 코코프체프는 열차에서 내린 이토 비서 모리의 안내로 객차에 들어가 이토에게 정중히 도착인사를 했다.

"이토 공작각하! 먼 길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하얼빈역에서 코코프체프 각하를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이토는 코코프체프가 내민 손을 잡으며 다정하게 답했다.

"이토 공작각하! 우선 저희 나라 의장대를 열병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
"황송하게도 열병까지… 아무튼 감사합니다."


▲ 이토 히로부미 ⓒ 눈빛출판사

이토는 열차에서 내린 다음, 코코프체프의 정중한 안내를 받으면서 먼저 러시아 의장대 앞을 지나 환영 나온 각국 영사들이 서 있는 곳으로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갔다.

러시아 군악대의 연주 속에 이토와 코코프체프가 나란히 선두에 서고 그 뒤를 수행원들이 뒤따랐다. 그때 하얼빈역 플랫폼 기둥에 달린 시계침은 오전 9시 25분을 막 지나고 있었다. 이토는 각국 영사들과 의례적인 인사를 나눈 뒤, 일본 거류민단 환영객 앞을 지나 다시 러시아 의장대 쪽으로 되돌아오고 있었다.

그때 안중근은 줄곧 이토 일행의 동선을 뚫어지게 주시하면서 기회를 엿보았다. 그 순간 안중근은 한 발자국이라도 더 가까운 거리에서 권총을 발사하고자 재빨리 러시아군 의장대 뒤쪽에서 앞으로 튀어나왔다. 모든 사람들의 시선은 이토 일행에게 집중된지라 다행히 안중근의 돌출행동을 제지하는 사람이 없었다.


▲ 이토 일행이 특별열차에서 내리고 있다(왼쪽에서 세 번째 이토). ⓒ 눈빛출판사

이토 일행이 막 러시아군 의장대 앞을 지날 때 안중근은 그 순간을 하늘이 준 절호의 기회라 여기고 가슴에 품고 있던 권총을 재빨리 뽑았다. 그때 안중근과 이토와 거리는 열 발자국(9미터) 정도였다. 안중근은 온 정신을 집중해 첫 방아쇠를 당겼다.

코레아 우라!

'탕!'

권총 발사소리와 함께 첫 탄알이 이토의 팔을 뚫고 가슴으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총소리는 주악 소리에 뒤섞여 그때까지 경비병들은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참으로 다행이었다. 안중근은 다시 혼신을 다해 두 번째 방아쇠를 당겼다.

'탕!'

두 번째 탄알은 이토의 가슴에 명중했다. 경비병과 환영객들은 그제야 돌발사태를 알아차리고 겁을 먹은 채 소리를 지르며 우왕좌왕 흩어지거나 도망쳤다.

러시아 군악대의 주악소리도 갑자기 멈췄다. 총을 맞은 이토는 가슴을 움켜쥐고서는 뭐라고 중얼거리며 비틀거렸다. 안중근은 침착히 이토의 마지막 남은 숨을 확실히 끊고자 다시 가슴을 정조준 한 뒤 세 번째 방아쇠를 당겼다.

'탕!'

세 번째 탄알은 이토의 복부 깊숙이 명중했다. 이 탄알은 이토의 명을 단시간에 확실히 끊어준 절명의 탄이었다. 그제야 이토는 코코프체프 쪽으로 픽 쓰러졌다. 하지만 안중근은 그가 이토가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이토를 수행하던 세 사람에게도 한 방씩 안겼다.


▲ 안 의사가 발사한 탄알로 일본헌정기념관에 전시돼 있다. ⓒ 눈빛출판사

안중근의 권총에 장전된 일곱발 총알 가운데 그날 발사된 여섯발 중 어느 하나도 헛발이 없었다. 안중근의 대담한 사격술이었다. 그 의탄은 안중근이 일본 열도를 향해 던지는 불방망이었다.

안중근은 네 사람을 차례로 쓰러뜨린 그 자리에서 "대한독립 만세!"를 러시아어로 세 번 외쳤다.

"코레아 우라(대한 독립 만세)! 코레아 우라! 코레아 우라!"

안중근은 만세를 마치자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마침내 다 끝냈다. 그래서 그는 권총을 거꾸로 잡은 뒤 러시아 경비병에게 건네주며 스스로 당당하게 연행됐다.

그때 하얼빈 역 플랫폼 시계는 오전 9시 30분을 막 지나고 있었다.


▲ 1910. 3. 26. 순국 직전 뤼순감옥에서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모습. ⓒ 안중근기념관

안중근은 눈 깜짝할 사이 당신의 계획대로 모든 걸 다 해치웠다. 이는 대한의군 참모중장 독립특파대장 안중근의 장쾌한 거사였다. 안중근의 총알이 이토의 가슴을 꿰뚫는 순간, 1876년 강화도조약 이래 30여 년 동안 쌓였던 대한국 백성들의 울분이 한순간에 '뻥' 뚫렸다. 그 누구도 할 수 없던 장쾌한 일을 안중근 의사는 혼자서 권총 한 자루로 시원하게 해냈다.

다음은 안중근 순국 후 중국 동북지방 소학생들이 불렀다는 <안중근을 추모하며> 노랫말의 일부다.

"진실로 공경할 만하다
이토 히로부미를 죽이고 자신도 용감히 죽었다
(중략)
누가 그의 뒤를 따르랴!
누가 그의 뒤를 따르랴!" (본보 제휴 <오마이뉴스>,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올려짐: 2019년 11월 03일, 일 10:20 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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